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새끼야! 돈이나! 뱉으라고!”
만월동, 중국집 2층에 위치한 ‘해결사’ 사무실. 사실 ‘해결사’라는 말은 ‘심부름센터’가 아닌 ‘백사파의 일수, 용역, 장기매매, 살인청부, 불법의료행위, 흥신소, 그리고 겸업으로 하는 위장용 간판의 심부름센터’라는 뜻이다.
“박용만, 36세. 서른 다 되도록 편돌이로 살다가 겨우 취직한 직장에서 꼴랑 5년 좀 넘게 일하다 서른 다섯에 잘리고, 부모님이 남겨주신 파주 산골 고사리 밭 판 돈은 도박랜드에다 꼴아박고, 개평 50만은 저기 강임수네, 그 저승파 하우스에다 날려먹고, 백구한테 돈 빌리고 또 날리니까 애걸복걸해서 백구가 여기로 보냈다, 이 말이구만. 아재요 엠창인생이 따로 없수? ㅋㅋㅋㅋㅋㅋ!”
김홍택은 정은주에게 맞고 있는 박용만의 앞에서 검사마냥 박용만의 죄를 줄줄 외웠다. 책상 위에 앉아있는 권재호는 마치 말라비틀어진 지렁이를 개미굴로 끌고가는 개미를 보는 것 마냥 시큰둥한 표정으로 박용만이 맞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은주는 마침 퇴근시간이었는데 굴러들어온 탓에 평소보다 감정이 실린 주먹으로 박용만의 명치며 광대뼈를 사정없이 후드려 팼다. 그럼에도 성이 안 찼는지
“연장 가져와! 이 쌍놈새끼, 손모가지를 썰어버릴라!”
박용만은 이내 눈물을 흘리며 한없이 겁을 먹고 “살려주세요!”를 연발했다. 그러던 중, 막내 김성일이 정은주의 어깨를 살며시 잡으며 그를 제지했다.
“선배! 그쯤 해요. 도끼는 너무하잖아요.”
마음 약한 김성일의 만류에 정은주의 주먹도 서서히 멈춰 섰다.
“맞다. 그쯤 해라. 치료비 낸답시고 돈 안 내놓을라.”
“알겠습니다. 백룡님.”
정은주는 씩씩대는 표정으로 박용만에게서 물러갔다. 백룡, 그러니까 권재호는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농담 아닌 농담을 바닥에 뒤섞여 있는 둘에게 던졌다.
“앉혀라.”
장동혁은 창문부터 쇠로 된 정문까지 문이란 문은 전부 단단히 걸어 잠갔고 정은주와 김성일은 박용만을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 꿇려 앉힌 뒤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김홍택은 간신배처럼 권재호가 앉은 의자 옆에 서서 낄낄대며 부들부들 눈물이 떨어지는 박용만을 주시했다.
“새우잡이도 싫고, 삼치잡이도 싫다면, 죽는 거 말고 선택지가 두 개 남았긴 한데...”
“심플하게 담가버리자구요. 백구 형님이 보험은 이미 들어놨다니까.”
권재호는 골똘히 생각했다.
“뭐... 뭐든지 하겠습니다...! 살려주세요...!”
박용만은 몸부림을 치며 외쳤다.
“쉐-끼가 입 안 다무냐? 이웃에 소음피해 계속 줄래?”
정은주는 팔꿈치로 박용만의 하악下顎을 가격했다. 권재호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너 담배 있냐?”
“네... 있습니다...!”
박용만은 김성일이 살짝 놓아준 오른팔로 마이 안주머니의 포장도 안 뜯은 담배 한 갑과 도박랜드 인근 다방의 광고문구가 박혀있는 초록색 싸구려 라이터를 꺼내 바닥에 내려놨다. 김성일은 다시 박용만의 오른팔을 꽉 붙잡았다.
권재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담담히 말했다.
“너 도나쓰 불 줄 알지?”
“아, 넵!”
“그럼 불어봐.”
권재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홍택은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정은주에게 건넸고 건네진 담배는 박용만의 귓구멍에 강하게 쑤셔 박혔다. 스펀지 필터 덕분에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중이염을 앓던 박용만은 깜짝 놀라며 표정을 구겼다.
김홍택은 “얼굴 펴라. 불쑈 들어간다잉~”이라면서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지폈다. 박용만은 “으흑! 으흑!”하는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양팔이 붙잡힌 상태로 몸부림쳤다.
