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열하는 불길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조용히 뜨거운 책게.
많이 와서 사우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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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병신이다.
대학까지 졸업해놓고 집구석에 앉아 잣이나 까먹는 그런 병신.
잣마저도 가평에서 부모님이 보내온 잣이다.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선생님이 돼 보겠다고 책이나 잔뜩 쌓아놓곤.. 공부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말로만 되뇐다.
잣을 한 십 분쯤 까먹었나보다. 잣의 고소한 맛이, 손에 익은 노동의 관성이 잣을 계속 까게 만든다. 하지만 든든하지가 않다.
밥을 먹을까.. 냉장고엔 어머니가 보내주신 오징어 젓갈이 있다. 밥 한 주걱 덜어 물에 만다. 그리고 오징어 젖을 한 숟갈에 두 개씩 올려 입 안에 넣는
다. 정말 짜다. 한 입 먹고 뱉어버린다.
입에서 토해진 오물을 뒤로하고 모로 누워 눈물을 짠다.
꾀죄죄한 얼굴, 잘생긴 얼굴. 병신 같은 삶, 아름다운 삶. 대조된다. 전자의 세상은 오징어 젖 같은 세상이고 후자의 세상은 가평 잣 같은 세상이다. 그게 뭐냐고? 전자는 짜고 후자는 안 짜다. 전자는 그냥 짜. 후자는 맛있지만 안 남아. 그냥 작아. 배도 안 차고.
그래도 오징어 젖만 계속 먹으면서 버틸 수는 없다. 이젠 지쳤다. 잣은 계속 먹을 수 있지만.
그래서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잣만 먹고도 살 수 있다. 오징어 젖은, 먹고 버텨도 나에게 돌아오는 게 없다.
나도 많이 먹었는데. 요즘 다 같이 많이 먹으니 상향평준화가 됐다.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물도 못 마실 정도로 빡빡하다.
남을 이기려면 그냥 오징어 젖만 먹어야 된다. 물까지 마시면 탈락.
오징어 젖 같은 세상 속에서 오징어만 먹고 살아남으면 오징어를 잡아야 한다.
오징어 잡는 게 좋나? 다들 어찌나 독하게 쳐 먹던지.
예전, 부모님과 같이 살 때 어머니가 얹어주시는 오징어 젖은 정말 짰다. 짜고, 또 짰다.
매일같이 학교에서, 주변에서, 어머니가 아버지가. 오징어 젖을 먹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며 오징어 젖만을 먹였다. 먹다가, 먹다가. 지쳤다. 더 이
상 먹으면 내가 오징어가 될 거 같았다.
조금만 버텨보자고, 그랬는데 그냥 포기해버렸다.
얼렁뚱땅 성인이 되니 아무도 오징어 젖을 숟가락에 올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오징어 젖을 먹어보겠다고 무릎 꿇고 애원했다.
어머니는 해보라며 젖과 잣을 같이 주셨다. 동굴에 들어가서 젖을 먹으면 사람이 되고 잣을 먹으면 호랑이가 된단다.
그래. 나는 호랑이가 되어가는 중이다. 오징어 젖은 사람도 호랑이로 만든다. 젖 같다. 오징어 젖.
그런 젖 같은 세상이었는데 그 젖 같은 세상이 그립다. 그 세상은 바로 앞에 있는데, 앞으로 가라며 옆에서 잡아주는 어머니가 그립다. 잣만 까먹다가는 어른이 될 수 없다던 아버지도 그립다. 어머니가 젓가락으로 고이 올려주시던 오징어 젖이 그립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혼자서 할 수 없다. 그래서 잣이나 까먹는다. 손에 익은 노동의 관성을 누가 멈춰주었으면, 하며 까먹는다.
젖 같은 세상에서 도망쳐
잣 같은 세상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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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