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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침공했다 6화 (외계공포소설)
게시물ID : panic_987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폭풍처럼쓰자
추천 : 8
조회수 : 71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6/29 20: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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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은 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에 현주가 전염되었으면 자신도 위험할 수 있으니 집으로 올라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핸드폰에서 통화연결음이 울렸다. 다행히 현주는 전화를 받았다.

“네, 대리님.”

목소리가 어제보다는 한결 나았다. 아직 괜찮구나. 현민은 불안한 맘이 한시름 놓이는 걸 느꼈다.

“너 괜찮아?”

“네 전 괜찮아요. 다행히 감염 안 된 거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현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사이를 두고 현주가 말했다.

“대리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의외의 대답에 현민이 물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많이 챙겨주셔서요.”

그게 또 그렇게 되나? 현민은 맘이 좀 찔렸지만 뭐 그렇게 오해해도 상관없겠다 싶어서 그래, 뭐 몸조심 잘하고, 이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현민은 차에서 나왔다. 1층에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경사진 진입로를 통해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어제 그런 재앙이 일어났다는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현민은 차 트렁크에서 짐을 빼서 들었다. 짐이 많아 두 번에 나눠서 가져가야 할 거 같았다. 먼저 쌀과 국수를 들고 엘리베이터로 가져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현민의 옆집에 사는 남자가 서있었다.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떡진 머리, 깎지 않아 까끌까끌한 수염. 햇빛을 안 보고 사는 것 같은 칙칙한 낯빛. 옆집 남자는 볼 때마다 항상 그런 모습이었다. 무슨 작가 지망생이라고 얼핏 들은 거 같은데 현민이 보기엔 그냥 백수 같았다.

 

옆집 남자가 현민을 알아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끄덕하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현민도 고개를 끄덕하며 인사했다. 옆집 남자도 식량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인지 손에 라면 5개들이 3세트를 들고 있었다. 남자는 현민의 어깨에 있는 20kg 쌀과 비닐봉투 바깥으로 잔뜩 삐져나온 국수가락 묶음들을 쳐다보았다.

 

“와, 많이 건지셨네요.... 저는 이것밖에...”

“아... 네.”

“어디서 사셨어요?”

“D마트에서 샀습니다.”

“어? D마트가 이 시간에 열었나요?”

“어제 산 겁니다.”

그 말에 남자의 얼굴이 실망하는 표정이 되었다.

“아, 그러면 지금은 물건이 없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현민은 남자의 시선이 계속 쌀에 머물고 있는 것을 느꼈다. 현민은 쌀에 들러붙은 남자의 시선이 신경 쓰여 시선을 남자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남자가 시선을 거뒀다. 남자는 곧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와... 근데 이게 무슨 일이죠... 정말.”

“그러게요.”

그 말을 끝으로 엘리베이터가 계속 올라가는 동안 어색한 정적이 이어졌다.

 

엘리베이터가 현민의 층에 멈출 때까지 현민은 남자가 곁눈질로 쌀과 국수를 힐끗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어떤 품목이 정확히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와서 둘은 들어가세요, 하고 인사하며 각자의 현관 앞에 서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민은 열쇠를 열쇠구멍에 넣고 돌릴 때 남자가 저쪽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꼈지만 상황이 이래서 자신이 예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기로 했다.

 

집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거실 소파 위에서 자고 있었다. 40kg이 겨우 넘는 어머니의 여린 몸 위로 얇은 담요가 덮여 있었다. 왜소한 신체만큼 어머니는 면역력도 약했다. 감기도 자주 걸렸고 병치레도 잦았다. 감염되기도 쉽고 만약 감염되면 건강한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죽으리라. 현민은 어머니가 이 사태 속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현민이 쌀과 국수가 담긴 비닐봉투를 내려놓자 어머니가 잠에서 깼다.

“왔니? 어제 밤에 춥진 않았어? 아직 새벽은 쌀쌀하던데.”

“응, 괜찮았어.”

현민은 한 번 더 차 트렁크의 짐을 챙기기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부탄가스와 건전지 등을 챙겨서 위로 올라왔다. 마트에서 사온 짐들을 모두 현관 앞에 내려놓은 후 항균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도 뿌려댔다. 현관문 틈새, 그리고 베란다 창틀도 빼놓지 않았다.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은 조치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할 작정이었다.

