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 21일, 노동계와 정부가 최저임금 문제를 두고 격돌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이날 고용노동소위원회를 열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를 논의하면서다.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되는 ‘임금’에 다달이 나오는 정기상여금과 현금으로 노동자들에게 주는 숙식비까지 포함시키는 쪽으로 국회가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최저임금이 깎이게 될 것이라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이날 환노위는 고용노동소위를 열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을 골자로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지금은 기본급과 직무수당 등 ‘매달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급여’만 최저임금에 포함돼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르자 기업들에서는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은 물론이고 숙박비·식비·교통비 같은 복리후생비까지 최저임금 산정 때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반면 노동계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를 살리려면 산입범위를 늘리지 말아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산입범위 개편을 놓고 최저임금위원회가 논의를 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지난 3월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현행 임금체계 특성상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공감대를 얻어왔다. 특히 사실상 기본급과 구분하기 어려운 ‘한 달 단위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을 최저임금에 넣자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문제는 복리후생비에 해당하는 숙식비다. 최저임금 수준에서 기본급이 정해지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식대가 산입범위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실질소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일례로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는 식대와 교통비가 최저임금에 포함되면 월평균 19만원을 덜 받을 것으로 추산한다. 최임위 노동자위원인 전수찬 마트노조 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하루 3000~4000원의 식대까지 집어넣어야 할 정도로 기업들 사정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보다 어려우냐”고 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늘어나면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폭도 따라서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원에 이르더라도 산입범위가 늘어나면 실제 체감 수준은 8000원선에 그칠 것으로 본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히자고 주장해온 어수봉 전 최임위원장조차 지난 3월 환노위 회의에서 “복리후생비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당 내에도 숙식비까지 넣어선 안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아 이날 소위에서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이달 국회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개정안이 소위를 통과하려면 전체 의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공동교섭단체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몫 간사가 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통과에 반대하고 있어, 공이 다시 최임위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국회에서 5월 마지막 본회의가 예정된 28일까지 개정안을 처리하려면 늦어도 23일까지 환노위가 산입범위를 확정해야 한다.
노동계 반발은 어느 때보다 거세다. 민주노총은 지난 20일부터 더불어민주당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캠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고, 21일에는 조합원 500명이 국회 정문 앞에서 시위를 했다. 이들은 “노사가 배제된 채 정당들끼리 정치적으로 흥정해선 안된다”면서 최임위로 결정권을 다시 넘기라고 요구했다. 국회 본관으로 들어가려던 조합원 20여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일방적으로 개악한다면 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왔던 사회적 대화의 진정성까지 모조리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면서 새로 구성될 사회적 대화기구에 불참할 뜻까지 내비쳤다. 한국노총도 23일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다. 경총에서도 국회가 무리하게 결정하는 대신 최임위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이날 국회에 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통상임금과 최저임금의 범위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저임금의 ‘임금’ 범위를 넓힌다면 각종 법정수당을 계산하는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도 이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일한 시간에 따라 받는 돈을 모두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는다면 통상임금에도 이를 모두 포함시키도록 확실히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