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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은 출근길에 노래를 들으며 졸고 있었다. 전날 회사 일을 늦게까지 한 탓에 피곤에 절어 있던 참이었다. 잠결에도 이상하게 평소보다 버스 안이 소란스러운 게 느껴져 짜증스러하던 차에 전화가 왔다. 현민은 이어폰에 연결된 마이크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부하직원 일수였다.
“대리님, 오늘 출근해야 돼요?”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아침부터 전화해서 단잠을 망쳐놓고 출근해야 돼요, 라니? 분명히 휴일도 아니고 평일인데. 안 그래도 평소에 맘에 안 들던 놈이었다. 업무능력도 별로 없으면서 제일 많이 투덜대는 새끼. 대안도 없으면서 항상 딴지나 거는 새끼. 현민은 짜증을 한번 꾹 참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너 아직도 집이야?”
현민의 말에 잠깐 침묵이 흘렀고 일수가 오히려 황당하다는 말투로 다시 말했다.
“아뇨. 출근길인데... 지금 난리 났잖아요.”
“뭐...? 무슨 난리?”
현민은 그 순간 고개를 들었는데 버스 안에 가득 찬 사람들이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하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다시 일수 목소리가 들렸다.
“UFO 나타났잖아요. 모르셨어요?”
UFO라니, 현민은 이 자식이 장난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버스 안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란 것을 말해주었다. 현민이 한쪽 이어폰을 귀에서 떼자 급박하게 통화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비행물체가 나타났대. 아니, 농담이 아니고. 일단 뉴스 틀어봐.”
“여보, 유정이 유치원 보내지 마. 아니, 아니, 집에서도 나오지 말고 있어.”
“한 두 개가 아니고 지금 전국 곳곳에 다 나타났대.”
“아버지, 일단 집에서 나와요. 그게 집에 가까이 있어요.”
현민은 어안이 벙벙했다.
“대리님?”
현민이 말이 없자 일수가 다시 말했다. 현민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잠깐 기다려봐. 내가 사태파악이 안 되서 그러니까 이따 다시 전화해줄게.”
현민은 전화를 끊고 핸드폰으로 인터넷 창을 열었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자마자 메인화면에 실시간 검색어 1위로 ‘UFO’가 떠 있었다. 2, 3, 4위 검색어도 외계인, 비행물체. 지구침공. 이런 것들이었다. 현민이 검색어 ‘UFO’를 터치하자 관련기사들이 사진과 함께 쭉 떴다. 현민은 얼른 기사를 선택했다.
현민이 터치한 기사엔 서울 양재동 상공 1km 위에 떠 있는 UFO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화질이 좋지 않고 1km 상공이라 자세히 찍히진 않았다. 막연히 비행접시 모양을 생각하며 사진을 클릭했는데 UFO는 모습은 별다른 특징 없는, 그냥 검은 구 모양이었다. 그 아래로 같이 사진 프레임에 잡힌 고층빌딩과 비교해보면 UFO의 크기는 상당히 커보였다.
현민은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오전 7시 이후 전 세계적으로 300미터 크기의 미확인비행물체 다수가 대기권을 뚫고 낙하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비행물체가 지면으로부터 1km 상공에서 머물고 있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영공에 떠 있는 건 총 71개라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확인 된 것은 무려 9543개.
‘크기가 300미터나 되는 비행물체가 단 몇 대도 아니고 9543개?’
현민은 자신이 잠이 덜 깨서 꿈을 꾸는 중인가 싶었다. 기사를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UFO? 이 무슨 장난 같은 일이란 말인가. 현민은 다른 기사들도 확인했다. 분명히 현실이었다. 모두 동일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현민은 잠시 얼떨떨한 채 생각을 하다가 얼른 UFO 출현 위치들을 확인했다. 지금 집에는 어머니가 혼자 있다. 현민은 자기 집 근처에도 UFO가 가까이 있는지 봤다. 기사로 확인한 결과 집에서 7km 떨어진 곳에 UFO 한 개가 떠 있었다. 현민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신호음을 들으며 생각했다. 7km면 안전할까? 엄마를 집에 그냥 있으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UFO에서 3km 더 떨어진 엄마 친구 분 집에 가 있으라고 해야 할까? 괜히 이동하다가 혼란스러운 바깥 상황에 엄마가 다치거나 하진 않을까. 머릿속으로 이것저것을 따져보는데 어머니가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아들. 왜?”
어머니는 아직 사태를 모르는 거 같았다.
“엄마, 지금 빨리 TV 틀어서 봐.”
현민은 그냥 집에 있는 게 나을 거라 판단했다.
“응? 왜?”
“UFO가 나타났대.”
현민은 UFO라는 단어를 말하면서도 현실감이 없어서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어머니는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말투로 물었다.
