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요리도 중요하지만.. 마음의양식을 찾기위해 책게를 방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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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무명배우의 이야기 -
이른아침 새벽 아내의 뒤척이는 소리에 눈이떠졌다.
연기하겠다고 돈도 제대로 못벌어오는 날건달백수같은 남편만나서 고생했던 아내..
그런 아내가 임신사실을 알려왔을때 솔직히 기쁨보다는 돈걱정이 먼저 다가왔던건 사실이었다.
선배가 오디션을 제의한게 그때였다.
"좀 특이한 배역이 하나 있는데, 이게 다른건 몰라도 눈빛연기가 되야 하거든 눈빛연기 하면 너 아니냐 니생각이나서 와봤어.
문젠 특수분장해야해서 눈말고는 얼굴은 제대로 안나올꺼야. 그리고 엔딩크레딧에도 이름도 안오른다고 하네. 그래도, 장기프로젝트이고 조연급 취급해준다는군. 너도 조만간 아이도 생기고 하면 고정적인 수입도 있어야 할꺼아니냐. 그리고, 계속적으로 연출진들에게 얼굴도장찍다보면 너도 괜찮은 다른 작품 많이 구할수있을거다. 한번 생각해보지 않겠냐?"
선배랑 헤어지고 집에와서 아무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고민을 했었다.
지금처럼 오디션만 보러다니고, 기껏해야 아는 지인들의 대타로나 연극무대에 출연하는 지금보다는 그렇게라도 꾸준히 촬영장에 드나들어서 연출진에게 지속적으로 얼굴도장 성실히 찍으면 단역이라도 구하기 쉽지 않을까?
게다가 고정수입이라니..
정말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렇지만, 엔딩크레딧에 이름도 못올리고, 대중들에게 얼굴도장 못찍는다는것이 맘에 많이 걸리는데다가 장기프로젝트라지만 길어봐자 얼마나 길겠다고 지속적인 수입원으로 보장받지 못하는건 지금이나 다를바 없지 않은가
"조연급 취급해준다라.. "
순간적으로 입밖으로 튀어나버린 말에 정신차려서 고개를 들어보니 아내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있었다.
말없이 바라만 보고있는 그녀에게 선배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단 오디션을 보세요. 그리고,전 당신이 꿈을 접는걸 원치 않아요.
돈걱정은 마세요. 저 이래뵈도 모아논 저축도 있답니다. 회사에서도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고 출산휴가 주신다고 하셨구요. 괜찮아요."
그래 내가 오디션에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었다.
오디션에 합격한날 아내는 나에게 기념으로 옷을 한벌 사주었다.
그러나, 정작 촬영장에 갔을때 아내가 사준 옷이 화면에 나올일은 없었다.
특수분장에 특수복장
그때 오디션때 신체검사까지 한것은 이것때문이었으리라.
생각보다 나의 출연신은 한편당 몇초 되지도 않았다.대사도 거의 없었고 그저 행동과 눈빛만으로 모든걸 표현해야했었다.
출연하면서 간간히 기본 배역진을 제외하고 단역이지만 배역이름을 부여받고 대사도 부여받은 사람들을 뒤에서 바라보면서 왠지 부러운마음이 들었지만 그들은 단발적인 출연일뿐 그다음엔 출연하지 못했고, 나는 지속적으로 꾸준히 출연할수있었으니 어떤걸 비교하리..
간혹, 지나가는 행인이 필요할때 특수분장없이 출연하기도 했다. 물론 추가출연수당도 받았고
그렇게 계속 지속적으로 출연료를 집으로 가져갈수있게되었고, 성실하게 얼굴도장을 찍은덕분에 다른 작품에 단역이라도 꾸준히 출연할수있게되었다.
길어봤자 얼마나 길게 출연할수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이 작품은 당시 아내의 뱃속에 있었던 딸애가 벌써 대학생이 되어버렸을정도로 초장기적인 작품이 되어버렸다.
이제 출연진중 가장 원로가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나의 출연씬은 편당 몇초 되지 않고, 대사는 거의 없는 그대로이다.
그래도 나의 생활의 기준은 이 작품이 되어버렸다.
매일 꾸준한 음식조절과 운동으로 아직도 체형이 변하지 않는 그 특수복에 내 몸을 맞추어야 하고
다른작품에 출연을 하더라도 촬영일정도 그 배역을 우선으로 해서 시간배정을 해야한다.
딸아이에게 여주인공의 이름을 본따서 지어줬고, 아들이 태어났을때도 남주인공의 이름을 붙여주려다가 아내의 반대로 결국 남주인공의 다른이름으로 지어줬었다.
주변에서 배우일을 한다고 하면 대표작이 무엇인지 물어보고는 하는데 씨익 웃음으로 대답하고는 한다. 왜냐하면 내가 이 작품에 출연중이란 사실은 아내와 나만의 오래된 비밀이기때문이다.
언젠가 작품이 완료가 되면 우리 란과 신이치에게만큼은 떳떳이 말하리라.
아빠는 20년넘게 "명탐정코난"이란 작품의 범인역할을 맡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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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