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등껍질님의 글에 대한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
객관과 주관이 겹쳐치는 접점들을 서술해 보겠다.
(1) 객관속의 주관
먼저 "주체"를 "하나의 주관적 견지를 구성하는 존재"라고 정의하자.
("자아"라고도 할 수 있다.)
소견A: 이 세상에는 객체들만 있고, 주체들은 없다.
소견B: 이 세상의 객체들 중에 주체들이 존재한다.
괙관적으로 어느 소견이 옳고, 어느 소견이 그른가?
여러분은 분명 B가 옳다고 할 것이다.
아니, 증명해 보자:
소견B가 틀리다는 소견을 내세우는 즉시 그 소견을 내세울 수 있는 주관적 견지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즉, 소견A는 내세워지는 것 자체로 그 자신을 반증한다.
흔히들 "객관적 입장"을 "3인칭 시점"으로 규정하지만, 이러한 규정은 부족한 점이 있다.
1인칭 시점이 존재한다는 것도 객관적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1인칭 시점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나"라는 주체 이외에 다른 주체들이 존재하는 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냐는 회의적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반론을 제기하는 자들에게 루소의 고백론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1인칭 시점에서 쓰여진, 자기 자신의 은밀한 생각과 감정들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그것을 읽으면서 그의 (때로는 저속하고, 때로는 능가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한) 기억들을 되짚고, 생각들을 떠올리고,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그의 표정과 외적 언행으로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들여다 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책에서는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
정리하자면, 객관적으로 볼 때, 이 세상에는 주관적인 관점들을 가진 여러 존재들이 있다. 이것이 객관속의 주관이다.
(2) 주관속의 객관
우리들의 주관적 생각이나 취향은 각기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자가 자신의 생각이나 취향을 임의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흐름, 감정의 이입, 취향에서 행동으로의 움직임은 우리가 인식하는 객관적인 관계들에 의해 규제된다.
우리가 객관적인 관계들을 잘못 인식 했다는 것을 깨달으면, 잘못된 인식에 따른 생각이나 감정이나 행동을 마땅히 바꿔야 한다고 인정한다.
예시A: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전쟁을 통해서 중국을 통일시키는게 왜 무익한 일인지를 설명할 때, 마치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쓴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가에 가야지 나무에 올라가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을 택해야 한다. 여기서 수단은 목표의 원인이 되며, 둘은 인과관계로 연관되어 있다. 이 인과관계는 객관적인 것이고, 이것을 우리가 잘못 인식했으면 당연히 고쳐야 하는 것이다.
에시B: 예언자 나단이 다윗왕에게 이러한 얘기를 들려준다. 어느 가난한 사람이 자기 딸처럼 애지중지하는 양 한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이웃은 많은 양들을 소유한 부자였다. 어느날 손님이 부자집에 찾아오자 부자는 자기의 양을 잡아서 손님을 대접하지 않고 가난한 이웃의 양을 뺐어서 대접했다고 한다. 그러자 다윗왕이 큰 화를 내며 그 부자가 누군지를 물어본다, 잡아서 가난한 이웃에게 몇배로 보상해 주게 만들고, 처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나단이 그 부자가 바로 당신이라고 말한다. 다윗왕은 자신의 왕비도 있고 첩도 많은데도 우리아를 전장 최전선에 보내서 죽게 만들고 그의 아내를 뺏은 것이다. 다윗은 나단의 비유를 들은 후에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다고 한다. 여기서 나단의 비유와 다윗왕의 상황은 객관적으로 유사하다 (부자의 많은 양들:가난한 사람이 가진 단 하나의 양::다윗왕의 많은 첩들:우리아의 아내). 나단은 이러한 객관적 유사관계를 통해서 잘못을 뉘우치게 한 것이다.
예시C: 다시 맹자와 제선왕의 대화로 돌아가자. 맹자가 제선왕의 부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누가 소 한마리를 끌고 가는데 왕이 보고 불쌍히 여겼다. 마치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 사형장에 끌려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은 그 사람에게 소를 죽이지 말라고 그런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제사는 어떻게 치르냐고 묻는다. 여기서 왕은 대신 양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라고 한다. 여기서 맹자는 지적한다: 양도 죄없이 죽는거나 불쌍한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니까 왕이 드디어 뭐가 잘못 됬는지를 깨닫는다. 동물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집적 눈앞에 보이는 것에게는 쉽게 적용할 수 있지만 멀리 떨어져서 안보이는 것에게는 적용하기 힘들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으면 측은지심을 안보이는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된다는 것을 미루어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주관적인 생각, 감정이나 취향도 우리가 인식하는 객관적인 관계들에 의해 규제된다. 이것이 바로 이성이다.
(3) 윤리는 위에 언급한 객관과 주관의 교차점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합의라는 것은 왜 중요한가? 이세상의 주체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있기 떄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의해 보겟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