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현저동윤통(尹統)
윤 호 정
서대문형무소 뒤편 산중턱에 벌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현저아파트는 인왕산기슭의 무허가 판자촌을 헐고 집단이주 시킨 빈촌중의 빈촌이다.
전국에서 몰려든 일용근로자거나 영세자영업자, 시내의 식당이나 술집종업원들이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동병상련의 끈끈한 정이 오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하찮은 이해관계로 이웃끼리 욕설과 주먹이 난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럴 때 중키의 근육질 몸매에 언제나 양복을 쪽 빼입고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윤세중 통장이다.
그는 해박한 법률지식과 유창한 말솜씨로 이해당사자들을 화해시키거나 판사 못지않은 명쾌한 판결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피해보상을 명하기도 하며 주민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문제해결도 해주고 변호사 역할을 하기도 하여 이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인식되고 있었다.
윤 통장으로서도 이 동네가 유일한 소득원이요 밥줄이었다.
매월 돈 만원의 통장수당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렵고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해결해주면 대포 값이나 하라면서 몇 천 원씩 쥐여 주는 돈도 수월찮았으며 남들보다는 정보가 빨라 판자촌이 헐릴 때 친척들의 주소를 옮겨놓고 실제로 거주하는 세입자처럼 꾸며놓은 후 아파트입주권을 다섯 장이나 더 받아 이를 전매하여 목돈을 거머쥐기도 했다.
또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주민들을 상대로 급전을 빌려주고 고리를 받는 사채업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한 번도 원금을 떼인 적도 없이 고수익을 안겨주었으며 영세민촌에 지원되는 각종 공공사업이나 구호물품 등에서도 적지 않은 고물이 떨어졌다.
이렇게 하여 윤 통장은 이 동네의 알부자로, 또 이 지역출신 국회의원의 친척으로 호랑이 없는 산골에서는 토끼가 왕 노릇을 한다고 대통령과 맞먹는 호칭인 윤통으로 불리며 구청이나 동사무소, 파출소, 지구당사무실 등을 휘졌고 다녔다.
더욱이 맏딸의 결혼식 때 윤일중 국회의장이 주례를 서며 신부를 ‘남 주기 아까운 우리집안의 보배 같은 재원’으로 칭하자 동네사람들은 이름의 항렬자로 보아 윤통이 국회의장과 친형제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촌이나 육촌쯤은 되는 걸로 오인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윤통은 더욱 호가호위(狐假虎威)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어 왔던 동사무소나 파출소와 관련된 사소한 부탁대신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들어왔으며 성사후의 사례비도 대포 값과는 차원이 달랐고 고급술집에도 출입이 잦아졌다.
무악재를 넘어가는 대로에서 아파트로 올라가는 도로변에는 영세 상인들이 시유지를 무단 점유하여 무허가 점포들이 얽히고설켜 미로를 이루고 이름도 없는 시장거리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밤낮없이 고성방가와 폭행, 절도 등으로 무법천지를 이루고 있어도 행정력과 경찰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골칫거리로 팽개쳐져 있었다.
오래전부터 여기에 눈독을 들여온 윤통은 무릎을 치며 또 기지를 발휘했다.
(이 400여 상가들을 조직화하여 압력단체를 만들어 행정당국에 들이대면 반드시 큰 이권이 생길거야, 그까짓 아파트 동네의 통장이 문제가 아니지, 상인들로 부터는 회비를 걷고 행정당국으로 부터는 각종지원을 받고.......)
구청의 과장으로 있는 고향후배한데 갔다가 용건도 없이 동사무소와 파출소, 국회의원사무실에 들려 커피한잔씩 얻어먹고 잡담이나 나누는 일과를 마치고는 아파트의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오는데 웬 낯선 초로의 신사가 윤 통장이시냐고 인사를 건네 왔다.
“그렇습니다만.....”
“저는 305동 303호에 새로 이사 온 김희열이라고 합니다, 전입신고서에 도장도 받고 인사도 드릴 겸 해서 찾아뵈었으나 출타중이시라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가서 차라도 한잔하시지요.”
집안으로 들어가 다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경찰출신인 윤통은 사람을 보는 눈이 남달리 예리하고 처신에도 능했다.
김희열 씨는 옷차림이나 말투가 열세 평짜리 아파트에 살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자기처럼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겠지 하고 극존대를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는 교직에 있다가 일찍 퇴직한 후 이것저것 자영업을 하다가 지금은 다 정리하고 내외가 자식들이 대주는 생활비로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했다.
대낮부터 깔끔한 안주의 술상이 나왔다.
“억양으로 보아 통장님도 경상도출신인 것 같은데 고향이 어디십니까?”
“저는 경북 경산군 와촌면이 고향인데 선생님은 어디신지.....?”
“우리고향과 그리 멀지않은 곳이 군요, 저는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이 제 고향입니다.”
“우록 김 씨라면 임진왜란 때 조선에 투항한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후예가 아닙니까?”
“어찌 남의 족보까지 그리 훤하십니까, 역시 파평 윤 씨 양반은 다르시군요.”
“그런 게 아니라 제가 해방직후에 가창지서에서 몇 년간 근무한 적이 있어서 가창면사정은 조금 아는 편이지요.”
“그럼 그때 정대국민학교에 있는 나를 잡으러 온 그 윤 순경이 바로 윤 통장님......”
“아니 그러면 그때 좌익운동을 하던 교감선생이 바로 김 선생님.......”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얼싸안았다.
“이게 얼마만입니까, 30년 세월이 흘렀군요, 그간 6.25전쟁과 5.16혁명 등 격동기를 겪으면서도 언젠가 윤 순경을 평생에 한번은 만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앳된 모습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고요, 자세히 보니 옛날 얼굴 그대로네요.”
“교감선생님을 이렇게 다시 뵐 줄은 상상도 못해봤습니다, 이제 서로를 알게 되었으니 우선 말씀부터 낮추십시오.”
“원 천만의 말씀을, 내가 한참위이긴 하지만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그때 나는 수업을 하다가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윤 순경을 보고는 반대편 창문을 열고 산으로 달아나고 뒤따라온 당신이 내 등 뒤에다 대고 탕탕 두 방을 쐈지요,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에게 달아날 기회를 주기위해 교실을 들여다봤고 또 얼마든지 맞힐 수 있는 거리인데도 직접 쏘지 않고 공중으로 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요.”
“그때 선생님이 순순히 제 말을 들었더라면 일단 지서까지는 연행을 했겠지요, 그러나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달아나는 선생님의 뒤통수에다 대고 총을 쏠 용기가 없어서 돌아와 거짓보고를 했습니다, 내가 운동장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이미 산속으로 달아나버려 산을 향해 총을 쏘아 겁만 주고 왔노라고....”
