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입니다.
주로 딸기와 토마토, 그리고 백향과를 주력으로 하고 있죠.
토마토와 백향과는 각각 초여름과 늦여름(초가을)이 제철이지만, 딸기는 늦가을부터 수확을 시작해서 그 이듬해 늦봄이면 농사가 마무리됩니다.
바로 지난 달 17-18시즌 딸기 농사를 마무리 했는데, 막상 밭을 정리하려니 아직 따지 못한 딸기가 너무 많이 그리고 탐스럽게 달려 몽땅 따다
주변사람들에게 인심도 좀 쓰고 생으로도 먹고 주스로도 먹고 잼도 하고 설탕에 비벼서도 먹었는데도 딸기가 많이 남더라구요.
이것으로 뭘 할까 하다가 한번 와인으로 담아보면 어떨까 해서 일을 시작해봤습니다.
뭐든 일을 벌이기 전에 철저한 준비와 사전조사는 필수, 전통적인 와인 제조법에 대해 꽤 많이 공부를 하고 시작했습니다.
1. 수확한 딸기는 깨끗하게 씻은 후 꼭지를 다 따줘야 합니다.
안그러면 나중에 술에서 쓴맛과 풋내가 심하게 올라온다고 하네요.
2. 준비된 딸기를 곱게 으깨면서 설탕을 넣는 보당 작업을 해줍니다.
와인은 효모가 당분을 먹고 알콜을 배설하는 일련의 발효과정을 통해 완성되는데, 그 효모의 섭취/배설 효율이 거의 50% 정도라고 합니다.
무슨말인가 하면 발효되는 과일의 당도가 10브릭스라면 향후 완성된 와인의 최종 알콜 도수는 5% 정도이고 당도가 20브릭스라면 최종 알콜도수는 10% 정도가 됩니다.
일반적인 포도주(와인)를 만드는 까르베네 소비뇽이나 피노누아 같은 포도 품종은 작황이 좋은 해에는 당도가 거의 30브릭스도 나온다고 하고
(빈티지가 좋다고 표현되는 와인들은 보통 이런 시기의 포도로 만든다고 하네요)
그외에는 통상적으로 24~5브릭스 정도가 나온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와인들이 알콜도수 12~18% 인 까닭이라고 하죠.)
보통 과일은 11브릭스 정도만 넘으면 신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때 혀는 달다고 느끼는데, 저정도의 당도가 나와버리면 우리 혀는 과일이 맛있다고 느끼기 보다는 민감한 혀를 가지신 분들은 불쾌감을 먼저 느낀다고 하네요.
어쨋든, 저런 포도 품종들은 포도 알 자체가 워낙 작아 일반적인 생식용으로는 잘 이용되지도 않을 뿐더러 적게는 수십년에서 많게는 수세기까지 와인만을 위해 개량된 품종들이라 과일 자체 당도만으로도 와인을 만드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딸기는 저런 와인전용 포도에 비해 당도가 높지 않고 또한 수분이 많아 보당 작업이 필수 입니다.
제 딸기는 대충 당도계로 재어보니 12~3 브릭스가 나오네요.
보통 딸기의 당도가 10~11브릭스 정도 나오는걸 감안하면, 제가 참 농사를 잘지은것 같습니다. ㄷㄷㄷ
어쨋든 와인이 최종 완성되었을 때의 목표 알콜도수를 기준으로 보당할 설탕의 양을 정해서 섞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술을 거의 안먹는 관계로 알콜 도수가 낮은 저도주를 목표로 약 20브릭스 정도까지만 보당 했습니다.
이러면 보통 9~10% 정도의 알콜이 완성이 될것입니다.
3. 보당작업을 끝낸 딸기는 효모를 섞고 에어락을 설치한 발효통에서 발효를 시작합니다.
4. 발효는 효모의 종류에 따라 그 성격이 조금씩 다르게 진행되는데, 제가 사용한 효모는 즉각적이고 빠른 발효가 가능한 녀석입니다.
