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서울서울서울(1988)
해질 무렵 거리에 나가 차를 마시면
내 가슴에 아름다운 냇물이 흐르네
이별이란 헤어짐이 아니었구나
추억 속에서 다시 만나는 그대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
그 언제쯤 나를 볼까 마음이 서두네
나의 사랑을 가져가 버린 그대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서울 서울 서울 그리움이 남는 곳
서울 서울 서울 사랑으로 남으리
워 워 워 Never forget oh my lover Seoul
보나마나 사랑과 이별의 추억에 대한 노래군요.
조용필씨가 말했다시피 이 노래는 "88올림픽"을 빛 내고자 만들었다고 하네요.
9월 17일~10월 2일까지 24회 서울하계올림픽에는 몬트리올올림픽(1976) 이후
12년만에 동(공산주의국가)서(자본주의국가)양 진영이 모두 참가한 경기입니다.
88올림픽 이때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휴대전화를 만들었는데, 서울올림픽을 찾은 외국 귀빈에게 선물하기 위해 SH100을 제작
크기와 무게가 벽돌 만하고 가격도 비쌌지요.
올림픽 이전에는 5월 15일날 세계최초 국민주 언론 한겨레신문이 창간 되었고
올림픽 이후 11월 3일 한국의 최초의 청문회가 열리게 됩니다. 아무튼 1988년도는 "최초"가 많네요.
전두환이 대통령 재임시절 수천억원을 불법으로 모은 비리와 5.18민주화운동 언론통폐압에 관한 청문회 였는데
최대 화두는 아무래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것이였지요. 그러나 전두환이나 노태우정권은 진상규명을 꺼려했고
분노한 시민과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들도 정부를 압박하였고 결국 기대하던 생중계 청문회가 열리게 됩니다.
전두환은 끝까지 안나오려다 1989년 12월 31일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을 하게 되었지만 정당한 자위권이었다는
어이없는 발언에 국민들은 분노하였고 이때 노무현의원의 논리적인 말과 행동으로 청문회 스타가 되셨죠.
한편 세계를 바라보면 버마에서는 군사정권의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죠.
네윈장군이 군사 독재정부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시민들이 분노를 토하며 시위를 하자 군대를 동원해 무참히 학살하였습니다.
그러나 더더욱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네윈정권은 사임을 발표한다.
허나 네윈장군의 측근인 소마웅 장군이 이끄는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정권을 강탈하게 되는 아주 우리나라 박정희 전두환하고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신군부는 시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복수 정당제 아래 민주적인 총선제를 약속하였습니다. 1990년 5월 27일 총선거가 치뤄졌고
이때 등장하신 분이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이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여 압도적인 승리를 하죠.
그것도 잠시 신군부는 당선자들을 체포하고 선거 무효를 선언하면서 군사독재는 20년간 지속이 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