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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수정본) Who Become Meat? 1.2 (2차 수정)
게시물ID : readers_317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KardienLupus
추천 : 1
조회수 : 57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05/28 14: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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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글에 그동안 글의 문법에 대한 문제가 많드는 조언을 들었고 그걸 해결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이번에는 조언을 받고 수정해 본 이야기의 2번째 화 Chapter 1.2를 올립니다. 글 수정이 잘 되었다면 좋겠네요.


Chapter 1.1 Link : http://todayhumor.com/?readers_31746


<1.2>
 그것의 심장이 맥동하고 있었다.
 심장은 이상하게도 스테돌프를 끌어 당기면서도 동시에 강렬한 거부감을 느끼게 했기에 눈을 땔 수도 때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흐릿한 시선으로 그것의 심장을 봐야만 했다. 의료 조합에서 쓰는 다이아몬드로 날을 간 메스보다도 더 날카로운 것에 의해 성형되었을것이 분명한 심장은 단 한 번도 온정이라곤 느껴보지 못한 존재가 만든 것처럼 미숙하고 거칠었다. 여기 저기 튀어나온 붉은 혈관들이 있었다. 그 붉은 혈관이 뛸 때마다 흩어져 나오는 파란색 핏줄기는 그것이 상처를 입었다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핏줄기가 흘러나오는 곳은 영영 아물지 못한 딱지로 흉터 가졌다. 심장의 피가 한 번씩 돌 때 마다 상처는 늘어나고 분홍빛 살점은 더럽혀졌다.
 스테돌프는 역겨움을 느꼈다. 뜨거운 증기 같은 맥동이 올라올 때 한 번, 그것이 푸른 혈관에서 피를 흘리면서 다시 내려갈 때 한 번.
 그것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도둑들의 장물처럼 훔쳐진 것이지만 분명한 생명력을. 그리하여 그것의 심장은 스스로 상처를 아물게 할 힘이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그것의 의지가 그 치료를 거부하는 듯 했다.
 미숙한 심장은 끊임없이 따듯함을 갈구했으나 힘을 잃은 차가운 정맥의 파란 피가 살덩이를 넘어 흘러나오도록 내버려 두었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반복되는 삶의 흐름은 그렇게 인위적인 의지로 반쯤 끊겨 있었다. 마치 무거운 책임이나 결정은 정하지 않겠다며 회피하는 새끼 동물의 이기심처럼 말이다.
 그것의 심장은 온기만을 갈구했다.
 심장은 한번씩 뛸 때마다 냉기를 남겼다. 겨울 같은 냉기 말이다.
 무책임하게 바깥으로 떠넘겨진 심장의 냉기 어린 피는 스테돌프의 영혼을 집어 삼키고 폐허로 만들고 잿더미가 되게 하는 것 같았다.
 버러지고 소비되며 낭비되는 피들은 종말을 상징하는 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것을 인지하는 것 만으로도 스테돌프는 죽어가는 것 같았다. 완전히 버려져, 숨이 멎고 수의조차 덮여지지 않은 채 지하의 납골당 아니 쓰레기 더미에 버려지는 그 느낌은-.
 “깨어나셨군요. 아, 아니 저를 헤치시지 마시고 정신을 차리시라는 뜻입니다. 여행자님.”
 멀리 이성, 아니,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는 목소리가 암흑의 지평선 너머에서 차분하게 그러나 조금은 따뜻하게 들려왔다.
 스테돌프는 눈을 떴다. 정확히는 눈을 뜨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지금 스테돌프는 아무 옷가지도 걸치지 않은 채 어느 건물 3 번째 층에서 서빙용 무쇠 접시를 들고 있는 암컷 사슴의 양쪽 어깨를 발톱으로 찍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니까.
 스테돌프는 당황해서 사슴의 어깨를 파고들었던 발톱을 황급히 빼냈다. 사슴이 색 바란 하얀 옷에서 피가 스며져 나왔다. 스테돌프는 포식자라는 자신의 지위에 맞지 않게 피가 흐른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그만 70cm쯤 되는 침대 턱에 뒷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 덕분인지 낡았으나 아직은 부드러움을 전하는 침대의 푹신함을 느꼈고 동시에 이미 지쳐 근육마저 탈진한 다리가 제풀에 항복하는 뻐근한 고통을 느꼈다. 공포는 사라졌고 그 자리를 익숙하리만큼 진부한 혼돈이 채웠다.
 “이러실 줄 알았으면 다 깨어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 뻔 했습니다. 우유와 후추를 친 고기는 엎질러졌고 제 어깨를 직접 찌르셨네요. 손님께서 혼란스러우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땅 바닥에 바닥에 엎질러진 고기와 우유 그리고 망가진 제 옷까지 합쳐서 560입(Bite)의 추가 요금을 내셔야겠습니다. 그럼 완전히 정신을 차리실 때까지 물러나 있을까요?
 빛 바랜 분홍치마를 입은 암사슴이 문 앞에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지금 무슨 상황이지?”
  다행이도,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도 [여기가 어디지?]라는 진부한 질문을 하게 만들 만큼 스테돌프는 단순하지 않았다.
 “브로큰 엔 이래이즈드 게이트(Broken and Erased Gate) 여관에 와 계시죠. 집이 프라이드 랜드시에 있는 방직 조합원인 러쉬하트 스테돌프님이 맞으시죠? 집이 있는 도시에 잘 도착하셨습니다.”
 “너, 자세히 말해봐.”