“나는 어두워질 때까지 산속에 숨어 있으면서 이러다가 총을 맞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겁이 덜컥 났어요, 아무리 사상과 이념이 좋다한들 젊은 목숨과 맞바꿀 수는 없었지요, 나는 그길로 대구로 나가 당시 검사로 있던 내 사촌동생을 찾아가 전향을 하고는 좌익의 보복이 두려워 학교에도 사표를 낸 후 대구에서 출판사 등을 해봤지만 별재미를 못 봤으며 다행히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여 모두 제 몫을 하고 있는데다 큰 아들이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사촌동생인 내무부장관의 비서실장이 되어 여기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니 부탁할 일이 있으면 힘자라는 데까지는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씀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통장이나 하는 주제에 무슨 큰 부탁이 있겠습니까,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을 것이니 그때나 한번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 윤통이 아니었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보았다.
이미 국회의장을 통해 몇 건을 성사시켜 맛을 들인데다 내무장관까지 통하면 구청이나 경찰서 일도 좌지우지 할 수 있고 그토록 공을 들여왔던 현저동 동장자리도 의장의 언질을 받아놨겠다 이제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감선생님, 오늘같이 기쁜 날 우리 이럴게 아니라 요 아래 시장 통에 가면 우리고향사람이 하는 허름한 색시집이 있는데 제가 그리로 모시겠습니다, 비록 몰락한 양반이지만 반찬 없는 밥은 먹어도 여자 없이 술을 먹을 수야 있겠습니까?”
“역시 윤 통장은 풍류를 아시는 군요, 갑시다, 생명의 은인을 만났는데 그까짓 색시집이 대숩니까, 내 오늘 톡톡히 한잔 사리다.”
이미 초벌 술이 된 두 사람은 어께동무를 하고 월매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이리 오너라.” 하고 외쳤다.
“하이고 알라 아부지요, 우짜다가 대낮부터 이래 얼었능교?” 하며 월매가 반색을 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은사님을 모시고 왔으니 버선발로 나와 맞으렷다!”
‘예 이-’ 하며 기생환갑을 넘긴 년들이 몰려나와 부액을 하여 안방으로 안내했다.
“계산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이 집에서 제일 좋은 술과 안주를 대령 하렸다!”
“예 예,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통장님 요새 다른데 어디 재미 붙인데 있습니껴, 우리 집에는 와 그래 뜸 한교?”
“그동안 고향까마귀라고 자주 들락거렸는데 눈치가 빨라야 장사를 해 묵지, 내가 양반 터수에 내입으로 함도 칼 수도 없고 체면만 차리고 있는데 도통 눈치를 긁을 줄 알아야지.”
“하이고 그랬던교, 그라마 ‘야들아 요새 내가 중간다리가 근지러버서 못살겠다’ 카고 귀띔이라도 좀 해주시지, 온 저녁에 입맛대로 한번 잡숫고 가이소.”
“요 아래에 있는 금달래집이나 독립문 옆에 있는 달구벌집에서는 철철이 ‘아이고 오빠요, 물 좋은 봄 도다리 들어 왔심더, 봄 보지도 물이 올라가 상큼합니더, 다른 놈 입대기전에 오빠부터 먼저 맛보이소’ 카제 가을만 되면 ‘오빠요, 전어 잡수러 오이소, 가을보지도 살이 올라가 오동통한기 전어보다 더 꼬소합니더, 되도 안한 것들이 자꾸 껄떡거려 싸도 오빠드릴라고 곱게 간직하고 있임더’ 카는데 내가 이집에 올 여가가 어딨겠노?”
“하이고 말씀 듣고 보이 그렇네요, 이년들을 오늘저녁에 가죽방망이로 숨이 넘어가도록 매타작을 해주시면 내일은 내가 종로 나가서 눈치 약을 지어다 먹일 테니 노여움을 푸이소.”
이리하여 격의 없는 술판이 무르익어갔고 교감선생님은 윤통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맏아들에게 전화를 해 퇴근 후에 인사를 드리러 오라고 했다.
또 윤통의 순발력이 빛을 발했다.
동장과 파출소장을 불렀더니 공술 얻어먹는 재미로 왔다가 내무장관비서실장의 방문과 큰절을 받고는 아연실색(啞然失色)을 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날 밤 술값은 비서실장이 계산했고 두 사람은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어 바로 코앞에 있는 집에도 못 들어가고 술집 잠을 자게 되었으며 비서실장이 윤통에게 큰절을 올리고 술값을 계산하고 갔다는 뉴스는 그 이튿날 바로 서대문 경찰서장과 구청장의 귀에까지 들어갔으며 이후 교감선생님과 윤통은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농업학교(5년제중학과정) 3학년을 중퇴한 윤세중은 해방 후 국민(초등)학교 교사자격시험에 합격했으나 만 20세가 안 되었다고 발령이 나지 않아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세 살 위인 형의 이름으로 다시 순경시험을 보게 되었다.
시험이래야 대구 동인동의 경찰학교에서 수성못까지 마라톤을 시켜 800여 명 중 절반을 떨어뜨리고 본적과 현주소와 성명을 한자로 쓰게 하여 다시 수십 명을 더 떨 군후 간단한 면접을 통해 별 하자가 없으면 모두 합격을 시켰다.
윤세중은 워낙 필체가 좋고 면접시험도 딱 부러지게 대답을 잘하여 전체에서 3등으로 합격했으며 기본교육을 마친 뒤 형인 윤법중의 이름으로 남대구경찰서에 발령이 났다.
대구시내에서 근무하게 된 것 까지는 좋았으나 총각인 탓에 경비과에 배속되어 걸핏하면 트럭을 타고 좌익세력의 준동을 진압하러 나가야 했고 급기야는 모두가 가기 싫어하는 가창지서로 발령이 났으며 이 때 실제 나이는 겨우 만 열일곱 살에 불과했다.
가창면은 달성군이었으나 유명한 중석광산과 인접한 비슬산에 빨갱이들이 우글거려 지서만은 남대구서 관할이었으며 지서장도 경위였고 경찰병력도 다른 지서의 두 배인 10명이나 되었으며 지서는 높고 튼튼한 토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나무로 된 평행봉이 있었다.
이날도 밥집에서 가져다 준 도시락으로 혼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난데없이 지서 앞에 지프차 한 대가 멈춰서더니 무궁화 세 개를 단 총경과 권총을 찬 경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칼빈총을 겨누며 ‘손들어!’하고 큰소리로 위협을 했다.
두 사람은 흠칫 놀라 제자리에 서며,
“야 임마 총 치워, 서장님이야.” 하고 경위가 다급하게 말했다.
“서장님이 사전연락도 없이 오실 리가 없어.”
“이자식이 정말 사람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네, 야 임마 오늘은 일이 그렇게 됐어, 빨갱이가 경찰정복입고 지프차타고 다니는 것 본적 있어, 강 지서장은 어디 갔어?”
그제야 윤 순경은 총을 내리고 ‘멸공(滅共)!’ 하면서 경례를 올렸다.
지서 안으로 들어선 서장은 대뜸,
“이 시팔놈들은 모두 어디가고 너 혼자만 있어?” 했다.
“정대동장님의 어른이 회갑이라 모두 그 집에 점심 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너는 왜 급사가 건방지게 경찰정복을 입고 있어?”
“저는 급사가 아니고 순경 윤법중입니다.”
“그래..., 미안하게 됐네, 빨리 가서 그 시팔놈들을 데리고 와!”
