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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산새마을 여자들
게시물ID : lovestory_854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땡삐1942
추천 : 1
조회수 : 8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23 05:26:32

<단편소설>

                                            

                                       산새마을 여자들

                                                                                                                                                                                                                       윤 호 정


1

어느새 샛노란 개나리꽃이 앞산 순환도로의 양지바른 축대를 따라 흐드러지게 피었고 일찍 핀 목련화가 한두 잎 떨어지는 것을 보니 봄은 봄인가 보다.

멀리 팔공산 골짜기엔 아직도 잔설이 허옇게 남아있는 봄날 주인집 점순엄마가 아침부터 건너와 아이의 눈치를 한번 살펴보더니,

아침은 묵었나?”하면서 쌀 두어 되가 담긴 종이봉지를 내밀며 며칠째 똑같은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정수엄마생각 좀 해 봤나생각할거는 뭐 있노당장 아침거리도 없으면서..... 즈그 아부지가 나올 때까지 우야든지(어떻게 하든지)묵고 살고 학교에도 보내야 될 꺼 아이가?”

그런데 형님 그게.......”

또 그 말이가손목 좀 잽히고 젖티 좀 맨지키면 어떤데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이고그라고 안 할 말로 멋쟁이 손님 만나가 하룻밤 잤다 치자그까짓 거 죽 떠묵은 자린데 표 날 끼 뭐가 있는데이 세상에 공짜가 어딧노그런 일 말고 우리 같은 사람이 무슨 재주로 목돈을 쥐어볼 수 있겠노?”

그렇지만 나중에라도 정수 아부지가 알게 되면 나는 죽은 목숨입니더.”

지랄하고 자빠졌네내가 처음부터 이야기 안 하드나점순이 철들기 전에 딱 삼년만 하고 손 씻고 니캉내캉(너와 내가가부시끼(동업)해가 멀찍이 가서 국밥집이나 해보자고국립호텔(형무소)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이 우예(어떻게알끼고큰집(형무소)으로 갈 때 눈하고 귀하고는 떼가 앞산공원에 놔두고 갔는강나올라 카마 아직 사년이나 남았는데 그동안 뭐해가 묵고살고 정수 공부는 우짤긴데내일 아침까지 결정해라굶어죽든지 말든지 나도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그라고 나는 장사 준비하러 나가봐야 된다오늘 쌀은 그냥 준거지만 꿔간 돈은 빨리 갚아라.”하고 신경질적으로 내 뱉으며 훌쩍 나가버렸다.

점순엄마의 제의는 앞산공원을 찾는 상춘객이나 등산객들을 상대로 술장사를 같이 하자는 것이며 술장사래야 소주 몇 병에 마른안주와 모포 한 장을 배낭에 넣어 숨겨두고 적당한 상대를 물색하면 으슥한 숲속으로 데리고 가 원가대비 서너 배의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남정네들의 손장난 정도는 감수해야 될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점순엄마가 굳이 정수엄마를 끌어들이려는 것은 손님들이 하나같이 젊고 예쁜 여자를 찾는데다가 혼자보다는 둘이서 하는 것이 매상도 더 오르고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아 며칠을 두고 돈도 꿔주고 쌀도 몇 됫박 주면서 꾀어 보았으나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아 분통이 터질 노릇인데다가 이번 일요일에는 꼭 젊고 예쁜 여자를 데리고 가겠노라고 돈 잘 쓰는 단골손님과 약속까지 해놨는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점순엄마에게도 마지막 비장의 카드는 있었으니 정수네의 삭월세가 다 삭고도 월세가 석 달이나 밀려있었고 빌려준 돈까지 있으니 내쫓는다고 으름장을 한번 놓아보고 이마저 약효가 없으면 너무 똑똑해서 좀 버겁기는 하지만 저녁에는 술집에 나가고 낮에는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아랫방 미스 강을 당분간 데리고 다니기로 하고 잰걸음으로 동네입구에 새로 생긴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2

정수엄마 권금련이 점순엄마 손영애를 알게 된 것은 삼년 전 시청위생과의 고용직으로 분뇨수거 일을 하고 있던 남편 이종대가 어느 날 나이도 어린것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공무원의 앞니를 두 개나 부러뜨리는 바람에 전세방을 빼서 치료비와 합의금을 물어주고 갈 곳이 없어 대구에서도 대표적인 빈촌이며 앞산의 산새 지저귀는 소리가 집안에까지 들린다하여 산새마을이라고 불리는 이곳 점순네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부터이다.

이 집은 처음부터 셋방을 놓기 위해 지은 가건물로 앞산이 훤히 내다보이고 봄이면 아카시아 향기가 방안에 까지 스며들었으며 정수네 외에도 노가다(막노동꾼김 씨술집작부(술을 따르는 여자미스 강정체를 알 수 없는 허풍쟁이인 홀아비 정 씨 등이 먼저 들어와 살고 있었고 마을의 왼쪽은 켐프워커라는 거대한 미군부대가오른쪽은 대규모의 신흥 고급주택단지가 들어선 사이로 미로가 거미줄같이 얽힌 마치 육지속의 섬 같은 동네였다.