 이건 반쯤의 본능으로 한 말이다. 포식자는 저열한 피식자에게 따질 권리가 있다.
 “노상강도에게 습격 당하시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끈적끈적한 오물에 피와 스컹크 냄새를 뒤집어 쓰시고 저희 여관 문을 박차고 들어오신 것 기억 안 나시나요? 노상강도에게 습격을 당하시다니. 도시에 들어오는 것 치곤 불운한 신고식을 치르셨어요.”
 치마와 비슷한 색상인 붉은 두건을 머리에 두른 사슴이 대답해주었다. 사슴은 웃는 건지, 슬퍼하는 건지 아니면 스테돌프가 낸 상처에 아파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왠지 여전히 반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스테돌프를 비웃는 것 같았다. 초식동물이 포식자에게 내보여서는 안 되는 그 표정 말이다.
 그것에 당연히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실용적으로 말해 스테돌프는 그 비웃음에 분노할 처지는 아니었다.  포식지와 피식자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라도 말이다. 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체였으며 침대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나 주둥이를 벌리고 있었고 침도 흘리고 있었으니까.
 스테돌프는 나머지 반쯤 없어진 정신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 괴물이 쫓아왔나? 그 아무튼 끔찍한데, 젠장 설명을 못하겠어- 그러니까 무장한 포식자들까지 살육하는 존재가 말이야.”
 지금 스테돌프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진짜 뭔 돌이나 20kg짜리 납 추를 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슴 녀석이 눈을 몇 번 깜빡 거리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보였다. [하긴, 그 존재하지 말아야 할 건 그렇지.]
 사슴이 한숨 이라기엔 너무도 많은 게 섞인 긴 숨을 들이마셨다.
 “정확히 설명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옛길을 여행하시다 일행 분들과 함께 꽤 큰 무리의 노상강도들에게 당하셔서 여기 오신 상태입니다. 물론, 군부에 이미 신고는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괴물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지요.”
 사슴이 여관방의 문을 열어놓고 나갈 준비를 하면서 차분히 말했다. 포식자인 스테돌프의 기분이 사나워지면 미리 도망쳐 있겠다는 심산이었다. 프라이드 랜드에서 피식자는 포식자에게 반항하면 안됐다.
 너무 당황스러워 그냥 멍하다. 스테돌프가 느낀 감정이었다.
 그가 있는 여관방은 이미 그와 같이 머릿속이 혼란스럽거나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고객들을 여러 번 겪어왔는지 발톱과 아이언 클로 자국에 나무 문에는 납탄이 뚫고 지나간 자리와 그걸 대충 때워놓은 흔적까지 보였다.
 “왜 나가려는 거지? 조금만 겁먹으면 얼어붙기나 하는 사슴 녀석아. 습격은 노상강도들이 벌인 일이 아니었고 소름 끼치는 뭔가가 일행을 박살낸 거라고. 난 대답을 원해. 군부에 보고 했다고 했지? 그럼 괴물은 처리한 건가? 지금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고?
 스테돌프가 외쳤다. 그 끔찍한 걸 떠올릴 때마다 겁을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포식자의 미덕은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 것에 있었고 체면이란 권위와 직결될 만큼 중요한 것이다. 지금 스테돌프는 그 체면보다 사실을 위해 초식동물에게 묻고 있었다.
 스테돌프는 자신의 기억을 정확하게 하고 싶었다.
 “늑대님 죄송합니다.”
 사슴이 눈을 미묘하게 깜빡였다.
 “괴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하기는 죄송하지만 습격 때문에 당황하셨거나 약간 헷갈려 하시는 것 같습니다.
 괴물이라는 것은 과거의 전설 속에 존재했고 지금은 저 같이 초식동물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암사슴이 딱 잘라 말했다. 그녀의 갈색 눈에는 이런 일은 여러 번 겪어 봤다는 복잡함이 섞여있었다.
 “전 지금 나가서 물 주전자와 컵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커피를 타와 드릴 수 있고요. 뭔가 복수하고 싶으시거나 스트레스를 풀고 싶으시다면 이 방의 집기들을 부수셔도 됩니다. 추가 요금을 내신다면 저희는 이 방에서 무엇을 하시든 상관하지 않지요.”
문은 거의 닫혀버렸고 굽이진 앞발만이 보이게 된 암사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사라져버리지 않은 암사슴의 앞발엔 무쇠 쟁반이 들려있었고 우유가 뚝뚝 흘러나왔다.
 사슴은 도망을 시도해 거의 성공했다.
 포식자인 자신을 바보처럼 대하는 행동은 늑대치고 얌전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스테돌프 조차 분노할만한 것이었다. 서서히 자신이 생각하던 존재, 혹은 괴물이 진짜였는지 스테돌프 스스로 의심하는데 바쁘지 않았다면 정말로 사슴에게 화를 냈을지 모른다. 스테돌프가 습격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은 죄다 혼란스러운 것들이었다.
 “그래 일단 괴물은 없지. 조용히 있을 생각이니까 다시 들어와서 내가 이 여관에 들어왔을 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봐. 그렇게 해준다면 추가 요금이라도 지불해주지.”
 스테돌프가 포식자의 최면을 꽉꽉 접어서 어딘가에 구겨버리며 말했다. 기억은 혼란스러웠지만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 복잡함은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여관 종업원과의 개인적인 대화는 원래 1000입의 요금을 받지만 지금은 100입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요금엔 제 몸값 그리고 제 몸을 구성하는 살, 고기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혹여라도 절 산 체로 아먹으실 생각이라면 감옥에서 한동안 머무실 생각은 하셔야 합니다.”
