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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글의 문법에 대한 문제가 많드는 조언을 들었고 그걸 해결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이번에는 조언을 받고 수정해 본 이야기의 첫 화 Chapter 1.1을 올립니다. 특히 글의 시작 부분에 수정을 많이 가했는데 부디 글이 좋아졌다면 좋겠습니다.
+ 글을 검수해주시는 분을 찾았고 검수를 완료했습니다. 1차 검수 완료. 오유에선 글을 수정할 수 없어서 검수본으로 다시 올립니다/
검수 이전 글 Link : http://www.joysf.com/4999690
그럼 검수한 이야기의 시작 부분입니다.
Who Becomes meat?
Chapter 1.
[(Who Becomes meat?) 누가 고기가 되어야 하는가? 삶은 강제로 먹기 싫은 건초를 뱃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것이며, 그렇게 강제로 살찌워져 끝없이 자손을 낳는 물건이 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우리의 자식들은 결국 포식자들의 한끼 식사로 바쳐진다.
우리는 따스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눈동자를 무시한 채 그들을 포식자의 먹이로 바쳐야 한다.
또 우리의 삶은 어떤가? 태양이 주었다는 찬란한 우리의 생명은 결국 포식자들이 먹는 고기로서의 가치만을 가진다. 때문에 우리의 온갖 소중한 기억들과 감정들은 고기가 발라진 뼈 찌꺼기처럼 버려진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언젠가 도축장에 서야 할 운명이다.
그리하며 감히 묻는다. 누가 고기가 되어야 하는가 누가 동물의 운명을 정하는 것인가?]
회색과 흰색이 섞인 털을 가진 늑대인 스테돌프는 앞발로 작은 직사각형의 종이를 넘겼다. 일반적인 직사각형의 종이보다 1/4은 작은 다람쥐 크기에 맞을 종이였다. 사각형의 엄격한 틀에서 빗나가지 않고 정돈된 활자와 말라붙은 잉크의 재질로 보아 도시의 공장 같은 곳에서 인쇄된 종이가 분명했다. 하지만 종이엔 금속활자 인쇄 조합원들의 정교함이나 세세함 같은 것이 없었다. 글을 담는 활자 자체가 거친 것이다. 그건 마치 목이 물려 숨이 멎는 사냥감이 마지막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게다가 종이까지 거칠었다. 이런 저질 종이에 인쇄 조합원들이 세기는 P 문양은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기를 먹는 동물인 스테돌프의 신경을 건드린 건 인쇄지 뒷면의 그림이었다. 그 그림에는 거대하고 기다란 테이블이 있고 온갖 종류의 포식자들이 웃고 즐기며 산더미 같이 쌓인 고기로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 피식자 놈들의 운명은 당연히 고기가 되어 우리 포식자를 먹여 살리는 것이야. 게다가 내가 살아보면서 그 육즙 흐르는 고기를 배부르게 먹어 본 적이나 있던가?]
스테돌프는 늑대의 발톱이 달린 앞발로 그 종이를 찢어버릴까 잠시 고민했고 그 방법 대신 종이를 구겨서 던져버리기로 결정했다.
바닥에 떨어져 쓰레기가 되어버린 종이처럼 글과 내용을 잊어버리려던 스테돌프는 자신의 쓸데없는 곳에만 뛰어난 기억력에 한탄했다. 프라이드 랜드의 포식자에게 있어 불편한 내용이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그 글에는 프라이드 랜드의 포식자가 느끼기에 확실히 불편한 내용이 있었다.
스테돌프는 자신이 버린 종이에 그려져 있던 양 발에 케이크와 고기를 쥐고 게걸스럽게 먹는 늑대의 모습을 기억했다. 하고 많은 포식자 중에 하필 늑대다. 자신의 종족이 바로 그 늑대인 스테돌프는 삶 전체에서 한번도 그렇게 풍족하게 생활한 경험이 없었다. 그것이 스테돌프 자신의 기분을 언짢게 했다.
“저건 뭐지? 광고 풍선이 바람을 타고 잘못 날아와 떨어진 광고지라도 되는 건가?” 일행 중 선두에 서있던 사자가 말했다. 암사자였고, 스테돌프보다 두 배는 키가 컸으며 옛길을 걷는 일행을 이끌고 있었다. 아, 이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사자는 연대장의 상징을 황금색과 진홍색이 수놓아진 띠가 있는 반달 모양의 이각모를 쓰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닐겁니다. 별 내용없는 광고지겠죠. 매일 온갖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프라이드 랜드시가 근처지 않습니까?”
스테돌프와 같은 종족인 사코 모자를 쓴 부사관 늑대가 말했다. 그들의 대화처럼 회색의 폐지 같은 종이들이 일행 주변에 몇 장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늑대 부사관이 교활하기로 유명한 여우처럼 간드러지는 소리로 상관에게 말을 거는 동안 말 두 마리가 끄는 소래 위에 앉아있던 담비 하나와 9 마리의 다람쥐들 중 하나가 수래 아래쪽으로 내려가 종이를 집어 들었다.
프라이드 랜드의 왕명을 받드는 군부의 일원이었지만 사기도 낮고 그 모자란 사기를 술로 채우는 녀석들이 긴 여행자 호위 임무에 지쳐 심심해진 모양이었다.
다람쥐들은 늘 그렇듯이 발효된 도토리 술병을 입에 가져다 대며 종이를 읽어 내려갔고 그것이 마침 뒤를 돌아보던 늑대 부사관 눈에 띄었다.
“이 멍청한 총알 방패들아. 내가 전방 경계를 하라고 수래 위에 앉혔지 노닥거리라고 행군을 안 시키는 건 줄 알아? 술을 마시는 것 까진 괜찮아. 하지만, 그 입에 담기 어려운 반역스러운 종이를 볼 자유를 주지는 않았을 텐데? 당장 그걸 내놔라 아니면,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부엌에서 오늘의 특선 요리 겨자를 친 다람쥐 구이가 되기 전에.”