“이... 이러면 도나쓰고 뭐고 어떻게 불어요...!”
박용만이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아가리로 도나쓰 부는 건 유치원 다니는 우리 조카도 30분이면 배워요 씨발. 너 이 새끼 이제 보니 존나 얌체새끼 아니야? 담배 한 까치 핀다고 천만 원을 시마이 쳐 주는게 말이나 되니? 씨벌 조폭을 아주 한국담배공사 홍보모델로 안다, 얘?”
김홍택은 깔깔대며 박용만의 얼굴을 쳐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귀에서 떨어진 담배개비를 주워 박용만의 넥타이핀에다 대고 비벼 불을 껐다.
“열아홉 개 더 남았는데 어째 불어볼래, 아님 다른 거 해 볼래?”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박용만은 다른 걸 하겠다고 선언했다.
“따라와라.”
권재호는 그렇게 말을 하고 문 밖을 나서 건물 1층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손에 쥔 차키의 버튼을 누르니 앞 범퍼에 금빛 이빨무늬가 그려진 무광블랙 재규어-XF의 눈빛, 아니 헤드라이트가 반짝였다. 권재호는 키를 김홍택에게 던져주고는 뒷자리에 털썩 앉았다. 뒤따라 나온 박용만의 팔을 잡은 정은주와 김성일은 박용만을 안전벨트로 조수석에 묶어두었다. 두 명이 차에 탄 걸 확인하자 김홍택은 어디선가 하얀 면장갑을 꺼내 손에 끼우곤 차를 몰았다. 출발하는 차 뒤로 정은주와 김성일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경례를 하고는 다시 사무실에 올라갔다 옷을 갈아입고 퇴근했다.
약 20분 후... 금빛 재규어는 달동네를 벗어나 뒷산인 만월산, 만월성당으로 가는 고개 입구에서 멈춰 섰다. 먼저 운전석의 차 문이 열리고, 김홍택이 내려 박용만의 구속을 풀어주었다. 박용만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차에서 내려왔고 권재호는 ‘눈 좀 붙일 테니 처리하고 와라’는 듯이 잠에 빠져있었다.
두 사내는 야밤의 산길을 끝없이 올라갔다. 이름 모를 새들이며 산짐승들이 마치 수다를 떠는 여고생마냥 수군거렸고 놀이공원에나 있을 법 한 가로등은 잠든 듯이 꺼져있었다. 김홍택은 어디서 주워왔는지 일자드라이버를 꺼내 능숙하게 가로등의 스위치 뚜껑을 따 냈고 스위치를 올림과 동시에 연극의 막이 열리듯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맑고도 순수한 칠흑 같던 밤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보이지도 않던 갖가지 별들이 기이하게 반짝였다. 가로등에 둘러싸인 석회암으로 지은 중세 양식의 성당은 그 꼭대기의 스테인드글라스 구조물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이질적으로 보였다. 박용만에게는 어딘가 정겨운 풍경이었다.
“야, 여기 아주 때깔나지 않냐? 어? 교황청에서 직접 와가지고 이걸 아주그냥- 캬!”
“저... 저는... 뭘 하면 되나요...?”
박용만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여봐요, 아재! 아재는 이렇게 하늘이 보라색인 것에 대해서 의구심이 하나도 안 들어? 그쪽부터 묻는 게 정상 아니야?”
박용만의 선택은 언제나 틀려먹었다.
“이 성당 터는 말이야, 이렇게 가로등 불을 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랑 다른 세상으로 바뀐다, 이 말이야. 여기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밖에서 여기로 오는 길도 없지. 그냥 멀리서 가로등불이 빛나는 것만 보일 뿐이야. 어째서 이리 된 건지는 절~대 알려줄 수가 없고! 그냥 그러려니 해. 알겠지?”
‘씨발...’
“당신의 업무는... 두구두구두구두... 짠! 바로 ‘저주’입니다!”
“...!?”
“여기, 이 사진이 붙은 밀짚 인형을 월요일 밤마다 적당히 눈에 띌 듯 안 띄는 나무를 하나 골라서 못을 박아 넣어. 그러면 끝이야! 아주 쉽지?”
김홍택의 어이없는 말을 들은 박용만은 이내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조직폭력배가 오컬트도 모자라서 흰소리라니...
