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자네와 난 친구야, 친구
윤 호 정
여보게 친구 우리 아프지 마세나
늙은것도 서러운데 병까지 얻고 보면
이 세상에 그만큼 비참한 게 없으니
골고루 찾아먹고 틈틈이 운동하면서
이 좋은 세상 더 즐기다 함께 가세나
가끔씩 만나 소찬에 박주한잔 나누며
돈 안 되고 재미없는 얘기라도 들어주고
내가 좀 모자라면 자네가 받쳐주게
자네가 부족하면 나도 좀 보테겠네
힘들면 우리서로 어깨 기대게 해주고
살다보면 더러 서러울 때도 있을 것이니
그땐 우리함께 눈물로 채운 술잔을 드세
참, 어제 술자리에서는 내가 실수를 했네
내말 끝에 아직 서운함이 남았더라도
우리 돌아서거나 서로 외면하지 마세나
내말도 아집이요 자네말도 객기이거늘
내말도 자네말도 다 맞고도 틀린 것을
여보게, 지난 설에 받은 용돈 꿍쳐놓았으니
날 풀리거든 옥포 용연사에 벚꽃놀이 한번가세
꽃잎으로 산 놔 가며 자네한잔 나 한잔
궁디 큰 주모에게 실없는 히야까시도 해가며
‘내 나이가 어때서’도 한 곡조 뽑아 보세나
그러고 보니 대구갑부 재철이도 4선의원 해봉이도
우리 곁을 떠난 지가 한참이나 되었네 그려
들이쉰 숨 못내 뱉으면 그걸로 그만인 것을
아무래도 다음은 우리차례일 것만 같네
혹 저승사자가 오거든, 아직 구십노모를 모시고 있으니
다음 화원장날오라고 하게, 다음 장날 또 데리러오거든
내가언제 이번장날 오라고 했나 다음 장날 오라고 했지 하고
호통 쳐 돌려보내게, 다음 장날이야 늘 있거든
그리고 친구야, 이 나이에 새 친구 사귀려 들지 말고
내가 좀 모자라고 성질머리가 더러워도 우야겠노
우리 어깨동무 하고 황혼을 붉게 물들여 보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