효모를 넣자마자 발효를 시작해 3일 정도 지나면 사진처럼 층분리가 되면서 건더기가 가라앉았다 떠올랐다를 반복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내부에 가스가 차서 발효통이 폭발할 수도 있으니 필히 에어락을 설치한 발효통에서 발효를 하시거나 아니면 뚜껑을 아주 살짝 열어두시거나 혹은 정말 정성을 다해 한시간마다 뚜껑을 열었다 닿았다를 반복해야 합니다.
다만 발효과정에서 다량의 산소는 와인의 산패를 촉진시키고 유해균의 침입을 허용해서 술이 쉽게 상하게 될 위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발효과정에서는 23~25도 정도의 온도에서 빛을 피해 자리를 잡는것이 좋습니다.
5. 1차 발효는 보통 열흘에서 보름 정도 안에 끝이 납니다. 에어락을 설치했다면 더이상 기포가 올라오지 않는 시점이,
그리고 시간마다 뚜껑을 여닫는 방법을 선택했다면 특유의 탄산 빠지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시점이 1차 발효가 완료된 시점입니다.
이때 안에 있던 건더기들을 1차로 걸러줍니다. 그고 이제 2차 발효에 들어갑니다.
6. 2차 발효 역시 보름 정도 혹은 30일 정도에서 끝이 납니다. 그 사이에 발효통 안에서는 맑은 술과 미세한 건더기가 저렇게 층을 지며 분리가 되는데,
위의 맑은 술만 호스나 사이펀 등을 이용해서 따라내고 아래 앙금은 남깁니다.
이 과정을 3~4주에 한번씩 두번 정도 더 반복합니다.
1차로 앙금을 거른 와인은 재력이 충분하다면 오크통을 하나 구하셔서 넣고 최종 발효를 시작하시면 되고,
(참고로 쓸만한 오크통은 최소 몇백만원입니다. ㄷㄷㄷ)
일반 취미 주조이시거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오크바나, 오크칩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오크통을 만드는 나무를 잘게 잘라 칩으로 만든 제품으로, 프랑스산 중저가 와인이나 프랑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와인 제작국에서 저가, 고급 와인을 가리지 않고 많이 사용되는 오크향을 입히는 방법입니다, 프랑스산 고급 와인은 자존심 때문인지 아직도 오크통에 넣고 숙성해야만 취급을 해준다고 하더군요. 뭐, 그렇다고 오크칩을 넣은 와인에 비해 평가가 대단히 뛰어난건 아닌걸로...)
지금부터 최종 숙성은 역시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18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현재는 위의 앙금을 분리하는 작업후 오크칩을 넣고 최종 숙성하는 단계까지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위 사진은 남은 앙금에 술이 남은것이 아까워 커피 필터에 한번 걸러 봤는데, 생각보다 색도 예쁘게 나오고 향도 잘 올라오더군요.
알콜계로 재보니 약 8~9% 정도 알콜이 나오는것을 보니 아직까지는 주조가 잘 진행되는 느낌입니다.
맛은,,, 제가 술을 잘 안먹는 관계로 저는 잘 모르겠고. 어머니께서는 드셔보시곤 마트에서 파는 저가 와인보다는 괜찮은것 같다는 평가를 해주시네요.
ㄷㄷㄷ
오크숙성은 최소 3개월 평균 6개월 권장 1년 정도는 지나야 그 특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3개월 뒤면 추석 시즌이네요.
올해는 김이나 햄이나 샴푸세트 같은 선물들 말고, 이 와인을 정성껏 빚어서 예쁘게 포장해서 주변 고마운 분들에게 한번 선물해봐야 겠습니다.
제가 직접 농사지은 작물로 직접 빚은 와인... 돈으로 산 흔한 선물들 보다 더 의미 있지 않을.... 까? 생각 되는데... 아.. 잘 모르겠네요.
어쨋든. 앞으로 석달후에 완성본과 예쁜 포장 제작기로 다시 한번 글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