윤 순경은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고 동장 집으로 가 지서장에게 사실대로 고했다.
모두 점심을 먹다말고 사색이 되어 달려오니 서장은 다짜고짜로 지서장의 촛대 뼈를 걷어차며 ‘모두 꿇어앉아!’ 하고 고함을 질렀다.
모두가 꿇어앉자,
“윤 순경과 지서장은 앞으로 나와 모자와 옷을 벗어!”
지서장이 엉거주춤하게 서있자.
“이 새끼 벗으라는데 뭣하고 있어!” 하면서 지휘봉으로 지서장의 어께죽지를 내리갈겼다.
둘 다 옷을 벗으니,
“바꿔 입어!” 했다
할 수없이 옷을 바꿔 입고 모자까지 바꿔 쓰니,
“오늘부터는 윤법중이가 지서장이다.”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그날 밤 강 지서장은 돈 보따리를 들고 서장 집을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용서를 구했으며 그 이튿날 윤 순경은 서장표창과 함께 ‘윤 지서장’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지서장과 차석은 일제시대 순사출신일 뿐 지서 내에서 중학교 물을 먹은 사람은 윤 순경뿐이었고 그는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틈틈이 영어와 법률공부를 하며 평행봉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밥 집 딸 순심이 와 설익은 풋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상을 내오는데 보니 순심이의 옥양목 적삼 속에 뽀얀 젖무덤이 탐스럽게 드러나 보여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데 오늘 낮에 안면이 있는 달성광산사람과 낯선 손님이 국밥을 먹으면서 ‘그믐날 자정이오’ 라는 말을 하며 쪽지를 건네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윤 순경은 즉각 지서장에게 보고했으나 지서장은 들은 척도 않고,
“그믐날 자정에 광산에서 뭘 하는데, 달밤에 모여서 체조를 하겠다는 거야 뭐야?”
“지서장님, 음력 그믐날에는 달이 뜨지 않습니다, 그리고 광산에서 스트라이크를 하겠다면 낮에 하지 아무도 없는 자정에 할 리가 있겠습니까, 지서 앞 국밥집에서 접선한걸 보면 틀림없이 비슬산빨치산과 광산의 빨갱이들이 우리지서를 습격하겠다는 겁니다.”
지서장은 그제야 파랗게 질려 본서에다 병력지원을 요청했으며 그믐날은 불만 켜놓고 자정직전에 지서를 비우고 이웃민가에 모두 은신해 있다가 총소리가 나는 것을 신호로 지서를 포위한 빨갱이들을 다시 포위하여 아군은 부상자 하나 없이 적을 일망타진하고 사살 열두 명에 부상당한 광산 직원 두 명을 생포하여 광산의 빨갱이조직까지도 뿌리째 뽑아 버렸다.
이 공로로 윤 순경은 스무 살의 나이에 일 계급 특진을 하여 경사가 되었으며 3년간의 가창지서 근무를 끝내고 본서 경무과로 발령이나 서장 따까리(당번)가 된 것을 계기로 자신의 본이름과 나이도 되찾았다.
경무과에서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1년 만에 중학교 졸업장을 따고 경위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데 또 총각이라고 지리산 공비토벌에 차출되어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다가 겨우 정보과 형사로 복귀했으며 이후 시험을 봐 20대 중반에 경위가 되어 결혼도 하고 대구대학법학과 야간부에 입학하여 얼렁뚱땅 대학도 졸업했다.
5년을 빨갱이 소굴에서 생사를 넘나들던 윤 경위는 이제는 세월만 흐르면 자동적으로 경찰서장까지는 해먹을 수 있겠지 하고 느긋하게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돈을 밝히지 않고 부정사건에 연루되지 않도록 몸조심을 하며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세상일이 어디 자기 뜻대로만 되겠는가, 자유당 말기 정부통령 선거에서 대구부정개표사건에 휩쓸려 4.19혁명 후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자 경감승진을 눈앞에 두고도 자유당에 협조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정권교체기의 희생양이 되어 경찰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원한 맺힌 민주당 정권을 넘어뜨린 박통이 너무나 좋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혁명정부의 경찰에 복직을 해보려고 구두뒤창이 다 닳도록 유력인사들을 찾아다녀 봤으나 허사가 되었으며 경찰경력으로는 기껏해야 경비나 한전수금원 정도의 자리뿐이었다.
아이들이 셋이나 딸린데 다 가진 것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는 인왕산 기슭에 판잣집을 짓고 수금원이든 노가다든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으며 양장점을 해본 경험이 있는 아내도 늦은 나이에 봉제공장의 직공이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이렇게 고달픈 삶을 이어오면서 그는 두 가지의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고 돈은 몸으로 버는 게 아니라 머리로 번다’는 것과 ‘기회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날부터 자진하여 동네일을 보고 선거에도 관여했으며 판잣집에 방을 계속 달아내고 겨우 비나 피할 수 있는 부엌을 만들어 세를 놓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훗날 아파트 다섯 채가 되고 사채놀이의 종자돈이 되었으며 경찰을 나와 서울로 올라 온지 십여 년 만에 신분상승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윤통은 아파트로 올라오는 시장 통에 옷 수선을 겸한 양장점을 차려 마누라를 갖다 앉히고 사채놀이를 시장상인들에게까지 확대했으며 업종별로 힘깨나 쓸 만한 30대의 건장한 점포주 다섯 명을 월매집으로 불렀다.
“면은 많으나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로 개업한 양장점 주인 윤세중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큰절을 했다.
일동은 황급히 맞절을 하며,
“황송하게 왜 이러십니까, 이 현저동에서 윤통을 모르면 간첩이지요.”
“모두 저보다 여나 무살은 아래인 것 같으니 다음부터는 말을 놓겠습니다, 괜찮겠지요?”
“그럼요 말씀 낮추십시오.”
“자, 그럼 조국의 장래와 우리시장의 번영을 위해 건배합시다.”
‘우리가, 남이가!’ 하고 건배가 끝나자 아가씨들이 몰려와 술을 권하고 월매가 끼어들었다.
“양장점을 개업했다면서요, 그리고 사채놀이도 한다면서요, 그 돈을 다 우얄라 캅니꺼?”
“마누라가 애들 다 크고 나니 심심하다고 해서 소일삼아 차려준 것이지 그게 무슨 돈이 되겠어, 사장님들 요즈음 시장경기는 어떻습니까, 장사는 좀 됩니까?”
“말도 마십쇼, 죽도 살도 못해 붙들고 있는 거지 이러다가 밥 굶겠습니다.”
“그토록 심각합니까, 점포 값도 오르고 장사도 잘되게 하는 방법이 있긴 있는데.....”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좋은 방도라도 있습니까?”
“있고말고요, 정식으로 시장허가를 받아 정부지원을 끌어내어 시설을 일신시켜야지요.”
“전에도 시장허가를 받으려다 실패한 적이 있는데....”
“구청장 나부랭이한테 부탁해서 될 일은 아니지요, 제가 우리지역 국회의원인 국회의장과 특별한관계라는 것은 다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리고 내무장관과도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입니다, 얼마 전에 장관 비서실장이 내게 인사를 하러 이 집에 오기도 했지요.”
