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소설 제7화>
신일본정복기(新日本征服記)
윤호정
겨우 중학교만 나와 직물공장의 주유원(아부라사시)으로 시작하여 근면 하나로 조그마한 자카드직물공장의 주인이 된 김 사장은 종업원한명 없이 부부 둘이서 공장을 가동한다는 일본 후쿠이의 직물공장을 가보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는데 거래처인 이토추상사의 주선으로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50인생에 처음으로 김포공항에서 코마츠행 비행기에 올라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일본입국카드서식을 받고보니 전신만신 영어요 일어뿐이라 옆 사람에게 연신 물어가며 써넣자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성명과 생년월일을 겨우 쓰고 나니 ‘Sex’라는 난(欄)이 나왔다.
일본이 좀 별난 나라라는 것은 알고는 있었으나 남의나라 국민의 섹스횟수까지 물어보니 기가 찰 노릇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한 달에 두 번이라고 2자를 써넣었다.
다행히 공항에는 서울지사에 근무할 때 김 사장의 대구공장에 몇 번 와 본적이 있는 미야자키라는 이토추상사 직원이 차를 가지고 나와 한시간정도 걸려 후쿠이시내의 아케보노호텔에 여장을 푼 뒤 퇴근 후에 다시 오겠다며 가고나니 허술한 기내식에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배가 몹시 고파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눈치껏 3층 식당을 찾아들어가니 식사를 하기는 어중간한 시간인지 손님들은 보이지 않고 여종업원이 다가와 뭐라고 시부렁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니 레슬링선수처럼 우람한 체격의 서양 젊은이가 옆자리에 와 앉았다.
서양 놈이 뭐라고 쉘라쉘라 하니 이번에는 일본 년이 알아듣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서양인은 난감하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 올리며 양손바닥을 펴 보이더니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들추어 보이며 들여다보라는 시늉을 하니 여종업원이 들여다보고는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져온 음식을 보니 굵다란 삶은 계란 두 개와 팔뚝만한 소시지, 채선 흑상치 샐러드였다.
김 사장도 옳다구나 무릎을 치며 손짓으로 여종업원을 불러 바지를 열어 보이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갖고 온 음식이라곤 흑상치위에 달랑 메추리알 두 개와 풋고추 한 개뿐이었다.
미야자키가 와서 저녁을 먹으러 가자기에 톡톡히 국제망신을 당한 뒤라,
“술값은 내가 낼 태니 기생들이 있는 근사한집으로 갑시다, 나도 일본까지 왔는데 태극기를 한번 꽂아봐야 되지 않겠느냐” 고 했더니 ‘도쿄나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가 아니면 그런 술집도 없을뿐더러 하루저녁술값이 김 사장의 몇 달치 수입은 되어야 한다’ 며 꿈도 꾸지마라는 식이었다.
그가 안내한 술집은 가볍게 한잔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라오케 스낵바’ 였고 한물간 아줌마 서너 명이 아사히맥주를 마시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넉살좋은 미야자키가 다가가 뭐라고 수작을 걸더니 합석을 하여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그는 김 사장이 ‘한국최고품질의 직물공장사장이며 유명한 아마추어가수’ 라고 치켜세웠고 일본여자들은 ‘스고이와네에(대단하군요)’ 를 연발하면서 박수를 치며 쉽게 다가왔다.
김 사장은 호기롭게 산토리위스키를 병체로 주문하여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일본사람들은 미즈와리를 하여 홀짝거리다가 노래한곡 부탁한다며 간이무대위로 안내했고 손님들도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본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멋들어지게 부르고 나서는 앙코르 송으로 외국어발음이 서툰 일본사람들이 한국의 요정에서 노래를 부르는 흉내를 냈다.
‘가루매기노 바다노 우에노 나루지노 마라요/ 무루하안라아 조고리노 눈무리노 좆는데/ 조 모리노 수표온소니노 힌도때노 하나/ 오나루또 아아아아~ 가시노 니미와 아니노 오시네’ 하니 우레 같은 박수 가 쏟아지고 술기운이 오른 여자들이 스킨십을 받아들였으며 ‘도끼로 이마까라상, 깐자리 또까라상, 배째놓코 우야꼬상’ 하는 김 사장의 와이당속에 일본의 밤도 농염하게 무르익어갔다.
고주망태가 되어 와타나베 사찌꼬의 허리를 안고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김 사장은 속으로 외쳤다.
“홋카이도 탄광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 제가 수출한 자카드직물이 일본에서 최고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으며 오늘밤 일본 후지산정상의 가와구치 호수 깊숙이 태극기를 꽂게 되었으니 부디 편히 잠드소서.”
※ 스폰소설: 지하철 한 정거장 가는 사이에 스마트폰으로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