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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뜸하길래 올리는 치질썰 (feat. 군대.)
게시물ID : humordata_17527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안생기고싶냐
추천 : 14
조회수 : 1672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8/05/21 15:45:52
월급루팡 하느라 눈치보며 쓰는 중이므로 말투는 저 편한대로 쓰겠음.

발병.
04년도 2월 군번으로 논산훈련소에 입영해 이런저런 훈련을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야간행군을 앞둔 날 아침.
그 날은 마침 토요일이라 군대리아가 나온 날이었고
행군 준비땜에 바쁘다며 조교들이 하도 재촉을 해대는 통에 빵을 씹지도 못하고 꿀꺽 삼키다시피 했었다.
사회에서도 체하는 일이 자주 있었던 나는 곧 내가 체했다는 사실을 느꼈지만
훈련병이 어디 감히 소화가 안된다고 운이나 뗄 수 있을까.
그 상태로 그저 있다가 점심마저 억지로 먹고 행군준비를 하다보니 어느덧 해질녘이 되었더랬다.

연병장에 모여 (대대장이었나?) 행군 무사히 잘 갔다오라는 훈시를 들으며 속이 불편함을 느낀 나는
지금이라도 화장실을 좀 다녀올 수 없을까 싶었지만 
완전군장을 한 수백명의 동기와 조교, 교관들 앞에서 차마 말을 꺼낼 순 없었기에 
별 탈 없기를 기도하며 출발했더랬다.

어느 부대나 그렇지만 논산훈련소 또한 야간행군 코스는 산을 타게 되어있었는데
50분 걷고 10분 휴식. 휴식시간이 총 네 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이하 a, b, c, d 포인트로 구분하겠다.)
a 포인트까지는 별 탈이 없었다. 약간 속이 꾸륵거렸지만 그저 조금 불편했을 뿐이었고
길도 거의 평지나 다름없었기에 '이 정도면 별 일 없겠네.' 싶었다. 역시 인간은 최악의 상황을 자초하는 동물이다.

b 포인트까지 가는 동안 일이 잘못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길은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들고 경사는 점점 가팔라지는데 내 장은 점점 나를 압박해오고 있었다.
'별 일 없겠네' 가 '과연 괜찮을까?' 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래도 통증과 가라앉기가 반복되길래 앞으로 계속 이 패턴이 유지되길 기도하며  b포인트에서의 휴식도 그렇게 날렸다.

c 포인트로 가는 길은 고바위를 넘는 가장 힘든 코스였다. 아니, 그렇다더라.
남들은 화생방과 함께 가장 힘든 훈련 중 하나로 꼽는 야간행군이었지만
나는 힘들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로지 내 정신은 쿡쿡 찌르는 듯한 아랫배의 아픔을 누르고 X꼬를 틀어막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었기에
걷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다음 쉬는 타이밍때 꼭 해결하리라 다짐했지만
휴지 없음, 쪽팔림,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는 자만심에 나는 배변골든타임을 그렇게 날려버렸다.

d 포인트로 가는 길은 기억조차 없다.
고지대를 지나 내리막길이라는 것 외에는.
내 신경은 온통 아랫배의 폭풍과의 사투에 쏠려있었고
똥을 싸기 위해 행군대열에서 이탈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진지한 고민을 했다.
까만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더 이상은 못참겠다 싶어 소대장님을 부르려는 차에
d 포인트에 도달. 10분간 휴식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당장 그 자리에 엉덩이를 까고 앉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부여잡으며 소대장에게 나의 상태를 알렸고
소대장은 나와 상태가 같았던 또 한 명의 훈련병을 1+1으로 묶어 조교에게 인계하며
산기슭 인근 농가 밭 근처에서 일을 보고 오게 했다.

조교가 지정해준 자리에 바지를 내리고 앉자마자
내 X꼬는 생애 두 번째로 물똥을 쐈다.("쌌다"를 잘못 쓴 게 아님)
정말로 "푸확!!"하고 터져나오듯이 쐈는데
내 인생 두 번째로 통쾌하고 시원한 배변이었다.
(참고로 첫번째는 입대 후 5일동안 변을 못보다 봤을 때였다.)
정말 내장이 다 딸려나오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볼일을 본 후
너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날아갈 듯 가벼운 몸으로 훈련소로 복귀했는데
정말로 딸려나온 것이 있다는 건 다음날에야 느낄 수 있었다.

이튿날 그 곳에 뭔가 콩알같은 이물감을 느낀 나는 의무대를 가게 되었다.
군의관은 내 증상을 듣더니 으슥한 골방같은 곳으로 나를 인도했다.
군의관이 내 그곳을 막 휘젓지는 않으려나 하는 내심 기대어린 걱정을 했지만
군의관은 눈으로만 나의 부끄러운 곳을 잠시 살피더니 나를 국군논산병원으로 보내버렸다.
그 날은 훈련소 퇴소 하루 전날이었다.