“맞아 맞아, 그날 비서실장이 통장님께 큰 절을 올리고 동장과 파출소장하고 자신 엄청난 술값을 다 계산하고 갔지.” 하고 월매가 호들갑을 떨었다.
“통장님의 배경이 좋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뭘 그만 일에, 경상도정권이다 보니 요소요소에 잘 아는 사람들이 다 박혀있지요.”
“우리 오라버니는 총각 때 무궁화 계급장이 달린 경찰제복을 입고 고향에 오면 뭇 가시나들이 노랑오줌을 쌌고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쳤지요, 좋은 세월 만났더라면 경찰서장도 하고 고향에서 국회의원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월매가 아쉬워했다.
“영숙(월매)아, 사람마다 그릇이 다 다르고 가는 길이 따로 있어, 너는 술장사, 나는 시장번영회장, 이게 주어진 운명이야, 이 범주를 벗어나면 마른하늘에서 벼락을 맞게 되지.”
“통장님, 앞에서 이끌어만 주신다면 저희들은 불속이라도 뛰어들겠습니다.”
예견한대로 철물점을 하는 김철웅이 낚시에 걸려들었다.
“고맙소, 우린 서로 통하는 데가 있군요, 앞으로 시장의 시설을 개선하려면 우리 김 사장 같은 분이 적극적으로 앞장을 서야지요.”
“그러면 입쇼.”
“의장과 장관을 만나본 후에 필요하면 여러분들의 도움을 청하겠소, 자 술맛 떨어지는 예기는 그만하고 얘들아, ‘영자의 빤스는 누가 피로 물들였나’ 그 노래 한번 해봐라.”
윤통은 뜸을 드릴 것도 없이 월매집에 모였던 멤버들을 중심으로 ‘무악시장번영회’를 조직하여 회장에 취임하고 1년 내에 정식으로 시장허가를 받는 것을 공약으로 내 걸었으며 창립멤버들을 각 분야의 이사로 앞장세워 상인들로부터 법적근거도 없는 월 회비를 징수하고 교감선생님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여 매월 용채까지 챙겨드렸다.
그리고는 어렵사리 국회의장과 독대를 했다.
“이름도 성도 없는 무악시장을 현대식 주상복합아케이드로 새로 짓고 싶습니다.”
“자네에게 그만한 재력이 있는가?”
“간 큰놈이 널장사한다고 대형건설회사에 외상공사를 주고 나중에 상가를 분양해서 공사비를 갚으면 됩니다, 공사를 마칠 때쯤 다음선거가 시작되니 이 모든 것을 다 의장님의 공로로 인정받고 선거비용까지 조달할 수 있으니 이만한 장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역시 자네는 나의 장자방이고 제갈공명이야, 그러면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우선 시유지 점용허가를 받고 서대문구청의 재래시장허가를 받아 서울시의 ‘시장정비사업지구고시’를 받으면 각종행정지원을 받아가며 일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의장님께서는 그때마다 구청장과 서울시장에게 전화만 좀 해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좋네, 그렇게 한번 해 봄세.”
“그리고 제 동장취임문제는.....?”
“자리가 나야지,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쫓아낼 수도 없고...., 하여간 다음 선거 때는 내 결코 잊지 않음세, 시장번영회장이면 동장보다도 수입이 더 났지 않은가?”
“돈이 문젭니까, 서울특별시의 동장이면 시골의 읍면장보다 한 끗발 윈데 사나이로 태어나서 그 정도 벼슬은 하고 가야 염라대왕한테 문안이라도 드리지요, 시장공사가 끝나면 노른자고 흰자고간에 다 핥아버린 뒨데 그까짓 빈껍데기뿐인 번영회장 더하면 뭣합니까?”
“하여간 자네는 솔직하고 시원시원해서 좋아, 일간 구청장하고 식사나 한번 하세.”
“네 감사합니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조짐이 좋았다.
의장실을 나오며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형님, 윤세중입니다, 지금 막 의장님을 뵙고 나오는 길입니다, 보고도 드릴 겸 날씨도 꾸리한데 월매집으로 내려 오이소, 화끈한 조니워카 한잔 하입시더.”
교감선생님은 자리에 앉자말자,
“그래, 일은 잘되었소?” 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표하고 직결되는 일인데 의장님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구청장하고 곧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형님이 아드님과 내무장관을 만나 잘 타오르고 있는 불길에 기름만 두어 번 살짝 부어주시면 안 봐도 삼팔광땡입니다, 하하하.”
“내 아우님이 시키는 대로 하리다, 우리 윤 회장의 로비력을 당할 사람이 없지.”
“오라버니, 또 큰 거 한건 하십니꺼?”
“앉아서 오줌 누는 짐승들은 몰라도 된다.”
“하이고 자기도 그 구멍으로 나왔으면서, 의장님 좀 모시고 오이소, 서비스 잘 할게요.”
“지역구인데 못 올 거야 없지만 월매야, 소크라테스가 뭐라 카고 죽었는지 니 아나?”
“그걸 내가 우예 압니꺼, 임종을 지켜본 것도 아인데.....”
“제발 니 꼬라지를 좀 알아라 켔다, 전신만신 늙은 호박 같은 것들만 갖다놓고서는......”
국회의장과 내무장관이 직접개입하자 시장정비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선 무악시장번영회를 ‘무악시장정비사업조합’으로 개편하여 이 분야에 경험이 있는 건설회사 부장을 전무로 스카우트해오고 윤 회장은 이사장으로 전권을 장악했다.
창립멤버들에게는 점포가 나오는 데로 사 모으도록 하여 80여 표의 의결권을 확보하고 자신도 사채를 빌려간 영세 상인들을 상대로 스무 개의 점포를 친척명의로 사두었으며 외상공사는 물론 공사에 필요한 일부 원부자재를 조합으로부터 납품받는다는 조건으로 도급순위 10위권의 대형 건설사와 공사계약도 체결했다.
철물점 김 씨를 중국집 이층으로 불렀다.
“김 이사, 지금도 서대문 주먹들과 연결이 되나?”
“그럼요, 제 후배가 오야붕(우두머리)을 하고 있는걸요.”
“이제 공사가 시작되면 기존건물을 모두 철거해야 하는데 이를 반대하는 점포주나 노점상들이 분명히 있을 거야,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최고라고 이들을 제압하려면 주먹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시장공사에는 으레 동네 쇠파리들도 붙게 마련이지, 이 문제를 김 이사가 책임을 좀 져주게, 그 대신 폭행을 하거나 다치게 하면 안 되고 겁만 주도록 해야 돼, 주먹을 동원할때마다 일당을 지급하고 자네의 철물납품은 내가 보장하겠네.”
“큰 형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까짓 새끼들......”
“하하 이사람 이거 전과가 들어나는군, 내가 어떻게 자네 큰 형님이야, 조합 이사장이지.”
“죄송합니다, 버릇이 돼놔서....”
“자네는 점포를 몇 개나 확보했나?”
“점포가 잘 나오지도 않고 돈도 없고 해서 저는 두 개밖에 못했습니다, 이사장님은 얼마나 사 두었습니까?”
