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 사람들은 인류의 발명 중 하나를 금지해야만 했다. 그것이 결국 인류를 파멸시켰으므로.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은 자손 대대로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하여 까마득한 먼 미래, 여기 사막처럼 황량한 땅에서도 이야기는 전해지고 있었다.
"얘야. 문은 이렇게 만드는 거란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시범을 보이자 손자는 따라서 나무를 깎았다.
"할아버지. 좀 쉬면 안 돼요? 배울 게 너무 많아요."
"인석아. 니가 배울 게 한두 가지인 줄 알아?"
노인은 대뜸 성을 내었다. 손자는 입을 삐죽하였다. 노인도 혹독한 교육 받았으므로 손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죽게 되면 손자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게 노인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노인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손자를 가르쳤다. 손자는 12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지식 수준은 대학원생에 버금가는 정도였다. 아이는 똑똑하기는 했지만 특별하지는 않았다.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똑똑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가르치던 중 누군가가 울타리 너머에서 헛기침을 했다. 이방인이었다. 노인은 경계하며 물었다.
"누구신가?"
"안녕하십니까. 학식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의술을 배우려고 찾아왔습니다."
노인은 이방인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손자를 가르칠 시간도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 들어오게."
노인은 이방인을 맞아들였다. 이방인을 가르친다고 해서 노인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식량이 부족하긴 하였으나 그에게서 식량을 받을 수는 없었다.(그의 가방에 식량이 가득차 보이긴 하였다.) 이방인을 맞은 이유는 불문율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은 지식을 전수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노인은 문득 이방인의 지식이 궁금하였다. 혹시나 손자에게 가르칠 만한 학식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이내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다. 손님의 지식이 궁금했던 것은 의술 강의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었으니까. 노인은 속으로 자신을 욕하였다. '제엔장.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멍청한! 멍청한!'
"와! 손님이다."
손자는 처음 보는 외부인에 신이 났다. 지구에 남은 인간은 적었으므로 서로 마주치는 경우는 희박했다. 노인은 손자가 신나하는 것을 보고 '그래도 이방인이 쓸모가 있으려나'라고 생각했다가 이 역시 보상심리 때문이란 것을 깨닫고 자책했다.
이방인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직접 만든 사탕을 주었다.
"맛있게 먹으렴."
"와! 신난다."
손자는 감사 인사도 하지 않고 사탕을 받아 먹었다. 솔직히 이방인의 행동은 조금 위험한 것이었으나 선을 넘었다고 하기는 조금 애매하였다. 하지만 노인의 속을 은근히 긁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저런 부주의한 놈. 쯔쯧...'
이후 이방인은 노인의 집에 묵으며 의술을 공부했다. 아이는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많은 정을 주었다. 아이는 이방인이 좀 더 머물렀으면 했지만 학습이 끝나자 이방인에게는 남아 있을 명분이 없었다. 이방인도 정이 많이 들어서인지 이런 저런 핑계로 작별을 미루었으나 결국 그러한 핑곗거리도 모두 떨어졌다.
그렇게 서로 아쉬운 마음으로 작별을 하게 되었다.
"잘 배웠습니다 선생님. 배울 게 있으면 또 오겠습니다."
"그러게나. 나도 배울 게 있으면 자네 집에 들르겠네."
노인도 작별의 순간이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였다.
"아저씨! 좀 더 있다가 가면 안 돼요?"
"미안하지만 더 머무를 수가 없구나."
아이는 훌쩍이며 주머니에서 육포를 꺼내주었다.
"아저씨. 이거 드세요."
이방인은 뭉클하며 아이가 준 육포를 건네받았다.
"잘 먹을게."
노인도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손자가 얼마나 아쉬웠으면 음식을 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귀중한 식량을 내가 받아도 괜찮겠니? 배고프지 않겠어?"
이방인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괜찮아요. 아저씨도 저에게 사탕을 주셨잖아요!"
노인은 손자의 뺨을 세게 후려갈겼다. 아이는 몸이 붕 떠서 날아갔다. 머리를 쓰다듬던 이방인의 손에도 충격이 전해졌다. 아이는 뺨이 새빨갛게 부어올라 흙바닥에 쓰러졌다. 노인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말을 더듬었다.
"이... 이... 이 녀석아. 그... 그... 그건!!"
이방인과 손자는 얼떨떨한 상태로 노인을 쳐다봤다.
"그건... 거래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