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이 희뿌옇다. 자욱한 먼지구름이 하늘을 뒤덮어서 햇빛 한줄기조차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이런 어두운 폐허 속에서 총성이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나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건 소설 속이나 제3국에서 일어나는 일인 줄로만 알았다.
"하아, 하아"
많은 먼지가 묻어버려서 회색으로 변해버린 수건은 입을 가려도 먼지를 걸러내는지조차 불확실하다. 드디어 저 빌어먹을 총성이 끝났다. 잠시 기다려보았지만 더 이상의 총성은 들려오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건물 구석에서 불을 지폈다. 붉게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고 덧없다고 생각한다. 불은 땔감을 잡아먹으며 불타오른다. 그리고는 금세 사그라들어버린다.
허기를 느끼며 구석의 서랍에 넣어둔 말라붙은 고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런 고기를 구워 먹는 나. 이런 삶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다가도 죽음은 두렵다. 눈앞에서 보아온 죽음은 언제나 두렵다.
나는 불길 앞에 마주 앉아있는 민철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는 초췌한 얼굴로 타오르는 불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적막해진 분위기에 말을 걸어보려던 나는 다시 입을 꽉 다물었다. 그가 다시금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기에.
맛있게 구워진 고기는 잘 넘어가지 않았다.
오늘의 식사를 마치고 불을 끈다. 곧 날이 저문다. 밤에 불을 피우는 행동은 언제나 위험하다. 나는 연기도 나지 않게 불을 확실히 끄고 구석에 앉아 라디오를 만졌다.
고장 나버린 것일지도 모르는 라디오는 계속해서 불쾌한 소리만을 내뱉었다.
"하아..."
오랫동안 씨름하던 나는 라디오의 건전지를 빼내고는 던져버렸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날이 어두워졌다. 오늘은 그믐달. 도시에서는 별하나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별 무리 속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달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모두가 도망쳤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는 징집당하거나, 죽었다. 반란군과 뒤섞여 민간인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우리를 죽였고 짓밟았다.
그래서 지금은 바퀴벌레와도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어서 이 전쟁이 끝나길 빌면서.
"언제나 움직일 때는 짧고 신속하게."
옆에서 같이 움직이는 민철이 중얼거린다. 나는 조용히 끄덕이며 이제는 텅 비어버린 마트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쓸만한 거 하나쯤은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구석구석 찾기를 몇 시간. 조그만 손전등을 찾아냈다. 비록 전구의 불빛이 불안하게 깜빡였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수확이라고 생각하며 마트 안을 비춰보았다.
구석에 누군가 있다.
나는 황급히 손전등을 끄고 허리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차가운 금속이 느껴진다. 최대한 천천히 최대한 조용히 다가갔다. 이내 눈이 어둠에 적응해 주위사물이 어느정도 보이자, 나는 그것의 얼굴에 손전등 불빛을 비췄다.
깜빡이는 불빛에 비춰진 것은 한 소녀였다. 그녀는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입을 벌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입속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
나는 그런 그녀에게 눈길을 한 번 주고는 뒤돌아 걸어갔다.
"왜 그녀를 붙잡지 않는거야?"
나와 나란히 걷고있던 민철이 물었다.
'글쎄...'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자기들끼리 무리지어있다. 별들은 서로 무리를 지으면서도 자신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 걸까.
바스락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뒤에서 그녀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시선을 피하는듯 하더니 다시 내 눈동자를 올곧게 바라봤다.
어째서일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은 소녀와 같이 피난처로 들어갔다.
예전에는 원룸촌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2층과 3층이 무너져버리고 1층만이 겨우 제 구실을 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 들어와서 구석에 두 다리를 가지런히 한채 앉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배고프니?"
침샘이 마르는 느낌이다. 입이 잘 떼어지지 않았지만 다행히 말을 할 수 있었다. 소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름이 뭐니, 난 승혁이야."
처음 한마디가 어려웠지 두번째부터는 쉬웠다. 이내 오랜만에 살아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에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옆에 앉은 민철은 그런 나를 보고 혼자 툴툴거렸지만.