 고기를 사서 먹는 것이 아닌 문명 이전의 방식대로 그냥 먹어버리고 마는 건 현재의 프라이드 랜드에서 죄가 되는 일이었다. 차가운 지하감옥에서 습기에 둘러싸이는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가장 위험한 건 포식자들의 사회에서 야만족으로 찍히는 것이다.
 현재의 스테돌프는 흥분해 있었지만 이성을 잃을 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마음을 다스리려 숨을 내쉬었다. 스테돌프는 왜 자기가 있는 방이 엉망인지 깨달았다. 여관의 주인이 되는 동물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3 층의 이 방을 흥분한 동물들을 집어넣는데 쓰고 있었고 그것이 왜 이방이 온갖 동물들이 만들어낸 야만적인 흔적으로 덮여있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이 여관에 올 때의 상황과 지금 내가 왜 이 방으로 옮겨져 있는지 설명해.”
 스테돌프가 재빨리 침대를 싸고 있던 침대 보를 태양을 섬기는 교회의 제사장들이 입는 토가나 로브처럼 걸치며 말했다. 나체로 있는 건 부끄러운 일이 맞았다. 자연적인 옷인 털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태양의 교단이 지겹게 설교하는 것처럼 스테돌프는 문명을 살아가고 있었다.
 “말씀 드렸다시피 1층 여관 홀의 문을 박차고 들어오셔서는 다른 손님들의 앞발을 붙잡으려 하시고 가슴을 잡은 채 무릎을 꿇기도 하시면서 다른 손님들을 방해하셨죠. 테이블 몇 개와 술병 수십 개를 부수셨고요. 그리고 나서는 [내 말을 들어다오.], [맥동하는 존재다. 그 존재가 나타났다.] 그런 이상한 소리를 내셨죠. 그러다가 갑자기 쓰러지신 거고요. 저흰 쓰러진 손님을 이곳으로 옮겨드린 뒤 더러워진 옷가지는 빨기 위해 뒤뜰 빨래 통에 넣어두었고 소지품은 석회와 세제를 뿌려서 닦은 뒤 베게 근처 장롱에 넣어드렸죠. 그리고 지금 일어나신 거고요.”
 사슴이 침대에 앉으면서 말했다. 스테돌프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그게 다인가?”
 스테돌프가 아직은 약간 격해져 있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말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다만, 노상강도 습격 사건 조사차 나왔던 군부에서 손님이 부순 테이블과 바닥에 흘린 음식 값을 대신 지불하고 갔습니다. 으레 이런 강도사건의 피해금액은 불공평한 피해 당사자가 내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강도라고? 그게 정말 사실 인 거야? 숲 속에서 프라이드 랜드의 감시를 벗어난 존재가 있었던 건 아니고?”
 스테돌프는 물어야 했다. 잠시 잃어버린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스테돌프가 옛길에서 당했던 일 때문인지 스테돌프는 서서히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요즘은 대부분의 것들이 비쩍 마른 씨앗처럼 바스러져 가고 있다고도 합니다. 오래 전부터 말입니다. 꽃은 더 이상 스스로 피어나지 않고 그 아름다움도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런 재 같은 어두운 숲에 뭔가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요즘은 새끼 동물들을 겁줄 때 숲은 텅 비었다고 하고 그 말을 사실입니다.”
 사슴은 약간 체념한 듯이 말했는데 스테돌프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스테돌프가 경험한 바로는 피식자들은 종종 뜻을 알 수 없는 어두운 분위기의 단어들을 꺼내곤 했다. 그는 이번에도 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머리가 더 어지러웠다. 스테돌프가 보고 느끼고 그의 심장 속에 파고 들었던 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 군부에서 현장을 조사할 동물들을 보냈을 텐데 그 동물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는 없나?”
 스테돌프가 옷처럼 매고 있던 이불보의 매듭을 단단히 조이며 말했다.
 “저희가 여관에 이상한 손님이 왔다고 알리자 바로 그분들은 조사를 위해 대부대를 꾸렸습니다. 군부의 장교들께서 돌아와서는 두 번에 걸친 큰 습격의 사건 현장을 발견했다고 하셨고 시체들을 수습하고 피식자들의 고기를 도축해 갔습니다.
 현장에서 대포를 쓴 흔적과 다량의 납 산탄이 발견되었다고 하시더군요. 사슴 사냥용 블런더버스의 탄약들 말입니다. 도로 바로 곁 나무에 바짝 붙어있다가 양쪽에서 화력으로 기습한 샘이죠. 노상강도들이 대답해졌습니다. 감히 프라이드의 피가 흐르는 사자분까지 공격하다니 말입니다.”
 암사슴이 한숨을 쉬었다. 스테돌프는 그 한숨이 노상강도들의 습격을 안타까워하는 건지 아니면 까다롭게 질문하는 스테돌프가 귀찮아져서 그렇게 말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슴 사냥용 블런더버스와 대포라-.] 스테돌프의 불안한 마음만 뺀다면 모든 건 어떻게든 설명됐다. 하지만 스테돌프는 계속 두통을 느꼈다.
 “지금 나는 메케한 냄새가 뭐지?”
 스테돌프가 묻자 사슴이 스테돌프는 뻔히 쳐다보았다. 스컹크의 독소탄. 습격이 있을 때 스컹크들은 조준도 안하고 독소탄들을 쏘아대서 주변을 하얗게 변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스테돌프가 가진 두통의 원인이 그것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군용설탕과 뒤섞여 끔찍하게 지워지지 않는 냄새가 스테돌프의 마음과 심장에 영향을 끼친 걸 수도 있었다. 그 존재가, 일행을 몰살시켰던 그 존재가 어디까지나 환상이었다면.
