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 <헤럴드경제> 라이프스타일섹션 에디터
“아마존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글쎄 서점보다는 온라인 쇼핑몰이 걱정 아닐까요?” 3년 전 한 대형서점 대표와 이야기하다 아마존 진출로 화제가 옮겨가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출판사나 서점 관계자들은 소문만 무성한 ‘괴물’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싶어 했지만 이렇다 할 시원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2015년 출판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그 사건은 아마존 웹서비스, AWS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AWS가 한국 직원을 뽑자 진출을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이다.
지난해에도 시끄러웠다. 한국 지사인 아마존서비시즈코리아를 통해 약 50명 규모의 직원을 채용하자 ‘2018년 진출설’이 흘러나왔다. 이를 근거로 외신에서는 “마케팅 등에서 직원들을 추가하면서 한국에서 온라인 소매 판매 영역을 확대할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종래 해온 한국 상품의 해외 판매가 아니라 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전자상거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온라인쇼핑몰 업체는 바짝 긴장했지만 출판계는 비교적 잠잠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마존이 최근 다시 소문의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좀더 가시권으로 들어왔다. 올헤 초 킨들의 인터내셔널 부문장이 한국을 방문해 국내 출판 관계자들을 만난 것이다. 아마존 측은 당시 출판사와 출판단체 임원, 온라인서점, 디지털콘텐츠를 서비스하는 곳의 관계자 등을 두루 만났다. 개중에는 아마존 킨들 다이렉트 퍼블리싱 시스템을 이용해 직접 출판을 해본 경험자도 포함됐다고 한다.
아마존 측과 접촉한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선 아마존이 한국 출판시장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공통된 말이다. 가령 리디북스에서 전자책을 대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온라인서점 관계자는 아마존 측이 전자책 시장이 어떤지 물어보더라며, 뜨악해 했다. 경쟁사한테 “너네 시장 어떠냐”고 물어보는 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면, 어떤 의미에선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는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아마존의 한국 진출은 눈앞의 현실
아마존이 이런 식으로 정보 수집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간 틈틈이 이뤄져왔다. 2010년 이전에도 비슷한 미팅이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존의 한국시장 간보기는 왜 이렇게 길어지는 걸까. 한국의 출판시장은 아마존 입장에서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무엇보다 규모가 작다. 현재 아마존이 진출해 있는 유럽이나 일본과 견주어보면 인구도 작고 구매력도 떨어진다. 일본의 경우 온라인서점이 막 생기기 시작한 2000년도에 진출해 점차 일반 상품으로 확대해가면서 시장의 지배력을 넓혀왔다. 2017년 현재 아마존재팬의 온라인쇼핑 점유율은 23%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중국에는 2004년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조요닷컴을 인수해 진출했고 알리바바 등에 밀려 현재 시장 점유율 2% 선에 머물고 있지만 규모가 다르다.
아마존이 선뜻 한국에 진출하지 못하는 데는 한국의 특수성도 있다. 도서정가제는 할인을 무기로 삼는 아마존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아마존닷컴에서 현재 구도서는 1달러대에 살 수 있다. 거의 거저나 다름없다. 불과 몇 년 전, 국내 온라인서점에서도 가능했던 일이다. 총알배송, 당일배송 같은 한국식 배송에도 아마존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아마존의 강점인 전자책 시장의 성장은 더디기만 하다.
한 온라인서점 관계자는 “국내 출판시장은 제도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특히 우리의 당일배송을 보면 놀랄 것이다. 아마존의 경쟁력이라는 게 다양한 품목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관리하는 것인데, 다양한 품목이라는 장점 없이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대형서점 관계자도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에서 성공한 전략을 한국에서 일대일 대입했을 때 성공가능성이 있을지, 자기만의 강점이 잘 통할지 물음표가 많아서 계속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아마존의 경쟁상대는 지마켓이나 옥션, 11번가 같은 온라인쇼핑몰 쪽에 더 가깝다. 아마존이 진출한다면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쪽도 당장 진출은 쉽지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직접 들어올 경우 물류를 구축해야 하는데 이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제휴형태로 들어온다면 아마존의 특장을 발휘하지 못해 무늬만 아마존에 머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쪽에선 아마존이 국내 온라인쇼핑몰시장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길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KB금융경영연구소 장경석 책임연구원은 “국내 온라인 쇼핑몰과 쿠팡 같은 모바일 커머스 기반의 기업들이 치킨게임을 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담갔다가 투자한 것까지 챙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출혈 경쟁이 마무리 되고 성숙단계가 돼야 마진이 생기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들어갈까 말까 재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정황을 따져본다면, 시기의 문제일 뿐 아마존 진출은 이제 눈앞의 현실이다. 최근 시스템을 갖추고 인력을 늘리는 움직임을 보면 업계가 생각하는 것보다 진출이 빠를 수도 있다. 글로벌 최강자로서 아마존의 진출은 많은 변화를 예고한다. 그 자장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다. 좁게는 우선 출판시장의 변화가 예상된다. 아마존이 진출한다면, 전자책 킨들 서비스로 문을 열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번 한국을 방문한 아마존 관계자가 킨들의 인터내셔널서비스 부문장으로 알려진 것도 그렇지만 최근 아마존의 글로벌 진출방식이 선 콘텐츠, 후 커머스 형태라는 데서도 읽힌다.
