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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현주가 전화를 받았다.
“네, 대리님.”
“진석이는 어떻게 됐어?”
“구급대원이 와서 병원으로 데려갔어요.”
“너는 몸 괜찮아?”
“네...”
“그래... 다행이다...”
“대리님은 괜찮으세요?”
“응. 나야 뭐... 괜찮아.”
잠시 정적이 일었다.
“집에는 잘 들어갔어?”
“네.”
현주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대리님, 내일 출근은....”
“출근 하지 마.”
“팀장님이 출근하지 말래요?”
“아니 팀장이 뭐라하든 가지 마. 지금 회사가 문제가 아니야. 밖에도 웬만하면 안 나오는 게 좋아.”
현주가 침을 꿀꺽 삼켰다.
“대리님, 이거......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죠? 당장에 해결될 사태는 아니죠?”
“응. 심각해 보여.”
“......”
“너 집에 먹을 건 좀 있어?”
“네.”
“얼마나? 많이 있을수록 좋은데.”
“한 달 정도 먹을 수 있는 쌀은 있어요.”
“그래, 다행이네. 너 혼자 자취한다고 했던가?”
“네.”
“문단속 신경 써.”
현민은 ‘앞으로 치안이 개판이 될지도 몰라.’ 라고 덧붙이려 했지만 안 그래도 겁먹고 있는 사람을 더 불안하게 만들까봐 관두었다.
“네, 알겠습니다.”
마치 업무 지시를 받은 것처럼 성실한 대답이 돌아왔다. 현주의 대답 다음에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대리님, ....진석이 괜찮을까요?”
진석이란 이름에 현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괜찮을 거야.”
그러나 현민은 마음속으로는 반대로 말하고 있었다. 아니, 현민은 이미 진석이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현민은 진석을 이미 가망이 없다고 본 것이다.
현주와 통화를 끊고 현민은 가만히 운전석에 앉아 1시간을 보냈다. 뉴스에서는 전국에서 끊임없이 감염자 발생이 보고되고 있다고 했다. 국내 총 감염자 수는 자꾸만 불어났다. 벌써 천 명이 넘었다.
회사에서 문자가 왔다. 비상사태로 인해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무기한 휴무를 한다고.
그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엄마.”
“아직 집에 안 왔어?”
“지금 아파트 지하주차장이야. 차 안에서 좀 더 있다가 들어갈게.”
“왜 안 들어오고?”
“혹시 내가 밖에서 감염되었을 수도 있으니까, 몸이 괜찮은지 보려고.”
“끔찍한 소리하지 말고 얼른 들어와. 아직까지 괜찮으면 괜찮은 거겠지.”
“아냐,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갈게. 그래야 돼.”
나 감염자 옆에 있었어, 라고 말하려다가 어머니가 걱정할까봐 현민은 입을 닫았다.
“.... 언제 들어오려고?”
현민은 자정까지 있으려고 했는데 자신을 걱정하는 어머니 목소리를 듣자 더욱 확실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차 안에서 자고 아침에 집으로 올라갈게.”
“뭐? 차 안에서 피곤해가지고 어떻게 자려고.”
“괜찮아. 지금 그게 문젠가.”
“그냥 바로 올라오면 안 되니?”
“엄마, 여기 있다가 올라갈 테니까 염려 말아.”
어머니는 현민이 고집을 부릴 땐 웬만해선 꺾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 알겠어. 뭐 덮고 잘 거는 있어?”
“여름이라 춥지도 않은 데 뭐. 괜찮아.”
“그래도 밤에 추울 수 있어.”
“무릎 담요 있어. 엄마, 혹시 나 뭐 덮을 거 준다고 괜히 내려오지 마.”
어머니는 그럴 작정이었는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현민이 전화를 끊고 몇 분 뒤 또다시 전화가 왔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진석이었다. 현민은 깜짝 놀랐다. 눈 코에서 출혈이 있었다길래 지금쯤 전화를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닐 줄 알았다.
“어, 진석아.”
“대리님, 얘기 들으셨어요? 저 바이러스에 감염된 거?”
진석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기운만 조금 없었지 절망이 섞인 목소리는 아니었다.
“응. 현주가 말해줬어. 너 병원이야?”
“네. 이것저것 검사받고 지금 격리실에 격리되어 있어요.”
“몸은 어때? 눈이랑 코에서 출혈이 있다고 들었는데...”
“피는 지금 안 나고요,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열이 좀 있고 오한이 있는데 좀 심한 독감 같은 느낌이에요. 근데, 대리님은 괜찮으세요? 저랑 가까이에 있어서 제가 괜히 옮긴 건 아닌지... 현주 누나도 그렇고...”
“난 괜찮아. 현주도 아까 통화했는데 괜찮다고 했어. 남 걱정하지 말고 네 걱정이나 해.
“...... 다행이네요. 정말.”
“난 너 아주 큰일 난 줄 알았어. 지금 네 목소리 들으니까 내가 염려했던 것 보다는 괜찮은 거 같은데... 그 바이러스 아주 심각한 놈은 아니지 않을까?”