“UFO?"
“자세히 얘기 못하니까 TV틀고 계속 보고 있어, 알았지? 혹시 모르니까 집에서 나가지 말고 핸드폰 배터리도 꽉 충전해놓고 가지고 있어.”
어머니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어...어... 하고 대답했다.
현민은 전화를 끊고 팀원들 카톡방을 확인했다. 팀장만 초대하지 않은 방이다. 이미 카톡메시지가 200개 가량 쌓여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이게 현실이냐며 각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야기의 마지막 주제는 출근길인데 회사까지 가야하나 아니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였다. 현민은 카톡방에 일단 팀장한테 물어보고 알려주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위이이이잉~~~~”
그때 사방에서 민방위 경계경보 사이렌이 울려 댔고 헬기 여러 대가 하늘을 가르며 지나갔다. 사이렌과 함께 어디선가 확성기 소리가 크게 퍼져 나왔다.
“국민 여러분, 실제상황입니다. 실제상황입니다.”
사람들이 버스 창문을 열고 확성기 소리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현재 대한민국 영공에 미확인비행체가 다수 출현했습니다. 미확인비행체가 출현한 지역의 주민께서는 미확인비행체로부터 반경 2km밖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당황하지 마시고 대피과정에서 질서를 지켜주시길 바라며 미확인비행체를 향해 도발의 메시지를 보내거나 하는 행동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대피령이 내려진 지역이 아닌 곳에 있는 국민 여러분께서는 당황하지 마시고 대피지역으로 접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비상시를 대비해 전국 곳곳에서 군 병력이 출동하고 있어 교통통제가 있을 예정이니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미확인비행물체가 출현한 지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해당되는 지역주민께서는 신속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버스가 끼익 하고 멈췄다. 버스가 멈춰선 저만치 앞에서는 군인들이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더 이상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현민이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보니 저 멀리 검은 구로 보이는 형체가 있었다. 검은 구는 고층 빌딩 꼭대기로부터도 한참 위에 떠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그 크기가 느껴졌다. 기이하고 위협적이었다. 검은 구의 주위로 헬기가 파리처럼 날아다녔다. 사람들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현민은 정신을 차리고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 번 신호음이 가서야 팀장이 전화를 받았다.
“어. 왜?”
“팀장님, 상황 아시죠? 오늘 정상출근입니까?”
“별 얘기 없으면 정상출근이지.”
짜증이 잔뜩 묻은 목소리였다.
“팀원들이 회사에 UFO가 가까이 있다고 불안해합니다.”
“대피지역 바깥이잖아. 괜찮아. 잔말 말고 출근하라고 해.”
팀장은 그렇게 말하고 뭐가 바쁜지 금세 전화를 끊어버렸다. 현민은 직원들 카톡방에 정상출근이라고 글을 남겼다. 직원들의 불평어린 말들이 오갔고 정말 출근이냐는 물음도 올라왔지만 현민은 답하지 않았다.
버스가 멈춰 있는 사거리 너머 있는 군 바리게이트 안 쪽에선 차들이 다시 나오고 있었다. 바리게이트 주변은 복잡하고 어수선했다. 버스가 우회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기사님, 뒷문 열어주세요.”
현민이 외치자 기사가 뒷문을 열어주었고 현민을 따라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몇몇은 걸어서 바리게이트 앞까지 다가가 멀리 보이는 검은 구를 핸드폰으로 녹화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몇몇은 검은 구에서 더 멀어지겠다는 듯 반대방향으로 서둘러 걸어 사라졌다. 현민은 사람들 사이에 서서 까치발을 들고 검은 구를 바라보았다. 검은 구는 가만히 떠 있을 뿐이었다. 그 밑의 건물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현민은 다시 핸드폰으로 기사를 검색했다. 더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 현민은 외신기사를 검색했다. 우리보다 더 빠른 정보를 띄워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국의 상황도 다를 바는 없었다. 다만 SNS상에 검은 구를 좀 더 가까이서 찍은 동영상이 있었는데 아마 드론으로 촬영한 것 같았다. 동영상 속 검은 구의 모습이 표면 재질까지 느껴질 만큼 자세했다. 금속재질이 아닌 어떤 생물체의 단단하고 두꺼운 가죽 같은 느낌이었다. 숨이라도 쉬는 듯 표면이 출렁이는 것도 같았다. 기계가 아닌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로 보였다. 거대한 괴물의 알 같기도 하고. 뭘까, 저 거대한 구는. 저 안에 뭐가 들었을까...?