“수녀랑 신부는 신경 쓸 거 없어. 수녀들은 뭐, 월요일밤에는 옆에 신월동에 새로 생긴 수녀원 가고 신부는 신을 받드는 아부지 같은 게 아니라 귀신같이 애 까대는 아부지니까 밤에 없지. 크크크크크큭.”
김홍택은 자신의 말이 너무 웃겼는지 배를 부여잡고 깔깔대다가 이내 데굴데굴 구르며 박수까지 쳤다.
“나가고 싶으면 이거 하나만 알아둬.”
그러고는 박용만을 성당의 뒤로 끌고 갔다.
성당 뒤편, 초록색 자판기 맞은편에는 작은 구덩이와 그 안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괴물 석상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바로 위에 있는 성당의 처마에서 떨어져 박힌 것 같아 보였다.
“이건 가고일이라는 건데, 액운을 쫒기 위해 만들어진 동상이야. 어찌된 영문인지 떨어져서 땅의 박혀있지만, 신경 쓰지 말고. 핵심은 지금부터니까.”
김홍택은 다시금 낄낄 웃더니 몸을 살짝 쭈그리고는 박용만에게 물었다.
“아재, 동전 있어?”
박용만은 그 말을 듣고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들었다. 100원짜리 동전 네 개, 500원짜리 하나. 동전의 수를 확인하자 김홍택은 지갑을 냉큼 낚아채갔다. 박용만은 순간적으로 ‘음료수가 급했나?’ 하고 생각했지만 김홍택은 500원 짜리를 꺼내서 부드럽게 가고일의 입 안으로 떨어트렸다. 가고일은 마치 음식을 음미하는 듯 입을 닫았다.
순간, 알록달록한 별이 반짝이던 기괴한 보랏빛 하늘은 불빛공해에 다시금 새카맣게 물들었고 아름답던 가로등의 불빛은 누리끼리한 색으로 시시하게 바뀌었다. 김홍택은 박용만을 데리고 다시 입구로 돌아가 뒤통수를 보이며 가로등의 뚜껑을 닫는 작업을 시작했다.
“해 뜨기 전까지 일 끝내고. 해 뜨면 여기서 못 나온다? 그리고...”
박용만은 김홍택의 얼굴을 보고자 각도를 살짝 돌렸다.
“이거 어디다 갖다 까발리면 뒈져.”
김홍택은 입에 칼을 물고 속삭였다. 박용만은 기겁을 하면서 뒤로 나자빠졌지만 김홍택은 그걸 보고 낄낄 웃으며
“븅~신. 이거 다용도 칼이거든? 잘못 꺼냈지롱! ㅋㅋㅋㅋㅋㅋㅋ”
하고는 십자드라이버로 뚜껑을 닫았다.
“불 안 끄고 가면 내일까지 못 들어간다. 하루 날리는 겨.”
만월산 아래. 권재호와 차는 그대로 있었다. 김홍택은 킥킥 웃으면서 운전석에 올라타고는 오른쪽 창문을 열고 외쳤다.
“아재 계 탄 줄 알아! 이거 원래 건당 100만 원짜리 업무인데, 아저씨 석 달만 일하는 걸로 3천만 퉁 쳐주는 거야! 감사히 여겨! 그리고, 음식을 절대로 먹이로 주지 마!”
김홍택이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매주 월요일마다 인형을 보내주겠다. 하루라도 거르거나 이 일을 발설할 경우에는 목이 날아가는 줄 알도록.”
김홍택과 대조적인 권재호의 싸늘한 일침이 있은 후 두껍게 썬팅한 재규어의 창문이 닫혔다. 그러고는 박용만을 혼자 내버려두고 산 아래로 달려갔다. 박용만은 방금 자신이 꿈을 꾼 듯 어안이 벙벙했다.
*
다음 주 월요일 아침. 박용만이 사는 오피스텔로 백사파가 보낸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달랑 볏짚인형과 대못 몇 자루가 들어 있었다. 박용만은 대출 문제가 끝난 뒤 인근 편의점 오후 아르바이트로 취직했다. 이는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만월산으로 가서 저주의식을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박용만은 꾸벅꾸벅 자다 깬 얼굴로 소포를 가져다 가방에 넣었고 대여섯 시간을 더 자다가 일어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난 직후. 박용만은 만월산 정상을 향해 걸어갔다. 쑥덕거리는 짐승들과 벌레들의 소리는 그에게 정적만도 못한 것이었다. 기괴한 보랏빛 하늘과 가고일에 대한 생각으로 그의 머릿속은 가득 찼기 때문이다. 중도비만에다 체력부족으로 인해 숨이 많이 찬 박용만이었지만 어찌어찌 산을 올라갔다.
