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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문학 -1-
게시물ID : readers_316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ignuse
추천 : 3
조회수 : 33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5/17 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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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오래된 목재의 퀴퀴한 냄새와 눅눅한 습기 속에서 고집스럽게 정복을 차려입은 시 공무원이 서류를 들춰보고 있었다. 윗단추를 풀고 싶은 욕구를 누르며 그저 찐득한 목 주변을 쓰다듬던 그가 서술했다.


"에.. 그러므로 상기한 내용에 따라 빅토르 아에고르 씨의 부지는 국가에 귀속됨을 알려드립..!"


"어느 누구도 내 저택을 빼앗을 수 없다!"


허공에서 노인의 호통이 메아리쳤다. 시 공무원은 이번에도 놀랐다. 그는 흠칫하며 서류를 떨어뜨렸지만, 차마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노인에게서 시선을 거두면 당장이라도 자신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시 공무원 뒤로 낡은 의자에 앉은 젊은 남성이 허공에 손을 저으며 그를 달랬다. 삐걱거리는 의자에 걸터앉은 그의 표정이 지쳐보였다.


"영감님, 그렇게 화만 내지 마시구요. 영감님은 이미 돌아가셨죠?"


"육체만 놓고 보면 그렇다."


"자식 있으세요?"


"..이제 없다."


"네, 그럼 종합해볼게요. 빅토르씨는 안타깝게도 이미 돌아가신 상태구요. 자식도 없으세요. 그럼 타사발터의 법률에 따라 빅토르씨 소유에 있는 부지와 저택은 모두 국가소유로 돌아가게 됩니다."


"난 죽지 않았다!"


허공에 날카로운 노인의 외침이 퍼졌다. 젊은 남성이 본인의 짧은 검정머리를 벅벅 긁었다. 골치아픈 듯한 표정으로 시 공무원을 슬쩍 봤지만, 겁에 질린 그가 이 상황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본인이 직접 말씀하셨잖습니까. 돌아가셨다면서요."


"육체에 관해서 그렇다고 했다. 나의 정신은 여전히 건재하다."


질문이 끊기니 흐리멍텅한 색의 노인이 잠잠해졌다. 허공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노인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포악질을 할 듯 했지만, 의자에 앉아있는 남성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시 공무원이 떨어뜨린 서류를 주웠다.


남성은 시 공무원에게 서류를 건내주며 물었다.


"솔랑케 씨,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들었네. 불안전한 리치는 자아에 대한 반복적인 질문 속에서 자신의 모순점을 찾게 되면 그걸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다더군."


"혹시 그거.. 브린달이 알려준건가요?"


남성의 질문에 솔랑케는 한숨섞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브린달은 이 도시의 유일한 주술사였다. 애꾸눈의 노파가 평소에 흘리고 다니는 헛소리를 생각하자면 그닥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마술사가 거의 없는 북부도시 앤나스에선 브린달이 이쪽 분야의 유일한 전문가였다.


솔랑케가 다시 젖은 손으로 서류를 폈다. 그리고 다시 과거 빅토르였던 허공의 노인을 향해 선언했다. 서른 세번째 시도였다.


"은창의 봄 여흐래날, 빅토르 아에고르씨의 부지에 대한 압류건에 관해.."


쿵-! 젊은 남성이 위태롭게 앉아있던 낡은 의자발이 기어코 부러졌다. 엉덩이의 통증보다 창피함이 먼저 찾아온 남성이 옷을 빠르게 툴툴 털어냈다.


"아, 미안합니다. 마저 하시죠"


"...넌 누구냐?"


솔랑케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젊은 남성이 놀란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허공에 선 빅토르가 서른세번째의 시도만에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전 데르드 노르덴스 사무소에서 나온 닐 게이먼이라고 합니다. 빅토르씨의 사유지 압류.. 가 아니라, 국가 귀속을 돕기위한 보조 역으로써 방문했습니다."


"난 죽지 않았다."


서른 세번째 같은 대답에 닐이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런 닐을 빅토르가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한마디를 던졌다.


"죽음이란.. 무엇이냐?"


닐의 표정에 다시 놀라움이 번졌다. 그가 먼저 질문을 던진 건 이번이 처음이였다. 닐은 곧장 답을 떠올려 봤다. 천상 칼잡이인 그의 머리 속엔 '심장을 찌르다' '목을 베다' '과다출혈을 일으키다' 같은 다소 일차원적인 생각만이 스쳐갔다.


닐은 도움이 필요했다. 자신보다 비교적 배운 솔랑케를 바라보았다. 그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무덤에 들어가는 것?"


