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일이 결국 현실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트럼프가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 것입니다. 아마 그의 갑작스런 결정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이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것을 기대해 왔던 많은 이들에게도 실망감이 들 겁니다. 무엇보다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보수당들과 극우 매체들은 신나할 것이고, 특히 일본이 가장 신나할 것이라는 점에서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대통령이 미국까지 가서 트럼프와 회담을 하고 온 상황에서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그림이 연출된 것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청와대에서 99.9%를 언급했을 때에는 미국이, 정확히 트럼프가 그만큼 확신을 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번 회담 취소의 발표 주체는 트럼프지만, 무엇이 이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는가를 분석하고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첫번째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발언에 대한 북한의 대응입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트럼프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편지엔 '최근 북이 보인 적대적 태도 때문에 우리가 지금 만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바로 엊그제까지 회담을 확신하고 있던 트럼프가 태도를 바꿨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게 '노벨상까지 안겨줄 수 있는' 회담을 취소하게 만들었을까요? 지금 미국 내에는 트럼프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저 역시도 그가 북과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구체적인 행동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직접 대화를 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서부터 저는 그의 재선운동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제겐 한반도의 평화가 더 절실하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어쨌든, 트럼프는 미국 내 언론들의 지지를 못 받고 있고, 민주당 역시 지금껏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던 북한과의 종전 및 평화구축이 트럼프의 손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보는 것이 배아팠을겁니다. 그만큼 반대 세력들이 많은 상태에서 11월 중간선거에서의 승리를 통해서만 재선을 바라볼 수 있는 트럼프로서는 당연히 북한과의 평화 무드 구축, 그리고 이를 통한 노벨상 수상 등으로 국면을 전환하는 것만이 그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테지요. 그런데다가 여기에 현실적으로 자기의 이익이 걸려있는 세력들은 조미평화무드를 망치기 위해 온갖 방해책동을 다 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존 볼튼으로 대변되는, 공화당 내의 극우 이론가들, 그리고 군산복합체들과 이들의 지원을 받는 연방의회 내의 의원들, 일본 극우세력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이들과 커넥션이 돈독한 의원들이 모두 이 회담의 성사를 바라지 않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트럼프로서는 7월 27일 휴전협정일을 평화선언, 더 나아가 종전협정과 평화조약으로 가져가야 법적인 효과를 보장받고 북한에 핵을 완전히 폐기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레버리지가 생기지만, 의회에서 이 협정을 '통과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것을 트럼프 자신도 알게 됐을지도 모르지요. 여기에 언론도 가세를 합니다. 여기엔 미국과 일본, 한국의 보수언론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극적인 기사로 계속해 회담의 성사를 방해해 왔습니다. 여기에 최근 미국 내 언론들은 트럼프의 스캔들 등을 연일 보도해 왔습니다. 트럼프의 출구전략이었던 북미정상회담이 계속될 입지가 좁아진 것이지요. 거기다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공식적으로 파괴하고, 미국에 억류돼있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이미 돌려받았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손해볼 일이 없다는 계산이 섰고, 그 때문에 여기서 돌아서자는 계산이 서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최근의 이란과의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 주 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긴 것으로 인해 빚어진 유혈사태는 트럼프로 하여금 노벨 평화상 수상의 꿈을 접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이번 정상회담 취소 결정이 트럼프 개인의 즉흥적 결정이었다면 이게 제일 큰 회담 취소 사유였을지도 모르지요. 문제는 이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주도했던 외교적 역할의 축소, 그리고 이번 결정으로 인해 자라나게 될 불신 무드,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에서 일본의 영향이 다시 증가한다는 것... 여러가지로 이번 결정은 우리에게 마이너스가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국내 정치에도 만만치 않은 파장을 주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법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우리 민족끼리의 공조를 강하게 만드는 겁니다. 비록 조미간의 적대적 관계가 평화적 관계로 실질적 변화가 이뤄지는 건 어렵다고 해도, 일단 우리끼리 터 놓은 평화의 물꼬를 굳이 막을 이유는 없잖습니까. 일단 할 수 있는 일들에 촛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차제에 이 평화의 무드를 막을 수 있는 것들을 손봐야 합니다. 처음에 북에 빌미를 줬던 국방부 같은 곳부터 철저히 손봐야 합니다. 냉전시대의 사고로 고착돼 있는 것들을 우리 안에서부터 풀어내야 합니다. 혹시 모르지요. 미국이 이렇게 결정을 했어도, 이것이 또 다른 커다란 쇼의 전주곡일지 누가 알겠습니까? 트럼프의 성정상 더 큰 반전이 있을수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여기까지 기대한다는 것은 바보짓이겠지만, 우리는 늘 염원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의 정착, 그리고 평화적 공존이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니까요. 너무 실망하지 말고, 돌아가는 상황을 너무 초조하게 바라보지 말고, 결국 우리 민족의 문제라는 것, 우리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마음에 담고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봐야겠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