“나는 우리마누라의 양장점 하나뿐이야, 이사장이 이권에 개입하면 안 돼지, 우리친척들이 점포를 좀 구입했으니 그 사람들이야 내편을 들어주겠지, 정관에 웬만한 건 다 이사회에서 결정하도록 하고 부득이한 건 총회에서 출석조합원의 과반수 의결로 해 놨으니 고정표 100표만 있으면 표 대결은 문제없어, 부재점포주들이야 회의에 잘 나오겠어?”
“그렇긴 합니다만 다다익선이라고 고정표가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닙니까?”
“이사람 이거 문자 쓰네, 자네앞집 화장품가게 주인 말이야, 처녀야 유부녀야?”
“글쎄요, 화장품회사에 다니다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어머니인 듯한 노인네가 들락거리는 것은 봤습니다만 남자나 애들은 못 봤습니다, 왜 관심 있습니까?”
“관심은 무슨 관심, 눈웃음을 살살 치는 게 색께나 밝히지 싶어서, 근일내로 이사들 단합대회 한번 하자고, 남의 이목도 있으니 월매집에는 그만가고 아랫동네 영천시장에 있는 금달래집에서 만나세, 그 집 마담도 나라면 죽는 시늉을 하지, 아가씨들 나이도 어리고....”
“이사장님, 앞으로 영천시장은 타격이 크겠지요, 그쪽 상인들이 우리시장에 눈독을 많이 들이고 있습니다, 몇몇은 점포도 구입했고요.....”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는 망하게 돼있어, 두고 봐 내가 서울최고의 시장을 지을 테니....”
공사가 시작되자 더러는 공사기간동안의 주거와 생계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떼를 쓰는 점포주와 노점상이 있기도 하고 무조건 공사를 반대한다는 상인들도 있었으나 나중에 분양받을 점포의 가치가 얼만데 이러느냐고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며 공사를 진행시켜 나갔다.
공사방해는 상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엄연히 허가가 난 합법적인 공사인데도 소방서, 경찰서, 구청, 서울시에서 오만 트집과 간섭을 다해왔으며 전무는 관공서에 불려 다니느라 엉덩이 붙일 틈도 없었고 윤 이사장도 의장실과 장관실을 뻔질나게 들락거리느라 불알에서 요령소리가 났다.
어쩌거나 공사는 차질 없이 진행되어가고 있었고 각종 행정지원도 챙길 것은 다 챙겼으며 2천여 평의 대지를 정지하여 지하1층 지상3층의 5천여 평 건물에 정면은 르네상스식의 돌기둥으로 마감을 하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냉난방과 비 가림시설을 하여 명실 공히 최고의 명품시장으로 만들어 나갔으며 시장 옆 하천을 복개하여 새로운 시장진입로와 주차장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무악재로 넘어가는 큰길에 육교를 설치하여 길 건너 동네사람들의 편의와 안전을 도모하기로 서울시와 합의를 봤다.
윤 이사장은 매사에 심사숙고하고 주도면밀하게 대처해나갔다.
이번에 한 재산 장만하지 못하면 상류사회로 진입할 기회는 영영 없을 것으로 판단되어 부실공사의 대명사인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을 거울삼아 시공사로부터는 막걸리 한잔 안 얻어먹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으며 조합원들의 불평불만이 없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스스로 배달사고를 내가며 판공비의 대부분을 호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도움을 받은 의장에게는 해외출장 시 선물구입비조로 달러를 조금 마련해 드렸으며, 장관에게는 명절 때 최고급 양복티켓을 선물하는 등 뇌물이 아닌 상식수준의 인사치례만 하고 입을 싹 닦고는 의장에게 다음선거 때 다른 곳은 몰라도 현저동만은 돈 걱정 표 걱정 하지 말라고 장담을 했으며 장관에게는 교감선생님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정도선에서 적당히 교통정리를 하고 신문에 분양공고를 냈더니 이미 매스컴을 몇 차례 탄바가 있어서인지 가격이 꽤 높은데도 원매자가 구름같이 몰려들어 프리미엄이 붙기 시작했으며 분양가가 너무 높아 기존상인들은 입주권을 팔고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처음에는 3층에 주거시설을 하기로 했으나 공사비 부담이 커지고 주변에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고 있어 나중에 슬럼화 될 가능성이 많다는 건설회사의 권유에 따라 사무실로 용도변경을 했다.
이처럼 점포분양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공사비의 일부를 선불하기도 했으며 윤 이사장은 천하를 얻은 듯 만족감에 도취되어 있는데 타일을 취급하는 최 이사가 씩씩거리며 들어와,
“이사장님 이럴 수 있습니까, 납품수수료 2프로도 부담이 되는데 다시 1프로를 더 떼겠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몇 푼이나 남는다고....”
“납품수수료라니요, 그런 게 있습니까?”
“이사장님은 아직 모르고 계시는 모양인데 납품 때마다 꼬박꼬박 떼 왔습니다.”
“전무가 들어오면 내용을 알아보고 시정을 할 테니 걱정 말고 돌아가십시오.”
(이자식이 내게 보고도 안하고 수수료를 떼다니.....)
“김 전무, 건설자재납품업자들께 수수료를 떼고 있어요?”
“예, 그렇습니다.”
“이사회결의도 없이 무슨 근거로....., 그 돈 지금 어디 있어요?”
“제 통장에 있습니다, 이익이 있는 곳에 세금이 붙는 건 당연하지요, 그리고 전무가 비자금을 만들어 이사장님의 용돈을 마련해 드리는 것은 극히 상식적인 일 아닙니까?”
“여보시오, 그건 당신 상식일 뿐이지 내 상식은 아니오, 나는 그런 돈을 써본 적이 없소, 수수료부과는 일단 중지하고 거둔 돈은 되돌려주시오.”
“이사장님, 요만한 것도 용납 못하신다면 이사장님이 가져가신 그 많은 판공비는 모두 용도를 밝히고 영수증을 첨부할 수 있습니까?”
“걱정 마시오, 공사가 끝나면 이사회를 개최하여 그간 로비하는데 이정도의 자금이 들어갔다고 추인을 받을 테니......”
(무서운 사람이구나, 벌써부터 내 약점을 잡고 물귀신 작전을 쓰는데 네놈한테 당할 내가 아니다, 바보 같은 자식 너와 나는 노는 물이 달라, 하여간 조심은 해야지.)
처 질녀인 여직원 미스 송을 불러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김 전무의 비리는 육하원칙에 의거 메모를 해두고 증거를 확보해 놓으라고 단단히 일러놓고 점심을 누구와 뭘 먹을까 고심을 하고 있는데 아리따운 여인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고영희 씨가 여기 웬일로, 화장품장사는 잘 됩니까?”
“옮긴 장소가 별로여서 전만 못해요, 제 이름을 어떻게.....”
“명색이 이사장인데 조합원의 얼굴과 이름정도는 기억하고 있어야지요. 무슨 일로?”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해 이웃에 하소연을 했더니 윤통에게 한번 가보라고 해서 윤통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바로 이사장님이시더군요.”
