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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침공했다 7화 (외계공포소설)
게시물ID : panic_987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폭풍처럼쓰자
추천 : 7
조회수 : 58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7/02 22: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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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은 잠을 자다가 핸드폰이 울려서 깼다. 발신자를 확인하기 위해 환한 액정화면을 봤다. 눈이 부셔 찡그린 눈으로 겨우 발신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주였다.

“어. 왜?”

잠기고 피곤한 목소리가 어두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대리님, 죄송해요. 이 시간에 전화해서...”

현민은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3시. 현민은 대답대신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왜, 안 자고,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갑자기 너무 무서워서... 죄송해요. 그냥 무서워서 전화 걸었어요.”

 

현민은 자신과 통화한다고 무서운 게 가시나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현주가 자신과 무슨 썸을 타는 사이도 아니고 평소 사적으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어색하게 이 시간에 이런 성격의 전화라니. 업무 전화라면 20분도 얘기할 수 있지만 이런 전화는 못 견디게 어색했다.

현민은 아 그래... 라고 짧게 말한 뒤 더 해줄 말이 없어 침묵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 힘내라고? 용기 잃지 말라고? 지금 자신부터가 좆됐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진석이 때도 그랬지만 또 맘에 없는 소리 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현민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현주가 말했다.

 

“진석이 꿈을 꿨어요.”

또 진석이구나, 현민은 생각했다. 진석이란 이름에 맘이 불편했다.

“좋은 꿈은 아니었겠구나.”

“네...”

꿈 내용에 대해 물어봐야 하나?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하고 현민은 생각했다. 그러나 현주가 계속 말했다.

“진석이가 눈에서 피를 흘리면서 저를 바라봤어요. 전 그걸 보면서 계속 뒷걸음질쳤고요.”

“......”

“근데 꿈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그날도 저 그랬거든요... 진석이가 피를 흘리고 너무 무서워서 공포에 질려 있는데 피 한 방울이라도 튈까봐... 멀리 떨어져서... 구급차가 와서 진석이 태우고 갈 때까지...”

현주의 주눅 든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현민이 말했다.

“너 죄책감에 에너지가 얼마나 많이 소비되는지 알아?”

“네?”

“누구라도 무서워서 그랬을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현명했던 거고. 그러지 않았으면 너도 벌써 감염돼서 죽었을 수도 있어. 쓸데없는 걸로 죄책감 가지지마.”

“대리님도...... 그러셨을까요?”

“그래, 나도 그랬을 거야.”

“......”

“현주야, 잘 들어. 이 상황에서 휴머니즘 같은 거 발휘하면 마음만 물러져. 그러면 자꾸 고민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그냥 남들이 어떻게 되든 네 생각만 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기적으로 굴어. 그게 현명한 거야.”

“네...”

납득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마지못해 하는 대답이었다. 현민은 답답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련이 닥칠 텐데 벌써 이런 걸로 고민하고 있다니.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이 혼돈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현민은 말을 덧붙였다.

 

“야, 그러니까 일수 같은 놈들이 너 만만하게 보고 자기 업무 막 떠맡기는 거잖아. 평상시니까 업무만 떠맡겼지, 법도 질서도 없는 상황이 되면 그런 놈들이 너 같은 호구한테 어떻게 할 거 같아?”

현주는 잠시 또 말이 없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근데요... 그렇게 업무 떠맡으면 같이 해줬어요, 진석이가.... 자기 일도 많은데...”

현민은 답답함에 다그치고 싶었지만 현주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그래... 뭐... 걔는 그런 애였으니까...”

 

진석은 성실한 직원이었다. 막내여서가 아니라 궂은일을 자처하는 것이 그냥 몸에 밴 사람이었다. 현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내정치할 줄 모르고 꾀부릴 줄 모르는 타입이었다. 반면 현민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 성실성을 이용할 수 있으면 은연중에 이용하는 그런 사람, 적극적으로 이용해먹는 것은 아니지만 미안해하면서도 결국은 이용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팀원 중에 경력이 제일 많은 일수에게 일을 주면 항상 대충하는 바람에 자신의 손이 많이 갔다. 진석과 현주에게 주면 일이 많아도 무리를 해서든 어떻게든 기한 안에 꼭 해냈다. 최대한 업무 분장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바쁠 때는 믿을 만하고 실수 없이 해내는 둘에게 일을 많이 주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싶으면서도 그런 식의 업무진행이 계속되었다. 바빴으므로, 자신은 상사한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으므로.

대신 신상필벌은 확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고작 대리 직급으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지만 그 부분만은 팀장에게 적극 어필했다. 열심히 한 사람은 대가를 받고 꾀부린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정당하고 윤리적인 처분이라서가 아니라 팀의 능력을 극대화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고 현민은 생각했다. 현민의 모토처럼 지극히 실용적인 관점이었다. 자신의 밑에서 열심히 하는데 얻는 것이 없다면 누가 자신을 따르겠나. 현민은 자신이 운용해야할 노동력의 능률이 떨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진석이는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널 이해할거야. 그런 거 두고두고 원망할 녀석도 아니니까 이제 잊어버려, 알았어?”

“...네.”

“너 살 궁리나 하라고. 나중에 진짜 살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하는 때가 올 수도 있어. 그때가서 지금을 생각해보면 진짜 한가한 감정이었구나 하고 떠올리게 될 거야.”

평소에 현주는 현민을 어떤 위기에서도 잘 헤쳐 나갈 사람으로 생각했다. 업무에 있어서 현민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다 합당한 이유가 있었고 당시에 왜 이런 행동을 하지? 하고 의문을 가졌던 것들도 결과를 생각해보면 다 옳았다.

