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같은 애주가에게 캐나다에 살면서 힘든 점 중에 하나는 술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는 1,500원만 있으면 소주 1병 + 라면 1개 끓여서 먹으면 하루의 피곤이 싹 풀리기도 하죠.
제가 자취할 때에는 소주 3병 사서, 집에 있는 냄비를 들고 앞에 있는 순대국집에 가서 1그릇 얻어와서 같이 먹곤 했는데.. 캬... 황제의 밥상이 부럽지 않았죠...
특히 저녁을 쫄쫄 굶고 밤 10시쯤 들어와서 빈 속에 목구멍에서 식도를 타고 위까지 찌릿찌릿하게 타고 흐르는 소주 한 잔의 느낌은.. 캬...
하지만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소주 자체가 없었습니다. 토론토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가끔 사 먹기도 했는데, 한 병에 15불 정도였으니깐.. 1~2번만 가면 가계가 휘청거리죠..
다행히도 약 몇년 전부터 LCBO에서 소주를 팔긴 파는데, 가격은 싼 것이 5.2불(참소주, 처음처럼), 비싼 것이 6.25불(참이슬), 그리고 백세주는 10불 정도 합니다.
물론 다른 술에 비하면 싸긴 싸지만, 그래도 한국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죠.. 그야말로 1잔 값이 한국의 1병 값이죠..
내가 무슨 이재용도 아니고... 스트레스 풀자고 여기서 소주 쳐먹었다가는, 아내에게 스트레스 풀릴 때까지 쳐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 오늘 라임 좀 밟히는데...)
그래서 결심해서 실행에 옮겼죠.. 술을 만들어 먹기로.. 그래서 처음 시도한 것이 막걸리..
다행히 인터넷에 여기저기 많은 정보가 있더군요. 2~3번 정도 이 방법, 저 방법을 따라하다가, 드디어 저만의 비법이 나온 것 같아서... 혹시나 비오는 날에 부침개와 함께 곁들이길 원하시는 분을 위해.. 공개합니다..
준비재료입니다.
쌀 1.5Kg + 찹쌀 0.5Kg, 누룩 400g(한국식품점에서 파는 [맑은 물로 빚은 누룩]을 샀습니다. 가격은 450g에 5불), 이스트 8g(가운데 노란 봉지, 3봉지에 2불), 그리고 물 3L입니다.
쌀을 깨끗이, 아주 깨끗이 씻어서 찝니다.
막걸리를 위해서는 물기 많은 밥보다 물기 없는 꼬득또득한 밥이 좋습니다.
밥알이 정말 물기 하나 없이 꼬장꼬장해 보입니다.
밥을 한 후 좀 뒤섞어야 하는데, 손이 두꺼우신 분들은 손으로, 얼굴이 두꺼우신 분들은 얼굴로...(듣고 있나? 공주?) 하는 게 좋지만, 저는 너무 뜨거워서 밥을 식혔습니다.
분량의 누룩과 이스트를 밥에 열심히 섞을 다음에 소독된 통에 물 3L를 넣습니다.
당연히 막걸리를 위해서는 막걸리 전용 항아리 같은 게 있으면 좋겠지만, 아내에게 막걸리 만든다고 항아리 하나 사 달라고 하면...
어떤 반응이 올 지 뻔히 알기 때문에, 그냥 집에 굴러다리는 큰 냄비에 때려넣습니다.
그리고 먼지 등이 들어가지 않도록 면보를 씌웁니다.
하루 지났을 때 면보를 걷어 보았습니다. 쌀과 누룩이 물을 모두 흡수하여 퉁퉁 불었습니다.
라면 먹고 잔 다음 날 아침 제 얼굴 같습니다. 긴 주걱을 전자렌지에 20초간 돌려서 전자파로 세균 등을 다 죽인 후 잘 저어 줍니다.
뒤섞어주면 밑에 있는 물이 올라와서 다시 곤죽 상태로 돌아갑니다.
둘째날입니다. 지도 양심이 있는 지 부풀어오르는 건 좀 진정되었네요.
밥알이 둥둥 떠 있습니다. 정말 막걸리라고 생각안하면 비주얼... 충격적입니다.
역시 세균죽인 긴 주걱으로 밑의 물을 잘 끌어올려 줍니다.
이제 저어주는 건 그만... 보통 25도에서 30도의 온도에 놔 두어야 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렇게 따져서 놔두기가 힘들죠.
저는 그냥 컴퓨터 옆에 놔두었습니다. 그나마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라서... 면보 씌워서...
그래도 온도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래픽 좋은 게임을 열심히 해서 씨피유랑 하드랑 그래픽이랑..어쨌든 엄청 돌려서 피씨 열받게 해 보세요.
매일 딸내미와 함께 냄비 옆에서 냄새 맡아보고, 소리 들어보고(톡톡톡 하는 공기방울 터지는 소리가 납니다... 냄새와 함께 들으면 정말 좋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쏟아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술이 내 인생 마지막 술인 양...
확인되지 않은 리서치에 의하면 클래식을 틀어주면 맛이 부드러워지고, 헤비메탈을 틀어주면 맛이 쏜다고 하던데... 어쨌든...
이렇게 일주일을 정성으로 보살핀 후...
완전히 삭아서 밥알의 형태가 없어졌습니다. 인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걸러내야 할 때입니다.
면보 보자기에 국자로 떠 넣은 후, 온갖 힘을 다 해 짭니다.
이런 일을 할 때에는 아내를 생각하면 일이 많이 수월해집니다.
"이... 여편네야... 내가 니 남편하려고 결혼했지, 니 가사일하려고 결혼했냐?"
"아우... 이런 여편네야... 니가 산 명품백은 스마트소비고, 내가 산 소주 1병은 돈지랄이냐?"
아내욕과 함께 열심히 쥐어짰더니, 정신차리고 보니 이렇게 뽀얀 막걸리가 나옵니다.
그냥 마셔도 좋지만 너무 걸쭉해서 물 1L를 넣어서 희석시킵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짜고 남은 걸 또 쪄 먹었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4L 물통에 나누어서 넣었습니다. 약 6L정도 나오는 것 같네요.
단맛을 좋아하는 분들은 여기에 설탕이나 다른 감미료를 넣어도 좋지만, 원래 찹쌀이 어느 정도 들어있어서 단맛이 있습니다.
저는 감미료보다는 자연스러운 단맛을 위해 딸기를 갈아 넣었습니다.. 딸기 막걸리..
이 이후에도 여러 과일을 시도해봤는데요... 제 입맛으로는 배 막걸리가 가장 나은 것 같네요.
드디어 시식...
부침개와 순두부찌개와 함께 먹는 막걸리.. 그 맛은... 캬....
약간 텁텁하면서도 단맛도 있고, 알콜기가 싹 들어가면서 위를 휘감는데... 좋네요...
의외로 도수가 높습니다.. 3~4잔만 마시면 알딸딸... 바로 아내에게 개길 수 있는 도수가 됩니다.
그렇지만, 도수가 높은 대신 금방 깹니다. 좀만 지나면 바로 아내에게 깨갱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막걸리 한 잔과 함께 타향살이의 설움 그리고 엄처시하의 설움을 함께 날립니다.
이상... 막걸리 만들기... 끄~~읏
출처: 내 글은 내가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