이 동네의 터줏대감인 영애는 집배원이었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자 그 보상금으로 산통계(추첨계)나 달러빚놀이(고리대금업)를 하면서 딸 점순이를 데리고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종대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자신의 조상인 여강 이 씨의 중시조할머니가 월성 손 씨라며 예닐곱 살 위의 글이 짧은 영애에게 누님누님 하면서 계약서나 차용증을 대신 써주기도 하고 금련 역시 형님이라고 깍듯이 존대를 하여 환심을 사게 되었다.

종대는 노가다 김 씨와 함께 경부고속도로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목수나 도배사의 보조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때마침 시작된 앞산공원조성을 위한 준비공사에 금련과 함께 노역에 참여하여 차비도 들이지 않고 거의 노는 날이 없이 일을 하게 되어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혁명정부의 산새마을 영세민들에 대한 특별배려로 이 동네 남자들은 주로 공원진입로와 등산로를 닦거나 축대를 쌓는 일을 하고 여자들은 잔디를 입히거나 공사장에서 사용했던 못을 뽑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곧게 펴는 일과 인부들의 중참을 만드는 일을 했으며 현장감독에게 잘만 보이면 여자들은 식당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일당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삼십대 초반의 과부인 영애는 물 만난 고기처럼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처럼 남자인부들과 어울러 시시덕거리거나 낯 뜨거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작업장을 휘젓고 다녔지만 금련은 얼굴을 붉히며 못 들은 척 하거나 외면하기가 일쑤였고 어쩌다 남자의 손이 엉덩이에 스치기만 해도 기겁을 하며 달아나 늘 웃음꺼리가 되기도 했다.

어느 날 못을 펴다가 손가락이 찔린 영애가 피를 빨면서,

아이고 내 팔자야낮에는 못에 찔리고 밤에는 살송곳에 찔리고 이래가 우예 살겠노?” 하며 무심코 내 뱉고는 당황스러워 한 적이 있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공사장 인부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박 감독에게 영애는 스스로 갖다 바치고 여자인부들의 반장이 되어 참 거리를 구입하면서 삥땅(가로채기)을 치거나 남은 국수나 빵 등을 집으로 가져오기도 했으며 박 감독이 다음 제물로 금련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 같은 소문이 같은 장소에서 일을 하는 남편의 귀에 안 들어갈리 없었으며 종대는 금련의 머리채를 잡고,

야 이년아 니가 먼저 꼬리를 쳤으니 서방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 놈이 넘겨다보지.”하고 막무가내로 다그쳤다.

아입니더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더내가 와 그런 벼락 맞을 짓을 합니꺼너무 억울합니더.”하면서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영애는 물론 온 집안사람들이 달려들어 종대를 떼어놓자,

박 감독 이놈의 새끼 내일은 니놈 제삿날이 될 줄 알아라.”하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영애가 씩씩거리고 있는 종대를 데리고 나가 술까지 받아주면서 달래고 말렸으나 말이 씨가 된다고 기어이 일은 터지고 말았다.

이튿날 현장사무소에서 내 마누라에게 한번만 더 치근대면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던지고는 축대를 쌓고 있는데 박 감독이 다가와 각목으로 내려치려는 순간 종대!’ 하는 동료들의 고함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며 발길로 냅다 차버렸더니 그만 축대아래 바위에 떨어져 뇌진탕으로 즉사하는 바람에 종대는 오년징역형을 받아 교도소에 수감 된지 겨우 일 년이 지났다.

금련은 지금까지 살얼음판 같은 삶을 이어 오다보니 모아둔 돈이 있을 리 없었고 취직을 해보겠다고 그 흔한 직물공장봉재공장 등의 문을 다 두드려 보았으나 처녀들도 넘쳐나는 판에 아이 딸린 유부녀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으며 먹고 살 길이 막연하여 눈앞이 캄캄하던 차에 한 달 수입이 5급 공무원(현재의 9)의 다섯 배나 되고 삼년만하면 한밑천 잡을 수 있다는 영애의 말에 처음에는 귀가 솔깃했으나 남편 종대가 누구 때문에 형무소에 갔는지에 생각이 이르자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고 말았다.

 

3

금련과 종대는 고향에서 국민(초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금련은 여학생들 중에서 제일 예쁘고 공부도 잘 했으며 종대역시 실제나이가 동급생들보다 두 살이나 더 많아 매사에 모범적이고 공부도 잘 해 육학년 때는 전교회장까지 했으나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중학교에 진학도 못하고 나이 열아홉 봄에 금련네 집 머슴이 되었다.