부사관 늑대는 지금 프라이드 랜드를 지배하는 섭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먹히는 자와 먹는 자로 나뉘어지며, 피식자는 포식자를 위한 식량으로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 그런 당연한 순환의 위치가 동물 세상을 지배했다. 그렇기에 그 체제에 의문을 가지는 종이를 읽는 건 신성모독이었다.
“반역스러운 내용이라, 대체 뭐가 쓰여져 있기에 그러는 거지? 부사관. 내가 확인해 봐야 되겠군.”
여행자 무리를 이끄는 호위 분대의 지휘관인 암사자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녀가 멈추었고 그녀는 일행의 선두에 서있었기에 삐그덕 거리는 수레의 소리와 함께 여행자 일행은 걸음을 멈추었다.
갑작스러운 사자의 시선을 받은 수레 위의 다람쥐들은 모두 조각상이라도 되는 듯이 굳어버렸다. 아무리 군부의 군인이라도 포식자와 피식자의 먹이사슬은 변함없이 유지된다. 그것이 그들을 얼어붙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서쪽에서 옅은 바람이 불어왔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별 상관없는 광고지였습니다. 반역스러운 내용이라. 피식자들이 사소한 반항을 부리는 건 늘 있는 일이죠. 하지만 우리 포식자들은 언제나 피식자들을 통제하고 그들을 믿음을 관리하지 않습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부사관은 자신이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 프라이드 랜드의 존귀한 신분인 사자의 관심을 끌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자들은 모든 부분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서 있으며, 심지어 철저한 계급사회인 군부에서도 입대즉시 무조건 연대장의 계급을 받는 까다로운 존재였다. 또 그것이 그들이 위엄을 가졌으며 그 위엄만큼의 공포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걸 증명하기도 했다.
땀 냄새가 나는 부사관의 주둥이에서. 포식자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가느다란 수염 가닥이 왠지 모르게 떨리고 있는 듯 했다.
“내가 확인해 보지.”
암사자가 말했다. 부사관의 변명은 실패했다. 다람쥐들로부터 빼앗은 종이를 들고 있던 부사관은 그걸 사자에게 주었다. 부사관이 거의 근육을 움직이지 않으며 한 숨을 내쉬는 동안 종이를 읽는 암사자의 얼굴이 밝았다가 어두워졌다가 붉어졌다.
프라이드 랜드의 당연한 순환, 즉 섭리를 어기는 글. 글이란 것은 어떨 때면 유약했지만 지금의 것은 불운히도 순수한 물리력보다 강했다. 글이 힘보다 세다는 격언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지금 그 경구들을 설명하는 건 넘어가도록 하자.
사실 존귀한 사자들은 달콤한 케이크와, 초콜릿과, 과자와 그리고 값비싼 정원(The Garden)산 돼지고기를 먹고 또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신분이었다. 이 말은 사실이다. 프라이드 랜드에서 고기를 먹지 못해 배고파하는 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종이의 뒷면에 인쇄된 그림은 사자들의 맨 얼굴을 드러내게 했다. 매우 풍족하게 먹는 사자가 있는 그림은 그들이 다른 동물들을 착복해 배부르게 먹는 다른 사실을 드러내주었다. 자부심 많은 사자들의 맨 얼굴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건 좋은 일이 아니다.
암사자는 붉은 얼굴에 가득한 분노를 간신히 다스린 채 눈 앞에 보이는 다람쥐 몇몇을 할퀴는 것으로 채벌을 시행했다. 갈기 없는 그녀의 얼굴은 짜증이 잔뜩 나 있었다.
“이 불경한 것들을 증거로 수거해. 그리고 바로 프라이드 랜드시(City of PrideLand)에 도착한 바로 다음에 교회의 이단 심문회의에 연락을 넣어야겠어. 태양의 섭리를 거스르는 이런 글을 만들어내고 인쇄해낸 동물들은 희생의 제단에서 스스로의 몸뚱이를 바치는 걸로 값을 치러야 할거야.”
사자가 내린 결론이었다.
“연대장, 그리고 분대의 지휘자시여. 말씀하기는 죄송하지만 이런 사항은 군부의 감찰부서에 넘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교회에 연락을 넣는 건 일을 너무 복잡하게 합니다. 우리는 군인이고 단순히 기초교육을 받는 피식자 노동자들의 불만이라면 군부의 처형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눈치를 보는 부사관의 수염이 더욱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프라이드 랜드시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는 20마리가 조금 넘은 여행자들과 13마리의 군부출신 호위대는, 이번 임무가 군부의 첫 임부인 신참 암사자에 의해 지휘 받고 있었다.
복잡한 사자 상류층 사회의 일이 무엇이 되었든, 암사자의 삶에 어떤 이이기가 있든 이 암사자는 경험이 없었다. 그게 그녀가 분노를 쉽게 통제하지 못하는 이유이리라.
사자와 같은 고귀하고 순수한 혈통에 대한 자부심은 분노를 낳는다. 스테돌프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듯이 분노는 피를 먹이로 삼은 또 다른 동물이었다.
공장과 농업의 생산량 증대를 위해 현 사자왕의 아버지인 샤드리 왕이 내린 교육 칙령 때문에 이제는 일부 피식자들도 알파뱃을 읽고 쓸 수 있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방적기와 넓은 토지는 프라이드 랜드의 동물들을 먹여 살렸기에 반항적인 피식자들이 몰래 글을 쓰는 것은 불편하지만 감안해야 할 약한 부작용이어야 했다.
“지금 날 무시하는 건가”
암사자의 목소리였다. 부사관은 이제 눈에 보이게 몸을 떨었다. 경험있는 사자라면 지금 이 일을 깨끗하고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군부에 넘겼으리라. 하지만 교회의 이단 심문회의를 부르는 건, 작게는 일상생활과 매일 매일의 스케줄, 크게는 각 동물들의 성격과 제산과 소유물 문제 그리고 낡은 고문 틀들이 가득한 지하 감옥을 동반했다.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아, 아닙니다. 군부의 일은 군부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주의였습니다.”