박용만은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불 꺼진 성당의 암흑 사이로 가로등의 스위치를 켰다. 하늘은 그때처럼 수채화같이 보라색으로 물들었고 보이지 않던 별들이 나사처럼 박혀있었으며 놀이공원에나 있을 법한 가로등이 아름답게 빛났다.
박용만은 준비해둔 장도리를 사용해 지시사항대로 볏짚인형의 머리부터 명치, 고간에 차례대로 대못을 박았다. 콩, 콩, 콩... 못을 다 박은 박용만은 성당 뒤편의 자판기에 수중의 동전 800원을 전부 집어넣고 복숭아 요거트 음료를 꺼냈다. 그리고 그 직후, 맞은편에 가고일이 심어져 있는 구덩이를 바라본 순간 박용만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뿔싸. 동전이 없어.’
가진 지폐라곤 만 원짜리와 오만 원짜리 두 종류. 역시 이런 석상에 먹이기에는 좀 아까운 양의 돈이었다. 그러고는 골똘히 생각하다 “뭔 일이야 있겠어?”하고는 음료수의 절반을 가고일의 쩍 벌린 입 안으로 흘려보냈다. 그와 동시에, 유화 같던 보랏빛 하늘은 깨끗한 어둠에 쫓겨 물러갔다.
가고일은 지난번 동전을 먹였을 때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용만은 깜짝 놀랐다. 가고일의 얼굴에서는 아버지, 혹은 위대한 지도자와 같은 근엄함마저 느껴졌을 정도였다. 박용만의 얼굴에는 화색이 돋았고 내일도 이 얼굴을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박용만은 몇 주간 가고일에게 음식을 제물로 바쳤다. 폐기 직전의 삼각 김밥, 천*장사 소시지, 냉동피자, 불닭버거... 박용만이 바치는 음식은 날이 갈수록 고급져 갔고 급기야는 음식을 바치기 전에 절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가고일은 어느새 하나의 ‘신앙’이 되었다. 마치, 그 옛날 호랑이에게 고기를 바치던 원시인처럼.
*
몇 주 뒤 화요일. 박용만은 뜬금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만월산의 성당으로 향했다. 가고일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푸르른 녹음은 밤의 음산한 산과 대조되는 느낌을 주었고, 돌계단을 다 올라가자 중세 양식의 약간 낡은 건물에 둥근 스테인드글라스 구조물이 보이는 멋들어진 성당이 나왔다.
박용만은 가고일이 있던 성당 뒤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 구덩이는 없었다. 평탄한 흙바닥이었다. 기둥 위의 다른 가고일 또한 없었다. 그러던 중, 마침 뒤를 밟은 신부가 박용만을 따라왔다.
“형제님, 무슨 일이신가요?”
박용만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신부는 나이가 꽤 있는 중늙은이로 새치가 머리의 반을 넘게 차지했다. 주름살이 꽤 진 얼굴이었지만, 박용만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잠시 살았던 동네의 신부님, 로베르토 신부였다.
“로... 로베르토 신부님...!”
박용만은 엉거주춤했다.
“아... 자네는...”
신부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용만 군...!”
박용만과 로베르토 신부는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교시절의 방황, 부모님의 작고. 간신히 들어간 직장에서 잘리고 도박의 길로 들어섰지만 결국 갱생하고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갖가지 시련을 내리십니다. 악마는 이 시련을 틈타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하죠. 하지만, 용만 군이 그런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주님의 길로 돌아와 정말 기쁩니다.”
로베르토 신부는 청년 때부터 간직하고 있던 온화함으로 어른이 돼버린 박용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크나큰 ‘절망’을 것을 두 번이나 경험한 박용만에게 ‘하느님’이니 ‘구원’이니 하는 말은 그저 어린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둘의 대화는 차츰 성당에 관한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신부님, 저 기둥 위에 있던 그 괴물 석상들은... 다 어떻게 되었나요?”