금련은 인물이 훤하고 항상 책을 가까이 하는 종대를 반기면서도 저 인물에 고등학교만 나왔더라면...., 머슴살이 하지 말고 면서기라도 하든지 아니면 대구에 나가서 기술이라도 배우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으며 나물반찬 하나양말 한 짝이라도 더 챙겨주긴 했지만 장래의 신랑감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종대는 어릴 적부터 마음속으로 금련을 좋아해왔고 면장 댁이 머슴자리를 제의해 왔을 때도 새경은 주는 대로 받겠다하고 국민학교밖에 안 나온 데다 출생신고마저 늦었으니 가게 될지 안 될지는 몰라도 기간을 군대에 갈 때까지로 넉넉하게 잡은 것은 다 금련을 염두에 두고 한 결정이었다.

금련이 본처에게서 늦게 얻은 권 면장의 고명딸이긴 하나 권 면장은 일찍부터 면소재지에서 작은 집 살림을 하고 있는 처지라 금련 모녀는 동백아가씨신세가 된지 오래였고 소실의 아들들이 공부를 잘하여 서울로 유학을 보내느라 본가를 돌볼 겨를이 없었으며 지금은 가세마저 기울어 농토래야 양쪽 집에 양식정도나 할 수 있는 열댓 마지기에 불과하고 저나 나나 다 같은 중졸학력인데 기울게 뭐가 있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울러 금련과 맺어지게 되면 공부를 많이 한 작은 집 자식들이 당연히 권 면장을 모시게 될 것이고 아들이 없는 금련 모녀와 논 열다섯 마지기는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된다는 상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며 거기다가 시험을 봐 군청서기라도 된다면 도시에 나가 상고나 공고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 비해 꿀릴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금련과 혼인을 하게 된다면 뭘 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런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공무원시험에만 합격하면 혼인발도 훨씬 더 잘 받을 것이고 아무리 못 올라가도 면장까지는 할 수 안 있겠나 싶어 틈틈이 공부를 하여 고등학교입학검정고시에는 이미 합격했고 또 한 번의 도전을 위해 주경야독을 하면서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초 여름날 모심기를 위해 놉(일꾼)을 맞추어놓고 면장 댁이 찬거리를 사기위해 오일장에 가자 집에는 금련과 종대만 남게 되었으며 종대가 못줄을 감을 대나무를 자르기 위해 낫을 들고 집 뒤에 있는 대나무 밭으로 들어가다가 엎어져 무릎을 다쳤는데 아까징끼(머큐로크롬액)를 가지고 나와 발라주고 있는 금련을 내려 다 보니 얇은 옥양목 적삼(홑저고리안으로 뽀얀 젖무덤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종대가 잠시 주위를 살피고는 금련을 와락 끌어안고 꼬장주(속바지)속으로 손을 불쑥 밀어 넣자 입으로는 오빠 안 돼안 돼’ 하면서도 몸은 이미 종대를 받아드리며 신음을 토해냈고 일을 치른 뒤 돌아앉아 홀짝홀짝 울고 있는 금련의 등 뒤에다 대고 올 가실(가을일)을 끝내고 새경만 받으면 작수성례(물만 떠놓은 가난한 결혼식)라도 올리겠다고 언약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종대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일 뿐 금련의 배가 불러오자 면장 딸이 머슴과 배가 맞았다고 영화배우 김지미와 최무룡의 간통사건 못지않게 좁은 시골바닥을 발칵 뒤집어 놓았고 권 면장의 불호령으로 두 사람은 쌀 한 톨몽당숟가락 하나도 없이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고향을 뜨게 되었다.

이후 장돌뱅이가 되어 짐자전거에 메리야스내의와 양말 선 낱(조금)을 싣고 이장 저장을 돌아다녀 보았으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으며 이를 보다 못한 면장 댁이 미우나 고우나 하나뿐인 딸자식이고 사위라고 대구시청 과장으로 있는 친정동생에게 부탁하여 청소원 자리를 마련해주고 도지(전세)방도 하나 얻어 주었으나 연거푸 사고를 치고 말았다.

 

4

금련의 나이 올해 스물셋열일곱에 일을 저지른 후 결혼식도 못 올리고 친정한번 가보지도 못했으나 종대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을 크게 후회해보지는 않았으며 알토란같은 첫아들도 얻었고 곧 공무원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온갖 고생을 감수해 왔으나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마당에 남은 것은 종대에 대한 원망뿐이었다.

장차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해 나가야 할지 절망의 끝자락에서 양단간에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어 비장한 각오로 친정어머니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도와 달라고 편지를 보냈더니 면장 댁은 치맛자락에 돌개(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와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는 사는 형편을 쭉 한번 둘러보더니 단호하게 매듭을 지었다.

젊으나 젊은 것이 오년씩이나 우예 기다린단 말이고그 기 사람 사는 기가어차피 혼인신고도 안했고 살아봐야 희망도 없으니 정수는 시집에 갖다 맡기고 외삼촌 집에 가 있으면 참한 후취(후처)자리라도 한번 알아 보꾸마.”