부사관이 답변했다. 부사관이 얼마나 경험있는 군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아직 확고했다.
지금 일행은 프라이드 랜드시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도시에 도착한 다음 본격적인 사단이 벌어져 버릴 것이다. 일반적인 관례상 암사자가 자비롭게 일을 넘어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지만 사자들의 역정을 받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좋아. 프라이드 랜드시를 향해 두 배로 빠르게 걷는다. 그리고 다람쥐들 너희는 자신의 주재를 알아야 할거야.”
암사자가 단호하게 끊어 말한 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다람쥐들은 더러운 연두색 군복에 주석으로 된 제분소 모양 장식을 단 군모를 쓰고 허리에 헐거운 가죽 탄약 가방을 매고 있었다. 스테돌프는 그런 다람쥐들의 모습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프라이드 랜드의 섭리는 다람쥐들을 도축되어 고기가 되어야 하는 규정했으니까.
물론 그들은 하모니카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피치 못해 피식자에게 무기를 허용하는 군부의 특별 규정 덕분이었다. 그들은 가장 낮은 전선의 소모품이었고 따라서 다람쥐들에겐 이렇다 할 권리가 없었다. 그것이 그들이 암사자에게 상처를 입고도 고통을 참으며 가만히 있는 이유였다.
“모두 이동.”
부사관이 암사자 대신 말했다. 사실 신참이라도 암사자는 뭔가 일일이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각각 두 마리의 말들이 하네스(Harness)를 매고 끄는 3대의 수레가 흙바닥과 잔돌을 밀어내며 거친 소리를 만들었다. 일행은 프라이드 랜드시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암사자의 시선이 다른 대로 향한 뒤에야. 얼굴에 상처를 입은 다람쥐 하나가 허리춤에 찬 많은 가죽 주머니 중에서 하얀색 파우더를 꺼내 얼굴에 발랐다. [사자가 할큄을 넘어서 눈에 구멍을 낼까 걱정하겠지.]
헐떡이는 말들을 포함해 여행자 일행은 긴 여정 때문에 지쳐있었다. 그래서 오직 하급 포식자에 해당하는 담비 만이 지금 벌어진 일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리 밑바닥의 삶이라도 포식자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암사자가 일행을 선도하고 있었으므로. 일행은 분당 사자걸음 서른 네 걸음으로 이동해야 했다. 늑대인 스테돌프도 사자의 발걸음을 따라잡기 버거웠다. 하지만 여행자 일행의 양쪽을 지키고 있는 폭동 진압용 독소탄 발사기를 찬 스컹크들과 이제 막 도시로 상경하고 있는 라쿤 가족들같이 그다지 크지 않은 동물들은 빨라진 사자의 발걸음을 따라잡기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스테돌프는 이미 하루 종일 나무들 사이로 난 흙길을 걷느라 지쳐 있었다. 그는 쉬고 쉽다는 생각을 했지만 도시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이 걸음을 감내했다.
늦가을의 짧은 해는 져가고 있었다. 다가오는 밤은 불길한 기운과 동물들을 약탈하고 피식자를 잡아먹는 기이한 소문을 떠올리게 했다.
무슨 냄새지?”
아까 전부터 불편한 기색이 가득한 암사자가 말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아주 오래 전 숲을 뛰쳐나와 수십 세기 동안 문명 생활을 하면서 코가 무뎌졌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갑자기 흘러나오는 톡 쏘는 냄새는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이 썩은 새의 알에 누군가가 토한 구토물에 똥과 고무가 타는 냄새라면 말이다.
“제 잘못이 압니다. 폭동 진압용 독소탄의 깡통이 조금 녹아 내린 것 같습니다. 절대로 제가 길가에다 아무렇게 싼 것이 아닙니다.” 길고 검은 색의 두꺼운 소가죽 방호의와 연두색으로 염색한 염소가죽 벨트를 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 가죽의 마스크를 쓴 스컹크가 말했다.
엉덩이의 분비샘에서 독하고 역한 분비액을 만든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받는 스컹크들은 대부분 군부에서 활동했다. 폭동 진압반이라는 자리는 냄새를 흩뿌리는 그들에게 알맞은 자리에서였다.
“그 냄새를 막을만한 건 없나?”
암사자가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여기는 끈적거리는 접착용 고무도 없고 냄새가 나는 독소탄 깡통을 틀어막을 여분의 가죽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탄약 깡통을 길가에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다. 암사자여.”
스컹크가 암사자와 일행의 다른 동물들이 주는 경멸과 멸시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며 말했다.
암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컹크의 역한 분비액은 스테돌프 대에 계발된 군용설탕과 합쳐져 순식간에 동물들을 독소로 덮어버릴 수 있었다. 그런 깡통 탄환을 버린다는 건 숲 깊숙이 숨어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적에게 무기 하나를 더 주는 것이었다.
스데돌프가 여행을 떠나기 전 어머니와 누나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직접 보았던 것처럼 올해의 작황은 좋지 않았다. 이맘때는 무엇이든 약탈하고 훔치는 노상강도들이 대담해질 때였다. 고기로 구워먹고 남은 뼈와 죽은 동물들의 조각을 장대에 꽂아 피에 젖은 나무 울타리 요새를 장식하는 그런 족속들은 말이다.
“아직 오후지만 날이 저물어 갑니다. 저희 임무는 로프 쓰레드로(Rope Thread road)를 여행하는 여행객들을 호위하는 일인데 다람쥐 두 마리 정도는 여행자들 후열에 배치시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부사관이 슬쩍 테니스 공으로 담을 넘기는 것처럼 말했다. 최대한 암사자가 아까의 불미스러운 종이에 대해 잊기를 바란 모양이었다.
프라이드 랜드의 군부는 잘 만들어진 최신의 무기로 무장한 채 왕국을 지켰지만 노상강도들은 최근의 흉년 때문에 더욱 기승을 부렸다. 그리고 여행자 일행의 호위대는 숫자가 적었다.
