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살짝 씩 내리는 우중충한 초여름 날이다. 황동으로 된 문패에는 음각으로 새겨진 야콥슨이라는 글자가 우중충한 날씨에 그늘까지 져 한층 더 우중충해져 있었다. 잔잔한 바람에 구름이 떠내려갈 때쯤, 제임스는 눈을 떴다.
"으음... 벌써 이렇게나 됐나?"
그러고는 침대 옆을 보았다. 목에 손자국이 나 있는 여자의 시체가 새하얀 침대 시트 위에서 괴로운 얼굴로 제임스를 쳐다보았다.
"아아. 어제 클럽에서 이 년이랑 한 바탕 했었지."
그는 자기가 걸친 늘어지고 술과 담배 냄새에 쩐 티셔츠를 벗어서 들것처럼 이용해 시체를 다락방으로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그 모습은 마치 마차에 목이 묶여 끌려 다니는 서부 시대 마녀 같았다. 그렇게 다락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죽음의 행진은 끝이 났다. 다락방에 놓여있는 때 묻은 곰 인형. 제임스는 술 냄새와 쉰내가 풍기는 낡은 곰 인형을 들고 곰 인형의 코에 뽀뽀를 했다.
"곰돌아, 1주일 만이네."
제임스는 다시금 여자의 시체를 안아 들고는 다락방 근처 옥상의 물탱크로 이동했다. 다락방 옆 옥상을 다 차지하는 커다란 물탱크. 플라스틱으로 된 노란 물탱크 안에 퍼지는 시큼하고도 비릿한 내음. 찐득찐득하고 빠알간 액체들이 내는 냄새다. 액체에는 희끄무레하고 작은 건더기들이 조금씩 떠 다녔다.
"크크크. 이번엔 이걸... 10 갤런쯤 넣어보실까...? 가만 보자... 한 서너 번은 더 해도 되겠구만? 크크크크..."
제임스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여자를 핏빛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물탱크 옆의 하얀 페트 병 안에 든 그것과 함께.
“치이이익.”
거품이 여자와 액체를 하나로 섞는다.
여자가 가라앉는 걸 다 지켜본 제임스는 물탱크의 뚜껑을 닫았다. 다락방과 옥상사이의 문을 열고, 들어와 문을 닫고. 문 옆에 놓인 곰 인형 코에 뽀뽀를 했다.
"그럼 곰돌아, 다음 주 쯤에 보자."
제임스는 1층 거실의 쇼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집 전화로 피자집에 전화를 걸었다.
"예, 예. 콤비네이션 한 판에, 콜라 한 병. 또... 파마산 치즈랑 핫소스도. 피클? 피클은 빼고. 돈은 내 놓을 테니까 두고 가요."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TV를 켰다.
"끼기긱...“
“투둑... 투둑...”
천장에서는 마치 마귀가 키는 더블베이스 같이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에잇. 쥐새끼들. 시멘트를 확 부어 버려야지, 원."
제임스는 짜증을 내며 TV내용에 집중했다.
"네, 다음 소식입니다. 클럽 연쇄 실종사건 피해자가 한 명 더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번이 4번째인데요, 이번 건은 지난 3개의 사건이 일어난 클럽 인근의 또 다른 클럽에서 실종됐..."
제임스는 실망한 듯 앵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늘 소개드릴 이 ..."
"...이봐, 핀! 드디..."
제임스는 채널을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렸다. 42인치의 TV에는 홈쇼핑, 영화, 애니메이션, 교육용 프로그램 등등 여러 채널들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R18의 고어 영화가 나오는 채널에서 멈춰 섰다.
"어우? 곧 시작이잖아?"
제임스는 망설이지 않고 성인인증번호를 눌렀다. 3번째 숫자를 누르고 막 4번째 숫자를 누르려던 찰나, 초인종이 울렸다.
"아잇. 버러지들. 타이밍은 기가 막히게 잘 알아요."
TV에 열중했던 것일까. 피자가 오는 것조차 눈치 못 챈 그였다. 그는 문에 달린 방범용 렌즈로 바깥을 주시했다. 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탄다. 시동을 건다. 출발한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피자집 오토바이는 출발했고 제임스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멀어져가는 소리는 오토바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임스는 배달원이 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웃이 볼까 문을 손만 나오게 살짝 열었다. 다행히 문 바로 앞에 놓여있는 콤비네이션 피자. 제임스는 피자를 들어 문 안으로 넣으려고 했지만 너무 넓어서 들어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피자상자를 세로로 돌리자 피자는 아래쪽으로 쏠려 뭉개져 버렸다.
제임스는 어쩔 수 없이 뭉개진 피자를 들고 와 소파에 앉아서 먹었다. 한 조각, 두 조각. 콜라는 병째로 벌컥 벌컥 마셨다. 마지막 성인인증 번호 한 자리. 모두 누른 다음에야 초반이 지나간 영화가 나왔다.
"음, 잠시만. 이거... 어? 3잖아! 2가 아니라! 채널 정보 처리 똑바로 안 해? 아니, 편성 문제구만! 3는 망작이란 말이다!"
제임스는 짜증을 내며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결국에는 처음 틀었던 뉴스 채널로 돌아 와 버렸다.
"젠장... 포르노나 다운받아서 보는 건데..."
제임스는 한탄했다.
"끽... 끼기긱..."
"투둑! 탁!"
이러던 도중 천장에서는 아까부터 났던 그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아오, 이 쥐새끼들이!"
제임스는 화풀이 하듯이 빗자루로 천장을 쳤다.
툭툭, 툭, 마지막으로 세게 한번 툭!
"우지직!"
그렇게 갈라진 천장에서는 새빨갛고 찐득찐득한 액체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으아아! 이게 뭐야!"
제임스는 놀란 나머지 그의 카우치 소파에서 떨어졌다. 제임스만 떨어진 건 아니었다. 천장도 와지끈 하고 무너지면서 커다란 핏빛 물방울도 함께 떨어졌으니 말이다.
"우아악!"
제임스의 살은 치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타 들어갔다. 물방울 속 어제 죽인 그 여자의 팔이 제임스의 목을 졸랐다.
다음 날이 밝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임스는 죽었다. 살이 산성 물질에 의해 군데군데 녹아들었고, 하반신은 북유럽 신화의 마녀 헬의 하반신을 방불케 했다. 다만 결정적인 사인은 기도 수축으로 인한 질식사였다.
제임스가 지루해하던 그 뉴스 프로그램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달부터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클럽 연쇄 실종사건의 범인이 마침내 밝혀졌습니다. 범인은 XX주 OO시에 거주하던 제임스 야콥슨으로 다른 주의 클럽에서 여성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 살해한 후, 산성용액과 함께 물탱크에 넣어 시체를 처리하였던 것으로 제임스 야콥슨 본인의 부모 산체스 야콥슨과 줄리아 야콥슨 또한 같은 방법으로 살해됐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제임스 야콥슨 사망의 결정적인 원인은 시체 유기에 사용했던 산성용액이 일정 비율로 섞여 플라스틱 물탱크와 나무로 된 지붕을 녹이고나왔다는 것으로 경찰과 FBI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소식 전달이 끝난 뉴스에선 이 사건을 가지고 시끄러운 여자와 보수적인 중년 남자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증오하는 핏빛 점액은 어디에서 또 누구를 죽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