참 별소리 다 하네엄마는 평생을 기다리면서도 살아왔잖아저 토끼새끼 같은걸 두고 무슨 팔자를 고친다는 말이고애 듣는데 다시는 그런 소리 입 밖에 내지마라나이는 어려도 말귀 다 알아듣고 시근이 멀쩡하다그라고 엄마 죽고 나면 작은집 오빠가 제사 지내줄 것 같으나제삿밥 얻어 묵고 싶거든 우리 이 서방 너무 타박하지(나무라지)마라.”

하이고그깟 놈도 서방이라고 편드나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인물이 모자라나집안이 모자라나지눈까리 지가 찔러놓고 한번만 더 봐달라는 소리가 어데서 나오노?”

아부지가 그 난리만 안 피우고 우리 혼례만 올려줬더라면 이 서방이 군청서기도 하고 농사도 지으면서 엄마모시고 등 뜨시고 배부르게 잘 살았을 거 아이가아부지한테 물어봐라나도 공부 잘했는데 와 작은집 자식들만 서울 대학 보내고 나는 문디같은 시골중학밖에 안 보냈는지그라고 공부 안 시킨 대신에 논 열 마지기만 내 앞으로 해 돌라 케라.”

이 년의 가시나가 인자 눈까리가 뒤집어졌구나논 열 마지기가 누구 집 강아지 이름인줄 아나느그 아부지가 지금 암만(아무리이 빠진 호랑이라도 니년이 이겨낼 성 싶으나()도 없는 소리 하지도 마라사람이 죽을라 카면 삼 년 전부터 변 한다 카더니 지난 설에는 와가지고 금련이는 우예 사노?’ 카면서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하더라그라고 평생처음으로 우리 모녀에게 큰 죄를 지었다 카며 미안하다 카더라.”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하마 뭐하는데평생을 작은엄마한테 빠져가 우리는 거들떠보지도 안 해놓고엄마는 분하지도 안 하나그라고 내가 아부지 딸이 맞기는 맞나작은집 자식들 치다꺼리 하느라고 살림 다 떨어 묵고 난 뒤에 사 날 낳아가 공부도 안 시키고......”

이 가시나가 실성을 했나헛소리는 와 하노니가 느그 아부지 딸이 아니면 내가 놉이라도 해가 낳았다 말이가그라고 가시나가 중학만 했으면 됐지 공부 더해가 뭐할라 카노?”

내만 대학 못 간기 하도 원통하고 아부지가 우리한테 너무 야속해서 해본소리다.”

여러 소리 하지 말고 지금 내하고 같이 정수 데리고 느그 아부지 한데 한번 가보자이실직고하고 살려 달라 카던지 죽여 달라 카던지 무슨 말이라도 해봐야 될 꺼 아이가.”

나는 안 간다아부지는 물론 그 여시(여우)같은 작은엄마 꼬라지도 보기 싫고성공하기 전에는 고향땅에 발 안 들여 놓는다온 동내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내가 맨발로 쫓겨나던 날 생각 안나나나는 평생 그날을 잊지 못한다배는 불러가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머리는 산발을 하고 얼굴은 눈물범벅이 돼가 시부모님께 큰절을 올렸으니 그 어른들이 얼마나 가슴에 한이 맺혔겠노면장이 뭐 그리 대단한 벼슬이라고군수라도 했으마 여러 사람 안 잡았겠나그때 일만 생각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무서울 것도 없고 못할 짓도 없다.”

금련의 얼굴엔 비장감이 감돌면서 입술이 바르르 떨렸고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금련을 감싸주지 못한 면장 댁은 자책감으로 천정이 꺼질 듯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다 내가 죄가 많은 탓이지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관세음보살.”

걱정할거 없다나도 내일부터 장사를 해볼라 칸다설마 산입에 거미줄 치겠나.”

자신의 변신에 금련 스스로도 섬뜩함을 느낄 지경이었다.

무슨 장사를 할라 카는데?”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해야지지금 찬밥 뜨신밥 가리게 됐나.”

니 인생 니가 알아서 살아라늙은 에미가 무슨 힘이 있겠노.”

 

5

면장 댁이 앉았던 자리에는 꼬깃꼬깃 접어 손수건에 싼 주먹만 한 지전뭉치 하나가 놓여있었고 이를 본 금련이 대성통곡을 하자 마침 장을 봐 오던 집주인 영애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다가와 앉으며,

와이카노(왜 이러나), 친정모친이 온 것 같던데....?” 하고 물었다.

형님나도 장사 좀 끼워 주이소.”

자네가 갑자기 장사를 할라카이 내가 전봇대에 받힌 것 같다와 무슨 일이 있었노?”

별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친정에 기댈 형편이 안 되니 장사라도 해야 안 되겠습니꺼.”

아이고 오야생각 잘했다자네 정도 인물이면 우리 구루뿌(그룹)가 산새들 중에서는 최고지 싶으다미스 강도 한 인물 하지나도 나이가 들어 그렇지 빠지는 인물은 아니잖아.”

형님산새가 무슨 말입니꺼?”

앞산공원에 숨어서 술장사를 하는 여자들을 산새라 안 카나대부분이 우리 동네 여자들이라 동네이름도 산새마을 아이가원래 이름은 그런 뜻이 아닌데.”