수술.
무릎을 팔로 감싸안고 천정을 보고 누운 자세로 X꼬를 보인 치욕적인 자세로 치핵이라는 진단을 받은 나는
수술을 해야 하니 입실(입원)을 하라는 군의관의 말에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수술은 그 날로부터 일주일 후로 잡혀 나는 그 때까지 일반외과 병실에 입실했는데 
병실은 병증으로는 봉와직염 반, 치질 반이었고
계급으로는 일반병(이병 이상) 반, 훈련병 반이었다.
병실의 각종 잡다한 일들(청소라든가)을 훈련병이 도맡아 하는 점을 감안해도
그 때가 내 군생활중 최고의 파라다이스였다.
하루 일과는 TV보기, PX가기, 탁구치기, 편지쓰기, 몰래 담배피기 등등...

시간은 흘러 수술 하루 전날.
금식을 하고 그 날 저녁 또 다른 종류의 치욕을 맛봐야 했는데
도저히 믿음이 안가는 의무병들에게 환부의 면도를 맡겨야 하는 것이었다.
상병이 이병 한 명을 대동하고 들어와서 나를 엎드리게 하고는 나의 그곳을 면도하는데
주름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둥, 봐라 그렇게 하니 피가 나지 않느냐는 둥...
내 또래의 시커먼 남자들에게 내 X꼬를 맡기는 것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다.

다음 날 마취 전임에도 불구하고 시트에 싸이고 침대에 실려 짐짝처럼 수술실로 옮겨진 나는
하반신 마취 후 엎드려 다리를 벌린 자세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군 병원에서 수술이라 함은 모조리 칼을 대는 것이었다.
사회처럼 레이저로 하면 빠르고, 통증도 덜하고, 회복도 빨랐겠지만
모든 시설이 낙후된 곳이 군대였고, 병원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수술은 아무 느낌도 없이 끝났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 다리를 만졌는데 남의 다리를 만지는 것 같은 느낌뿐.
그러나 저녁이 되고 마취가 풀린 후
그야말로 지옥의 아픔을 맛봐야 했는데
간호장교가 너무 아프면 놔주겠다고 한 진통제를 세 방이나 맞고서도
눈 한 번 붙이지 못한채 밤새 끙끙대다가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면 응당 가스와 소변이 나와야 하는데
가스는 진작에 나왔건만 소변이 안나오고 있었다.
분명 가득 차 있고 누고 싶은데 나오지 않는 답답함.
기다리다...기다리다...
결국 또 의무병에게 나의 소중이를 맡겨
뭔가가 나와야 할 그 곳으로 관을 꽂아 아랫배를 눌러 소변이 나오게 하는 기이한 경험을 한 후
난 몇 시간동안 내 또래의 시커먼 의무병에게 나의 앞뒤를 유린당했다는 자괴감에 빠져있어야 했다.

수술 후 첫 배변은 두 번 다시 겪고싶지 않은 지옥의 시간이었다.
그것은 마치 조각난 면도칼을 덩어리로 싸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를 꽉 물었음에도 "끄아아아아악!!"하는 소리가 절로 새어나왔고
볼일이 끝난 후에도 날아간 멘탈과 너덜너덜해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한참을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힘들어하는, 그리고 몇 번은 더 힘들어 할 나를 위해 이미 나보다 앞서 같은 고통을 맛본 상병 환자 한 명은
변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며 군대리아에 딸려 나오는 치즈를 
'그것'의 순산을 기원하는 토템마냥 '그것'모양으로 주물러 만들어 내게 먹이기도 했다.



퇴실(퇴원) 후.
수술 후 4주간 논산병원에서 꿀빨러 생활을 하며 회복하고 훈련소로 복귀한 나는
이미 야간행군까지 다 끝난 상태의 나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간부들에 의해
하루동안 훈련을 "참관"하고 그날 밤 한 달 후배들과 내무생활도 했지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결국 연대 의무대로 옮겨져
그 곳에서 며칠 머물러있다 퇴소하였다.

내가 논산병원 가기 전 이등병이었던 조교 한 명은
일병을 달아 빨간 조교모자를 쓰고 의무대를 왔다가 나를 발견했는데
나를 보고는 "이 새끼 한 달을 빨았네?!" 라며 놀라더라.

결국 후반기 교육도 후배들과, 교육 후 자대도 후임을 무려 네 명이나 대동하고 간(실제로는 동기처럼 지냈지만)
부대 사상 최고로 풀린 군번 소리를 들었기에
군생활만 놓고 보면 오히려 잘 풀린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의 후유증으로 X꼬에 땀샘이 개방되었는지
아직도 한 여름이면 "그 곳의 땀을 닦기 위해"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곤 한다.

역시 수술은 무조건 민간병원에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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