강도들 중 일부는 배고픔이 극에 달해 반쯤 미쳐버렸다는 이야기가 스테돌프가 속한 노동자 계급의 육식동물 사이어서 돌고 있었다.
“감히 제 도리를 잊어버린 동물들이라도 프라이드 랜드의 높은 혈통을 해치지는 않아. 나는 지금 상황이 괜찮다고 보는데?”
암사자가 맞받아쳤다. 경험이 없고 이 호위 임무가 그녀의 첫 번째 임무라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암사자의 말도 맞았다.
왕국의 사자무리 프라이드의 인원을 죽인다는 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권위는 강력하다 때문에 아무리 대담한 노상강도 무리라도 사자를 해칠 가능성은 없었다.
강도들이 태양의 교회의 대리인과도 같은 드높은 사자를 해칠 만큼 대담하던가? 혹여 그런 대담한 동물이 있더라도 교회에 의해 찢기고, 피부가 잘려지고 내장이 뽑히는 운명을 맞이할 만큼 용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행이 저 멀리 다음 언덕에서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형제들과 물건 더미를 발견한 건 그 순간이었다.
스테돌프는 말들이 끄는 짐 수레 근처 전열에 있었고 그래서 멀리 있는 물체를 잘 볼 수 있었다. 꽤 떨어져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짐 덩어리인게 분명한 직사각형 모양의 종류들 그리고 옷가지 비슷한 다양한 색깔의 더미가 보였다.
“소형 동물 분대원 전원 하차. 사격 대형으로 변경.”
늑대 부사관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그는 코를 킁킁거리고 늑대의 검은 코는 땀으로 약간 젖어있었다.
“그럴 필요 없어. 좀 더 가까이서 보기만 하면 돼.”
암사자가 말했다. 문득 스테돌프는 그 한 마디가 암사자의 직감에서 나온 건지 그녀의 부족한 경험을 드러내는 건지 궁금해졌다.
수레를 끌던 여섯 마리의 말들과 여행자 일행들이 동요하며 떨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독소탄 깡통에서 새는 매캐한 냄새와 섞여 척박한 땅에서 죽어가는 밀과도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불안정한 움직임. 이상한 징조. 그 둘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여행길과 합쳐져 불안을 만들었다.
암사자는 거친 눈초리로 일행에게 전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행이 좀 더 걸음을 내디디며 움직이자 가죽과 철 그리고 못을 보강된 나무상자와 알록달록한 색의 더미가 무엇인지 모습을 드러냈다.
직사각형 모양의 더미는 분명히 짐이었다. 여행이나 이사를 갈 때 쓰이지만 지금은 버려진 것 말이다. 아니다, 그건 틀렸다. 그 이유는 짐 근처에 널려있는 형형색색의 옷가지들 때문이었는데 그것들은 피로 얼룩진 동물들의 몸뚱이였던 것이다.
“재기랄, 다람쥐들 너 담비 모두 수레에서 내려서 사격대형을 만들어라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해.”
늑대 부사관이 연대장 계급의 암사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마치 쇠뇌에서 쏘아진 강철 볼트와도 같은 속도로 말을 내뱄었다. 본능적인 행동이다.
사자의 권위가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다.
스테돌프는 꽤 질 좋은 피를 타고난 고양이과 귀족은 아니었지만 단단히 단결하는 조합들, 그 중에서도 방직조합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래서 알 수 있었다.
태초에 프라이드 랜드를 새운 건 사자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자들의 옷가지에서 레이스가 사라지고 드레스에서 값비싼 파스텔 톤 염료가 쓰이지 않게 된 것처럼 그들의 권위는 신에서, 바늘에 걸린 실 한 오라기가 옷가지에서 풀려나오듯 한 겹쯤 낮아져 있었다. 마치 아무리 좋은 옷도 시간에 의해 마모 되듯이 말이다.
그게 부사관이 독단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늦가을의 길들이 위험하다는 건 들어봤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연대장이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목소리엔 두려움이 없었다. 비록 권위는 조금 깎여나갔다 해도 그녀는 여전히 존귀하고 건드릴 수 없는 프라이드의 암사자였다.
“우선 조사해 봐야겠지만, 조심하십쇼. 연대장이여. 강도들이 아직 여기를 떠나지 않았을 수 있거니와, 눈 먼 총알에 다치실 수 있습니다.”
늑대 부사관은 일행의 양쪽을 호위하던 스컹크 둘에게 언제든 필요하다면 전방에 독소탄 발사기를 쏴도 된다고 명령했다. 그의 딱딱한 시점은, 마치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유화를 바라보는 듯한 암사자의 눈과는 달랐다.
스테돌프에게 있어서도 이제 여행길은 긴장해야 하는 곳이 되었다. 정확히 습격이 언제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기에 아직 그 강도들이 근처 숲 가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전진해서 조사할까요?”
군부에 소속된 군인으로서 내릴 답은 그것 딱 한 가지뿐이었다. 그래서 부사관은 암사자에게 허락을 구했다.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자에게 먼저 허락을 받는 게 프라이드 랜드의 규칙이었다.
“조심히 조사해. 하지만 기본적인 호위 임무는 잊지 말고.”
간단한 명령이었지만 경험이 전무했기에 암사자의 말은 어설퍼 보였다.
하모니카 같이 긴 철 탄창의 무게 때문에 권총을 비스듬히 조준한 다람쥐들이 앞장선 가운데 일행은 눈 앞에 펼쳐진 살육의 현장으로 다가갔다.
정체 모를 끈적거림과 함께 사악한 피 냄새가 퍼졌다. 죽어 시체가 된 동물들 중에서도 멀리서 잘 보이는 것은 소나 사슴 같은 초식동물들이었기에 일행 속의 피식자들이 더욱 불안해 하는 것이 느껴졌다.
