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게시물ID : gomin_14379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bGxyc
추천 : 14
조회수 : 716회
댓글수 : 131개
등록시간 : 2015/05/23 22:30:15


 저한테도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먼저 번호를 물어보더라구요. 가르쳐줬어요.
카톡하고, 전화하고, 그러다가 사귀게 됐어요.

거의 매일같이 만났어요.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오빠는 제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저는 오빠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사소한 일에도 서운해하고 자꾸 신경쓰이고 그랬어요.
어쩌면 오빠는 귀찮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그랬어요.

혹시나 먼저 헤어지자고하면 너무 힘들까봐, 그래서 일부러 덜 좋아하는 척도 했어요.
나는 오빠가 나를 좋아해서 오빠랑 만나는 거라고,
오빠가 나를 조금이라도 덜 좋아하는 것 같으면 안 만나겠다고. 
사실은 내가 더 좋아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티를 안 냈어요.

오빠는 참 착해서, 매일 보는 얼굴도 예쁘다고 해줬어요.
가만히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나를 들여다보다가, 
그냥 문득 예쁘다고 말해주는 게 좋았어요.
오빠는 키가 크진 않았지만 저를 좋아해주는 마음이 컸어요. 
아마 오빠는 나보다 나를 더 좋아한 사람이었을거에요. 정말로요.

100일 기념으로는 여행을 갔다왔어요.
가서 바다도 보고, 케이크도 먹고, 처음으로 회도 먹어봤어요.
그냥 그게 너무 좋았어요. 사실 어디를 가도 뭘 해도 좋았을 거에요.
같이 있던 그 시간이 정말 행복해서, 집에 들어갈 때에 너무 힘들었어요.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어쩐지 보내기 싫더라.
밤에 학교에 들어가다가 사고가 났대요. 그렇게 먼저 떠났어요.
오빠를 어떻게 보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니, 사실 아직도 못 보낸 것 같아요.

혼자 방에 누워있으면 자꾸 생각이 나요.
그냥, 모르겠어요. 그 얘기를 먼저 들은 사람들이 괜찮냐고 묻는데, 모르겠어요.
그래서 괜찮다고 안 하고 괜찮아야죠, 하고 대답해요.
내가 괜찮은 걸까요? 괜찮아질까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우스울 지도 몰라요. 고작 백 일 넘게 만났는데 유난 떤다고.
그런데, 나는 그래요. 힘들어요. 아파요. 자꾸 눈물이 나요.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가는 게 어딨냐고 화도 내고 싶어요.
저는 오빠가 떠난다면 그냥 다른 사람이 생겨서 떠나는 게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먼저 가버릴 줄은 몰랐거든요. 오빠도 몰랐겠지만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귀는 동안에는 그랬어요. 굳이 티를 내야할까 싶어서.
페이스북에도, 카톡에도, 아마 자주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우리가 사귀는 지도 몰랐을 거에요.
근데 그게 너무 후회가 되더라구요. 자랑 좀 할 걸. 이렇게 좋은 사람이 내 남자친구였다고.
이렇게 늦은 지금에라도 자랑하고 싶었어요. 나한테도 이런 남자친구가 있었다고.

평생 못 잊을 그런 사람이 저한테도 있었어요.
누구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눈을 보고 있으면 나를 향한 애정이 묻어나와서, 
나를 너무 행복하게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내게는 첫사랑이었지만, 오빠에게는 내가 마지막 사랑이 됐네요.

있잖아요. 저한테도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