 스테돌프는 사슴의 눈을 바라보았다. 사슴은 그 행동에 약간 당황스럽다는 듯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포식자들은 피식자들을 진심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슴의 거듭된 설명이 맞는다면 이제 미지근한 현실 그러니까 도시 초입 여관방에서 침대보만 걸치고 있는 난감한 상황으로 돌아가야 했다. 스테돌프는 크게 숨을 한 번 쉬었다. 먼지와 함께 여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눅눅한 습기가 폐로 한 가득 들어왔다.
 스컹크의 냄새는 절대 쉽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게 폭동을 진압하지 위한 화학 약품과 뒤섞인 독소탄이라면 이야기는 더 심했다. 으깬 토마토라든지 표백용 알칼리 세제를 쓰면 냄새가 좀 덜해졌지만 그래도 한 달은 넘게 가는 악취였다. 토마토는 밀을 심느라 바빠서 우선 순위 뒤로 밀리는 온실에서 자라는 귀한 작물이었고 표백용 알칼리 세제는 털 아래 피부가 따갑고 그 부분의 털이 변색되어 버리는 위험한 물질이었다.
 “뭐라도 입을만한 옷이 없나?”
 방직 조합원이어서 잘 알았지만 한 동물이 제대로 차려 입을 만한 맞춤복은 구하기 어려웠다. 만드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그래서 아무 옷이나 냄새 없고 깨끗한 걸 물은 것이다.
 “저희는 보통은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발톱과 주둥이로 할퀴고 물어 뜨는 분들을 위해 여분의 옷을 마련해 두고는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 떨어져버리고 말았네요. 아까 고객님께서 하신 일이 불행하게도 소란을 일으켜서 다른 손님들이 서로 망가진 테이블에 있던 바닥에 흘러 넘친 술값은 안 내겠다고 싸우셔서 옷들을 모두 구입해 가셨거든요. 너덜너덜한 넝마차림으로 한 밤중을 돌아다니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암사슴이 대답했다. 사슴은 찢어진 웃옷을 잠시 벗더니 스테돌프가 낸 상처를 확인하고 치마에서 싸구려 라벤더 연고 병을 꺼내 상처에 발랐다.
 사슴은 네 게의 열을 가진 동물의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큰 첫 번째 가슴을 천으로 묶어서 감찬 채였다. 스테돌프는 무슨 관심이나 성적인 흥분 같은 걸 느끼지는 않았다. 암사슴은 전혀 미적인 가치가 없는 피식자일뿐더러 스테돌프의 조금 정상적이지 않은 취향은 다른데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옷을 구할 수 없나? 다른 건 하얀 거면 됐고 롱코트는 파란색이면 돼. 알잖아. 방직조합이 쓰는 질 좋고 가격 적당한 코발트 염색 말이야. 난 지금 옷이 없는데다가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정확히는 숨돌릴 시간이라고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스테돌프는 어쨌든 그렇게 돌려 말했다.”
 “새벽이 되어 날이 밝아오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밤 시간입니다. 포식자 분들께서 샤냥의 권리를 행사하실 수 있는 시간이지요. 저희 여관이 종업원이 거리에 나간다면 금세 잡아 먹혀 고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암사슴이 이번에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포식자를 존재하지 않는 나쁜 태도라도 말이다. 이제껏 멀쩡하던 사슴의 눈에서 일말의 공포가 보였다. 밤이란 피식자들에게 두려움의 시간이었다.
 사냥의 권리란 시장에서 고기를 살 수 없는 가난한 포식자들이 어떤 처벌 없이 저녁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피식자들을 잡아먹어도 그 죄값을 물지 않는 전통이자 법이었다. 그 방법이 야만스럽다 해도 말이다.
 이 규칙은 오랫동안 철저히 지켜져 왔다. 사냥의 권리가 주어지는 시간엔 피식자들은 포식자들에 맞설 권리가 없었고 만약 그런다면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피식자가 근처 건물이나 집으로 도주한다면 문을 열어주는 당사자와 그곳에 거주하는 피식자들도 사냥의 권리에 포함되어 잡아 먹히는 동물이 될 수 있었다.
 프라이드 랜드시를 가로지르는 폐수와 도살장의 피로 가득한 오염 된 하모니강(Harmony River)의 블로터스 다리 위에 집을 가지고 있는 스테돌프도 예전에 몇 번 포식자에게 쫓기며 목숨을 구걸하는 피식자의 비명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스테돌프의 집에 피식자가 문을 두드린 적도 없었고 왜 그렇게 고기가 될 운명인 피식자에게 호의를 보여야 하는지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프라이드 랜드의 포식자인 스테돌프에겐 그건 당연한 이야기였으니까.
 “새벽이라고? 여기 온지 몇 시간이나 지났지?”
 스테돌프가 약간 놀라서 말했다. 스테돌프는 자신이 언제 피의 습격 현장에서 빠져 나왔는지 도대체 언제부터 깨어나 눈을 뜨고 있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것만 생각하면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듯 가슴이 텅 빈 느낌을 받았으니까.
 “전 시계가 없어서 정확히 말씀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여관의 여우 분들이 가지고 있는 걸 몇 번 살펴본 걸론 어림잡으면 8시간 정도 지난 거 같군요. 손님께서 여기 달려오신 게 사냥의 권리가 발동되기 직전이었으니까요. 그럼 뭐 다른 일 시키실 건 없나요?”