가을의 냉기가 지면으로 내려왔고 피로 뒤덮인 현장은 퇴폐한 예술과도 같은 불쾌함을 자아냈다. 그런 예술 뒤에 항상 음침한 화가들이 있듯 무언가 질서를 어지럽히는 의지가 그곳을 장악한 듯 했다.
스테돌프는 아까 퍼졌던 냄새가 단순히 스컹크의 밀봉이 샌 독소탄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만조 때의 해안에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파도가 밀려오듯 그 냄새는 이 죽음의 현장에 대한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수레 4대가 서로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은 길 전체에 왼쪽 구석에서 시작된 피 웅덩이가 퍼져있었다. 피들은 공업용 절삭유 같은 부자연스러운 냄새를 풍겼다. 일행들 속에 섞여있는 초식동물들은 구역질 난다는 듯이 앞발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스테돌프는 달랐다. 오랫동안 군인으로 복무하신 어머니가 말씀했듯이 모든 상황은 차분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습격 받은 다른 여행자 무리를 보는 것은 불길한 징조였지만 스테돌프의 집이 있는 프라이드 랜드시가 멀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았음에도 스테돌프는 문득 배고픔을 느꼈다. 사건현장은 다르게 말하면 죽은 피식자들, 그러니까 고기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곳이었다. 이 습격이 언제 일어났으며 노상강도들이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성적인 생각과는 달리 스테돌프의 주둥이엔 침이 고였다.
비록 사건 현장에서 같이 죽어있는 동료 포식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피식자가 가지는 가장 큰 가치는 역시 고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려야지.] 사건현장에 대한 생각이었다. 위장이 꾸르륵거리며 배고픔에 대한 본능을 강하게 끌어올리더라도 말이다.
문명있고 교양 있는 동물들은 식탁에서 잘 조리된 고기를 먹지 바닥에 떨어진 잡동사니를 주어먹진 않는 법이다. 문명과 사회는 야수성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포식자들, 말, 여우 그리고 오소리들의 몸뚱이들이 짐과 함께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것은 도살장이나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고기와는 달랐다. 적어도 그런 곳들은 깨끗하고 깔끔하게 살점을 발라내고, 피를 빼고 내장을 정리했다.
동물들의 얼굴들은 뭔가에 놀란 듯 눈을 뜨고 있었으며 그 초점 없는 눈동자들에는 일말의 공포심이 담겨있었다. 짐 수레를 끌었을 게 분명한 앞선 여행객 일행의 말과 초식동물들은 온몸에 칼로 베듯이 심하게 갈라진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내장과 노란 체액은 너저분하게 가죽 밖으로 나와있었다. 여우 같은 동물들은 가죽이 깊게 파여 두개골의 분홍색 뼈가 보였다.
“무장하고 계신 여행객 분들은 총을 꺼내주시기 바랍니다. 피가 신선한데 아직 강도들이 도망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늑대 부사관이 고개를 돌려 여행자 일행에게 말했다. 그는 피를 앞발로 찍어먹어 보거나 바로 앞에서 냄새를 맡지 않고도 고기와 시체의 썩은 정도를 눈치챌 수 있는 듯 했다.
[어머니가 항상 그랬지. 오래 된 도로를 순찰하는 이들은 경험만으로 사소한 것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말이야.]
총 그러니까 무력을 가질 권리는 늑대 같은 제대로 된 포식자 여행자들에게만 있었다. 그러므로 부사관이 말한 뜻은 여행자 일행의 스테돌프와 갈색 곰 하나 그리고 여우 셋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행자 무리의 동물들은 좀 더 안전한 여행길을 위해 굳이 시간을 소비해 기다려가며 군부의 순찰 스케줄에 맞춰 이동했다. 그렇지만 지금 안전에 대한 군부의 약속은 금이 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인지 갈색 곰은 짐짓 이 상황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퍼커션 캡 블린더버스를 들고 일행의 뒤로 향했다.
“너희들은 내 부하를 도와서 앞으로 나서줬으면 좋겠군.”
암사자가 일행의 여우들과 스테돌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암사자는 정확한 시선으로 스테돌프의 붉은색이 살짝 섞인 푸른 눈을 노려보았다.
스테돌프는 신참 암사자가 완전히 고집불통이며 너무 고귀한 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망상이 가득한 그런 종류의 사자는 아니라는 점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방적 기계 사이에 넣는 한 방울의 윤활유 같은 융통성이 없었다면 암사자는 경험 있는 부사관이 자신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을 내렸다고 훈계했을 것이다. 시간을 낭비하는 짓 말이다.
전열의 다람쥐들이 난해한 표정을 지으며 양 옆의 숲을 슬쩍 보고 다시 정면을 조준하는 동안 스테돌프와 부사관 그리고 여우 셋은 사자를 따라 피 웅덩이를 밟고 시체들 곁에 바짝 다가갔다. 피 웅덩이의 질척하면서도 첨벙 하는 느낌이 양가죽 뒷발 보호대 내부로 느껴졌다.
“귀중품들이 모두 그대로군. 짐들은 뒤져지지도 않았어.”
암사자가 죽은 여우가 품고 있던 은박 회중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부서진 수레 위에 실려있는 여행자들의 물품들은 금이 가고 부서지고 땅바닥에 처참할 꼴로 떨어져 있었지만 어디에도 내용물을 열고 금화나, 수공예품 그리고 기계장치를 가지고 간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고기를 노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부사관이 말했다. 수레를 끌 때 쓰는 가죽 하네스가 여전히 몸에 붙어있는 죽은 일행의 말들과 그리고 초식동물들은 분명히 심한 상처가 있었다. 온몸 가득 어지럽게 칼로 베인 흔적 말이다. 하지만 어디도 많은 량의 고기를 채취할 수 있는 엉덩이 살이나, 허벅지 살 그리고 갈비뼈가 사라진 흔적은 없었다.