"...소민"
스스로를 소민이라고 칭한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깊은 눈동자,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 나는 이걸 원했다. 부르르 떨리는 형용치 못하는 감각에 나는 전율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열어 안에 말린 고기를 꺼냈다.
"지금은 밤이어서 불을 피우지 못하지만, 잠깐만 기달려."
나는 그 아래 서랍을 열어 조심스럽게 봉투에 든 소금을 고기 위에 약간 뿌렸다. 그리고 그 고기를 그녀에게 건내주었다.
그녀는 내밀어진 고기를 보고 속으로 고민하는것처럼 주저하더니 휙 낚아채가서는 야금야금 씹어먹었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숨쉴틈도 없이 고기를 먹어가는 그녀를 흐뭇하게 지켜봤다.
그러다가 나는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전쟁은 언제나 선과 악으로 나뉠때 편해진다. 흑백논리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예가 전쟁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속에서 너무나도 순수했다. 나는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나는 요리사였어."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기로 맘먹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으로만 계속해서 떠올렸던 이야기를.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나는 요리사였다. 유명한 요리사는 아니었고 일반적인 레스토랑의 주방장이었다. 그런 나에게 뉴스로 시작된 전쟁의 시작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제일 처음 현실이라고 느꼈던 것은 폭격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건물들이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잔해에 파묻힌 시체들과 울고있는 사람들.
나는 그렇게 이 도시에 고립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물자들을 최대한 모았다. 창고가 거의 꽉 찰때쯤, 어디서 들었는지 무장한 사람들이 물건들을 훔쳐가버렸다. 나는 일순간에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가 되었다.
갈길을 잃은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는지 몰랐다. 그저 걸을뿐. 사람들은 이기적이지만 불평등앞에서는 협동한다. 거리를 방황하던 나를 붙잡은건 민철이라는 사람이었다. 그자는 민종이라는 자신의 형과 같이 살고 있었고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에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부족하지만 단란했던 세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민종은 보름달이 뜬 날 물자를 찾기위해 집을 나섰다. 그리고 영영돌아오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오래된 호텔근처에서 그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슬픔을 이겨내지 못한 자의 최후는 끔찍했다.
"...그래서 가끔씩 나에게 민철이 말을 걸곤 해."
그녀는 조심스러워진 얼굴로 조용히 내 말을 들었다.
나는 그런 순결한 그녀를 더럽혀야만 한다. 그런 세상이니까. 그런 전쟁이니까. 나는 경각심을 일깨워줘야한다. 그게 내가 해야할 일이니까.
스스로 다독이며 나는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그래서, 너가 먹은 고기는 무슨 맛이었어?"
"..."
1초, 2초, 3초 그녀의 눈은 점점 커지더니 구석으로 가서 토악질을 내뱉는다. 내가 원하던 장면이다. 이제 나를 원망해라. 원망해야한다. 나를 싫어하고 표독스럽게 이를 갈아야만 이런 세상에서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니 나를 저주해라.
구토가 끝난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내가 들어서는 안될. 그녀가 말해서는 안될. 말을.
"얼마나... 고통스러웠나요."
"..."
"당신은 선을 넘으면서 무엇을 느꼈나요."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일렁였다. 속을 게워내서 나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괴롭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더 무거웠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반려견센터가 있었어."
그렇게 그녀와의 기묘한 첫만남은 해가 뜨고서야 잠듦으로써 끝이 났다.
다음날 낮이되어서야 깨어난 우리는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먹었다. 그녀는 고기를 보고 흠칫거렸지만 내가 부위설명을 해주고 나서야 정상적으로 식사를 했다.
"사람은 다섯명이 모이면 그중에 쓰레기가 하나는 꼭 있어."
밥을 먹고 나는 말동무가 생긴것에 기뻐 늘 말하고 싶었던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사람은 동화되기 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지."
소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넌 달라. 난 그렇게 느꼈어."
그녀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혹시, 신이라는걸 믿어? 아재아재 바라아제."
그리고는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웃었다.
킥킥 웃어대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하늘을 뒤덮은 먼지구름이 조금은 옅어진것만도 같았다.
"실제로 종교는 이런 때에 의지하라고 있는거야."