 

현민은 짐들을 다 정리하고 베란다에 놓인 약수통과 재활용박스에 넣어놓은 빈 페트병들을 다 꺼내서 헹군 뒤 거기에 물을 받았다. 수도 공급이 끊어질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이 전염병의 백신이 만들어지기까지 집에서 못 나가고 버텨야 하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 너무 나간 생각인 걸까?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듯이 TV 속의 뉴스에선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병원으로 몰려든 화면이 계속해서 나왔다. 이미 병원은 환자들로 발 비빌 틈이 없었다. 환자들의 비명과 울음소리들, 의료진의 다급하고 격앙된 목소리들이 현민의 귀에 들어와 신경을 긁었다.

백신이 만들어질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1년이 걸릴 수도 2년이 걸릴 수도, 아니면 영영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사실 그렇게 되면 이렇게 버티는 것도 의미가 없긴 하다. 1, 2년 치 식량을 어떻게 조달한단 말인가. 분명 여기저기서 약탈이 벌어지고 온갖 비인간적인 일들이 자행될 것이다. 페트병에 쏟아지는 수돗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현민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멋대로 춤을 췄다. 현민은 최악의 상황에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일단 당장 눈앞의 해야 할 모든 조치를 다하고 난 뒤에 한숨을 쉬자고 생각하며 미루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식사를 먹으며 제대로 뉴스를 보니 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총 감염자 수는 12000여 명. 사망자 수는 1500여 명. 감염자 전용 격리수용소가 전국 곳곳에 만들어지는 장면이 이어졌다. 현민은 진석 생각이 났다.

 

대부분의 회사가 휴무를 선언했고, 학교는 휴교령을 내렸다.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바이러스 방역에 최선을 다 하고 있으니 유언비어에 선동되지 말고 질서를 잘 지켜주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했다.

“어떡하니, 저거... 무슨 전염병이... 저렇게...”

어머니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안 그래도 입이 짧은데 저런 사태를 보면서 입맛이 생길 리 없었다.

현민은 TV를 껐다.

“엄마, 밥 잘 먹어둬야 돼.”

굶으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현민은 어머니 밥공기 위에 반찬을 올려주었다.

 

밥을 먹고 현민은 냉장고에 먹을 게 어느 정도 있는지 살폈다. 냉장고 안을 보니 어머니가 이미 김치류를 제외하고 빨리 상할 반찬들은 냉동실에 옮겨 놓아 정리해 놓은 것이 보였다. 현민은 냉동고 안의 돼지고기 따위를 보며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가늠을 했다.

 

밥맛없는 소식이 계속 흘러나오는 TV는 밥을 먹고 나서 계속 틀어놓았다. 새로운 소식이나 정부의 지시가 있을지도 몰랐다. 현민은 TV 소리를 주시하며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았다. 국방부가 말한 괴생물체에 대한 정체를 찾아봤지만 외신에서도 괴생물체에 대해 공개를 하지 않았는지 정보가 없었다. 괴생물체 모습에 대한 낚시성 포스팅도 엄청나게 많았는데 클릭하고 들어가 보면 다 B급 영화 속 괴수의 이미지나 해양생물 같은 걸 올려놨을 뿐이었다.

 

전염병에 관한 소식은 꾸준히 들려왔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소식이 업데이트 될수록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가 불어났다. 정오가 되었을 때는 아침에 12,000명이던 감염자 수가 무려 30,00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사망자 수도 늘어난 건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전염병 소식이 뉴스를 도배하다보니 현민의 신경이 점점 곤두섰다. 왠지 자신의 손끝에도 병균이 묻어 있을 것 같고 침을 삼킬 때도 신경이 쓰였다. 안방에서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들려올 때면 현민의 가슴이 철렁거렸다.

 

TV에서는 전문가들이 나와 외계생명체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외계생명체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 왜 검은 구 안에 있다가 땅 속으로 숨었는지, 또 검은 구가 있던 자리의 흙은 왜 파란색으로 변한건지에 대해서 토론을 벌였다. 놈들이 지구에 온 목적이 지구 정복이라는 것에는 다들 이견이 없었다.

땅 속에 숨은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끼리 의견이 분분했다. 누구는 그들이 땅 속에서 하나의 지하세계를 건설 할 작정이었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일단 외계생명체들이 긴 우주여행에 지친 피로를 땅 속에 숨어서 푸는 것이라고 했다. 공통적인 의견은 놈들이 힘을 되찾기 전에 얼른 땅을 파서 다 죽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토론은 오래 진행되었지만 별 영양가 있는 내용은 없었다.