칼에 배인 흔적 이외에 시체들에 난 다른 상처는 둥그런 구멍 모양이었고 그런 크고 작은 구멍들이 모여 이상하게도 집합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주변에 퍼진 피 웅덩이와는 대비되게 피부는 마치 몸 속에 피가 완전히 빨려 사라진 것처럼 파랗고 창백했다.
도로 왼쪽에 뒤엉켜있는 희생자들의 피는 웅덩이를 이뤄 흐르며 반대편 숲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대구경의 공성용 대포보다도 커다란 것이 지나 간 듯 나무들이 부러지고 휘어져 큰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구멍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훔친 대포를 쓴 것일까?] 스테돌프는 노상강도들이 군부에서 약탈한 대포를 썼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빽빽한 숲 전체를 헤쳐나가며 그렇게 큰 대포를 끌고 다녔을 가능성은 그가 생각해도 적어 보였다. 군부는 절대 공성포를 잃어버릴 만큼 단순한 조직이 아니었고.
피식자들 사이로 간간히 섞여 있는 오소리나 여우 같은 포식자들의 시체는 스테돌프를 불편하게 했다. 스테돌프는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음식에 불과한 피식자들과 프라이드 랜드의 귀중한 자원인 포식자들은 다르다고 믿고 있었다.
스테돌프는 포식자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들의 주둥이는 부서져 두 동강 나있었고 그 속으로 코를 이루는 연골과 혀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눈은 마치 눈물을 흘리듯 피를 떨어트리고 있었다. 얼굴 가죽이 벗겨져 겨우 종족을 한 참을 본 뒤에서 종족을 확인할 수 있었던 붉은 여우는 죽어 차가워진 몸에 리볼버를 단단히 쥐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히 저항을 했다.
“잔혹한 도둑들이군. 부사관 이 현장을 기록해 두도록. 이단 심문회의에 설명할 아까의 그 불경스러운 종이들에 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하고. 그런데 말이지, 그자들 노상강도들 아직도 이 근처에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저도 확신하진 못하겠습니다.”
부사관의 말에 암사자는 약간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렇다면 이 현장에 대해서는?”
지휘관 암사자가 물었다.
“말씀 드리기 죄송합니다만, 저도 이런 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강도들이 단순히 살육만을 원했을 수는 있어도, 숲 가에 난 뭔가가 뚫고 지나간 저 넓은 흔적은 그들이 만들어낸 거라 생각되지 않는군요. 노상강도들은 대게 엄폐물로 쓸 수 있는 두꺼운 참나무 뒤에서의 기습을 선호합니다.”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을 채 옛 길을 살필 줄 아는 노련함을 가진 부사관이 말했다. 그는 상관인 암사자에게 대답하는 동안에도 코트 속에서 클립보드를 꺼내 사건을 적어가고 있었다.
옆에 있던 스테돌프가 살짝 훓어보니 다름과 같은 단어들이 적혀있었다. [첫 번째. 왕명에 어긋나는 문서들. 이단 심문회의의 조사 요청이 필요함.
두 번째. 특이사건, 노상강도의 습격. 그러나 재화와 고기가 약탈당하지 않음. 주변의 나무들이 부서져 있는 정상적이지 않은 흔적. 시신들의 상처는 총상이나 아이언 클로가 아닌 칼 그리고 둔기 같은 충격을 줄 수 있는 도구로 보임. 송곳니 자국이 있음. 장소 : 로프 쓰레드로 프라이드 랜드시 초입 약 6.5km 근방. 추가 조사 필요.]
흑연 연필로 적은 짤막한 글에는 [군 감찰부서 소관의 일반적인 조사로 처리할 것]이라는 단어가 두 줄로 그어져 지워져 있었다. 스테돌프가 읽은 불경스러운 종이를 언급한 부분에서 말이다. 암사자가 태양의 교단을 끌어들여 일을 복잡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관철된 셈이다.
북방 야만족인 스테돌프의 혈통이 문명 사회에 들어 온지도 십 수 세대가 넘었다. 그 동안 교회는 실수로 교단의 의식에 한 두 번 빠지거나 설교할 때 대놓고 자는 것까지 봐줄 만큼 관대해졌지만 그들의 권위가 손상될 만한 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철저했다.
교단은 여행자 일행들을 모두 하나 하나씩 조사할 게 분명했고 괜히 그 종이를 집어 들어 읽었다는 이유로 스테돌프도 짜증나게 교단의 동물들의 심문에 시달리며 시간을 빼앗길게 뻔했다.
클립보드와 교단에 대한 생각이 스테돌프의 마음을 잠시 사로잡았으나 곧이어 나타난 불안이 그 마음을 덮어버렸다. 흐름이 뒤바뀐 소금기 가득한 바다의 조류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 노상강도들이 하는 범죄는 여행자들이 가잔 물품의 약탈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한 피식자들의 도축이었다. 그들은 피식자의 고기를 아껴뒀다가 가끔 암시장에 내다팔아 금화를 벌기도 했다. 노상강도들이야 살육을 즐기는 저급한 부류들이었지만 일반 동물보다 궁핍한 그들이 자신들이 약탈한 재화와 고기를 내버려 두고 같은 확률은 적었다. 그랬기에 노련한 부사관처럼 스테돌프도 이 사건을 결코 평범하게 느낄 수 없었다.
스테돌프의 마음은 안정을 원했다. 그러나 늑대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일말의 불안과 의혹은 포식자의 용감함을 빗겨나가 독소처럼 느리지만 확실하게 퍼저나갔다.
“전체이동. 다시 속도를 유지할 것. 계속 움직이되 경계하도록. 그건 여행자들도 마찬가지야.”
신참 암사자가 드디어 경험이 있는 동물이 할만한 말을 했다. 6.5km. 날은 저물어가고 불운한 일을 보았지만 그만큼만 걸으면 프라이드 랜드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테돌프는 무의식적으로 꺼냈던 황동탄피 권총을 다시 총집에 집어넣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스테돌프 근처의 세 여우들도 각자의 무기를 꺼낸 것처럼 언제든지 쏠 수 있게 들고 있는 게 낮겠다 싶었다.