 스테돌프는 사슴을 할퀼 때 힘 조절을 하지 않았고 발톱은 분명히 어깨 깊이 박혔었다. 비록 연고를 발랐다고는 해도 전혀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는 사슴이 스테돌프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쩜 암사슴은 피식자로서 이런 경험이 많은지도 모른다.
 “옷을 구할 다른 방법이 없나? 웃돈을 주고서라도 다른 동물의 옷을 빌려 입는 다든지?”
 스테돌프가 현제 자신의 상황을 잊지 않으며 말했다. 옷이 동물을 완성시킨다는 말처럼 스테돌프는 제대로 차려 입을 필요가 있었다.
 “그것보다는 저희 여관을 지키는 여우분들 중 한 분에게 심부름을 보내시는 건 어떤가요? 새벽에 의류 가게 주인들을 깨우는 건 귀찮은 일이지만 수고비만 주신다면 문지기 여우에게 귀띔 해드리지요. 수고비는 3000입 되겠습니다.”
 사슴이 말했다. 사슴은 드디어 뭔가 느꼈는지 앞발로 어깨의 피묻은 상처를 몇 번 만졌다. 그게 축 늘어져 있지 않고 활기 있는 동물들이 할만한 일이었다.
 “이 고기는 내가 먹지.”
 사슴이 바닥에 떨어진 후추에 절인 고기와 우유 컵을 주우려던 순간 스테돌프가 먼저 앞발을 뻗었다. 배가 꼬르륵거리며 고기와 피에 대한 욕망이 되살아 났다.
 “무슨 고기지?”
 스테돌프가 물었다. 불행하게도 프라이드 랜드의 많은 피식자들은, 교회가 키우고 있는 언제나 완전하게 자신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착실한 돼지들이 아니었다. 가끔은 감히 포식자를 다치게 할 정도로 그들은 불만 많고 유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고기에선 노린내가 났다.
 누군가는 그게 피식자들이 도살될 때 저항하고 두려움을 느끼기에 스테스를 받아 그런 거라고도 했다. 어쨌든 스테돌프는 진실을 몰랐고 그걸 알 생각도 없었다.
 “사슴 고기입니다. 프라이드 랜드에서 저희 피식자들의 운명은 누군가는 고기가 되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나눠지지요.”
 암사슴 종업원이 이상하게도, 기이한 어조로 또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말했다. 스테돌프는 방을 둘러봤다. 군대군대 상처 입은 것처럼 갈라진 회칠로 마감된 방에는 동물들이 난동을 벌여 여기저기 할퀸 자국 이외에 여행자의 짐을 넣어둘 수 있는 큰 상자와. 커다란 선반, 세 게의 서랍장 그리고 장롱 하나와 침대가 있었다.
 스테돌프는 혹시라도 하는 생각에 짐 상자를 열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진실이 뭐가 되었든 스테돌프의 짐은 피와 땀냄새와 함께 옛길의 수레에 버려져 있었다. 현장을 조사했다는 군부가 그걸 수거해 갔을 수도 있지만 지금 스테돌프가 있는 곳은 군부 감찰대의 사무실이 아닌 여관이었다.
 스테돌프는 장롱을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물건이 조금 있었다. 아직도 고무가 타는듯한 역한 독소탄 냄새를 풍기는 황동탄피 권총과, 기름먹인 두꺼운 양피지에 인쇄된 방직조합 조합원 자격증, 지폐가 들어있는 지갑과 금화가 든 돈주머니였다. 어머니가 주었던 방직조합 휴직 사유서는 없었다.
 스테돌프는 이제 교활한 여우들이 옷을 가져다 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분명한 육식동물이었지만 법적인 권리는 가지지 못한 여우들은 격 낮은 피식자들과 자주 어울리고는 했다.
 그들은 사악함을 가진 그 언변으로 피식자들이 잘못한 일을 변호하기도 했고, 사자와 고양이과 동물들이 자신의 말을 초식동물에게 전하도록 대리인으로 뽑아 곡물을 먹는 피식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여우들은 포식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잡식동물들에게는 웃었으며 초식동물들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양쪽에서 포식자도 아니고 피식자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에 여우들을 교활하다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스테돌프는 지금 그 교활한 앞발들이라도 필요했다.
 습격 따위는 일어나지 않고 이상한 괴물 같은 환상도 존재하지 않으며 걱정이나 신경을 쓰지 않는 잠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몇 분이라도 말이다.
 스테돌프는 비난 지금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에서도 그런 행복함을 누려본 적이 없었다. 그가 겪은 습격처럼 삶은 언제나 걱정거리를 만들었다. 스텓로프가 어릴 적 어머니에게 들었던 그 옛날의 이야기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프라이드 랜드 동물들의 삶의 순환을 규정하고 그걸 강제하는 태양의 교회는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한 그루의 청사과 빛 밝은 녹색의 나무는 번쩍이는 태양의 빛을 받으며 자랐다. 그리하여 열매를 맺는다.
