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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게시물ID : society_34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빚나는대학생
추천 : 2
조회수 : 105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03 13:14:22
한창 북한과의 대화가 호의적으로 이루어지는 지금이 북한의 유지 체제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해 언급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본다.


솔직히 일반 시민들은 사회주의가 뭐가 됬든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행정체계의 근간이되는 정치적 사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공산주의는 경제체제이기에 가장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기에 공산주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대략적으로 알고있을 것이기에 그리고 그 정도 수준만 알아도 이글을 읽는데는 방해되지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개념자체에 있지 않다. 그 개념자체만으로는 이상적이며 실현된다고만 하면 이것만큼 유토피아도 없다. 뭐, 어디까지나 경제적 유토피아이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전제에는 상당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성선설을 믿고 있다. 
인간은 단지 합리적인 존재이며 이상향에 대한 대의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 이후로는 변화 없이 단일한 이상향을 향해 인간 모두가 전진 할것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만들어서라도 단일한 이상향을 쫓아야지만이 공산주의의 이상향이 실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싶이 인간은 합리적이기만한 생명체는 아니다. 때로는 감정을 주체 못해 실수하기도 하며,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기도 하고 거꾸로 강력한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기도 한다. 인구는 다양한 특성들을 개개인이 지니고 있어 단일한 이상향은 누군가에게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은 다양성을 추구해서 다양한 특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 적당한 풍요라는 것은 불행을 제거하는 것이지 행복을 추구한다고 볼 수는 없다.  

드라마에 많이 나오듯이 행복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다르지 않다. 단지, 경제적 풍요는 가난, 굶주림, 수준 낮은 치안과 같은 불행요소를 제거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어떠한가? 자본주의의 뿌리로 알려진건 크게 영국의 중상주의자들과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에 등장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이다. 

유명한 학자들도 자본주의 대해 똑부러질만한 정의를 내리진 못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화폐의 발명과 자연법칙이 결부되어 인간 특유의 생태계로 정착한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세계에서의 법칙이 힘에 의한 약육강식이라 하면, 인간 세계에서의 법칙이란 돈에 의한 약육강식인것이다. 다만 자연세계보다 덜 직접으로 잔인하다는 차이는 있다. 자연세계에서는 패배가 곧 죽음이지만, 인간세계에서는 패배하더라도 당사자가 절망하지 않고 포기 하지 않는 다면 다음 기회가 존재하니 말이다. 이는 돈 말고도 다른 법칙들이 인간세계를 지탱해주기에 가능한 것이다.

중상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 기여한 것에 대표적인 것은 바로 사익추구를 공론화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개인이 부를 쌓은 것을 딱히 막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추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이 중상주의자들의 부상과 함께 반전을 맞이 한 것이다. 개인이 부를 많이 쌓고 그에 비례하여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있게 된다면 그 이전에 하던것보다 국가가 더 많이 성장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것은 이후 노예해방과 여성권리 신장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흑인과 여성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세금을 내는 소수를 위해 일하는 것보다 경제활동에 참여하여 세금을 내는 것이 국력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이다. 이것이 현재의 미국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부정할수 없을 것이다. 

이와 발맞혀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은 이를 뒷받침할 훌륭한 이론적토대를 마련해준다. 제목에서도 보다싶이 국 부 론이다.  원제가 《국부의 형성과 그 본질에 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이며 줄여서 The Wealth of Nations이다.  

