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까 올라온 백남기 선생님 관련한 게시글에 댓글쓰던 중, 문장이 길어져서 작성을 중단하고 따로 글을 씁니다.
'물대포에 맞아죽은'
이라는 표현 자체가 정제되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만, 저러한 서술방식은 사실 '물대포'를 적대시하면 능히 나올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표현부분 지탄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제 이야기.
저는 제 개인정보를 딱히 아쉬워하지 않기에 다소 긴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저는 백남기 선생님의 따님인 백도라지양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이제 10년 정도 신입생을 뽑지 아니한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의 후신인,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3기 졸업생입니다.
중앙대학교 학생회관의 외부에 분향소가 설치되었고, 저는 사흘 정도 망연한 기분으로 그 자리를 찾았습니다. 선배의 아버지이자, 뒤늦게 시작한 법학교육기관의 까마득한 선배였기에 더욱 와닿았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그러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한건, 이재명 역시 제 선배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결국 이재명은 백남기 선생님의 후배입니다.
여기서 질문.
이재명 전 성남시장님은, 중앙대학교 법과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이 운영하던 그 쓸쓸한 야외 분향소에 한번이라도 들르셨을까요? 글쎄요, 제가 당시 법학관의 토템 비슷한 존재라서 뵌 적이 없네요. 물론 서울대병원에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님과 함께 방문하셨다고는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진중한 '조문'과는 다르지만요.
원체 공사다망하신 분이기도 하기에, 이러한 비극 역시 지지율 이벤트로 소비하셨으리라 판단됩니다.
참고로 저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이재명이라는 캐릭터에 빠져들어, 깊게 그를 지지했었습니다(글을 다시금 새로 파면 당시 부끄러운 흔적들을 찾아 올려보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증거능력있는 증거'가 전혀 없더군요. 모라토리엄이니, 청년수당이니, 언론에 현출되는 이미지의 '기본행위' 자체가 불분명한겁니다. 그리고 그가 대선 경선에 참여했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이 사람은 고도의 악의로 자신을 포장해왔구나', 라고 말이지요.
문통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의 결은 같겠지만, 세부적인 차이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굉장히 여과없이 직언하고, 타인을 평범한 유기체로 느끼는, 실로 못나디 못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기에 저는 문통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일축하자면,
'범인과는 다른 궤적으로 살아온 한국 근현대사 최고의 법조인'
이라는 점이 저에게는 가장 사무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를 대통령으로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저는 너무나도 기쁩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지금의 저는 이재명이 싫습니다. 변호사는 자신이 함께했던 사건들이 그를 증명할 뿐, 간지러운 수사법의 대상이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단어로 자신을 '인권'변호사라고 칭하는 자가 어찌 이 시대를 통찰하는 법조인일 수 있을까요?
이미 장문인 바 말이 길어지는 건 싫습니다만,
저는 최근 사흘간 더욱 이재명이 싫어졌습니다. 저는 광주학생운동기념일인 11월 3일에 전남도청 앞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적어도 20년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비활성기체가 깔린 듯한 광주의 5월을 제멋대로의 '부흥회'로 악용한 자를 제가 어찌 용서할까요?
이재명씨, 더 이상은 대한민국의 성숙한 시민들을 마치 미연시의 공략대상처럼 농락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행여 당신이 경기도지사에 당선된다 해도, 정지조건부로 '변호사 라이선스 취득시' 그 시점부터 철저하게 맞서 싸워드리겠습니다.
(+) 찢베충들아, 여러사람 빡치게하면 외려 너희 보스한테 마이너스니까 부디 '누추한 오유 시게'에서 깝치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