공원에서 술장사하는 이 동네 여자들이 그렇게 많습니꺼?”

하모(그럼), 고산골큰골안지랑골까지 합치면 서른 명은 되지 싶으다모두 옛날부터 다 내 돈 쓰고 내 밑에서 놀던 년들인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이만한 벌이가 또 어딧겠노.”

영애가 산새들 중에서는 우두머리 격이라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고 남들이 다 하는 일을 나라고 왜 못 하겠는가 싶어 한 삼년만 눈 꼭 감고 논 열 마지기 값만 벌어서 종대를 기다렸다가 보란 듯이 귀향하리라는 상상에서 깨어나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형님감시원에게 붙잡히면 어떻게 됩니꺼?”

기껏해야 몇 푼어치 되지도 않는 술만 빼앗기면 그만이고 내가 매월 산새들 한데서 얼마씩을 거두어 세금을 바치니까 우리 동네 여자들은 봐도 못 본 척 한다.”

같이 장사를 하면 저한테는 얼마나 줄랍니꺼?”

술하고 안주 값은 제하고 내가 사미스 강이 삼자네가 삼하면 되겠나?”

저는 좋습니다만 미스 강이 우예 생각할지?”

신경 쓸 거 없다고 빌어 처먹을 년이 자기 손님이 더 많다고 오대오로 나누자 카지만 나도 사람 볼 줄 아는데 앞으로 미스 강 보다 자네 손님이 더 많을끼다.”

영애가 급히 머리를 굴려보니 우선 콧대 높은 미스 강을 견제할 수 있어서 좋고 발품만 좀 팔면 술과 안주를 구입하면서 일할정도는 두 사람 몰래 챙길 자신이 있었으며 이 정도의 맴버라면 앞산공원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 강아 이방으로 좀 건너 온나 보자.”

잠 좀 잘라 카는데 와이래 난리고?”

야 이 가시나야 지금 잠이 문제가드디어 정수엄마가 우리사업에 합류하기로 했다.”

하이고들깨 참깨 노는데 아주까리라고 못 놀겠나 이 말이가?”

가시나 이거 말버르장머리 좀 봐라사람 무안하그로.”

무안할거 없심더어차피 버릴 몸인데 부끄러울 것도 겁날 것도 없심더.”

하이고 무서버라말 한번 잘못했다가 큰 코 다치겠네.”

언니도 한솥밥 먹을 사람 앞에 두고 그런 말 하는 거 아이다누가 참깨고 누가 아주까리인지는 두고 보면 알끼다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날 아씨동생 뿔시 듯이(아래동생 나무라듯)뿔시면 그때는 나도 가만 안 있을끼다명심하거라.”

하이고오야 명심하꾸마더러버 죽겠네.”

지랄들 하고 있네이래가 앞으로 장사 해묵겠나우리가 동네 산새들을 꽉 잡고 다른 잡새들은 못 들어오게 할라카마 우리 서이가(셋이먼저 당고(단합)를 해야 될 거 아이가안 그러나?” 하면서도 영애는 머리가 띵하여 동서남북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금련을 그저 얼굴이나 반반한 촌뜨기인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미스 강이 꼬리를 내리는 것을 보니 이거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것은 아닌지잘못하다가는 코만 다치는 정도가 아니고 개망신을 당할 것 같은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늘은 새 식구도 들어왔으니 단합대회 한번하자내가 점심을 한턱 내께어디가 좋겠노순환도로에 있는 닭요리 집으로 갈까 아니면 중국집으로 갈까?”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더.”

강 양 니는?”

나갈라 카마 또 뭐 좀 찍어 발라야 되잖아마 중국집에 양장피나 하나 시켜 묵자열 받는데 고량주도 한 병 시키고이거 언니가 내는 거 틀림없제?”

이 년은 중국 놈 옆집에 살다왔나와 그래 의심이 많노?”

중국 놈 하고 첩살림하다가 왔다 와우짤래?”

이 염병(장티푸스할 년 말하는 것 좀 보소.”

 

6

며칠간 영애와 미스 강이 장사하는 것을 눈여겨보니 마음을 먹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지 장사는 별게 아니었고 기왕 하는 거 남들보다는 좀 더 세련되고 한 차원 높게 하고 싶었다.

오늘은 금련이 정식으로 첫 출조(고기잡이)를 하는 날이다.

송사리를 낚을지 월척을 낚을지는 몰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신발부터 모자까지 완벽한 등산객차림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집을 나서니 영애가 기절초풍을 하며,

니 복장이 그게 뭐고당장 원피스나 스커트로 갈아입어라우리가 지금 산에 놀러 가는 줄 아나?” 했고 미스 강도,

하이고인물 났네.” 하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형님 걱정 마세요이런 등산복이라야 감시원들의 눈도 피하고 손님들의 손장난도 막을 수 있으며 다른 산새들과 차별화도 할 수 있잖아요.”

