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처음 만난건 요즘같은 불볕더위 속 중학교 농구코트장 위였다. 땡전한푼없어 함께 농구하던 선배가 불러낸 마음씨 착한 여사친 연병장 흙먼지를 뚫고 두손가득 검은 비닐봉지안에 시원한 음료수를 사온 너는 음료수 캔 색깔만큼이나 푸르고 그 온도만큼이나 시원했다. 첫눈에 반했다.
너같은 놈에게 소개해주기 아깝다며 이리저리 나를 피하던 선배를 쉬는시간마다 쫓아가 소개해달라 조르기를 일주일. 화장실까지 쫓아와 옆칸에서 끈질기게 말을 걸었던 그날 나는 결국 너의 번호를 받았다. 지금도 술자리에서 그렇게 징그럽게 따라다녔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 형의 입을 막고싶지만 그랬냐면서 환하게 웃는 너를 보면 뭐 내가 안주거리가 된들 어떻겠나 하는마음이 든다.
처음에 너는 나를 받아주지않았지 번호를 받고도 3개월간을 내 애간장만 달달 태웠다. 받아줄듯 받아주지 않는 너를 보며 정말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한숨을 쉬고는 했다.
2006년 12월24일 11시 나는 너에게 몇번째인지 셀수도 없는 고백을했고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된 그 시간에 너는 나를 받아주었다. 세상을 얻은것처럼 기뻤다. 나보다 한살이 많았던 너는 대학에 들어간 이후 고3인 내속이 까맣게 타버릴 정도로 술을 겁나게 퍼먹고 다녔고 댄스동아리 출신답게 클럽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다녔지.
그때문에 3층건물에서 가방을던지고 학교담을 넘은채 대학로 클럽 문앞에서 팔짱을 끼고 너를 기다리던 일도 빈번했다. 그래도 나는 너를 믿었고 한번도 너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같은 국립대에 진학해 너는 경영 나는 사범대 같은학교선배에게 예의를 갖추라던 너는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자취방을 합치고 부모님들까지 설득한 우리는 정말 영원할것 같았다. 너는 내 부모님께 최선을다했으니까.
나도 모르던 결혼기념일 나도 깜빡한 부모님 생신 내 동생 생일까지. 하나하나 놓치지않고 꼬박꼬박챙겨주는 너를 이미 며느리로 인정하신 우리부모님. 하지만 그렇게 만난지 5년만에 너와 나는 이별했다. 한번도 싸운적 없고 평탄하던 우리의 연애는 어느날 갑자기 터져나온 감정싸움 한번에 그렇게 끝이났다.
너무 익숙해서 너무 당연해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상처입어 아파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헤어지는 순간까지우리가 헤어진 이유를 찾지못했다. 그렇게 입대이후 나는 뭔가에 홀린듯 부사관이 되었고 또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너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고 나는 계급이 올랐다. 신기한점은 너와 내가 한번도 연락이 단절된 적이 없었다는 일이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헤어진 이유조차 찾지못한 어정쩡한 사이였고 헤어졌지만 너와 나는 표면상으로는 친구였다.
너와 헤어지고나서 연애는 할 생각도 없었다. 간간히 니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알리는 날에는 어김없이 술을 마셨다. 찌질하게 그리고 또 2년이 지났다.
처음 너와 내가 만났던 그때 우린 어렸고 솔직하지못했다. 너와 헤어지던 그때는 너는 22살 나는 21살이었고 그땐 우리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걸 생각치못했다. 이제 둘다 20대 후반으로 접어든 지금 나는 니가 필요하다는걸 결국 인정했다 내년이면 또다시 나이대가 바뀌는 너를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나는 너를 그리워했고 잊지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너의 옆자리가 내 자리라는 것을.
전역하겠다는 나의 선언에 정확히 6년 시간을 주며 전역까지 2년 대학교복학후 졸업까지 2년 그리고 임용고시 합격 2년 이후엔 나대지말고 얌전히 살림이나 할 것이라는 너의 말에 나는 오늘도 웃는다. 내가 너보다 살림도 요리도 청소도 더잘한다. 너는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우린 너무 멀리돌아 서로에게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