 그런 섭리처럼 피식자들이 태양의 빛 즉 고기가 되어서 나무인 포식자들을 살찌우며, 그렇게 성장한 포식자들이 문명을 세우고 나라를 다스리며 프라이드 랜드를 건강과 번영의 장소로 만든다고 했다. 그것은 절대적인 순리였고 오직 그것만이 모든 동물들이 만수무강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지금 시대에 보이는 로브와 태양의 빛 줄기 모양으로 갈라진 반 원형의 황금 등 장식을 단 교단의 사제들이 내리는 명령이 아닌, 태양 자체가 내린 신탁으로 수 십 세기도 넘는 과거에 돼지라는 동물이 영원히 태양의 빛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지금에 와선 소수의 과격한 피식자들이 강제로 떠넘겨진 운명이라고 말하지만, 그 때의 돼지들은 태양의 교회를 따랐고 기꺼이 밭을 갈고 또 당연하게도 제분소의 날카로운 원형 톱날 아래서 고기가 되는 운명을 받아들였다. 동물들은 성대한 만찬을 즐겼고 걱정은 없는 시대였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사악한 파충류가 천국의 나무와 계단 사이로 몰래 기어들어와 날카로운 잇속 독과도 같은 몇 마디 말을 그 꽃들이 만발한 봄날의 만찬 장에 흘려 넣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든 일의 시작은 하늘에서 떨어진 조약돌이 물가에 퍼져나가는 파문을 일으키듯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6세기 전 엔리븐 왕의 해에 내전이 있었다. 프라이드 랜드를 드리운 오랜 기근은 그때 시작되었고 왕의 동생인 디와은 왕자는 왕위를 찬탈하려 지지자들을 모았고 돼지들에게도 무기를 들 권리를 주고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오직 왕자 자신의 사병으로 삼기 위해서 말이다. 전쟁은 해를 넘겼고 곧 이제는 잊혀져 버린 4 세력의 혈투로 바뀌었다.
 내전은 프라이드 랜드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 내전 막바지에 소문이 있었다. 가장 힘없고 약해진 존재의 군대가 프라이드 랜드 동족 트레이얼 평원으로 향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4세력은 군대를 움직였고 전투가 벌어졌다.
 마침내 모든 세력이 사이 좋게 몰락했을 때 그곳에 도착한 것은 돼지들이었다. 제분소의 지하, 도축용 톱날로 끌려가던 돼지들이 트레이얼 평원과 군대의 소문을 퍼트렸던 것이었고 그들은 반란 세력을 모두 쫓아낸 채 다시는 고기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지방의 성의 가진 숫자가 영주들의 민병대가 오랜 수성전과 공성전 끝에 간신히 자연의 순환을 배신한 돼지들을 파멸시켰지만 그 대가는 컸다.
 교회는 믿음을 버린 돼지들의 반항에 놀랐으며 저항하지 못하고 무너졌고 결국에는 여전히 그들을 따르는 일부 신실한 돼지들과 함께 정원(The Garden)이라 불리는 비밀스러운 곳으로 후퇴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황폐해진 농토를 버리고 도시로 향했고 곧 새로운 규칙이 새워졌다. 피식자들에겐 출산세와(Birth Tax)와 성년세(Mature Age Tax)등이 부과되었다. 그리고 돼지가 아닌 다른 피식자들이 농사를 짓고 세금을 낼 시기가 될 때마다 자신들의 새끼와 갓 성년이 된 자식들을 고기로서, 또 세금으로서 바치게 되었다. 이 신성한 서약이 무너지지 않도록 살아남은 교회는 군부를 동원해 엄격한 통제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현재로 이어진 것이다.

 지금은 만찬을 즐기던 옛날과 달랐다. 기나긴 흉년에 돼지의 수까지 줄어든 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 과거에는 늘 즐겼다던 돼지 고기도 이제는 권력을 쥔 사자들이 아니면 맛보기도 힘든 게 되었다. 세금은 걷은 체계엔 한계가 생겼고 그 더게 고기도 귀해져 버렸다.
 스테돌프가 태어나던 때에 심한 한파가 있었다. 그 한겨울에 태어나고도 가문의 상징인 순수한 하얀 털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테돌프의 할머니는 그 겨울을 운명의 장난이라고 불렀다. 스테돌프가 기억하는 선에선 말이다.
 그 한파는 상당히 심한 것이어서 얼어 죽은 동물들이 생겨났고 봄은 물론 여름에도 작물이 자라지 않았다. 많은 초식동물들이 굶어 죽었고 그로 인해 고기는 생겼지만 누구도 그걸 좋아하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고기로 바쳐질 피식자들이 한꺼번에 죽는 건 나쁜 일이었다. 다행히도 한파는 두 해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새로 즉위한 프라이드 랜드의 엠렛 사자왕은 포식자들에게도 농사에 신경 쓰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것이 그의 다섯 번째 칙령이었다. 여섯 번째 칙령은 빈 왕실 금을 채우고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기근을 대비해 금화로 된 세금을 올리는 것이었다. 프라이드 랜드의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일부는 조합회비를 내기 버거울 정도로 힘겨워졌고 곧 탈퇴 당해 부랑자가 되었다. 스테돌프 가족의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스테돌프의 가죽은 다행히 작은 영지를 가지고 있었다. 영지와 작위는 오직 고양이과 동물들 사이에서만 되물림 되는 것이었고 프라이드 랜드를 통틀어 비 고양이과 동물들 작위를 가진 동물은 채 열 이 되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그 귀한 작위를 가지고 있는 늑대 가문이었다.
 죽어가는 밀의 기사. 스테돌프 어머니의 먼 조상이 트레이얼 평원에서 돼지들과 싸웠을 때 얻은 작위였다. 이름도 괴상했고 무엇보다도 패배한 전쟁에서 얻은 이상한 작위였다. 누구도 작위가 있다고 스테돌프의 가족을 고양이과 동물로 취급해 주지도 않았다. 그나마 얻은 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어떤 동물도 그걸 영지라고 부르지 않을 것 같은 조그마한 농장이었다.