영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일 년의 경력을 가진 자기보다 오히려 한수 더 위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며 희한한 옷차림에 갑자기 서울말 흉내를 내는 금련이 장차 어떤 일을 저지를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금련은 배낭을 멘 영애와 미쓰 강이야 따라오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앞산정상을 향해 앞장을 서 성큼 성큼 걷기 시작했다.

칠 부 능선에 있는 만수정에는 약수터가 여러 개 있고 군데군데 쉼터도 넓게 조성되어 있어 앞산공원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꼭 들리는 곳으로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며 여기저기서 가져온 음식으로 술판이 벌어지고 있어 접근하기가 용이했다.

마침 통닭구이에 맥주를 마시고 있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을 발견하고,

실례지만 물 가져온 것 있으면 한잔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하고 엷은 미소를 띠우며 접근하자 의아스러운 눈빛들이 집중되더니,

물은 없고 맥주라도 한잔 하시겠소?”라는 대답이 돌아와 성공임을 직감하고는 더욱 상냥하고 예의바르게,

주신다면 감사히 먹겠습니다.”하고 살포시 다가앉았다.

햐 요것바라당신 혹시 산새 아니야?”

저는 산새가 아니고 집새라고 합니다.”

집새는 또 뭐야?”

집에서 할 일이 없어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 여자가 집새지요.”

허허맹랑하네술집아가씨는 아닌 것 같고......”

직장에 다니다가 지금은 잠시 쉬고 있어요.”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어디 가서 이차로 한잔 더합시다.”

그러시다면 요 아래 산새마을 앞에 예쁜 아가씨들이 있고 분위기가 좋은 심야토론이라는 비어홀이 있는데 그리로 가시겠어요?”

이렇게 하여 첫날에는 심 마담과의 약속대로 매상액의 이활인 사천 원을 받았고 손님들로부터는 택시비조로 이천 원을 받아 영애와 미쓰 강에게 각각 천 원씩을 나누어주었다.

형님오늘 같은 경우는 다 내 몫이지만 개시기념으로 나누어 드린 거니까 그리 알고 산에서 같이 판 술값만 분빠이(분배)하고 개인플레이를 해서 번 것은 각자의 몫으로 하는데 이의 없지요?”하고 다그쳐 물었으나 두 사람은 똥 밟은 인상이 되어 묵묵부답이었다.

 

7

금련에게는 이 세상에서 돈 버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었다.

화류계사랑이란 돈 놓고 돈 먹기란 것을 심 마담에게 배웠으나 이미 청출어람이청어람(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남)이 되었고 산새들을 통틀어 세컨 투 넌(둘 째 가라면 서러운)의 경지에 이르러 무거운 소주병을 지고 감시원에게 쫓길 일도 없이 고급손님들은 심야토론으로일반손님들은 니나노집(싸구려 술집)으로 유인해오면 돈은 절로 굴러 들어왔다.

또 고향사람들을 만날까봐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으며 이름도 유명여배우의 이름을 따 윤정희로 바꾸고 자린고비가 울고 갈 정도로 억척같이 돈을 모아 빚에 허덕이는 심 마담으로부터 고급 날밤집(밤을 새며 장사하는 술집)인 심야토론을 헐값에 인수하여 앞산선글라스’ 또는 윤정희라고 하면 앞산텍사스촌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산새생활 삼 년차의 금련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말투가 투박한 대구사투리에서 거의 완벽한 서울말로 바뀌었고 영어와 일어까지 섞어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면 서울에서 대학을 중퇴했다는 소문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고 고객들은 금련을 윤사장이라고 불렀으며 옆방 홀아비 정씨를 내보내고 방 두 칸을 미닫이로 연결하여 온갖 가구들을 사들이고 거금을 들여 백색전화(양도가능 전화)까지 개통했으며 화장은 점점 짙어지고 의상은 더욱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외적인 것 외에도 이미 돈맛과 사내 맛을 다 알아버린 금련의 의식과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으며 형기의 절반을 넘긴 남편 종대에게 점차 회의감이 커지고 있어 면회가본지도 오래되었고 향후 부부관계를 계속 이어갈 것인가에 대해 밤을 새워가며 고민해봤으나 자신이 없었으며 수많은 단골고객들을 유지관리 하느라 요즈음은 종대를 거의 잊고 있었다.

단골고객들 중에서도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딸 하나뿐인 삼십대 중반의 홍 상무와 자식이 없다는 오십대 초반의 오 사장은 특별관리 대상이며 두 사람의 공통점은 선대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아 쌀이 풀에서 여는지 나무에서 여는지도 모르는 선택된 사람들이었고 홍 상무는 정수의 존재까지 알고 있으면서도 결혼을 하자고 조르고 있으며 오 사장은 아들 하나만 낳아주면 시내 중심가에 근사한 다방을 하나 차려주겠다며 공을 들이고 있었다.