현민은 구경꾼들 사이에서 서성이다가 일단 걸어서라도 회사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십분 정도 걸으면 도착가능한데다가 비행물체에서 더 멀어지는 쪽이라 여기 있는 것보다 회사로 향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6개 부서가 같이 쓰는 넓은 사무실이 텅텅 비어 있었다. 아직 출근시간 전이지만 그래도 평소 이 시간에 자리의 반은 차 있었다. 창밖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검은 구가 희미하고 작게 보였다. 그나마 있는 몇 명의 직원들은 한 직원의 컴퓨터 모니터 앞에 모여 TV속보를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사무실 입구 바로 앞자리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현민도 그곳을 지나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현민은 직원들과 간단히 인사한 뒤 그들 뒤에 서서 같이 뉴스를 지켜봤다. 각 지역의 비행물체들을 촬영한 여러 컷들이 뉴스화면을 스쳐갔다. 비행물체는 지역마다 다 똑같은 생김새였다. 그 다음 황급하게 대피령이 떨어진 지역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바리게이트를 친 군인들, 서둘러 지역을 빠져나오는 사람들, 모두 비슷한 풍경이었다.
직원들은 불안한 목소리로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저 하늘에 떠 있는 검고 동그란 게 뭘까?”
“그러게요... 한 두 개도 아니고 떼거지로 와가지고...”
“저 안에 뭐 들었을 거 같냐?”
“외계인 들었겠죠. 에일리언 같은.”
한 직원의 무심한 대답에 다른 직원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젠장... 외계인이 있긴 있구나...”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에요? 외계인들이랑? 이거 백퍼 지구침공각인데.”
“씨발, 그럼 예비군 끌려가는 거 아냐? 이 나이에?”
현민은 그 뒤에 서서 뉴스화면을 바라보다가 새로운 소식은 없이 계속 똑같은 영상과 사진만 반복되는 것을 보고 자기 부서 쪽 자리로 갔다. 현민 팀의 홍일점 현주가 아무도 없는 부서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평소라면 인사성 밝게 현민을 보고 인사했을 텐데 심각한 얼굴로 뉴스를 찾아보느라 정신이 팔려있는지 현민이 가까이와도 몰라봤다. 자리에 앉느라 의자를 끌었을 때야 현주가 깜짝 놀라 인사했다.
“어, 대리님 오셨어요?”
“일찍 왔구나. 다른 녀석들은 늦을 거 같던데.”
“네. 전 집 가깝잖아요.”
현주는 그렇게 말하고 창밖의 검은 구를 멀리 내다봤다. 평소 쾌활한 강아지 같은 얼굴이었는데 오늘은 천적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대리님, 어떡해요? 어떻게 저런 게...”
“뭐, 지켜봐야지.”
현민이 건조하게 대답한 후 자리에 앉는 순간 현민 팀의 막내 진석이 사무실 입구로 들어왔다. 진석은 들어오다가 아까 현민이 멈춰 섰던 직원들 뒤에 멈춰 섰다. 진석은 뉴스를 보고 있다가 자신이 대피지역 안쪽까지 있다가 오는 길이라며 거의 바로 밑에서 봤다고 사람들에게 자랑처럼 떠들었다. 사람들이 진석에게 가까이 붙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네, 정말이라니까요. 제가 거의 바로 밑에서 봤는데 엄청 커요 엄청. 진짜 거대해가지고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었어요. 와 진짜 그림자가 엄청 크게 져 가지고 어두운데... 그 위를 올려다보면 어떤 느낌이냐면, 영화 인디펜던스데이 봤어요? 딱 그 느낌.”
진석은 사람들에게 한바탕 썰을 풀고 이쪽으로 와 여느 때처럼 현민과 현주에게 쾌활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현민은 진석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현주가 어, 왔어... 하고 힘없이 말했다. 진석은 자기 자리에 앉으며 심각한 얼굴을 한 현주를 보고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뭐... 잘 되겠죠? 걔네가 친하게 지내러 온 걸 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떼거리로 불쑥 찾아와 사람들 놀라게 한 건 지구 예절을 몰라서일 수도 있고요.”
“어... 응.”
진석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하자 현민은 정말 이 상황이 별 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매사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보는 경향이 있으니까.
11시가 다 되도록 새로운 소식은 없었다. 간혹 가다 확인하는 기사에는 군 병력이 검은 구 주위에 계속 대치하고 있고 검은 구는 공중에 떠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 뿐이었다. 인류는 3시간 째 미지 앞에서 긴장하고 있었다.
현민 팀의 남자 직원 둘은 그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팀장 역시 오지 않았다. 팀장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팀장은 평소에도 자주 지각을 했고 팀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당연히 팀장의 게으름의 틈을 현민이 메워야 했고 실질적으로 팀을 총괄하는 사람은 현민이었다. 평소에도 불성실했는데 이런 난리가 났다고 달라지겠는가. 오히려 안 나타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현민은 생각했다.