 어머니는 그게 정말 별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반대로 할머니는 그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테돌프는 어릴 때 보았던 두 집안 어른의 싸움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스테돌프는 어머니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뭔가 가지고 있는 건 나쁘지 않았다.
 조합은 함께하는 것이다. 그것이 방직 조합이든 주조 조합이든 말이다. 스테돌프의 어머니가 조합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도 했지만 몇몇 조합원들은 스테돌프의 어머니가 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신경 썼다. 그의 가족은 조합에서 어느 정도 높은 자리에 있었고 그만큼 내야 하는 돈도 많았다. 어머니는 그게 다 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하다고 훈계했다.
 스테돌프의 어머니가 방직조합의 휴직서를 쓴 건 그 돈을 내기 위해서였다. 농장의 대리 동물로 여우를 쓰는 것은 비쌌다. 직접 농장으로 내려가 태업을 일삼는 반항적이고 못된 초식동물들을 다그쳐 영지의 작물 수확량을 늘리는 게 나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스테돌프는 16살의 성년이 되어 새로 방직 조합원이 되었고 그 때문에 프라이들 내드시로 돌아온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종업원 사슴은 사라져 있었고 바닥의 우유자국은 깔끔하게 닦였으며 방문은 닫혀있었다. 아마도 사슴이 다른 신선한 우유나 커피 그리고 음식을 서빙하기 위해 1층 여관 홀로 내려간 건 같았다. 스테돌프는 무쇠 접시 위의 우유가 살짝 묻은 사슴고기를 집어 들어 한입 물었다. 노린내를 감추기 위한 진하고 매운 후추의 냄새가 주둥이 안에 가득 찼다.
 스테돌프는 잠시 침대에 앉아 부탁한 옷이 준비되기를 기다릴까 하다가 아직 열어보지 않은 서랍장으로 향했다. 서랍장의 가증 위쪽은 살짝 젖혀져 열려 있었다. 서랍을 열었다. 그는 순간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가 진홍색 바탕의 마름모 모양의 장식을 발견했다. 정확히 숫사자 갈기 모양의 금속 세공 가운데에 마름모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마름모를 사분 면 했을 때 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 두 부분에만 검은색을 칠한 장식이 말이다. 그런 프라이드 랜드 사자들의 상징이었다.
 사자들은 분명 이런 허름한 여관에 머물지 않았으니 상징이 우연히 버려졌을 리는 없었다. 혹여나 그것이 여행자 일행을 호위하던 암사자의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다. 역시 그럴 리가 없었다. 종업원 사슴은 스테돌프가 혼자 여관으로 도망쳐 왔다고 했다.
 스테돌프는 어찌할지 모르다가 그 진홍빛 금 상징을 앞발에 쥐었다. 기이하게도 앞발에 쥐자 스테돌프의 마음도 머리 아픔도 가라앉는 것 같았다. 괴물에게 당한 건 그저 상상이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여기 있습니다. 늑대님.”
 암사슴은 소고기 조금과 우유 2장 그리고 따듯한 커피를 가지고 돌아왔다. 스테돌프는 자신이 마신 우유가 어떤 초식동물의 우유인지 궁금했지만 그건 묻지 않기로 했다. 아침이 시작될 쯤 옷이 도착했고 스테돌프는 재빨리 하얀 속옷과, 셔츠, 바지 그리고 푸른색 롱코트와 하얀 스카프를 맺다.
 “이것 좀 매줄 수 있겠나? 리본 줄의 양쪽 길이는 되도록이면 똑같이 맞추도록 해.”
 스테돌프는 암사슴에게 늑대의 꼬리가 시작되는 부분에 맬 파란 리본을 묶어달라고 했다. 이 리본은 프라이드 랜드의 조합원들이나 조합원과 비슷한 지휘를 가진 포식자들이 매는 일종의 전통이었다. 때문에 프라이드 랜드의 동물들은 스테돌프와 같은 계급의 동물들을 리본테일(Ribbon Tail)이라고 불렀다.
 주머니에 아까 발전한 상징을 집어넣긴 했지만 여전히 습격에 대한 불안이 조금 남아있었다. 마치 자르고 잘라도 조금의 나머지 부분이 생기는 괴상한 물건처럼 말이다. 담력 있고 차분하게 행동하는 게 포식자가 가져야 할 미덕이었지만 스테돌프는 별로 용감한 편인 늑대가 아니었다.
 “나가실 건가요? 빨래는 어떻게 하실 거죠?”
 암사슴이 다 먹은 서빙용 쟁반의 뼈를 치우며 말했다.
 “우선 집에 들렀다. 내일쯤에 가지러 오지.”
 무슨 나쁜 짓을 당했든 그건 이미 끝났다. 스테돌프는 정신을 차리고 다음 행동을 할 차례였다. 그는 우선 1년 동안 텅 비었던 가족 집에 들르기로 했다. 바로 다음엔 노상강도 습격을 담당한 군부의 포식자들을 만나 그들이 조사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었다. 어머니까 쓴 휴직서는 없지만 조합들의 본부인 길드 홀에 가서 사정을 설명해야 했고.
 “저희 여관에 지불해 주셔야 할 총 금액은 4360입입니다.”
 암사슴이 말했다. 어깨를 덮은 한 겹의 찢어진 옷자락 아래 스테돌프가 찍어 누른 상처가 부풀어 올라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 지폐 4장 그리고 금화와 은화.”