맙소사, 그의 막내딸이 내놓을 듯한 답이였다. 솔랑케도 아차 싶었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하루하루 밥 벌어먹고 사는 소시민들에게 그의 질문은 지나치게 현학적이였다. 빅토르가 몹시도 한심하단 표정을 끝으로 다시 침묵했다.


그때 녹이 낀 빗장이 강제로 열리는 기분나쁜 소리가 저택을 울렸다. 낡은 저택정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이내 시끌벅적한 무리가 저택 지하로 내려왔다


"여어~ 닐 군, 잘 되어가고 있는가?"


"맙소사. 이안, 제발 좀 도와줘요. 반나절만에 온몸이 축축해진 기분이에요."


무리의 선두에 이안이라 불린 중년의 사내가 닐의 앓는 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그의 뒤로 노파와 성숙해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브린달과 키라도 같이 왔네. 위험하다 두고 오려해도 워낙 고집을 부려서 말이야."


"떽, 이런 일은 내가 더 전문가야."


도시 내 유일한 주술사인 브린달은 앞에서 부유하는 유령은 신경쓰지 않고 구석에 방치된 각종 기물들 속에서 의자만을 쏙 빼내어 앉았다. 


낡은 저택 안을 울리는 이들의 소란 속에서 홀로 외로이 떠있던 빅토르가 입을 뗐다.


"난 죽지 않았다."


키라가 펄쩍 뛰며 놀랐다. 그녀의 놀람은 서른세번의 압수선언 동안 매번 공포에 질렸던 솔랑케의 그것과는 달랐다.


"오! 말도 할 줄 아는거야?!"


키라가 신기한 듯 빅토르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죽음이란.. 무엇이냐?"


빅토르가 그들을 내려보며 아까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닐은 이제 그와의 대화가 너무 지겨웠다. 어떻게든 그를 그 곳이 어디든지간에 돌려보내고 싶었다.


닐이 빅토르 앞에 서서 자상, 절상, 열상, 좌상 등에 의한 다양한 사망 방식을 열거했다. 키라도 닐의 뒤에 서서 고독사, 안락사 등의 추가적인 사망 방식을 쏟아냈다.


"그만해도 되겠어, 아무래도 그런 일차원적인 사망요소들은 그가 원하는 답은 아닌가보네."


뒤에서 지켜보던 이안이 키라가 복상사까지 언급하자 급하게 둘을 제지시켰다.


"정말 구질구질한 노인네네요."


키라가 궁시렁대며 솔랑케를 바라봤다.


"솔랑케 씨, 의뢰를 바꾸실래요? 이를테면 저택의 철거같은 건 어떠세요?"


높은 습도와 반나절의 공포로 온통 땀에 절은 솔랑케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불행히도 저에게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저는 온전하게 이 저택을 압류하여 경매처분을 해야해요. 그게 제 일입니다."


콰아앙-! 갑작스레 저택 전체가 흔들리며 거대한 굉음을 냈다. 지축을 흔드는 듯한 울림에 다들 주저앉듯 바닥으로 몸을 숙였다. 굉음이 잦아들자 빅토르의 호통이 이어졌다.


"어느 누구도 내 저택을 빼앗을 수 없다!"


분노에 찬 그의 발 아래로 불투명한 촉수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거대한 문어같은 형상이 된 빅토르의 안광엔 살기가 가득했다. 촉수들이 잠시 수축하듯 동그랗게 말리더니, 이내 시위에 담긴 화살처럼 쏘아지듯 일행을 덥쳤다.





"으에엑, 기분나빠. 촉감이 이상해.."


키라는 자신을 옭아맨 촉수의 끈적한 촉감에 몸서리쳤다. 돼지가 온 몸을 혀로 핥으면 이런 느낌이 날까. 구토감을 참으며 키라는 브린달을 바라봤다. 브린달은 촉수에 당하지 않았다. 그녀 주위로 희미한 빛이 일렁거렸고, 촉수는 그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 했다.


"브린달, 리치화에 실패한 유령은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잖아."


키라가 죽을 상을 하며 브린달을 원망했다. 브린달은 소란스런 상황에서도 태평한 표정으로 이들을 딱하듯 쳐다봤다.


"어지간해선 안쓴다고 했지. 절대란 말은 하지 않았어. 정확히 말하면 힘의 사용법을 모른다고 해야 할까? 대개가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 어지간해선 이런일까진 벌어지진 않을터인데."


브린달이 지팡이로 키라를 가르켰다.


"아마 네년 때문일거다. 저 유령놈이 집착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이 저택인거 같은데, 그 앞에서 부수느니 뭐니 헛소리를 하니깐 이 사단이 난게지."