“하하 그랬습니까, 동네에서는 윤통으로 통하지요, 무슨 얘긴지 한번 들어나 봅시다.”
“저의 어머니가 현저 파출소 앞에서 무악재를 내려오는 과속 버스에 치여 중상을 입었는데 버스회사에서는 무단횡단을 했다고 보상을 못해주겠다는 거예요, 바로 코앞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파출소에서는 모른 척 하고요.”
“그렇다면 지금 나하고 빨리 경찰서로 가봅시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서대문경찰서 교통과장 방에 들어서니,
“아니 윤통이 여기 웬일이야?”
“대감마님 점심을 사주러 왔지.”
“간밤에 꿈이 좋더니 유붕이 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하여 밥을 사겠다는데 마다하겠는가, 더욱이 이런 미인까지 대동하고 왔는데, 나가세.”
식당에 자리하자 윤통이 교통사고의 전후좌우를 설명했다.
“걱정 말게, 현저파출소에 알아보고 바로 조치하겠네, 장관님께 내 이야기나 좀 잘 해주게, 빨리 서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옛날 남대구서 시절의 동료인 교통과장은 군더더기 없이 시원스럽게 청을 들어주었다.
“이사장님, 듣던 대로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는 눈앞이 캄캄했었는데.....” 하며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고영희가 감격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제 병원비 걱정은 마시고 어머님 간호나 잘 하세요.”
사무실로 들어와 앉으니 아무래도 김 전무의 태도가 찜찜했다.
이사들을 모두 내편으로 만들어 놓아야 후환이 없을 것 같았다.
철물점 김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금달래집에서 비공식 이사회를 소집하도록 지시했다.
“오늘 뵙자고 한건 조합 사무국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여러 이사님들의 양해를 구하고저 함입니다, 김 전무가 이사회결의도 없이 또 이사장의 허락도 없이 그동안 건설자재납품업자들께 수수료를 뗐다고 하는데 제가 오늘 김 전무를 혼을 내고 즉각 중지시켰으니 이 정도 선에서 덮어 주십사 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거둔 수수료는 돌려줘야 하지 않습니까?”
“그 돈은 이미 김 전무의 뱃속에서 똥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비싼 술 한 잔 마신 셈 쳐야지 이를 확대하면 형사문제화 되어 공사도 차질이 생기고 바로 옆 현저동 101번지(서대문형무소)에 들어갈 사람도 나오니 선처를 해 달라는 겁니다, 그 대신 오늘은 우리마누라 꼬장주(속곳)를 잡히더라도 내 건사하게 한잔 사겠습니다.”
“나야 납품을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듣고 보니 괘씸하기 짝이 없네, 김 전무 그놈 당장 모가지를 빼서 참기름을 발라가 나왔던 구멍으로 도로 쑤셔 넣어야 될 놈이네.”
참기름 집을 하는 여 이사가 침을 튀기며 흥분을 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미우나 고우나 같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이사장님은 역시 멋쟁이야, 자 이사장님의 제의를 우리 모두 박수로 동의합시다.”
철물점 김 이사가 바람을 넣자 모두가 박수로 동의를 해 주었고 윤 이사장은 아군과 적군을 가려내기 위해 재빨리 이사들 개개인의 표정과 속내를 읽어 나갔다.
일곱 명 중 다행히 적군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호탕하게,
“금 마담, 빨리 술상 들여라, 우리이사님들 술 고프시겠다.”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김 전무는 이사장의 약점을 잡고 꿀꺽한 수수료를 토해낼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였으며 그것이 나중에 독배(毒杯)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리석은 놈'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데 화장품가게의 고영희 한데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의 치료비는 물론 위로금까지 받았으니 저녁을 사겠다는 것이었다.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서대문 뒷골목의 어느 일식집에서 생선회에 청주를 마셨다.
고영희는 어머니와 둘이서 살고 있으며 홀어머니 때문에 혼기를 놓쳐 서른셋이라고 했다.
그 나이면 40대 후반인 윤통에게는 영계나 다름없었다.
“이사장님, 시장입주권을 한 장 살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나오는 가게도 없고 가격이 너무 올라 투자가치가 없을 텐데요.”
“가게를 넓혀 남성용양품을 같이 취급해보고 싶어서요.”
“정 그러시다면 내가 우리친척의 가게를 하나 빌려드리지요.”
“어머나 이렇게 고마울 데가,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자, 저녁 잘 먹었습니다, 이차는 내가 사겠습니다, 나가시죠.”
소화도 시킬 겸 광화문까지 걸으며 그녀는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고 어느 카페에 들어가 밀실로 안내되어 양주를 시켰다.
“이사장님, 윤통이 무슨 뜻입니까?”
“윤 통장과 윤 대통령이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동네의 통장 겸 대통령이란 말이군요, 누가 지었는지 그럴싸하네요.”
“굳이 해석을 하자면 그렇지요.”
양주가 몇 잔 들어가자 그녀는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고 윤통이 옆자리로 옮겨 앉아 허리를 안으니 ‘이러시면 안돼요’ 하면서도 비비 꼬기만 하기에 곧바로 입술을 더듬고 브래지어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더니 쉽게 달아오르는 양은냄비체질인지 이외로 여관까지 순순히 따라와 주었다.
드디어 시장공사가 완공되어 상인들의 입주가 시작되었으며 의장님을 위시하여 각급기관장들을 모시고 성대한 시장준공식을 가졌다.
이사들의 얼굴도 살려주고 월매의 평생소원도 들어줄 겸 점심은 의장님을 모시고 이사들과 함께 월매집에서 하기로 하고 일행이 대문을 들어서자,
“이 일을 우야꼬 참말이네, 의장님 어서 오이소.” 하고 월매가 숨넘어가는 시늉을 했다.
“의장님을 모시고 왔으니 빨리 기생점고부터 하렸다!”
월매를 위시하여 늘도 젊도 안한 기생들이 일 열로 서서 큰절을 올렸고 윤 이사장은 의도적으로 이사들을 일일이 의장님께 소개해 올렸다.
“윤 이사장이 잘 아는 집인가 본데 어디서 이런 절세미인들을 데리고 왔는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의장님의 농담이었다.
“의장님이 오신다고 해서 금년도 미스코리아에 떨어진 아이들을 다 데리고 왔습니다.”
월매의 대꾸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 거의 모든 일이 다 마무리되었는데 아직 공사대금을 완불하지 않았고 작년도에 집중적으로 쓴 판공비 문제를 매듭짓지 못했다.
이번공사에서 가장 재미를 많이 본 타일집의 최 이사와 철물점의 김 이사를 안국동의 으슥한 기생집으로 데리고 갔다.
“이번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는 데는 여러 이사님들의 도움이 컸지만 그중에서도 두 분 이사님의 헌신적인 협조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대신 저도 두 분께 잘해드리려고 저 나름대로는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우리가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그동안 이사장님께 늘 얻어먹기만 했는데 막대금도 받았고 하니 오늘은 우리가 한잔 사겠습니다.”