 스테돌프느 값을 치렀다. 원래 화폐단위 입은 고기 한입과 금화의 비율을 동등하게 계산했기 때문에 닢이 아니라 입(Bite)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물론, 그건 스테돌프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일이다. 지금은 고기와 물건들의 가치가 몇 백 입, 몇 천 입으로 뛰어있었다.
 프라이드 랜드의 현왕인 앰렛 왕은 한 때 프라이들 랜드에서 유일하게 초식동물이 담당하고 있는 재무장관직을 갈아치우고, 시장 가격에 개혁이 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화폐를 개혁한다는 게 성공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요즘은 뭔가 살 때마다 주머니에서 빠져 나오는 돈이 늘어만 가는 실정이었다.
 “감사합니다.”
 암사슴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년느 스테돌프가 옷 대용으로 썼던 이불보를 다시 매트리스 위에 개고 있었다.
 스테돌프는 창문을 덮고 있던 나무 판자를 걸쇠에서 분리했다. 날은 충분히 밝았다. 창문을 통과해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정확히 아직은 저녁시간이었고 져가는 달도 희미하게나마 하늘에 떠 있었지만 하늘은 연한 청색에 회색 빛의 구름들로 차 있었다. 스테돌프가 질릴 정도로 많이 본 프라이드 랜드의 평범한 이른 아침 풍경이었다.
 스테돌프는 방을 나서는 암사슴을 따라 복도로 나왔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여관의 3층 복도는 조용했다. 하지만 계단으로 나서자 주점의 옅은 말소리들과 잔을 부딪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같은 업계의 동물들은 얼핏 친해 보인다. 그들은 심지어 종족이 달라도 흥겹게 떠들고 논다. 하지만, 그런 동물들의 대화는 결국 다른 이들에 대한 음모로 끝나기 마련이다.] 하긴, 노동 조합의 조합원들 같은 동물들이 이른 아침 시간에 주점에 모여 할 말이라는 게 그런 거였으니 말이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을 때, 스테돌프가 다시 현실 세계에서 뜻 모를 위화감을 느낀 건 2층을 내려갔을 때였다.
 “돈을 내든지 감옥에 가든지 선택해. 아니면 고기가 되는 것도 좋을 거야.”
 2층 복도에서 짙은 남색의 우비를 쓴 여우가 쥐에게 따지고 있었다. 쥐는 아까 스테돌프가 그랬던 것처럼 쥐 크기의 이불보를 옷 대신 쓰고 있었다. 쥐는 악에 받힌 듯 짙은 붉은 색의 뭔가가 묻은 은박시계와 나무기둥에 로프가 꼬여진 물건을 들고 여우에게 따져 묻고 있었다.
 “이것들로 대신하면 되잖아요. 돈은 안내요. 시게는 분명히 값어치 있는 거고 이 막대기는 안보여요? 냄새라도 맡아봐요. 샤프란 보다 고급인 향로 막대기잖아요.”
 쥐가 든 시계는 얼룩만 빼면 꽤 괜찮아 보였고 쥐의 말이 맞게도 막대를 둘러싼 기름 먹은 로프는 아름다운 하프시코드와 류트의 선율 같은 냄새를 풍겼다.
 “문제는 네가 그걸 훔쳤으니까 그렇지. 시계에는 20년을 함께한 사랑스러운 남편, 최고의 여우라고 쓰여있고 피까지 묻었어. 거기에 막대기를 봐라 태양을 섬기는 교회의 표식이 새겨져 있잖니.”
 여우가 화를 내며 이빨을 드러냈다.
 “여우님 당신은 우리 피식자들의 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종족이잖아요. 부탁 드려요. 여우님. 전 이 물건을 훔치지 않았어요. 시계는 주운 거고 요즘 교회에서 안 쓰는 물건은 중고로 판매하는 건 모르시나요?”
 “미안하지만 말이다, 쥐야. 우리 여관은 프라이드 랜드시 초입에 있는 동물들이 많이 다시는 곳이야. 그래서 너희 쥐새끼들의 회색시장 물건은 받을 수 없어. 그냥 도수 높은 술과 밀주 때문에 너희 종족이랑 거래하는 거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어. 해치지 전에 여관비를 내놓는 게 좋을 거다.”
 여우가 앞발을 들어 할퀴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쥐는 대담하게도 물러서지 않았다. 더럽고 불쾌한 자신의 종족에는 알맞지 않게도 말이다. 그때 갑자기 쥐가 스테돌프를 봤다. 스테돌프는 이게 무슨 일인지 몰랐다. 쥐는 교묘하게 몸을 숙여 앞을 막은 여우의 뒷발 사이를 네 발로 지가더니 스테돌프 앞에 서버렸다. 그 흉한 모습으로.
 “당신 그 늑대 맞죠? 우리가 괴물에게 습격 당할 때 함께 있었잖아요.”
 여행자 일행에 끼어있던 죽은 이의 유품을 좀 도둑질 하던 그 쥐였다.
 “당신도 보셨죠? 괴물 말이에요. 그 끔찍한 괴물 그건 정말 존재하는 거에요. 다른 동물들은 믿어주지 않지만 당신- 아니, 늑대님께서는 아실 거 아니에요.”
 스테돌프가 가짜라고 납득했던 그 끔찍한 존재는 진짜 있는지도 몰랐다. 계단 참에 있던 스테돌프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저는 그러면 다음 편을 수정하러 가봐야겠습니다. 검수본은 좀 더 조언을 받은다음에 올리겠습니다. 책게에서 받은 조언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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