"하지만 그래도 불교는 아니에요."
방그레 웃은 그녀의 미소에 가슴이 약간이나마 뛴 것만도 같다.
"오늘도 저녁에 나가나요?"
그녀와 만난지 10일이 흘렀다. 소민은 전보다 말을 하는 빈도가 늘었고 눈앞에 보이던 민철은 점점 말을 거는 빈도가 낮아져갔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있다는 증거겠지.
풍족한 생활은 못했지만 만족스런 생활이라고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낮은 위험했다. 어디에선가 총소리가 나고 비명소리가 났다. 그런 하루가 반복되자 점점 누군가 사라지는 것에 무신경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럴때면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올곧은 순수한 눈은 고통을 잊게 만들어주니까. 마치 아내라도 된듯 행동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피난처를 나왔다.
그날 저녁 나는 밖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황량한 도로에는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들과 멈춰버린 차들, 쓰러진 전봇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조용하고도 빠르게 잔해속에서 길을 찾아갔다. 지금 찾아가는 곳은 저번에 봐두었던 옷가게. 나는 그녀의 옷을 보고 내 외투중 하나를 빌려주었지만 약간 크다고 느꼈다.
그렇게 찾아들어간 옷가게안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급해지면 가까운건 보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마네킹이 입은 옷을 벗기고 챙겨 빠져나왔다. <오다가 주웠다>고 웃으며 그녀에게 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된다.
밝다. 하늘을 바라보고 나는 깨달았다.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 그녀와 같이 생활하며 날짜계산을 잘못한 것을 깨달으며 나는 다른 곳에 들리지 않고 다시 피난처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인 것은 군인과 그에 짓눌려 고통받고있는 그녀였다.
나는 주저없이 달려가 그의 머리를 발로 찼다. 우득거리는 기분나쁜 느낌이 전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다행히 소민은 겁에 질려 벌벌 떨고만 있을뿐 몸에 문제는 없었다.
그때였다.
탕 거리는 총성과 함께 몸이 뒤로 힘없이 날라갔다. 배가 화끈거린다.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곧 그 화끈거림은 점점 심해져 고통으로 다가왔다.
"이 새끼가..."
군인은 턱을 부여잡으며 권총을 나에게 겨누고 있었다.
"안돼!"
그녀가 울부짖는다. 안된다. 그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이 얼굴이 최후의 모습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바지의 뒷주머니를 만지다가 느껴지는 쇠의 감촉에 그것을 움켜쥐었다.
탕
다시한번 총성이 울렸다. 이번에는 내 손에서 나는 소리였다. 군인은 갑작스레 몸이 고꾸라지더니 풀썩 쓰러졌다.
"민철아, 고맙다."
경찰제복을 입고 싸늘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그에게 조용히 읊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민은 얼굴이 눈물 범벅이었다.
"안되요! 죽으면 안되요. 이걸 어떻해..."
그녀는 피가 울컥 쏟아져 나오는 배를 꾹꾹 눌렀다.
"슬퍼하지 마. 내가 죽어도 그런 얼굴을 보이지 마. 계속 살아가. 뒤를 바라보지 말고 살아. 어떻게든 살아남아."
숨을 쥐어짜내듯 내뱉은 말들. 그런 말들을 듣고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뇨, 당신이 죽는다면 저도 죽을 거에요."
"아냐, 넌 살아야해. 희망이 보였어. 너의 눈에서 의지가 보였어."
나는 더이상 말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가져다 댔다.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지않고 아쉬움이 가득했다.
죽어가며 나누는 입맞춤은 달콤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다. 그저, 기쁘고 행복함이 물밀듯이 들어온다.
"거짓말 말아요. 사실은 같이 죽는게 더 기쁘면서."
나는 허탈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눈물을 훔치며 미소를 지었다. 최후는 언제나 웃으며.
민철아, 전쟁은 군인들만이 하는게 아니야.
내 옆에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그에게 속으로 말했다.
우리들끼리도 전쟁을 하지. 그리고 그 전쟁에서 살아남는 건 아무도 없어. 고통밖에 없는 승리와 패배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