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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나는 하나의 씨앗이었다.
남자는 나를 깊은 어둠 속에 두며,
자신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는 아내에게 무심히 말했다.
"깊이 심어져서, 오래 갇혀있어야 뿌리가 튼튼하다."
그래, 나는 몸을 더 깊이 웅크렸다.
하늘 아래 꽃 피우는 모든 것이 태양을 향해 손짓 했지만,
나는 그 날을 위해 스스로 어둠 속을 헤매였다.
나는 첫 날을 기억한다.
어미의 틈을 비집고 나와 하늘을 보았을때,
하늘은 푸르렀으며 나는 그제야 자유의 뜻을 느낄수 있었다.
갇혔던 자의 기지개는
빛나는 흰손의 그것보다 거칠지만 자유롭다.
나는 갇힌 땅에서 고개를 들어낸 자였고,
뜨거운 여름날 태양을 피하지 않은 자이다.
바람이 불어 흔들리더라도
내 뿌리는 굳건했다.
허나 황금빛 설렘에
마지막을 기다리는 나.
내 끝을 아는 듯 나의 뺨을 만지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전히 튼튼한 뿌리에도 끝은 모가지로부터 찾아왔다.
마치 교수형을 당하듯이.
내 모가지를 꺽어 어미와 생이별 시키는
강철의 이빨에도 그는 침묵했다.
허나 거친 면사포에 자식을 실어보내던 날,
그는 조금 울적해 보였던것 같다.
언제나 멀끔하게 얼굴을 마주하며 고개 인사하던 동무들은
어느새 반나체가 되어 한 곳에서 뒤엉켰다.
우리에겐 부끄러워 할 시간도 없었다.
희박해져가는 의식을 지옥불이 끝없이 깨워주었으므로.
흰기둥의 숲을 지나,
끈적한 설수(獸)의 농락에
마침내 나는 마지막 끈을 놓아버렸다.
이제 나는 다시 어둠.
태초의 어둠으로 돌아왔다.
나를 품은자는
또 누구를 위해 작고 큰 평지(field)를 굽이굽이 품은 것일까.
어둠은 길고 정체된 시간은 기약이 없다.
깊은 입주름 가득한 자의
탄식의 한숨이 끝없이 차오름에도,
실체없는 울림만이 높은 두 언덕 사이를 슬프게 울릴 뿐이다.
하지만 기억이란 이렇게 강력하다.
사방이 어두워 어느 한 곳에도 빛이 보이지 않고
쾌쾌한 썩은 내가 진동하는 이 곳에서조차.
나는 태초의 기억을 잊지 않았다.
"깊이 심어져서, 오래 갇혀있어야 뿌리가 튼튼하다."
무심했던 그의 말이 마지막에 나를 깨웠다.
가자 앞으로
가자 앞으로
가자 앞으로
나는 동무들을 일깨워 전진했다.
전진
전진
전진
.
.
.
"!"
나는 둘째 날을 기억한다.
백색의 바다가 나를 맞이한 그 순간,
나는 이제 다시 어미의 품으로 돌아감을 직감한다.
고요의 소용돌이 속으로 잠기던 순간 등 뒤에 들리는 기쁨의 소리들.
"엄마 나 똥 3킬로 쌌어. 똥이 아니라 돌이야 돌"
"것봐. 현미가 직방이지?"
(부제 : 발아현미 짱짱맨.)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