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잘 봐야 하는데.. 너는 왜 점수를 잘 받으려 하니? 대학 잘가려고 왜 좋은 대학을 가? 취업 잘하려고 왜? 돈 많이 버니까 왜? . . . 가치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면 끊임없이 질문이 들어갑니다.
이 질문을 끝내려면 무한히 질문하거나, 순환되는 논리거나,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여야 합니다. 무한한 것은 미래나 신에 기대는 행위, 즉 언젠간 좋아질거라는 믿음이 그 중심에 있다고 봅니다. 사람은 무한히 질문하지 못하니 적당히 미래지점이나 신에게 기대는 것이죠. 즉 계속해서 질문하지 않고 그만두는 겁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순환논리입니다. 질문을 한 몇십번 하다보면 다시 원래 이유로 돌아오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저는 이성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위 두 이유는 이성적인 가치추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거짓 이유, 그리고 그 미래가 도래한 이후에 대한 대답은 보류해뒀기 때문에 정작 그 미래 도달 이후에 문제가 생깁니다. 신이 없는데 신을 위해서 라는 행위는 자기만족을 위한 이유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이것만 이루면 행복해질거야 라고 하지만 정작 그것을 성취한 이후의 허무감, 권태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순환논리는 그 논리 안에 그 자체로 가치있다고 느끼는 것이 없다면 논리적 모순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봐야 할 것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행위라고 봅니다.
예전에 가치에 대해 질문을 해봤는데,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가치로 나눠서 봐야 한다고 답변을 얻었습니다.
(타노스라는 인물은 인구과밀도에 의해 인류가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류의 반을 죽이는 결정을 내립니다) 타노스가 인구의 반을 살리는 행위가 정당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객관적으로 볼 경우 용서할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신에 (ex.공헌하기)위하여 공부한다. 라는 말은 이성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류에 (ex.공헌하기)위하여 공부한다. 는 다른 사람이 볼때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저는 이 차이가 결국 사회에서 받아들어지는 가치에 따른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상한 것은, 이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가치는 이성적이진 않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위해서 공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정작 너의 그 공부가 어떻게 누구를 도우냐? 라고 물어보면 답할 수 없다고 봅니다. 피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인류" 를 위해 공부한다라는 표현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자기 입맛에 맞춘 가치 설정, 즉 비이성적인 사고에 근거한 가치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 질문 가치를 판단할 때 비이성적이면 안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가치판단기준이 있는데 , 그걸 억지로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극단적인 살인 같은 행위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