신부는 자연스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 가고일을 말하는 것이로군요. 가고일들은 우상숭배라는 주변의 지적도 있고 해서 부순 지 꽤 됐답니다. 그러고 보니 원래 가고일이 네 개였는데 한 개를 잃어버렸었죠?”
박용만은 얼추 아귀가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가로등이 켜진 밤의 ‘보랏빛 성당’은 다른 세계의 성당. 다른 세계의 괴이한 특성 탓에 땅에 묻혀 일어버린 가고일의 머리가 발견되는 것이고 그것이 매개로 ‘보랏빛 성당’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라고. 박용만은 매일같이 월요일을 손꼽아 기다렸으나 이후 월요일이 아닌 때에도 무언가에 중독된 듯 ‘보랏빛 성당’을 오가며 가고일의 머리에 제물을 바쳤다.
*
어느새 석 달이 흐른 뒤 월요일 아침. 이번에는 백사파의 소포가 아닌, 백룡의 전화였다.
“여... 여보세요...?”
“나다.”
깊고 차가운,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들려왔다.
“오늘 저녁 6시에, 우리 사무실 앞으로 나오도록 해라.”
이 말이 있은 뒤 전화는 끊겼다. 박용만은 편의점 알바가 끝난 뒤 눈썹이 휘날리도록 저 멀리 있는 ‘해결사’ 건물로 달려갔다.
해결사 건물 앞에는 새까만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일반 차 세 대는 돼 보이는 리무진에 금빛 무늬가 수놓아진 권재호의 차. 그 외 국산차, 외제차 가릴 것 없이 검은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던 중, 검은 아반떼의 창문이 열리더니 정은주가 “타!”하고 소리치며 박용만을 뒷자리에 태웠다. 어안이 벙벙한 박용만의 모습을 뒤로하고 정은주는 투덜거리며 앞의 검은 차들을 따라 아반떼를 몰았다.
검은 차들이 도착한 곳은 강남의 일식집 ‘오까네 구다사이お金ください’. 다시 말해 조폭 회식 장소였다. 백사파는 변변한 정장조차 차려입지 못한 박용만을 백사파의 보스 ‘백사’의 맞은편에 앉혀놓고 ‘백사’의 옆으로 간부진, ‘백룡’, 얼굴에 큰 흉터가 난 중년 ‘백호’, 흰 정장에 스킨헤드로 면식이 있는 ‘백구’, 백사의 후계자 ‘백사자’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차가운 분위기 속, 백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빚 갚으려고 시작한 업무, 꽤 잘했다 들었다. 이제 네 빚은 청산된 걸로 쳐주마. 그만해라.”
이 말을 들은 박용만은 두 가지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빚을 갚기 위해 고생을 하지 않는다는 기쁨과 앞으로는 가고일을 볼 수 없다는 상실감이. 그러나 한치, 광어, 우럭, 숭어, 연어 같이 고급진 생선회와 소주나 막걸리와는 차원이 다른 일본주, 따로 판매해도 잘 팔릴 만 한 스끼다시들이 박용만의 착잡한 머릿속을 흔들어 섞었다.
회식이 끝난 후. 금색 무늬가 수놓인 검은 재규어XF의 뒷좌석. 권재호는 박용만과 같은 자리에 탄다는 사실이 상당히 불쾌한 눈치였지만 별 신경 쓰지 않고 김홍택을 시켜 만월동의 자기 사무실 겸 집으로 향했다. 김홍택은 운전하는 내내 불안에 떨었고, 결국 권재호는 만월산자락 고갯길에 박용만을 떨구고 돌아갔다.
술에 취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박용만은 성당으로 오르는 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리고 어제 두고 간 드라이버를 풀숲에서 슬쩍 꺼내서 스위치 덮개를 연 뒤, 가로등을 켰다.
깜깜한 밤은 보랏빛 아래 몽환적인 풍경으로 탈바꿈했으며 은하수는 아름답게 흘렀다. 박용만은 비틀비틀 성당 뒤편의 가고일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언제나처럼, 석고로 만들어진 가고일은 입을 쩍 벌리고 제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히히히. 오늘 고급 회랑 술이랑 잔~뜩 먹고왔으니까! 이걸 토하면 가고일님께서 좋아하실 거야!”
술에 취한 박용만은 그대로 가고일의 입을 향해 오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분노한 가고일은 한 입에 박용만을 집어삼켰다.
보랏빛 성당의 보랏빛 달빛은 끊임없이 계속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