아마도 모든 오래된 길이 그렇겠지만 이 숲에는 뭔가 불안함이 존재했다. 그의 다리는 마치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듯 뒷발을 굴렸다. 일행은 이동했고 곧 흙으로 된 옛길의 다음 언덕에 도착했다. 그들은 죽어버린 다른 일행을 수습하지 않았는데 현장을 보존해야 했거니와 실제로 수습하려면 많은 말들과 그들을 지킬 호위대 그리고 빈 수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길 양 옆을 둘러싼 숲에서 스산한 기운이 풍겨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노상강도들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요해진 바람처럼 모든 게 다시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포식자는 지배하고 피식자는 섭리에 따른다. 당연한 삶의 순환이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게 스테돌프의 기분을 완벽하게 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스테돌프와 같은 평범한 포식자들은 존귀한 사자와 고양이과 귀족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렇지만 그건 프라이드 랜드의 삶에서 감안해야 할 일이었다. 스테돌프는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러나 갑자기 뒤쪽 50m쯤에서 거칠게 하강하는 독수리 척탄부대의 활강소리보다도 높은 톤의 비명이 들려왔다. 비명은 정확히 다른 여행자 일행이 습격 당한 곳에서 들려오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동물들을 지휘하고 계십시오. 제가 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암사자여.”
늑대의 목소리에선 현장 지휘관의 경험이 묻어났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 초겨울 석양이 일행을 비췄다.
“자네가 가지고 있는 그 권총 엠렛왕께서 살아 계시는 지금 시대에 만들어진 최신 군용 물품이지. 어떻게 그런 물건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도 함께 내 부하를 따라 나섰음 좋겠군.”
암사자가 스테돌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스테돌프는 이 상황이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고 뒤로 되돌아가야 하다니.] 하지만 암사자의 말을 거역할만한 좋은 핑계는 없었다. 그가 스테돌프가 들고 있는 구하기 어려운 군용권총을 보고 명령을 내린 이상 암사자는 스테돌프가 꽤 유용할 동물일거라고 판단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발식 황동탄피 권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을 거라는 논리이니 말이다.
스테돌프는 마지못해 부사관을 따라 뒤돌아 가야 했다. 음습함과 스산함이 있는 그 현장으로 말이다. 명령을 내린 암사자의 얼굴은 석양의 그림자로 가려져 있었다.
스테돌프는 문득 자신에게 그 권총을 준 군인 출신 어머니를 원망할까 생각했다.
스테돌프와 늑대 부사관 그러니까 늑대 둘 그리고 부사관의 명령 때문에 스테돌프보다도 마지못해 끌려 나온 다람쥐 둘은 뒤편으로 향했다.
날카로운 소리의 진원은 부서진 수레 맞은편에서 났는데 분명히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말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마치 성대를 초의 심지로 꼬아 불태우는 것 같은 비명이었다.
“살아있었으면 왜 우리가 처음 발견했을 때 대답을 하지 않았지? 끈질기고 지치지 않아 살아있는 말 나으리, 대답해. 무슨 일이 있었지?”
“공포. 절망. 굶주림.”
부사관의 질문에 몸이 차갑게 식어가고 찢어진 옷 사이론 튀어나온 내장이 비치는 말이 소리쳤다. 말이 내는 비명은 스테돌프가 상상할 수 있는 한에 있는 어떤 고문 도구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스테돌프는 권총을 꽉 잡았다. 그가 가진 단발식 황동탄피 권총은 장거리 사격에 알맞은 물건으로 스테돌프의 가문이 할머니의 할머니 대부터 군부에서 군인으로 복무했기에 가족이 하사 받은 것이다.
“공포. 공포. 뒤섞이는 공포. 그것은 맥동하며 지금까지 살아있어.” 계속되는 부사관의 다그침에도 말은 입에서 침을 쏟아내며 이상한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자네, 일행에서 응급키트를 가지고 올 수 있겠나? 그건 첫 번째 수레에 있어. 거기 올라탄 담비 녀석에게 말하면 그걸 줄 거야. 빨리 가져와야 해.”
늑대 부사관이 스테돌프에게 말했다. 얼굴 가죽은 반쯤 벗겨지고 눈 하나는 터져버려 탁한 액체를 흘리는 말에겐 그게 필요했다. 말의 증언을 듣기 위해선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스테돌프는 뒷발을 때 저 앞의 일행에게로 가려 했다. 그 순간 말이 끊어진 앞발 관절을 억지로 일으켜 새워 몸을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느낄 수 있어. 그게 지금 다가오고 있어.”
말은 다시 쓰러졌고 하나 남은 멀쩡한 눈은 뻥뚫린 공허로 바뀌어 버렸다.
그때 강한 격류가 휩쓸고 지나가듯 갑자기 길에서 한기가 빨려 들어갔다. 어딘가로.
“로저스, 베이컨 뒤를 맡아라. 보이는 게 있으면 쏴버리고.” 늑대 부사관은 두 다람쥐에게 명령했다. 다람쥐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무저갱 같은 길 뒤편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다시 분대와 합류해야겠어. 걸음을 서둘러야지. 그렇지 않은가?”
부사관이 말했다. 그건 스테돌프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폭풍처럼 습기 있는 따듯함이 한기가 빨려 들어간 빈 공간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이 쥐 녀석은 우릴 따라와 있던 거지?”
부사관 늑대와 스테돌프는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가 우연히 그들 뒤에서 누군가의 유품인 피 묻은 은박 시계를 들고 있는 쥐를 발견했다. 쥐의 재킷 아래는 다람쥐들의 것보다 조금 큰 하모니카 권총이 매달려 있었다.
습기 때문인지 피곤함 때문인지 스테돌프는 그 쥐가 기이하면서도 기묘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평범한 회색 털에 때가 탄 하얀 셔츠와 붉은 재킷을 잎은 보통의 쥐였다.