"뭐야, 이게 나 때문인거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키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촉수에 벗어나려 온 몸을 배배꼬며 꼼지락거렸지만, 그럴수록 촉수가 더 강하게 조여왔다. 키라는 거의 우는 얼굴이 됐다.


"해답을 풀어야지. 그가 왜 아직 어설픈 자아를 가지고 이 곳에 있는가를 알아내서 그 모순점을 지적해야 소멸된다."


"일단 브린달, 당신처럼 우리도 촉수에서 꺼내주면 안되나요?"


"그건 안돼, 이 늙은이가 가진 힘으론 고작 나 하나 보호하는게 전부다."


닐의 요청에 브린달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촉수에 묶인 채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안이 닐을 보며 물었다.


"빅토르 씨는 어떻게 해야 반응하는거지?"


"으.. 그냥 저택 소유권이나 본인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은 해줘요. 근데 하는 말이 대부분 도돌이표에요."


"그럼 그가 했던 질문은 죽음에 대한 물음이 전부인가?"


닐이 조금씩 기어올라와 목까지 옭아매는 촉수의 질감에 기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허공에 떠있는데도 개의치않는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잠시의 침묵 후 이안은 촉수들을 밀어내며 가까스로 빅토르와 눈을 마주쳤다.


"빅토르 씨, 당신은 사후에도 본인의 생존과 저택의 소유를 주장하고 계시는겁니까?"


"어느 누구도 내 저택을 빼앗을 수 없다!"


"그렇군요. 빅토르 씨, 그럼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빅토르가 당황한 듯 잠시 침묵했다. 솔랑케가 감탄했다. 그저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되는것을. 그는 무릎을 탁치고 싶었으나, 몸이 온통 묶인 처지라 그저 꼼지락거렸다.


허공에서 떠서 그저 멍한 표정만 짓고있던 빅토르가 기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으로 단어 하나하나를 천천히 읊었다.


"삶은.. 거울이다. '나'란 상대방이 비춰낸 일편적인 현상이다. 타인이 기억하고 비춘 결과물이 바로 나다. 죽음은 소거다. 기억의 소거다. 더이상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것이 죽음이다."


이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빅토르를 반박했다. 이제 그저 모순만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초에 부모를 잃은 고아는 아직 분명 살아있소 ."


"틀리다."


"홀로 빈 방에 남은 잊혀진 노인도 아직 분명히 살아있소."


"틀리다."


"그들은 모두 심정지가 오기 전까진 살아있는 상태요. 또한 불특정한 누군가의 구조도 기다릴 수 있는 상태요."


"그들은 죽은 것이다! 혹은 죽어가는 과정이다! 죽음의 상태란, 대번에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어찌 어른의 가르침에 꼬리를 잡는고!"


빅토르가 호통을 쳤다. 그들을 옭아맨 촉수들이 요동치며 빙글빙글 돌다가 급정지했다. 빅토르는 더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였다. 이안은 당황했다. 그는 멀미를 느끼는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브린달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브린달은 그들을 보며 혀를 찼다.


"생각해 보게나, 사람이란 대부분 나이가 찰수록 고집이나 신념같은 것이 마음 깊숙히 자리 잡고 강해지지. 그리고 저놈은 칠십해가 넘도록 표독스럽게 살다가 결국 고독사했다네."


노인네의 고집이란 여간해선 해볼 수 있는게 아니다. 그걸 굳이 꺽으려 달려들었으니.. 브린달의 설명에 이안이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일행은 모두 촉수에 묶여 허공을 넘실대는 통에 영 속이 불편했다. 닐은 시원하게 속을 게워내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으며 솔랑케를 바라봤다.


"저기 갑자기 생각나는게 있는데요. 그럼 빅토르 영감님에게 남은 친인척이 있습니까?"


솔랑케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불행히도 이제 없네. 십여년전에 부인을 먼저 보냈고, 그의 외아들은 수도에서 가정을 차리지 않고 지내다 반년 전에 모종의 이유로 타살당했네. 기록상으로 아에고르 가문은 빅토르 씨가 마지막이네."


"평소 이 곳에 거주하며 친하게 지내던 이웃들은요?"


"역시 없네. 수도에서 평생을 그림만 그리다 남은 여생을 보내러 이곳에 온 분이네. 이웃이라 할만한 이도 없고, 워낙 괴팍한 성격에다가 밖을 나오지 않으니.. 그가 여태 알고 지내던 사람은 이 저택 구입 문제와 절차때문에 잠시 교류하던 나뿐일세."


"..그렇군요."