오늘은 오 사장 일행이 켐프워커 골프장에서 공을 친후 들리겠다는 연락이 와 이미 경영권을 인수한 심야토론에 다른 손님은 받지 말도록 지시를 해두었으며 고급승용차들이 들이닥치자 가오마담(얼굴마담)으로 격하된 심 마담이 사장들을 룸으로 모시랴 운전수들은 건너 집 식당에서 저녁을 먹이랴 아랫도리에서 가죽피리소리가 날 때쯤 뒤늦게 오드리 햅번(미국 여배우차림을 한 윤정희가 나타나자 손님들 모두가 손뼉을 치며 환호를 했다.

군사문화유산인 폭탄주가 몇 순배 돌자 우리가 남이가’, ‘곤드레 만드레라는 건배사를 유행시키고 돈 걸고 술 걸고 입 걸기로 유명한 박삼걸 사장이 또 육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대구로 와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고 있는 어떤 촌놈이 비가 와서 일을 못하고 여관방을 얻어 자장면내기 나이롱뻥(화투의 일종)을 치면서 최신식 섹스비데오를 본 뒤 저녁에 마누라를 보고 오늘은 우리도 신식말놀이를 해보자면서 발가벗겨놓고 암말처럼 흥흥거리며 네발로 걷게 하고 자기도 알몸으로 수말이 되어 뒤에서 덮치려다 너무 흥분하여 그만 자는척하고 누어있던 국민학교 일 학년짜리 아들놈의 얼굴에다 싸버리자 앗 뜨거차거에이 시팔구식도 괜찮던데 할 줄도 모르면서 신식으로 한다고 남의 얼굴에다 싸대고 지랄이고제발 사람 잠 좀 자자’ 하고는 이튿날 아침에 밥상을 한번 살펴보더니 시팔밤새도록 잔치해놓고 술도 한잔 없노?’” 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모두들 눈물을 질금질금 짜며 포복절도를 했으나 금련만은 꼭 남편 종대의 이야기를 본 듯이 전하는 것 같아 씁쓸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날 밤에 금련은 인근의 러브호텔에서 심야토론의 인수 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고 오늘도 양주파티로 큰 매상을 올려준 오 사장의 품에 안겨 질펀하게 신식말놀이를 했다.

 

8

겨울이 오면 앞산공원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산새들은 철새처럼 금호강변의 동촌유원지로 옮겨가 남자들의 계모임이나 망년회 등에서 흥을 돋우어 주고 약간의 화대를 받거나 남산동의 니나노집에서 작부 노릇을 하며 노랑돈 몇 푼에 몸을 굴리기도 했다.

그러나 금련은 이들과는 달리 심야토론의 아가씨들 중 스무 살 안팎의 어린 애들만을 엄선하여 합숙교육을 시킨 뒤 확보된 고객들을 상대로 콜걸장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화대의 절반을 갈취했으나 아가씨들은 우수고객과 전화가 있고 숙식이 제공되며 밤낮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이곳에서 잘리게 될까봐 오히려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금련은 고객과 아가씨들이 배신하지 못하도록 양쪽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해놓고 외출화대는 반드시 자신에게 선불로 입금토록하고 아가씨들에게도 실명의 통장으로 지급한 다음 비밀장부를 만들어 놓았으며 남편 종대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미국유학을 떠난 약혼자로부터 버림받은 미혼모 행세를 하며 일곱 빛깔 무지개꿈을 꾸면서 상류사회로 진입하기위해 운전학원과 골프연습장을 드나들고 있었다.

재산규모로나 평소의 씀씀이로 봐서는 철강회사 오 사장이 직물회사 홍 상무보다 한 수 위였으나 홍 상무는 후취이긴 하나 나이가 젊고 정실인 반면 오 사장은 나이가 많은데다 첩실이라는 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으며 정수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으나 조만간 양단간에 결론을 내려 뚜쟁이 짓도 청산하고 산새마을을 떠나기로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언니야미스 강 데리고 내방으로 좀 와 봐라.”

이미 여왕 노릇을 하고 있는 이 동네에서 영애에게 형님이라는 존칭과 존댓말을 떼어버린 지도 오래되었고 미스 강에게는 초장부터 언니라는 호칭을 지워버렸다.

무슨 일이고?”

겨울이라 요즈음 많이 힘들제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이제 모든 걸 정리하고 동성로에서 라이브 음악다방을 해보려고 하는데 내 단골손님 명단을 넘겨줄 테니 얼마 줄래?”

알부자면서 돈독이 올라도 단단히 올랐구나.” 하고 영애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였다.

하이고못 쓰게 된 종이쪼가리도 돈을 받고 넘겨주나주마 깨끗하게 그냥주고 가지.”

너는 주전자운전수(술집여자)라 카는 기 권리금이라는 말도 못 들어 봤나조갑지만 차고 있다고 장사가 저절로 되는 줄 아나여기에 쏟아 부은 옷값과 화장품값만 해도 이집 한 채 값은 되지 싶으다유식한 것들은 이걸 영업권이니 무형재산이니 하지.”

얼마면 되는데?”

요것만 있으면 평생 먹고살 것을 벌 수 있으니 기와집 한 채 값은 받아야 안 되겠나?”

