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으로는 어제까지 먹던 야채와 돼지고기를 죄다 다져넣고 강된장을 만들어서 비벼먹었다.
어째 밥 해먹은게 사진이 하나도 없는 것은 얻어먹은 자들의 게으름 때문이다.
이건 아이슬란드식 요거트인 스키르(Skyr)이다.
일반 요거트와 다르게 아주 뻑뻑하다. 지금까지 여행기에서 빼먹은 부분인데, 스키르는 매일 사먹었다.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후로는 한국에서도 매일 먹고 있다.
???
한국에 올 때, 플레인 스키르를 한 통 들고 왔다.
우유에 섞어서 발효기로 배양해서 먹는데, 한국에서 파는 요거트류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좋다.
수분을 좀 빼내면 아이슬란드에서 사먹는 스키르와 똑같다.
이 날은 오전 내내 거의 늘어져 있다가 정오가 되어서야 남은 밥에 대충 카레를 만들어 비벼먹고 겨우 정신을 차려 길을 나섰다.
길을 가다보니 이렇게 사고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미끄러운 길에서 까불면 너희도 이렇게 된다는 통렬한 교훈이 담겨 있었다.
엄청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어제까지 하루에 300~500km씩 운전하던 터라 상대적으로 금방(?)크베라게르디에 도착했다.
주차장 앞에 현지인 하나가 눈에 끼어 있어서 전원이 하차해서 손으로 밀어 꺼내주었다.
착한 일을 했으니 보람차게 등산을 해 볼까 하고 돌아서는데 차를 꺼내주다가 바퀴에서 튄 흙으로 옷이 엉망이 되어있었다.
후회와 짜증이 갑자기 솟구쳤다.
착한생각... 착한생각...
착한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눈 사이에 이런 함정이 파여 있었다.
신발이 물에 젖어 찔꺽찔꺽 소리가 났다.
착한생각... 착한생각...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은 온천수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뜨거우니 만지지 말라는 경고문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노천탕에 왔다. 비키니 차림의 미모의 유럽계 여성들이 먼저 맥주를 마시며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이 사진 가운데에 희미하게 보이는 분들이다.
착한생각... 착한생각...
좀 고민하다가 우리도 몸을 담갔다.
내려와서 크베라게르디에 있는 빵집에 들러보았다. 오른쪽의 육면체 덩어리 빵이 지열로 구운 Earth Bake 빵이다.
빵이 눅진하고 달아서 맛있었다.
레이캬비크로 돌아오는데 또 점점 날씨가 궂어졌다.
셀포스에서 레이캬비크로 오는 길이 눈으로 폐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셀포스 바로 옆의 크베라게르디에 있었는데, 조금만 늦게 나왔어도 큰일날 뻔 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이번에는 시내 중심가로 나갔다.
이번에 온 곳은 Apotek이라는 레스토랑이다. 분위기는 분명히 맥줏집인데...
여기서 아이슬란드 구르메 코스 요리를 한단다...
맥주나 먹으면 딱 맞을듯한 좁은 원탁에 둘러앉아 이 10만원짜리 코스요리를 기다렸다.
쿠폰북으로 20% 할인해서 먹을 수 있었다.
첫번째로 나온 식전빵이다. 겉바속촉이었는데, 겉바와 속촉이 너무 심했다. 겉은 질기고 속은 축축해서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다만 적당한 온도에서 휘핑해서 나온 버터는 아주 맛있었다.
식전주가 나왔다. 필자는 운전을 해야 해서 맛만 봤다. 필자가 좋아하는 민트 맛이어서 더 억울했다.
퍼핀 고기와 염소 치즈 요리.
이 억울하게 생긴 퍼핀이 맞다. 개체수가 꽤 많아서 식재료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식감은 일단 요리법이 미묘하게 덜익힌 느낌이어서 일본 미야자키에서 먹언던 닭 타다끼와 비슷했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에서는 소 간과 식감이 비슷하다고 해야 할듯 하다.
하지만 닭과는 다른 짙은 색과 향이 있었다.
염소 치즈는 나는 염소젖으로 만들었다는 강렬한 존재감을 품고 있었다.
염소 타르타르 스테이크. 이건 원래 코스에 있는 건 아니지만 서비스로 나왔다.
간단하게 말해서 염소 육회다. 버무린 소스도 간장 느낌의 오리엔탈 소스였다.
대구살과 비트 소스. 대구는 살짝 데쳐 나와서 미묘한 식감이었다. 위에 올린 붉은 것은 페퍼로니처럼 보이지만 사실 붉은 비트를 저며 둥글게 자른 것이다. 맛은 꽤 심심했다. 먹고 다서도 대구살의 저 고소한 향이 입에 오래도록 남았다.
밍크고래, 샬롯 소스와 튀긴 아티초크
이해하기 쉬운, 사진에 보이는 그대로의 맛이다.
튀긴 아티초크 밑으로 살짝 담황색 소스가 보이는데, 아티초크를 이용한 소스였다. 보이는 대로 고소한 맛이 난다.
바다송어
플레이팅된 접시(?)는 히말라야산 암염벽돌이다. 얇게 저민 사과를 위에 깔고, 그 위에 송어를 올렸다.
그러니까 사실 암염을 굳이 사용한 이유는 없는 셈이다.
이전까지의 요리들이 모두 필자의 큰 입에는 한입에 가까운 요리였기 때문에-아까의 고래고기도 아티초크를 고기에 싸먹었다-
이것도 사과에 송어를 싸 먹는것으로 오해하고 한 쌈 크게 싸서 입에 넣었는데... 대해처럼 짠 맛이 찾아왔다.
그 사이에 사과가 소금에 잘 절여져 있었다.
사과는 버리고 송어만 먹으니 괜찮았다. 이해하기 쉬운 흔한 송어회의 맛이다.
물론 한국이었으면 초장에 찍어먹었을 테지만!
아스파라거스와 튀긴 가자미.
시금치 간 것을 플레이트에 발라서 흡사 대나무 잎에 올린 것처럼 디스플레이한 것이 인상깊었다.
튀기긴 했지만 솔 모르네라고 불러도 좋을듯한 느낌이었다.
새끼양 스테이크와 구운 컬리플라워
미디움 레어로 주문했는데, 어린 양답게 아주 부드러웠다.
손가락만한 구운 당근이 아주 달아서 인상깊었다.
디저트로는 스키르와 작은 치즈케익, 그리고 믹스베리 콩포트가 나왔다.
가운데에는 레스토랑의 이름이 인쇄된 초콜릿이 박혀있었다.
보이는 그대로의 맛이다.
아이슬란드에 간 김에 한번쯤은 먹어볼 만 한 코스였다.
숙소로 돌아와서 조금 쉬다가 오로라를 찾으러 나갔다.
이번에는 구름 위치를 참조해서 다들 흔히 가는, 그리고 우리도 어제 갔던 그로타 등대가 아니라
좀 더 남쪽, 케플라비크로 가는 길목 근처에 차를 대고 오로라를 기다렸다.
그러나 오늘은 오로라의 흔적도 잘 보이지 않았다...
졸립고 춥고 해서 오로라는 집어치우고 숙소에 와서 맥주나 좀 더 먹고 잠들었다.
내일은 사실상 아이슬란드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7일차 이동거리
레이캬비크 숙소 ~ 크베라게르디, 케플라비크 왕복 : 195km
총 이동거리 : 11686km
총 운전거리 : 2181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