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래 전쟁개시까지 미국의 입장은 "쿠웨이트로부터 무조건 철수" 에서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이라크의 입장 또한 "쿠웨이트 철수 불가(나중에 이스라엘의 가지지구 철수라는 있을 수 없는 조건이 붙었지만)"에서 변화가 없었다.
양측 간 입장에 변화가 있을 수 없었으므로 결국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굴복 시키는 방법 뿐이었다.
그 굴복의 수단으로 미국은 처음에는 경제제재와 해상봉쇄를 했지만 그 조치들을 취한지 수개월도 되지 않아 전쟁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따져서 수개월이지 당시 상황을 되돌아 보면 11월 이후부터는 전쟁 개시에 유리한 시점만 재고 있던 상태였다.
그렇다면 해상봉쇄가 시작되고 2개월 남짓한 짧은 시기 이후에 전쟁 국면으로 넘어간 것이다.
당시 전쟁을 막기 위해 요르단,소련,유엔 등 여러 나라에서 중재를 섰지만 이라크는 물론이고 미국도 처음 입장에서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야당의 조직적 반대에도 미 행정부의 입장을 꺾지 못했다.
수천명의 자국민이 인질로 있었음에도 전쟁은 결정되었다.
민간인 10만명 단위 피해 예상에도 전쟁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생화학탄 사용의 협박도 소용없었다.(이건 오히려 미국의 공격 규모를 키우기만 했을 것이다)
당시 중동 정세를 지금 한반도에 비교,대입 해보자.
미국-이라크처럼 미국과 북한 모두 "선제 핵포기" 및 "핵포기 불가" 라는 입장에서 조금도 변화가 없다.
이라크에게는 중재를 서 주는 많은 국가들이 있었다(그럼에도 전쟁은 일어났다). 지금 북한에게 중재를 서 주려는 나라는 남한 뿐이다.
민주당은 여전히 공화당 행정부에 반대겠지만 1990년에서 처럼 당차원의 전쟁반대 움직임은 없는 상태이다.
이라크가 자국에 억류한 수천명의 미국인 인질은 북한은 한명도 갖고 있지 못하다.(있다해도 별 의미가 없겠지만)
민간인의 대량 피해, 대량살상무기 보복 역시 당시 걸프전 상황에도 존재하던 위협요소이다.
행정부의 성향과 의지는 어떠한가.
트럼프가 부시보다 온건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음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공격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각료들을 해임하고(스티브 배넌), 외교관조차도 임명 취소했다(빅터 차).
부시는 공참총장을 유언비어 책임을 물어 해임했을 뿐(실제로는기밀 누설이지만) 비판적인 각료를 쫓아내지는 않았다.
이라크와 북한의 위협 수준은 어떤가.
이라크는 미국의 에너지 저장고인 사우디를 위협했다. 그러나 실제 사우디를 공격하겠다는 입장은 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북한은 미국 영토와 시민 자체를 위협한다. 그것도 핵으로. 그리고 실제로 수차례에 걸쳐 미국을 핵폭발 시키겠다고 떠들고 있다.
과거 이라크와 지금의 북한 어디에게 더 미국이 위협을 느낄 지는 오래 생각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요소들과 정황들이 걸프전 당시 이라크보다 현재의 북한에게 더 비관적임을 부인 할 수 없다.
단 하나, 당시 이라크에 비해 북한에게 유리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유엔과 의회의 결의 여부다.
걸프전쟁 당시에는 유엔과 의회의 무력사용승인이 있었다.
그러나 유엔과 의회는 전쟁 수행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절차가 아니다.
2차 이라크 전쟁은 유엔과 의회의 결의 없이 행정부 독단으로 수행되었다.
또한 걸프전쟁까지의 경과를 살펴본 바, 당시에도 11월 전쟁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고, 그 설들을 유포한 자들은 비중 없는 개인들이 아니라 영국군 사령관이나 프랑스 대통령 같은 당시 정세에 깊이 관여되는 핵심 인물들이었다.
11월은 유엔과 의회의 결의가 있기 전이었으며, 그러므로 걸프전 역시 행정부 단독으로 수행되려 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북한에 대한 해상차단조치가 1990년 이라크에서와 달리 트럼프행정부 단독 결정으로 실행 중인 점은 현재 미국의 대북 행동이 유엔이나 의회 없이 이루어지는 중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의 의지가 확고한 이상 그 외 기관들의 의견에는 그다지 기댈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한반도 정세는 1990년 중동에서와 같은 경과를 밟게 될 것임을 부인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가지는 위협은 더 크고, 상호 입장 차는 변함없으며, 행정부의 의지도 확고하다(또는 더 크다).
결국 파국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 되는 것이다.
걸프전에서처럼 파국 직전에 극적인 대화이 장이 마련되는 이벤트가 생길 여지는 있으나, 그 이벤트에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거꾸로 걸프전에서의 전례를 생각한다면, 만일 향후 북미간의 극적인 회담이 다시 열린다면 바로 그 시기 직후가 전쟁의 개시 시점일 것임을
우리는 대비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걸프전까지의 경과를 살펴보건데 파국은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된 결과인 지도 모른다. 단지 시기만이 미정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