“지금 술이 문제가 아니고 내일 이사회에 지난해에 쓴 로비자금 5천여만 원의 추인 건이 상정됩니다, 혹시 이사들 중에 이해가 부족하여 영수증이 없다고 시비를 걸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두 분 이사님이 앞장서서 분위기를 장악해달라는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 세상에 와이로(뇌물)먹고 영수증 써줄 바보가 어디 있습니까, 흰떡에도 고물이 들어간다고 이사장님이 아니었다면 1억을 쓴들 이 일이 성사됐겠습니까, 번듯한 점포 몇 개씩 마련했으면 됐지 저놈들이 감히 누구한테 시비를 건다 말입니까?”
“사실 의장이나 장관이 이런 일이 아니면 어디서 정치자금을 마련하겠습니까, 그리고 나같이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면 억만금을 갖다 준들 받겠습니까, 이 윤통은 의리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두 분 이사님만 믿겠습니다.”
이날 저녁에는 두 촌놈들에게 기생오입까지 시켜주고 윤통은 고영희를 불러내어 뜨거운 밤을 보냈다.
각본대로 이사회를 무사히 마치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건설회사 상무가 찾아왔다.
“외상공사까지 해드렸는데 공사비 잔금이 아직 결제되지 않아서.....”
“그 대신 내가 공사비를 한 푼도 깎지 않았고 자장면 한 그릇 얻어먹은 것도 없지 않소, 상가를 분양하여 선불까지 했고 계약서에도 분양이 완료되면 공사비를 지불한다고 되어 있으니 3층 사무실 입주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시오, 사람들이 체면이 있어야지....”
그날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건설회사 상무가 케이크상자 두 개를 두고 갔는데 그중 하나에 현금으로 거금 천만 원이 들어 있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제 공사비잔금을 결제해줘야겠군.)
윤통은 이 돈을 가명계좌에 넣고 통장과 도장은 쥐도 새도 모르는 곳에 숨겨두었다.
그런데 고영희로부터 점포세가 들어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어이 고 사장, 우리친척이 이달 점포세가 안 들어왔다고 난린데....”
“양품을 새로 들여놓다보니 자금이 좀 달려서요, 다음 달에 한꺼번에 해드릴게요, 그런데 이사장님, 저 돈 30만 원만 좀 빌려줄 수 없나요, 이자는 꼬박꼬박 드릴게요.”
“사채놀이야 우리마누라가 하는 것이지 나하고는 관계가 없어, 필요하면 양장점으로 가봐, 그런데 급전을 그만큼이나 쓰면 이자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면 이사장님 개인 돈을 좀 빌려 주시던지.....”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아하, 이 년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숫처녀도 아닌 것이 밑구멍 몇 번 벌려 줘놓고는 점포세도 뭉개고 돈을 몇 십만 원씩이나 빌려달라고, 어림도 없어, 목숨보다 더 귀한 내 돈을 네년 아가리에 처넣을 성 싶으냐, 내가 네 머리꼭대기위에 앉아있어, 점포를 친척명의로 해놓지 않았더라면 통째로 먹힐 번했네, 정말 무서운 세상이로구나.)
급히 마누라에게 전화를 걸어 5만 원 이상은 절대로 담보 없이 빌려주지 말라고 했다.
“김 전무, 이제 모든 게 다 마무리가 되었으니 총회에 보고할 서류를 만들어 보시오”
“이사장님,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저 그만두겠습니다, 공사도 끝났고 저는 공사현장출신이라 조합 같은 사무실 일에는 적성이 맞지 않아서....”
“섭섭하지만 평양감사도 저하기 싫으면 도리가 없지요.”
“그런데 저한테 퇴직금을 얼마나 주시렵니까?”
“관리규정에 정해져 있잖아요, 2년을 근무했으니 2개월 치 월급을 드려야지요.”
“저도 적지 않은 고생을 했는데 그걸로 끝낼 작정이십니까?”
“정 그렇다면 내 이사들께 양해를 얻어 한 달 치를 더 드리지요.”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못하겠다니, 그러면 도대체 얼마를 달라는 거요?”
“이사장님이 가져가신 판공비가 공사비의 1할인 5천만 원인데 저한테도 판공비의 1할인 5백만 원은 주셔야지요?”
“이것 봐요 김 전무, 돈 5백만 원이 누구 집 강아지 이름인줄 아시오, 나는 로비자금으로 썼지 개인적으로 착복한 게 아니잖아요, 이사회에서 추인도 받았고....”
“제 퇴직금도 이사회의 승인을 받으면 됩니다.”
“이 새끼 뭣이 어째, 그걸 말이라고 해,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아구통을 돌려놓기 전에.”
이튿날 아침 기자라면서 새파랗게 젊은 놈이 찾아왔다.
이사장이 공금을 횡령했다는 투서가 들어왔는데 인터뷰를 좀 하자는 것이었다.
“당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전에는 인터뷰에 응할 수 없소, 어느 신문사의 누구요?”
“한양일보 사회부의 황종길 기자요.” 하며 명함을 내 놓았다.
제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맞긴 맞았다.
“이사장님이 영수증도 없는 5천여만 원의 판공비를 쓰고 이사들을 포섭하여 추인을 받았다면서요, 그리고 공사과정에서 일당을 주고 서대문깡패들도 동원 했고요?”
“여보시오 기자양반, 판공비나 기밀비는 원래 영수증을 붙이지 않는 거요, 당신네회사 사장실에 가서 물어보시오, 그리고 자그마치 이사가 아홉 명인데 한사람의 반대도 없이 모두 동의를 했소, 또 동원한 사람들은 깡패가 아니고 인력시장에서 데리고 온 경비원들이오, 판자촌 철거에 불만을 가진 상인들이 사무실로 몰려와 기물을 파괴하고 불을 지르겠다며 난동을 부리는데 당신 같으면 그냥 보고만 있겠소, 폭행을 당하거나 다친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깡패는 무슨 놈의 깡패요?”
“좋습니다, 그러면 동의를 한 이사회의 회의록과 일당을 지급한 서류를 보여주시오.”
“당신이 뭔데 남의 서류를 보자 말자 하는 거요, 보여줄 수 없소.”
“그러면 국회의장과 내무장관이 개입됐다는 기사가 나가도 후회 없겠지요.”
“뭐 이런 새끼가 있어, 야 임마 기자면 다야, 유신체제하에서 근거도 없이 국회의장과 내무장관을 비방하는걸 보니 이 새끼 이거 빨갱이가 틀림없어, 너 같은 놈은 남산지하실에 끌려가 개죽음을 당해도 그건 네 운명일 뿐이야, 안 그래도 영부인이 빨갱이 흉탄에 쓰러져 원통해죽겠는데 너 이 새끼 잘 걸렸어, 저승구경 한번 시켜줄게, 야 임마 내가 현저동 윤통이야.”
녀석은 겁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김 전무 이리 들어와 봐, 이 새끼 이게 모두 네놈 짓이지?” 하며 들어오는 놈의 면상을 들입다 갈겼더니 그대로 나가 자빠졌고 기자란 놈은 어느 틈엔가 달아나고 없었다.