국부론의 골자는 이기적인 개인이 사익을 추구하여 경제활동을 할 때 최대 효율적인 경제가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최대의 부의 일부가 국가의 세금으로 환원되면 결과적으로 국부가 증강이 최대가 되며 국력이 최대로 상승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집중해야 대목이 여기서 나오는데 바로 이기적인 개인이다. 앞서 말했듯이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인 것이고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 했기에 역사가 증명하듯이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시장실패는 항상 존재해 오고 있고 끈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이러한 실패에도 자본주의를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이 실패가 곧 붕괴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시장실패라는 것은 체재의 오류가 아니라 기득권의 붕괴와 교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장실패라는 것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은 자본주의 또한 공산주의보다야 인간의 본질을 더 잘 파악했을 뿐이지 완벽히 파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애덤스미스의 또 다른 대표적인 저서 도덕감정론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도 이기적인 인간을 언급하는데 이 이기적인 인간은 양심에 의해 충분히 통제되어 합리적 범위에 머무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양심에 대한 그의 고집적인 맹신은 그가 독실한 천주교인것에 기인한다. 천주교에서는 양심은 곧 신의 목소리이며 양심에 따라 행동한는 것이 신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을 곧이 곧대로 믿는 신자는 적었지만 애덤스미스는 그 적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들이 문명을 부흥시키고 몰락시켰다. 알렉산더는 영토를 확장하며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동시에 서양문명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나마 양심적인 정복자는 나폴레옹 정도이다. 결과적으로 어찌되었든 형제애를 내세우며 항복하는 자들에게는 관대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라고해서 다를 것 없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들이 부흥에 기여하기도하고 몰락을 야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에디슨은 발명왕이라기보다는 상업화의 왕이다. 기존의 기술들을 돈이 되게끔 변혁하여 세상에 내보이는데 기막힌 재능을 보여줬다. 스티브 잡스 또한 어떠한가 그로 말미암아 모바일 라이프의 혁신이 일어났지만 회사에서 그는 성격파탄 때문에 사임된 CEO이기도 하다. 인간은 양심과 이기심사이에 서있는 존재이기도 한 동시에 감정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때로는 이기심과 양심을 벗어나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기도 하는게 인간이다. 시장실패로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례들의 공통점은 사익추구가 공익을 저해하는 경우이다. 양심과 이기심에 의해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인간이라면 공익저해가 머지 않아 본인에게도 해가 될 수 도있기도 하고, 사익추구가 타인의 고통을 야기한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양심에 의해 그런 행위를 중단해야 맞다. 하지만 많은 인간들이 이기심추구에 의한 성취감과 같은 감정이 양심을 마비시키기도 하고 집단 이기주의가 개인의 양심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마비되지 않은 양심을 집단의 다른 구성원이 축출하기도 한다. 자의적인 소시오패스가 되기도 하고 타의적인 소시오패스가 되기도한다. 반자의적인 소시오패스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나쁜것인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이다. 사이코패스와 달리 소시오패스는 강점이라 할만한 단점이 하나있다. 그것은 그 특성을 얼마든지 숨길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가 감정자체를 모른다면, 소시오패스는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연민을 느끼는데 그것보다 자신의 성취감을 우선시 하는 것이 소시오패스이다.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에서는 비판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소시오패스들이 얼굴을 들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산주의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공산주의는 언젠가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최고 지도자가 소시오패스가 된다면 혹은 그 거꾸로라면 누가 그를 견제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세계적 트렌드는 사회민주주의가 되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들의 한계를 인지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된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 조차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강점을 받아들이고 있다. 일부분야에서는 자유시장에 맡기는 것보다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유리한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건 이미 많은 자본주의국가에서도 행해지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수정 자본주의가 그러했고, 당장 한국에서는 박정희 독재시절이 그러했다. 차이점이라면 법치인가 아닌가(헌법훼손) 정도.

쉽게 말해 비탄력적인 재화는 사회주의적으로 해결하고 탄력적인 재화는 자본주의적 해결책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런 사회민주주의국가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자본주의 민주국에서는 이미 이런 법들이 존재해 왔다. 그것을 사회주의적이라고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그 의문점은 공산주의의 이론을 제공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자본론을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싶이 자본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만 자본주의가 어떻게 실패하는가에 대한 것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그 어떤 자본주의자들보다 자본을 연구했고 자본이 인간을 어떻게 망치는지에 대해 알아낸 사람이다. 그런 마르크스이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부양에는 좆도 신경쓰지 않아 가족을 굶겨 죽인 소시오패스이다. 그런 새끼지만 자본주의의 단점은 누구보다도 많이 정리한 사람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자본주의라는 연예인에게 악성댓글을 수백건을 단 악플계의 거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없다.

 오히려 그 대체로 기술한 공산주의 사회는 애매하고 모호한 설명으로 가득차 있어 누구든지 자의적으로 해석이 되게끔 기술해 놓았다. 그냥 "아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정도이다. 생전에도 사후에도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하다 가신 희대의 악플러이다.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단점을 지적한 사람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다르게 말하면 시장실패가 일어나면 자본론을 참고해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사상논쟁은 정반합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뭐 결론적으로 말하면 공산주의라는 것은 자본주의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이며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개념인것이다. 
어느 정부이든지 사상실현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며 정부는 어디까지나 국민 행복을 위해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의미없는 사상논쟁은 그만두고 사상이 어떻게 국민행복에 기여하는가에 대해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통일하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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