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도로에는 얼마 전 ‘
GS25 조윤성 대표는 편의점 근접 출점 자제약속을 이행하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적 있다. 5년간 운영된 편의점 미니스톱을 올 3월 인수한 장모 씨(45)가 내건 것이었다. 장 씨는 4일 “영업 시작 한 달이 지나 같은 건물 안에
GS25가 들어왔다”며 “본사를 상대로 호소문도 써봤으나 출점을 막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출 하락이 불 보듯 뻔한데 미니스톱 본사도 계약 변경이 어렵다고 해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전국 편의점 매장 수가 4만 개를 돌파하는 등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근접 출점으로 인한 갈등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 용산구에서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A 씨(55)는 최근 같은 건물 지하 1층에 세븐일레븐 매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알고 항의 현수막을 내걸었지만 출점을 막지 못했다. A 씨는 “지난해 9월부터 운영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경쟁 점포가 들어오면서 벌써 시간당 매출이 전보다 50%나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근접 출점으로 인한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인근 건물에서도
GS25 매장 바로 아래 세븐일레븐이 들어오면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본보 2017년 8월 4일자 A14면). 여론의 질타를 받자 해당 세븐일레븐 매장은 폐점했지만 여전히 근접 출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근접 출점을 강행한 편의점 본사 측은 상권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점포를 냈다는 입장이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건물 입주 인원이 늘어날 가능성을 보고 신규 건물 위주로 출점을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편의점 근접 출점에 대한 규제는 없다. 1994년 편의점 업계가 자율적으로 80m 이내 출점을 금지하는 ‘근접출점자율규약’을 신설했지만 2000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한 공동행위’라고 판단해 없어졌다. 다시 출점 분쟁이 늘어나자 2012년 공정위는 모범거래기준을 만들어 편의점 간 도보 거리 250m 이내 출점을 금지했다. 하지만 “기업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2년 만에 폐지했다.
현재 편의점 근접 출점에 대한 규제는 자율 규약만 있다. 지난해 7월
GS리테일은 상생안을 발표하면서 모든 편의점 브랜드에 근접 출점을 자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강제성은 없다.
편의점 업계가 출점 경쟁으로 몸살을 앓는 것은 브랜드 간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치킨이나 빵 프랜차이즈와 달리 편의점은 물건 구성이 다르지 않아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매장이 생기면 손님을 뺏길 수밖에 없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 가맹사업법은 가맹본부와 점주 간 거래관계가 공정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타 브랜드 가맹점 간 갈등을 규율하는 기능은 없다”며 “시장경쟁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근접 출점 금지를 명시하는 규제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 편의점 점주는 “근접 출점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점주들은 1차적으로 위험 부담을 본사와 나누고자 하지만 이미 영업이익 감소를 겪고 있는 편의점 업계가 쉽사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예외 조항을 둬서라도 편의점 출점을 제한하는 조치를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