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서울
5시간째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세 사람이 입을 연다. 지치기 시작했던 검사는 연일 사건 현장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던 터라 약속이라도 한 듯 다른 공간 같은 시간에 그들은 같은 말을 내뱉는다.
“지금까지 모든”
“일들은 모두”
2017년 서울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사건 뉴스 타임입니다. 대방동 여고생 살인사건의 공범으로 조사를 받은 3명의 용의자가 이들의 잔인한 범행 수법은 아직도 시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 옆 살인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하지만 경찰은 아무런 물적 증거와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이들을-“
“야 왜 꺼”
“넌 형사가 되가지고 경찰의 실추를 떨어뜨리는 저런 뉴스를 굳이 봐야겠어?”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이 사건을 거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뉴스의 반 이상은 형사와 경찰의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다는 질책이 주를 이루었다. 그때 경찰서 문을 힘없게 열어 들어오는 한 형사. 동료 형사들이 김 반장과 한 형사를 번갈아서 쳐다봤다. 김 반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짜고짜 한 형사를 향해 삿대질을 하려는데
김반장의 말을 옆에 있던 동료 형사가 가로챘다. 이번에도 말을 가로채는 동료 형사에게 김 반장이 화를 냈다. “야 인마 네가 반장이냐!”
“저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이야? 오냐오냐했더니 아주-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형사는 자신의 책상으로 간다. 그리고 책상 밑에 있던 상자를 꺼내 몇 가지 서류와 책들을 담기 시작한다. “너 뭐하는 짓이야?”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 김 반장을 동료들이 눈치를 살폈다. 이 형사가 한 형사의 옆으로 와서 말을 건다. 하지만 옷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몇 걸음 뒷걸음질쳤다. 손으로 코를 막으며 말을 이었다. “야 한 형사. 너 왜 그래, 반장님이 뭐라고 해서 이러는 거야?” 짜증이 섞인 말투로 전화를 받지만 바로 나긋해지는 김 반장의 목소리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김 반장은 알 수 없는 눈으로 한 형사를 응시했다. 자신의 이름이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상자 덮개를 겹쳐서 정리하던 한 형사는 [경찰청장 사무실]
경찰청장 박기백 이라는 문구가 달린 문을 보고 노크를 했다.
둘은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청장이 먼저 말을 꺼낸다. 청장은 예상했던 대답이라는 듯이 전혀 놀라지 않고 피식 웃는다. 그 자리에서 잡힐 수 있었던 이유, 뭐라고 생각하나?” “밑에는 얘기해 놓겠네. 천천히 수사 다시 시작하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 한 채 입을 다문 한 형사는 고의인지 아닌지 만지고 있던 난의 이파리를 부러뜨렸다. 청장은 한 형사가 나가는 모습을 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짐을 지고 커다란 유리창 아래로 보이는 사람들과 건물들을 감상했다. 같은 시각
[제주도]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는 정원을 지나 세 사람은 한 저택 앞에 도착했다. 가운데 서있는 수진이 멈춰 서서 무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여자는 어깨를 약간 넘은 긴 머리에 뽀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약해 보이지만 캐리어를 잡은 팔을 보면 분명 힘이 있어 보였다. 파마를 한 듯한 곱슬에 머리카락색은 갈색인 모습이 세운의 미소를 천진난만하게 보이게 했다.
동의를 구하듯 옆에 있는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본다. 마지막으로 대답하는 동준은 정갈한 짧은 머리에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않은 모습이 묻어났다. 그들의 뒷모습에 그림자가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