 

현민의 사무실 사람 중에 한 명의 감염자가 또 발생했다. 진석이 메시지를 남긴 단체 카톡방에 ‘나 감염됐어. 잘들 있어라. 그동안 고마웠다.’ 라고 쓴 글이 올라왔다. 놈들이 온 날 아침 진석과 얘기한 마케팅 팀장이었다. 사람들은 유감의 뜻을 전하면서 포기하지 말라거나 응원의 말을 보냈다. 그러나 감염된 팀장은 사람들의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오후에 현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어, 현주야 라고 말했는데 현주 쪽에서 말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느낄 즈음에 현주의 힘없는 목소리가 넘어왔다.

 

“대리님, 진석이 죽었대요...”

 

현민은 크게 놀라진 않았다. 진석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좀 빠르다고 생각했다. 진석이 죽자 무참한 현실이 저 멀리 강 건너에 있다가 현민의 앞으로 확 다가온 느낌이었다.

진석은 좋은 직원이었다. 일수 같은 놈과 일하다가 진석이 들어왔을 때 얼마나 일할 맛이 났던가. 현민은 퍼즐이 착착 맞아 떨어지며 완성된 그림이 점점 보여갈 때 느껴지는 팀워크의 카타르시스를 진석과 현주 덕에 알게 되었다.

현민은 문득 3개월 인턴이었다가 정직원이 되었을 때 진석의 웃음이 생각났다. 왜 그 모습이 생각났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그와 동시에 현민은 이제 정말 현실로 돌아갈 수는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다.

 

 

***

 

 

현주는 눈에서 피를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진석이 꿈에 나와 잠에서 깼다. 새벽 2시였다. 새벽까지 잠 못 들고 막 잠에 들자마자 꿈을 꾼 것이다. 현주는 심장이 쿵쾅거려 가슴에 손을 얹고 진정시켜야 했다.

그날 진석과 같이 회사에서 나와 걸은 기억이 났다.

진석이 눈에서 피를 흘리자 현주는 전염병이 옮을까봐 다가가지도 못하고 구급대원들이 올 때까지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몸을 피하느라 온 신경을 쓰고 있어서 119에 신고도 지나가던 다른 사람이 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6개월을 함께 지낸 동료인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자신은 이렇게 비겁하고 나약한 사람이었나...? 현주는 그때 이후로 계속 자책했다. 자괴감과 패배감이 몰려왔다. 현주는 자신을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정의의 사도는 아니지만 나름의 의협심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석의 눈에서 흐르는 피를 보자마자 피해야한다.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이런 생각만 머리에 울려 퍼졌고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정말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맘이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속으로 다 계산을 하고 있었다. 충격을 받은 진석이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갑자기 다가 올까봐, 구급대원들이 와서 진석을 구급차에 태우는 중에도 혹시 보호자로 같이 가야 될까봐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진석은 그런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물론 진석은 현주에게 괜찮다고 했다. 그날 병원에 실려 간 진석은 현민에게 전화를 한 것처럼 현주에게도 전화를 했다. 덤덤하게 현주에게 자기 때문에 전염되지는 않았냐고 말했다. 현주는 울먹이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자 오히려 진석이 현주에게 괜찮다고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그건 진짜 괜찮아서가 아닌, 다 끝난 마당에 앙금을 남겨서 뭐해요, 라고 평소에 자주 말하던 진석의 성격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자꾸만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다. 계속해서 진석의 생각에 매몰될까봐 일어나서 따뜻한 녹차를 만들어 마셨다. 녹차를 마시면서 무심코 핸드폰으로 기사를 찾아봤다. 희망적인 소식은 없었다. 감염자와 사망자가 계속 늘어난다는 절망적인 소식뿐이었다.

 

자려고 다시 누웠는데 잠들 수가 없었다. 현주는 답답해서 창밖을 바라봤다. 바깥 공기를 쐬고 싶었다.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현주가 자취하는 원룸촌은 검은 구가 떨어진 지점과 멀지 않았다. 웬만하면 바깥공기를 안으로 들이지 않는 게 좋았다.

 

현주가 다시 자려고 창문에서 시선을 거둔 그때 바깥에서 뭔가 쿠구궁....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검은 구가 있던, 군 통제구역 쪽이었다. 군대가 폭약을 터뜨리고 작전 중인 모양이었다. 소리는 계속 들렸다.

 

쿠구구구구궁.... 콰과과광....

 

마치 땅이 갈라지는 그런 소리 같았다. 신경을 뒤흔드는 소리였다. 그리고 미세한 진동도 느껴졌다. 현주는 자신의 집이 무너지기라도 할세라 귀를 막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소리는 곧 그쳤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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