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다음달에 결혼하는 후배가 청첩장을 돌릴겸 식사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 자리에는 A남과 A녀(부부, 결혼 대략 5년차, 아이 2살 정도), B남과 B녀(부부, 10년 이상, 아이 초등학생1, 미취학1), C(결혼예정후배). D(나, 유부녀, 5년, 아이없음), E(선배, 유부남, 7~8년, 아이 5~6살 미취학), F(후배와 동기인 모태솔로 경력 35년차 남, 마법사) 이렇게 총 8명이 함께하였다.
결혼식은 몇시인지, 결혼식장의 접근 방법은 무엇인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며, 며칠이나 가는지, 신혼살림은 어느 동네에 차리게 되는지, 그 동네에서 직장으로의 출퇴근 경로는 적절한지, 양가 부모님들은 어떻게 이 결혼을 대하고 있는지 등등 결혼식 전에 물어볼만한 많은 이야기들이 질문과 답 형식으로 이어지다가 문득 A녀가 좋을때다..라는 감탄사? 를 하면서부터 마치 봇물이 터지듯이 본격 결혼 생활에 대한 천하제일 불만 성토대회가 시작되었다.
그 중 단연 으뜸인 주제는 화장실에 대한 것이었다.
A남은 비위가 튼튼하지 않아 A녀와 결혼한 후 제일 힘들었던 것이 그녀와 화장실을 같이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아침 배변파였는데 그게 정말 못견디게 싫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예쁜 여자(목숨은 둘이 아니니)가 이런 냄새를! 하는 생각에 결혼을 잘못했나까지 생각했다고.
이에 질세라 A녀 역시 A남의 냄새가 너무 힘들었다고 얘기하며 화장실 청소 한번 안하는 주제에 무슨 말이 많으냐까지 나왔는데 의외로 A남은 아직까지도 그것만은 못 참겠다는 급격한 고백을 해서 그들 커플 사이에 한랭 전선이 형성.
이때
B커플이 끼어 들면서 B녀가 신혼시절 아침에 이를 닦고 있는데 B남이 화장실에 급히 뛰쳐들어와 바지를 내리더니 급설사를 한 만행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며 냄새때문에 큰 난리를 겪었다고. 그날 B녀는 아침에 먹은 것을 전부 화장실 바닥에 게워내게 되었고 그 냄새를 맡은 B남이 아래로 싸다가 위로 같이 토하면서 그야말로 아침부터 환장대파티를 펼치게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그들은 결국 지각을 했고, 둘다 구역질과 눈물로 그 현장을 치웠다며 아련한 눈을 하며 이야기하였다. B남은 아기의 기저귀 가는 것도 냄새난다고 싫어했다면서, B녀는 섭섭함을 토로하며 A녀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전했다.(과연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E선배도 질세라 냄새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E의 와이프는 변비가 심해서 그 냄새가 2박 3일을 간다고. 그들이 처음 살았던 집의 아파트 배관의 문제로 환풍기를 틀면 어디선가의 담배연기가 들어왔는데, E는 그 담배냄새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와이프의 냄새가 이웃에 전해져 동네에서 냄새난다고 민원이 들어올까봐 화장실의 환풍기를 제대로 틀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바짝 허리띠를 졸라 메어 지금은 화장실 두개인 집에서 와이프 냄새 걱정 없이 편안한 배변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며 결혼하는 후배에게 신혼집에 화장실은 몇개냐고 물어보고 어서 돈벌어 화장실 두개인 집으로 이사할 생각을 하라는 다소 이상한 조언을 해주었다.
난 의아했다.
내 남편도 변비가 심해서 일주일에 한번 가면 자주 간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라 한번 화장실에 가면 그 냄새가 굉장하다. 게다가 시도때도 없이 일주일간 묵은 똥을 거친 그 생생한 가스의 냄새가 코를 스칠때면 남편이 어디가서 사회생활을 할 수는 있는것인가 심각하게 걱정할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결정적으로.. 난 그 냄새가 싫지 않다.
"난 남편의 온갖 냄새가 전부 그닥 싫지 않던데.. 변비도 있고 하지만... 내가 이상한거야?"
이제껏 밥먹으면서 더러운 얘기를 다 했던 주제에 다들 일제히 나한테 더러운 얘기 좀 하지 말라며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남편 냄새가 나면 오 드디어 조금 나왔나 해서 대견하다 고생했다 마구 칭찬을 해주곤 한다. 다들 그러고 사는 줄 알았는데 모두가 더럽다고 난리를 치니 조금 걱정이되기 시작했다. 내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남편은 날 혐오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남편은 그런 문제로 이혼을 생각했으려나?
"아니, 냄새가 안난다는게 아니라.. 좋은 건 아니지만 싫지도 않아. 흐으으으으음"
어머 아직도 의외로 저집은 좋을때일지도라는 훈훈한 결론과 유일하게 모태솔로 F가 여친 이름은 무엇인지, 몇살인지, 밥은 먹었는지는 몰라도 냄새라도 맡아보고 싶다는 얘길 하면서 이 이야기는 급 마무리 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돌아와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편은 초딩처럼 똥 얘길 좋아한다. 오유 똥게에서 본 얘기를 가끔해주면 남편은 숨이 넘어가게 웃곤 한다. A네는 그렇대..B네는 이런 일이 있었대.. 등등. 남편은 흥미 진진하게 얘기를 듣더니 말하기를.
"나도 당신이 화장실 갔다 왔을때 바로 들어가면 냄새를 맡을때가 있는데.. 난 그 냄새가 뭐 좋지는 않지만 싫지도 않던데?"
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런 천생연분 같으니.
"당신도 그래? 그럼 정말 다행이야. 나도 그렇거든. 근데 다들 더럽다고 난리였어"
"고양이 똥도 냄새 심하지만 그냥 치우잖아. 애가 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향기롭고 그럴리는 없지만 그냥 괜찮은거잖아. 아마 신혼초에 좀 그랬겠지. 애도 낳고 살면서 무슨 소리야"
"B남은 냄새난다고 애 기저귀도 안갈아준대"
"에이 설마. 그냥 과장이겠지"
"그렇겠지? 나도 다른 사람들 냄새는 생각만해도 싫은데 당신 냄새는 괜찮은거거든"
"나도 그래. 내가 퍼세식 화장실 못가는거 알잖아. 으으. 그냥 식구는 일종의 영역내로 받아들여 괜찮다고 인식하는게 아닐까?"
남편의 태도에 조큼 기분이 좋아진 나는 남편의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한껏 심호흡을 해 비릿하면서 톡쏘는 땀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응. 역시 싫지 않아. 혹시 좋아하는 걸지도.'
아마 아직 좋을때여서 인가보다. 다행이다. 아직 좋을때라서. 라는 훈훈한 결론을 내리면서 문득..
하지만 언젠가.. 남편이 살아 있음으로 인해 생기는 그 냄새들이 혹시라도 내게 혐오로 다가오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할까... 조금 걱정을 해본다.
뭐 그땐 그때지. 별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