닐은 입 주위로 달라 붙는 촉수들은 고개를 저으며 뿌리친 뒤 빅토르를 향해 소리쳤다.


"빅토르 영감님,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난 죽지 않았다!"


"네, 그러시죠. 영감님은 아직 살아계시죠. 헌데, 아드님이 여섯달 전에 돌아가셨답니다."


"...그렇다."


빅토르의 흐리멍텅한 몸이 일순 껌벅거렸다. 자식을 먼저 잃은 아비의 표정은 처절하게 슬퍼보였다. 닐은 피어나는 죄책감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다시 외쳤다.


"그리고 말입니다. 솔랑케씨 아시죠? 영감님의 친구분있잖습니까."


"난 죽지 않았다!"


빅토르의 정신이 온전치 않은지 여전히 딴소리를 했지만 닐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 말은 이제 충분히 들었구요. 그 분이 전해 달라내요."


"..."


"솔랑케 씨가 이제 그만 '절교' 하잡니다."


허공에 뜬 빅토르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택도 그를 따라 떨렸다. 오래된 저택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닐은 불안한 얼굴로 저택 주위를 둘러보다 결심한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저희도 영감님과 절교 하겠습니다."


펑-! 강렬한 폭음을 따라 저택의 먼지들이 폭발하듯 떠올랐다. 일행을 옳아매던 촉수들도 일순간에 사라졌다. 허공에 떠있던 이안이 갑작스럽게 추락했다.


"으엌, 허..허리가.."


이안이 고통스러운 듯 허리를 잡고 일어섰다. 천천히 지하 창고에 가득찼던 먼지가 가라앉았다. 어디에도 빅토르는 보이지 않았다.


"휴.. 끝났나보군. 닐, 자네의 사고는 제법 놀라웠네."


"으.. 그저 운이였어요. 이안이 힌트를 많이 내줘서 맞춘 것 뿐이라구요."


닐은 온 몸에 묻은 먼지를 대충 털어내곤 쓰러진 솔랑케와 키라를 일으켰다. 둘은 연신 콜록거리며 먼지를 털어내었다.


"진짜 사라진게 맞는거지?"


"아마도..요?"


솔랑케가 아직 믿기 힘든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창고는 빅토르의 습작들만이 여기저기 널려있을 뿐 어디에도 그의 영혼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상실을 확인한 솔랑케가 그제서야 닐에게 다가가 두 손을 잡았다.


"닐, 정말 고맙네, 자네들에게 문의하길 정말로 잘했구만. 사례금은 노르덴스씨에게 꼭 전달하겠네."


"아닙니다. 솔랑케씨도 하루 종일 정말 고생많으셨네요. 이제 청사로 돌아가시는겁니까?"


"그래야지, 어서 이 기쁜 소식을 보고해야지. 자네들은 어디로 가는가? 내 마차로 태워다 줌세."


"괜찮습니다, 솔랑케씨. 저희는 따로 들려야할 곳이 또 있습니다."


"세상에.. 또 업무를 보러 가는겐가?"


닐은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일은 아니고.. 마음이 아픈 친구가 있어서요. 그에게 가봐야 합니다."


닐의 말에 솔랑케가 등을 두들겨줬다. '그래, 위로 잘해주시게.' 같은 건성에 가까운 안부를 몇마디 던지고 솔랑케는 남은 일행들에게도 급하게 인사를 건냈다. 부리나캐 건물을 빠져나가는 그의 표정이 앓는 이 빠진 사람처럼 시원해보였다.


키라는 아직 온 몸을 끈적이며 휘감던 촉수의 감촉이 떨쳐지지 않는지 질색하는 표정으로로 온 몸으로 요란스럽게 털어댔다.


"그래서 그 영감은 뭐가 불만이길래 죽음까지 미룬거래?"


"아마 외로움이 아니였을까요? 죽어서도 모두에게 잊혀지는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같은.."


이안이 허리를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비참한 결말이야. 육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두번이나 죽음을 맞이하다니.."


"대체 어떤 인간이 빅토르씨에게 그런 위험한 스크롤을 넘긴걸까요?"


"거기까진 모르겠네만.. 어쨋든 우리도 이만 정리하고 돌아가지."


그들은 난장판이 된 지하창고에서 가지고온 짐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낡은 저택을 빠져나오자 그들을 맞이하는 공기가 상쾌했다. 이 저택은 모든게 옛 것 같았다.


닐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공기가 달았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닐은 분명히 달다 느꼈다. 한층 기분이 상쾌해진 이들이 저택을 등지고 걸었다.

출처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s/?novel_post_id=54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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