그만한 돈 있으면 은행 차리겠다.”

오냐 알았다선수는 선수끼리 이야기를 해야 통하지, ‘심야토론’ 심 마담한테 술집하고 명단하고 같이 넘길 테니 너는 나가서 볼일 봐라.”

이때 금련의 집을 알고 있는 유일한 손님인 홍 상무로부터 아홉시 경에 혼자 집으로 갈 테니 조니워카 블루 한 병을 준비해 놓으라는 전화가 왔고 혼자 오겠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금련은 서둘러 목욕탕과 미장원을 다녀와서 술상을 보기 시작했다.

 

9

저녁 일곱 시에 목공연장가방 하나를 메고 대구교도소 문을 나선 종대는 안지랑시장에 들려 금련의 알몸을 상상하며 빨간 내복 한 벌을 산 후 동네구멍가게에서 종합선물세트를 사들고 몰라보게 자랐을 아들 정수의 모습을 그리며 옛집으로 발길을 옮기다가 아직 초저녁이라 이웃들을 만나게 될까봐 퇴근길이라는 구이 집으로 들어가 양지머리에 소주 한 병을 주문하여 거푸 석 잔을 들이키고 나니 머리가 핑 돌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종대는 수형기간동안 많은 생각을 했고 출소후의 새로운 삶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병역미필에 살인전과까지 겹쳐 공무원이 되겠다는 오랜 꿈을 접고 대한민국 최고의 목공예장인과 인간문화재가 되기 위해서는 늦었지만 야간대학이라도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학입학검정고시에 합격했으며 전국 수형자들의 공예품대전에 화초장(채색옷장)을 출품하여 대상인 법무부장관상을 받음으로써 남은형기의 절반을 감형 받았다.

교도소 내에서도 최고의 모범수로 선발되어 국제기능올림픽예선경기에도 참가했으며 한일국교정상화에 따른 대일청구권자금이 들어오고 경제개발오개년계획이 계속 이어지면 공장사무실주택 등의 건축 붐이 크게 일어 목수나 목공기술자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될 것이라는 지도교사의 권유에 따라 불철주야 기술연마에 매진해 왔다.

뒤늦게나마 금련과 정식으로 결혼식도 올리고 아들 정수만은 형무소에서 절실히 느낀 대로 반드시 판검사로 키우겠다고 다짐을 하며 술집을 나와 보니 어둠에 쌓인 산새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으나 마을과 앞산을 가로지르는 복개천변에는 웬 놈의 술집이 그렇게 많이 생겨나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지, ‘월매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을 뒤로하고 어깨가 부딪힐 듯한 좁은 골목길을 돌아 집 앞에 이르니 대문이 열려있었다.

온 동네가 다가구주택에다 훔쳐갈 만한 물건도 없는 삼류인생들뿐이니 굳이 대문을 잠글 이유도 없었으며 쪽마루 아래 댓돌(디딤돌)위에는 정수의 신발인 듯 운동화 한 켤래가 놓여있어 미닫이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겉옷을 입은 채 곤히 잠이 들어 있었고 금련이 보이지 않아 혹시 주인집에라도 갔나싶어 돌아서는데 바로 옆 홀아비 정씨의 방에서 금련의 목소리인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뒤꼍으로 돌아가 코딱지만 한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정씨는 보이지 않고 웬 젊은 녀석이 양공주차림을 한 여자의 허리를 껴안고 양주를 마시고 있었으며 방안에는 번쩍거리는 자개농에 온갖 가전제품과 양품들이 가득했고 안타깝게도 여자는 남자의 어께에 머리가 파묻혀 뒤통수만 보일뿐 옆얼굴도 볼 수가 없었다.

빨리 식을 올려야지부모님의 승낙도 떨어졌어술집을 한다는 얘기는 안 했지만....”

정수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서 주저하고 있어요친정에는 아직 말도 못 붙여 봤구요.”

정수는 내가 대학까지 시킬 테니 걱정하지 말고 어디든지 맡기기만 하면 돼.”하고 사내가 치마 속을 더듬자 여자가 불을 끄려고 돌아앉는데 보니 이건 틀림없는 금련이었다.

전신의 피가 거꾸로 솟아오른 종대는 부엌으로 들어가 칼을 찾다가 또다시 형무소로 갈수는 없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 불 꺼진 연놈들의 방문 앞에 내복과 과자상자를 널어놓고 처마 밑에 놓인 석유곤로를 가져다 엎어놓은 뒤 정수를 들쳐 업고 나오면서 불을 댕겼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길을 건너뛸 때까지도 천지를 모르고 자고 있는 정수를 공중전화박스 안에 내려놓고 황급히 챙겨온 신발을 던져주고는 어둠속으로 사라져 고향 행 밤차를 탔다.

이튿날 전국의 조간신문에는 간밤에 대구 앞산아래 산새마을에 전기합선으로 보이는 큰 화재가 발생하여 다섯 명이 숨지고 삼십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백여 채의 판자촌이 전소되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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