현민은 남자 직원 둘에게 전화를 했다. 한 명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한 명은 받았는데 아침에 자신에게 전화를 건 일수였다.
“어디야? 왜 아직도 안 와?”
“아, 저기 지금 교통통제가 심해서요...”
“얼마나 걸릴 거 같아?”
“아, 저... 아무래도 오늘은 출근하기 힘들 거 같은데...”
“지금 어딘데.”
“여기가 건대역 쪽인데요... ”
“너랑 같은 버스 타는 마케팅팀의 지선 씨 한 시간 반 전에 와 있다.”
잠깐 일수 쪽에서 정적이 일었다.
“...,,,지선 씨는 교통통제 되기 전에 간 거 같은데요.... 저는 통제되고...”
“지선 씨한테 물어볼까? 교통통제되기 전에 왔는지?”
다시 정적이 일었다. 현민이 말했다.
“걸어서라도 와.”
“여기서 회사까지 걸어가면 오래 걸리는데....”
계속해서 내켜하지 않는 일수의 태도에 짜증이 일어 현민은 잠깐 핸드폰을 입에서 뗐다가 인상을 한번 쓰고 말했다.
“최일수, 뭐가 문제야?”
일수가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니... 대리님... 사실 오늘 같은 날 출근하라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 비행물체 회사 근처에도 가까이 있던데...”
“그래도 일단 회사에서 오라잖아.”
“저... 진짜 제가 불안해서 그러는데..... 저 오늘 하루만 쉬겠습니다. 솔직히 회사가기 좀 불안합니다.”
“뭐가 불안해?”
“아니... 그 비행물체, 정체가 뭔지 모르잖아요. 뭐 그게 대형폭탄 같은 거라서 갑자기 쾅 터져가지고 반경 10킬로미터까지 막 초토화될 수도 있는 거고.”
“지금 그 대형폭탄 같은 게 대한민국에 70개나 넘게 있어. 만약 그거 다 터지면 네가 어딜 가든 못 피해. 그러니까 빨리 와.”
일수가 그 말에 급하게 대답했다.
“외계바이러스나 방사능 같은 것도 막 나오고 있다고 그러던데요... 그래서 비행물체에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누가 그래?”
“인터넷에서요.”
현민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얼른 와.”
“대리님, 저 진짜 지금 정신적으로 불안해서 손이 막 떨린다고요. 저 신경안정제 먹는 거 아시잖아요.”
“시끄럽고, 얼른 오라고.”
현민의 단호한 대답에 일수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아니 진짜... 대리님. 하루만 빠지겠다는 건데, 그것도 커버 못 쳐줍니까?
이 새끼 말본새 봐라... 현민의 머리 속에서 핀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일단 참았다.
“뭐?”
“아니 이 상황에서 위에서 출근하라고 해도 어떻게든 설득해서 부하직원들 안전부터 챙겨야하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대리님 실적 챙기려고 평소에 직원들 혹사시키잖아요. 평소에 그렇게 혹사시켰으면 이럴 때 부하직원 챙겨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런 날 출근해봐야 업무도 제대로 될 리도 없는데.”
맞는 말이긴 한데 가장 덜 혹사당했을 거라고 생각한 놈이 이렇게 말하니 현민은 어이가 없었다.
“팀장님은 지금 나왔어요?”
현민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아직. 안 나왔어.”
“거봐요. 위험하니까 안 온 거잖아요. 지금 임원급들 다 안 왔을 걸요. 왜? 그 검은 구랑 회사랑 가까우니까. 뭔 일 날 거 같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밑의 놈들만 와서 업무 유지하라는 거죠. 대리님 똑똑하시면서 그걸 모르세요?”
현민도 알고 있었다. 지금 임원급들이 출근을 안 하고 있다는 얘기가 회사 안에 쫙 퍼져있었다. 무선으로 업무지시만 엄청나게 해대는 모양이었다. 근데 임원들이 출근 안 하니까 말단들도 같이 출근하지 말자고? 말 같잖은 소리. 외계인이 쳐들어와도 일단 회사는 나와야했다. 이 회사에 어떻게 들어왔는데.
“어차피 우리 다 회사의 작은 부품조각밖에 안 되잖아요. 제가 상사였으면요 부하직원들 보고 내가 책임질 테니 얼른 집으로 가서 앞으로 닥칠 재앙에 대비나 하라고 할 겁니다.”
현민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뱉었다.
“일수야, 한 마디만 할게.”
“네.”
“닥치고 빨리 와.”
그 말에 몇 초간의 정적이 일었다. 그리고 일수의 삐딱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리님, 저도 한 마디만 할게요.”
“뭐?”
“거기 가까이 있다간 분명히 뭔 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