S대 사회학과와 철학과를 복수전공한 그 언니는 나의 우상이었다.
나의 정치노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심지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그 언니에게서 답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언니는 당당했고 똑똑했고 멋졌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부심과 자존감이 넘쳐흘렀고 매사에 현명한 사람이었다.
언니가 정치인을 했으면 대한민국의 정치 판도를 바꿨을 거였고, 사회운동가가 되었다면 이 사회에 변혁이 일었을 것이며, 나는 그 언니가 사회의 중심축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언니는 나의 아이돌이었다.
그런 언니가 공무원 시험을 봤다고 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누구보다 똑똑한 언니였으므로.
그런데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가 없다. 어째서일까.
그 사람이, 하필 그 사람이 공무원이 되었다.
누구보다 야심차고 멋졌던 사람도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나보다.
공무원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필 그 사람이 결국 노량진 고시원에 앉아 공무원 수험서를 보며 느꼈을 현실의 벽과 좌절감에 진저리가 난다.
쉽게 표현하면 인재였다. 뭐든 할 사람인데 결국엔 이 사회와 현실 앞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던 거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언니를 바라보며 달려온 나 역시 결국엔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어야하는 것일까.
꿈을 꾸겠다고,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겠다고 고민없이 학교를 때려치우고 수능을 다시 보고 나의 능력 앞에 주저앉아 결국 재입학 원서를 준비하는 나 역시 같은 노선을 밟아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그 길을 이미 따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년 쯤 후에는 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아니, 이미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 나 역시 수많은 젊은이들 중 하나이다. 언니와 나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오만이다. 알고있지만 외면했을 뿐.
한없이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