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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들으며 역사보기1(영시의이별-야간통행금지)
게시물ID : history_144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궤변론자
추천 : 4
조회수 : 77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05 01:46:08

역사를 좀 더 생기있고 살아있는 역사로 바꾸려면 뭐가 필요할까?

생각을 해보니깐 아무래도 예술과 결합하면 좀 더 효과적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래들으며 역사공부하기는 따분했던 역사들을 노래로 한번 풀어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만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원곡: 배호 영시의 이별(1971)


가사 한번 봅시다.


네온불이 쓸쓸하게
꺼져가는 삼거리
이별 앞에
너와 나는
한없이 울었다


밤이 되니깐 네온 불들이 꺼져가고 이별하며 울었다고 하네요.

아니 왜? 이별을 하니!? 더 놀면 안됨? 요즘은 상상 할 수 없는데


추억만 남겨놓은
젊은 날에 불장난
원점으로 돌아가는
영시처럼
사랑아 안녕


→그 이유가 여기에 나오네요. 원점으로 돌아가는 영시처럼 = 야간통행금지정책



밤에 길거리 못돌아 다니게 하는 야간통행금지(일명 통금)이 일본에게 해방되고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1945년 9월 ~1982년 1월까지 실시 되었고 돌아다니면 경찰한테 잡혀 경찰서에 가둬가지고 밤새 꼼짝도 못한다고 하네요.

조선시대에도 한때 야간통금을 실시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야간통행금지제도는 일상적으로 사회 공공질서 유지 및 질서 확립의 책임을 담당하는 역할로 작용했으나

근본적으로 사상 통제, 국가안보 수호, 정치적 저항세력 억압을 위해 국민들의 시․공간 자유를 제한하는 기능을 담당했지요.

야간통금의 규율로 한국인이 빨리빨리 근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더라구요.


영시의 이별이 1971년도에 나왔는데 박정희정권 아래 불순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 시켰죠.

참 옛날사람들은 사랑도 마음대로 못하네요. ㅋㅋ


이 노래가 나온 해인 1971년은

김대중 대통령과 박정희가 제 7대 대통령선거를 치뤘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유권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이끌어내자 박정희는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눈물을 짜내었고

선거자금을 왕창투입하였으며 관권선거에 지역감정을 일으키면서 100만표 차이로 이기긴 했죠.

그러나 위기 의식을 느낀 박정희는 그 다음해인 1972년도 10월

국회를 해산시키고 유신헌법을 선포하면서 이제 여러번 대통령 해먹을 수 있겠금 하게 된 거죠.

두얼굴의 사나이...


세계에서는 미국 대통령 닉슨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지게 되었으며 핵실험 반대 자연과 멸종위기 동물 보호등을 하는 그린피스가 창설이 되었고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출시되면서 개인용 PC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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