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 비문학 도서는 제게는 존재 자체로 적이었습니다.
개인의 이야기이건 사회실험이건 뭐건, 창조된 이야기보다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적은 주제에, 시험에는 꼭 나오니까요.
그리고 이 책을 접했습니다.
'끝없는 이야기'도 그랬지만, 책이 두껍다는 것은 제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기 좋다는 것이며, 제목조차 상상의 여지가 풍부하니까요.
그리고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
저는 이 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워낙 유명한 실험입니다. 영화로도 나왔고, 사회실험에 관심 많은 창작자가 소설의 소재로 쓴 적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짐바르도 교수가 직접 쓴 책입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야 나무위키 등, 수많은 곳에서 접할 수 있으니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실험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은 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밀그램의 복종 실험에서도 보이듯이, 대부분의 사람은 책임이 자신에게 오지 않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더라도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깨진 유리창 실험처럼 타인이 먼저 나서서 물꼬를 튼 상태라면, 명령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휩쓸려버릴 수 있다는 것 역시 이를 보충해줍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닌 권위와 시스템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마무리됩니다. 이 시스템에 저항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며, 그런 사람들은 영웅 취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미군의 포로 학대, 신안의 노예제, 켄터키주 장난전화 사건,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 요원 등, 남들이 보기엔 사람이라면 못 할 짓을 한 것 같아 보이더라도,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건들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습니다. 우리는 레밍이 아니라고. 나는 혹시, 권위와 시스템에 의해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않았나 반성하고 다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