현주는 현민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현민은 다시 무슨 말을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제 무서운 게 좀 가셨어?”

“네 조금 가신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이제 푹 자.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면역력도 강해져.”

“네, 감사합니다.”

“몸 관리 잘해라, 최악의 상황이지만 잘 버텨서 회사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자.”

다시 회사로 갈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지만 현민은 일단 그렇게 말했다.

“대리님.”

현주가 급하게 현민을 불렀다.

“왜?”

“대리님이 꼭 마무리 인사를 하시는 투라서... 다시 전화하고 싶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럼 안되나요?”

“이 상황이 더 심해지면 통신도 언제 끊길지 몰라. 그래서,”

“아, 그러네요... 그럼 통신 끊기기 전에 다시 한번 전화해도 돼요?”

“.... 그래. 전화해.”

“감사합니다. 대리님, 그럼 주무세요. 늦은 시간에 죄송했어요.”

“그래, 너도.”

 

 

***

 

 

군대는 화염방사기로 외계생물을 죽이고 포크레인으로 파란색 땅을 파내는 작업을 계속했다. 방독면을 쓰고 방호복을 입은 군인들이 교대해 가면서 밤낮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처음에 군대는 자신들이 이기는 줄 알았다. 물론 병력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돌아 비상이 걸리고 주춤하기도 했다. 그래도 전염병을 잘 통제하기만 하면 시간이 지연되더라도 이길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빠른 병사들 간의 바이러스 전염속도와 땅을 파도 파도 끊임없이 나오는 파란색 흙과 놈들을 보면서 군인들은 점차 두려워졌다. 대한민국 전역에 고르게 퍼져 있던 71개의 검은 구는 대한민국 군의 폭파작전으로 모두 궤멸되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던(수십만 마리의 외계생물들로 추정되는) 것들은 이미 땅 속으로 숨어든 뒤였고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놈들이 숨어든 땅은 파란색으로 변해버렸다.

 

군은 파란색 땅이 놈들의 서식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파란색 땅이 아닌 정상적인 원래의 갈색 토양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낼 작정이었는데 파도 파도 갈색 토양은 나오지 않았다. 파낼 때마다 싱싱하게 살아 펄떡거리는 외계생물들이 흙과 함께 섞여 나와 병사들을 반겼다. 병력들은 전염병으로 죽어나가 그 수가 줄어드는데 반해 놈들은 엄청난 개체수를 자랑했다. 포크레인이 파란 흙을 한 삽 퍼내면 과장을 보태어 그 안에 거의 흙 반, 외계생물들 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 수가 엄청났다.

양재동 군 통제구역을 지휘하던 부대장은 하루하루 눈에 띄게 줄어가는 병력수와 반대로 줄지 않는 놈들의 개체 측정 수를 보고 받은 순간 이 전쟁은 지겠다고 생각했다.

 

바깥에서는 얼른 군이 외계생명체를 괴멸시키길 기대하고 있었다. 군은 그 기대 때문에 작전의 강도를 낮출 수가 없었다. 계속된 강행군에 병사들은 지쳐갔고 그 때문에 종종 실수가 나왔다. 제대로 화염을 방사해 놈들을 태워버려야 하는데 워낙 많으니 개중에 완전히 타지 않고 살아남는 놈들도 있었다. 그 때문에 태운 외계생물의 사체를 퍼내어 한 곳에 적재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녀석들이 병사들을 공격해 죽는 사고도 발생했다.

 

“씨발, 도대체 어디까지 침투한거야?”

한 상병은 포크레인을 운전하며 투덜거렸다. 포크레인 삽 안에, 퍼낸 파란색 흙 안에 외계생물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파도 파도 끝이 없었다. 4시간 동안 계속 되는 작업에 지친데다가 이런 무더운 6월 날씨에 바이러스가 침투 못하게 방독면에다가 방호복으로 몸을 꽁꽁 싸맸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나마 저녁엔 살만 했지만 지금 같은 낮은 죽음이었다.

 

한 상병은 시계를 봤다. 슬슬 교대조가 올 시간이었다. 포크레인으로 몇 삽을 더 파내자 군용트럭을 탄 교대조가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한 상병은 포크레인을 후진시켜 파란색 땅 밖으로 나와 주차시켰다. 후임 이 일병이 군용트럭에서 내려 달려왔다.

 

“왜 니가 오냐? 김 말년이 내 다음인데?”

“김지혁 병장님, 감염되셔서 후송되셨습니다.”

한 상병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씨발.... 김 뱀... 조금만 버티지... 말년에 졸라 불쌍하네...”

한 상병은 포크레인에서 내려 이 일병과 교대를 했다. 파란색 흙 위에서만 있다가 멀쩡한 땅 위로 올라오니 살 것 같았다.

“그럼, 뺑이 까라.”

 

한 상병은 후임에게 외친 뒤 군용트럭으로 향했다. 한 상병과 같이 작업을 했던 근무조 병사들이 일제히 교대조를 싣고 왔던 군용트럭에 탑승했다. 군용트럭은 파란색 땅을 뒤로 하고 통제구역 외곽으로 향했다. 한 상병은 담배 생각이 가득했지만 군 통제구역 외곽의 제독소에 도착해서 제독할 때까진 방독면도 벗을 수가 없었다.

좀 있으면 병장 달고 몇 개월만 있으면 집에 가는데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 미친 외계인 새끼들... 이런 생각을 하며 중얼거릴 때였다. 갑자기 몸이 푹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뭐지? 하고 깨닫고 눈을 크게 뜨고 트럭 밑을 보니 땅이 갈라지며 지반이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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