스테돌프는 포식자 노상강도들이 작은 동물들을 부하로 부리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고 곧 그걸 기각했다. 그 쥐는 여행자 일행 속에 있었던 시종일관 급해 보이는 표정을 짓던 녀석이었다.
“제가 뭔가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시계가 버려두기엔 값비싸 보여서-.”
쥐가 당황한 듯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말했다. 그 쥐의 더러움만큼이나 얼핏 교활해 보이는 목소리에는 이상하게도 부드러운 낭랑함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스테돌프는 침착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쥐는 지금 도둑질을 했으며 피식자에게 불법인 총기까지 소지하고 있었다.
“감히 이런 위험한 자리에 끼어들어 함부로 물건이나 줍고 있었다니. 그리고 네놈이 들고 있는 그 총은-.”
부사관이 인상을 쓰며 그르렁거렸다. 그의 앞발은 언제든지 할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기.”
그때였다. 쥐가 소리쳤다. 빠른 열기와 함께 순간의 스침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 거대한 것이 부사관과 스테돌프를 지나쳤다. 그건 금방 방향을 틀어 나무가 찢어지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숲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옛길에 익숙한 부사관이 가슴에 매고 있던 표준 군용 바늘총을 잡아들었다.
형체가 순식간에 멀리 떨어진 일행들 사이로 나타났다.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으나 곳 다시 사라졌고 순간 멀쩡해 보이던 언덕 위 암사자의 머리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몸 쪽에서 분리돼 떨어져 나갔다. 피가 뿜어져 나왔고 머리 없는 몸통이 잠시 앞으로 움직이다가 고꾸라졌다.
“습격이다. 총을 쏴.”
부사관이 멀리 떨어진 일행에게 소리쳤다. 날씨는 급작스럽게 밤이 되었는지 어두워졌고 이상한 보랏빛 광채와 함께 하늘의 별이 빛났다. 이렇게 일찍 한밤중이 될 리는 없었다.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아직은 초저녁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순식간에 드높은 권위가 바닥으로 추락한 죽은 사자의 몸뚱이 같이 벌어졌다. 바람은 칼날 같았고 저 언덕에서 십 수게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뛰어요. 자, 어서 서둘러서.”
쥐가 소리쳤다. 마치 집단주의 본능에 이끌린 것 같았다. 다른 생각도 할 것 없이 스테돌프와 부사관도 그렇게 했다. 부사관은 자신의 바늘총을 단단히 잡으며 일행을 지휘하기 위해서. 그리고 스테돌프는 혼란 속에서.
어떤 존재가 있었다. 무더운 습기와 차가운 한기가 칼날같이 뒤섞이는 존재가 저 멀리 일행들 사이에서 날뛰고 있었다.
그들이 한 걸음을 뛸 때마다 총성을 숫자는 줄어들었고 비명소리는 늘어갔다. 군부의 다람쥐들은 사방으로 총을 난사했고 주위는 다급한 스컹크들이 무작위로 쏘아 올린 독소탄에 오염 돼 매퀘한 구름이 시야를 가렸다.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
마침내 다람쥐들은 물론 한 마리 있던 담비의 비명소리조차 멎은 다음에야 셋은 미쳐 도망가지 못한 여행자 무리에 낄 수 있었다. 일행들 중에는 크고 강인한 육식동물도 끼어 있었음에도 일행 모두는 마치 겁먹은 피식자처럼 한 군데로 움츠려 들었다. 이건 공포였다.
“다람쥐들.”
“로저스, 베이컨 뛰어.”
쥐와 부사관이 동시에 외쳤다. 그러나 큰 동물에 걸음에 맞추지 못한 채 뒤쳐졌던 두 다람쥐들의 몸통은 잠깐 하늘로 날라가더니 이내 조각이 되어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동물들은 독소탄의 매스꺼운 냄새를 맡으며 따가운 눈을 부여잡고 혼란스러워 했다.
이번엔 그것이 하얀 독소탄 구름 사이를 느리게 지나갔다. 곰이 블린더버스로 커다란 납 구슬 산탄들을 쏘아버렸지만 그것을 멈추진 못했다. 그것은 일행의 정 중앙을 마치 출산의 자취를 남기듯 끈적이는 타르 같은 점액을 흘렸다.
일행의 절반이 쓰러졌다. 그들은 먼저 습격을 당했던 불행한 여행객들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칼로 배듯이 심하게 갈라진 상처와 이빨자국들 그리고 뭔가 둥그런 집합체들에게 피를 빨린듯한 원형의 자국들. 똑같았다.
스테돌프는 눈 점막을 자극하는 메케한 독소탄에 저항하면서 겨우 눈을 떴다. 부사관은 일행의 주위를 도는 그것을 잡으려 바늘총을 조준하고 장전했지만 실패했다. 곰이 다시 산탄을 장전하려던 순간 그것이 곰의 팔과 총을 날려버렸다. 곰은 비명을 질렀고 다음순간 먹이로 집어 삼켜졌다.
스테돌프는 눈앞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일행들을 덮치는 그것을 봤을 때 심장이 멎는 듯 했다. 그것은 제대로 된 형체가 없었다. 아니 형체를 말한다면 너무 끔찍할 터였다. 수많은 눈이 달린 털 없는 촉수로 된 매끈한 머리가 언뜻 보였다. 촉수는 살을 가리고 부속지는 피를 빨았다. 그 끔찍한 것이 스테돌프의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스테돌프 옆에 있던 부사관은 가슴이 뚫리며 쓰러졌고 스테돌프는 어떻게는 총을 쏴 그것의 눈알 하나를 맞췄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여행자 일행과 호위분대는 끝장났다. 스테돌프가 마지막이었다.
그들은 노상강도 같은 옛길 진부한 위험과 마주친 게 아니었다. 그들을 공격한 대상은 이세상에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스테돌프의 마음은 공포에 잠식돼 혼미해졌고 그는 울고 웃으며 벗어날 수 없는 보라 빛 어둠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곧 Chapter 1.2도 수정해서 올리겠습니다. 그럼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