앞 이빨 두 개가 나간 김 전무는 4주 진단서를 첨부하여 고소를 했고 윤 이사장은 즉각 구속되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문에는 밑도 끝도 없이 두루뭉술하게 공금횡령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투의 기사가 나와 시경으로부터 수사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교통과장이 찾아와 의장실과 장관실에서 서장에게 전화가 왔다고 전해주며 공금횡령문제는 이사회의 승인까지 받았으니 적당히 비비면 되겠지만 폭행만은 피해자와 합의를 보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교감선생님과 이사들이 면회를 와 김 전무에게 치료비와 위로금을 주마하고 합의를 종용했지만 꿈쩍도 않는다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 도리가 없지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할 수밖에, 납품을 한 이사들이 김 전무를 배임과 횡령으로 맞고소를 해주고 이사회에서 파면을 결의해주시오, 그리고 사무실 여직원에게 알아보면 김 전무의 또 다른 비리사실들도 수집되어 있을 것이오.”
폭행사건은 모두 시인을 했으니 더 조사할 것도 없었고 공금횡령사건의 조사가 시작됐다.
“횡령한 공금을 어떻게 했소?”
“횡령이란 말은 당치 않소, 나는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정당하게 집행했을 뿐이오.”
“그러니 그 돈의 용처를 밝히라는 거요, 누구에게 얼마를 줬다든지 당신이 착복했다든가.”
“시장공사와 관련된 모든 관계기관에 통상적인 술값, 밥값, 촌지, 택시비 등으로 다 섰지 누구에게 뇌물을 준 사실도 없고 내가 착복을 한 것도 없소.”
“그 말을 믿으라는 거요, 술값밥값에 그 많은 돈을 다 섰소, 관계기관이라는 게 어디요?”
“동네파출소부터 청와대까지요, 공사라고 시작하면 유관기관의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나가는 거지와 깡패들까지 다 찾아와서 손을 벌리는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노랑돈이라도 몇 년 동안 수백 명에게 뜯기다보면 모이고 쌓여 큰돈이 되는 거요.”
“당신이 우리 교통과장님과 친구고 전직경찰관이란 것도 잘 알고 있소, 그러니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수사에 잘 협조하시오, 그래야만 당신한테 더 유리해지는 거요.”
“유리하든 불리하든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소, 삼류신문의 사이비기자가 공갈치러 왔다가 안 먹혀드니 제멋대로 쓴 기사인데 내가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소, 알아서들 하시오.”
“좋소이다, 당신 예금통장과 시장의 점포주 명단만 보면 모든 게 다 들어나게 돼 있소.”
“마음대로 하시오.”
철물점 김 이사와 월매가 면회를 왔다.
“아이고 오라버니, 마른하늘에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하고 눈물을 질금질금 짰다.
“내가 수양이 부족해 일이 이렇게 되었네, 동생 볼 면목이 없네.”
“이사장님, 김 전무 그놈을 오늘 고소를 했습니다, 납품수수료횡령뿐만 아니라 가짜영수증을 제출하고 업무추진비도 적지 않게 가져갔습디다, 곧바로 이사회를 소집하여 파면을 시키고 합의서를 갖고 올 테니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수고했네, 내 이 은혜 잊지 않으리다, 그리고 월매야 내 앞으로 달아놓고 오늘저녁에 우리 이사님들 저녁대접 좀해라.”
“예 알겠심더, 경찰서 옆 식당에 사식을 부탁해놓고 가겠심더, 입맛이 없더라도 몸을 생각해가 식사를 거르지 말고 우야든지 마음을 여물게 잡수이소.”
경찰이 조합사무실과 자택을 수색하고 윤 이사장의 개인예금통장과 시장의 점포주 명단을 다 확인해봤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어차피 경찰에서 끝날 일이 아니니 빨리 검찰로 넘겨달라고 했다.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어 들어오니 전신만신 젊은 잡범들만 우글거렸다.
스무 살도 안돼 보이는 녀석이,
“어이 형씨, 오락시간인데 새로 들어왔으면 신고도하고 노래한번 해야지?”라고 했다.
성질 같아서는 또 한 번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고 기선을 제압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부도를 내고 들어왔어.”
“얼마나?”
“한 10억 정도 되지, 별(전과)이 다섯 개째야.”
“오메, 재벌인가 벼, 겁나게 내뿌렀네.”
“서울내기 넌 왜 들어왔니?”
“나는 금시계를 갖고나오면서 외상이라는 얘기를 좀 늦게 했을 뿐인데.....”
“전라도 너는?”
“지는 새끼줄만 주워들고 왔구먼요, 소는 지발로 따라왔는디 억울하게 여기까지 왔지라.”
“두 놈 다 죄질이 아주 나쁘군, 10년씩은 썩어야겠네, 내일 점심은 통닭과 자장면으로 하고 담배도 한 갑 넣어 달라 할 테니 내 신경 건드리지 마.” 하고는 들어 누어버렸다.
‘햐-’ 하고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북쪽에 난 창문으로 현저아파트의 휘황한 불빛이 손에 잡힐 듯했다.
우리 집은 어디쯤일까, 집구석은 지금쯤 초상집이겠지, 어쩌다가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 내가 금시계나 소를 훔치다 들어온 잡범들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다가 들어온 것도 아니고, 유신독재반대를 외치다가 잡혀온 것도 아니고, 만감이 교차하며 후회가 막심했다.
옛날 남대구서장이 남자는 세 가지 끝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는데 손끝을 잘못 놀려 고소를 당하고 혀끝을 잘못 놀려 신문에도 까지고 몸가락을 잘못 놀려 점포를 뺐길 번도 했다.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 하에 손톱만한 증거도 남겨놓지 않았으니 공금횡령문제가 잘 풀릴 것 같기도 한데 왜 이리 불안할까, 경찰서는 평생을 출입해서 그런지 내 집같이 만만했는데 형무소는 왜 이리도 숨이 탁탁 막히는가, 저녁에 주는 보리콩밥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내쳤더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풋내기 순경 때 지서장과 옷을 바꿔 입었던 사건, 지리산 공비토벌 때 바로 눈앞에서 죽어간 여자 빨치산, 처음으로 금태 모자에 무궁화계급장을 달고 고향 가던 날, 서울로 올라와 영양실조로 공사판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던 일들이 주마등같이 떠올라 지나갔다.
순심이의 몽실몽실한 젖가슴과 고영희의 조각 같은 알몸도 스쳐지나갔다.
아- , 인생사 한줄기 바람이요 뜬구름인 것을, 누구에게나 부끄럽지 않은 과거가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고향 한골(大洞)과 아버지 어머니를 잊고 있었구나, 가자 그 찢어지게 가난한 이웃들이 있는 고향으로, 거기서 새마을운동을 전개하여 5천년 묵은 가난을 털어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사는 농촌마을로 한번 만들어 보자, 그리고 몽당 숟가락 하나까지도 그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자, 또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께 그동안 못다 한 효도를 다하자, 일단 결심을 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윤통은 베개를 적시며 새벽녘에야 겨우 괭이잠이 들었다.
소달구지에 초라한 이삿짐을 싣고 동구에 들어서니 저 멀리 어머니가 맨발로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때 간수가 ‘기상, 기상’을 외치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