그러나 현민은 말하면서 아까 들은 사망자 뉴스가 바로 떠올랐다. 감염되어서 하루 만에 죽는 바이러스. 심각한 병이 아닐 리가 없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런 가능성은 없어 보여요. 저도 처음엔 정말 당황하고 겁이 나서 계속 치사율이 높진 않을 거라고 살 수 있을 거라고 가능성을 점쳐봤는데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 보고 마음의 정리는 대충 끝냈어요..... 전....”
진석은 잠깐 울컥했는지 침을 크게 꿀꺽 삼켰다. 그러나 다시 참고 진정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전... 죽을 거예요...”
처음 진석의 전화를 받았을 때 목소리에 절망이 섞여있지 않다고 현민은 생각했다. 그러나 참고 있던 좌절의 목소리가 지금 터져나오는 걸 보니 현민은 자신이 전화했을 땐 이미 진석이 절망의 단계를 넘어서 포기 단계에 접어든 후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분했던 것인가.
“임마, 벌써 무슨 마음의 준비를 끝내? 포기하지 마.”
진석은 그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대리님, 여기 병원 와 보시면 그런 말 안 나오실 거예요. 여기 지금 난리 났어요. 생지옥이에요. 격리실 들어왔다가 벌써 4명이 죽어서 나갔어요. 그 사람들도 저처럼 잠깐 괜찮다가 나빠졌다가... 그러다가 죽었어요. 저도 지금 잠깐은 괜찮지만 언제 갑자기 안 좋아져서 죽을지 몰라요.”
“.....”
“맘 정리는 다했는데... 제가 우리 사무실 사람들 감염시켰을까봐... 그게 너무 맘에 걸려요. 대리님이랑 현주 누나하고도 가까이 있었고...”
진석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정말...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와서 감염된 줄도 모르고 멍청하게 마케팅 팀 사람들 앞에서 뭐가 좋다고 호들갑을 떨었는지...”
현민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답답한 자식. 지금 그게 문제냐고.
“진석아,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네 몸이나 추슬러. 내가 항상 말했지, 멘탈 관리 잘 하라고.”
그 말에 진석은 대답이 없었다. 대답대신 마지막 인사가 돌아왔다.
“대리님, 혹시 모르니까 미리 인사드릴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진석아, 그런 소리 말고... 너 살 거야, 살 수 있어. 넋 놓고 있지 말고 거기서 반드시 정신차리고 있어야 돼. 알았어?”
살 수 있기는, 자신도 안 믿는 말로 용기를 주려고 하니 나오는 말투가 어색했다. 현민의 말에 진석은 다시 잠깐 말이 없다가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대리님. 안녕히 계세요...”
전화가 끊겼다. 현민은 착잡한 마음에 끊긴 핸드폰 화면을 계속 바라봤다.
진석과 전화를 끊고 얼마 있다가 현민의 사무실을 쓰는 직원들 단체 카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 기획팀 막내 구진석입니다. 제가 지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병원에 와 있습니다.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마무리를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제 상태가 좋을 때 미리 인사드리려고 합니다. 다들 그동안 제게 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아직 사무실에 계신분이 계시다면 제 책상 근처로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들 무사하십시오.
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지만 사실 남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진석의 평소 성격으로 봐서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현민은 격리실 침대에 앉아 모든 걸 포기한 얼굴로 핸드폰 문자를 찍으며 문장을 지웠다 썼다 고쳤다 하는 진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그럼 다들 무사하십시오.
진석은 예의를 차리며 무사하십시오 라고 했을텐데 오히려 무사할 수 없는 환경에 남은 자들에겐 그 말이 더 공포스럽게 다가올 것 같았다.
현민은 계속 차 안에서 머물며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진석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의 감염여부에만 신경이 쓰여서 진석에 대한 짠한 마음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뒤였다. 뉴스에선 계속 늘어나는 사망자 숫자를 업데이트 했다. 현민은 운전석 등받이에 기대어 생각했다. 잠복기가 짧고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 정체불명의 파란색 흙, 아직 정체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외계생물체.
망했다.
자신이 감염되지 않았더라도 세상은 망할 것이다. 설사 완전 망하지 않더라도 망하기 직전까지는 가리라. 일엔 개똥만큼도 관심 없고 사내정치에만 열중하는 팀장의 비위도 적당히 맞추면서 여기까지 왔다. 회사 내에서 조금만 더 입지를 다져서 인정을 받으면 이제 자신이 활약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일로 이제 시작인 자신의 커리어가 무산된다니... 승승장구할 일만 있다고 생각했던 현민은 세심하게 잘 쌓아온 인생이, 자신의 활약할 무대가 무너져 가는 것만 같았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현민은 멀쩡했다. 그때까지 현민은 자신이 전염되었을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머니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아들이 무사한 지 확인했다. 어머니는 전화할 때마다 이제 그만 괜찮은 거 같으니 올라오라고 했고 현민은 잠복기 시간보다는 더 있어봐야 된다며 내일 아침에 올라가겠다고 버텼다. 현민은 불안함에 새벽1시가 지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현민은 눈과 코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꿈을 꿨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깨고 나서도 얼굴에 맺힌 땀을 닦다가 그게 피인 줄 알고 놀랐다. 현민은 얼른 손에 피가 묻었는지 확인하고 거울을 봤다. 멀쩡했다. 현민은 침을 꿀꺽 삼키고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마구 뛰고 있었다. 아침 6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