과연 한국시장은 무사할 수 있을까
관련 업계는 우리 전자책 시장이 미미해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단말기 보급수준이 낮고 전자책 콘텐츠가 제한적이라는 국내 시장의 한계가 아마존에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특히 국내 전자책 시장은 종이책과 달리 무료서비스, 대여, 할인 등이 허용되는 느슨한 상태여서 아마존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 우선 저가전략으로 킨들을 공급하고 글로벌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자책 콘텐츠를 공급하면서 독자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이 킨들을 한 대 팔 때마다 5.25달러의 손해를 보고 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적자를 감수하고 저가 보급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콘텐츠 이용에서 부가수입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아마존이 저가 공세에 나선다면 국내 전자책 업계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전자책 단말기 가격은 초기보다 많이 싸졌지만 여전히 킨들과는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아마존은 동네서점과의 상생모델도 갖추고 있다. 킨들을 도매가에 제공한다. 동네서점들은 이를 소비자에게 정가에 판매함으로써 마진을 챙길 수 있다. 또한 서점에서 구입한 킨들 기기를 통해 고객이 전자책 콘텐츠를 구입하면 일정 기간 콘텐츠 가격의 10%를 수수료로 준다. 이동통신업체들이 고객을 유치한 대리점에게 수수료를 주는 것과 같다.
저가 정책은 아마존 진입작전의 강력한 무기다. 싼 값 혹은 공짜를 내세워 시장을 넓혀 나가다가 시장지배력이 생기면 소비자를 내세워 공급자를 압박해 낮은 단가를 유지하고, 소비자를 붙잡아두는 방식이다. 소비자는 가성비가 높은 아마존의 상품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공급자는 소비자를 앞세운 아마존의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저자와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아마존이 출판사와 전자책 가격 협상을 벌이면서 소비자와 작가를 볼모로 단가를 내리도록 압박해 작가들이 들고 일어나는 소동이 벌어졌다. 출판사가 응하지 않으면 고의로 추천목록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압력을 가한 것이다. 작가들은 아마존이 출판생태계를 무너뜨린다며 반발했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기존의 출판시스템에서 소외됐던 영세출판사들도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된다는 점에서 아마존을 환영하는 편이다. 이런 상황은 아마존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
아마존의 영향은 출판에 머물지 않는다. 아마존은 이제 온라인서점도, 오픈 마켓 온라인 쇼핑몰도 아니다. 그 이상이다. 아마존은 현재 책은 물론 음악과 영화, 드라마, TV쇼까지 생활에서 즐기는 모든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다. 단순 유통이 아닌 직접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다. 유료 회원(프라임회원)으로 가입하면 이 모든 걸 공짜로 볼 수 있다. 아마존은 넷플릭스와 함께 온라인 스트리밍 강자로 꼽힌다. 이들 콘텐츠를 별도의 단말기를 통해 즐길 수 있지만, 아마존프라임비디오 같은 모바일 앱을 통해서도 이용이 가능하다. 모바일 세대를 겨냥한 것이다. 아마존은 모든 콘텐츠를 30일 동안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열어놓고 있다. 이미 우리 손안에 들어와 있다. 아마존의 진출은 어렵거나 복잡한 일이 아니다. 현재 작동하고 있는 시스템을 한국어 버전화하는 것뿐이다.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출판만 봤을 때 아마존이 한국에서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나. 프라임 회원이 현재 6000만 명이다. 돈을 더 낼 테니 혜택을 달라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많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이며 IP를 사고 저작권을 구입하고 있다”며, “긴장해야 할 쪽은 출판, 온라인쇼핑몰뿐만 아니다. 멜론과 같은 음원서비스업체 등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 전체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소득 3만 불 시대에 접어들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뒤, 보고 즐기는 시장으로 쏠리는 시점이다. 즉 한국은 글로벌 기업들에는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아마존은 10년 앞을 내다보고 있다.
책의 콘텐츠나 언어 문제는 당분간은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2020년대, 인공지능 시대에 언어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10년 안에 인공지능 번역이 섬세한 수준에 달할 것으로 미래학자들은 보고 있다. 심지어 가장 먼저 없어질 직업으로 번역가를 꼽기도 한다. 전자책이 일상화되는 시점이 되고 언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전 세계 전자책 동시 출간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자가 아마존과 직접 계약하고 책을 출판하는 식이 가능하다. 아마존은 이미 저자가 자신의 경력을 관리할 수 있는 특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종국에는 플랫폼과 콘텐츠 생산자만 남게 된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아마존은 경제가 아니라 문화다
콘텐츠에 국한하자면 아마존이 진출한다는 건 한마디로 아마존의 수천만 종의 글로벌 콘텐츠로 구성된 아마존의 가상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이는 콘텐츠 생산자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세계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K팝과 드라마, 영화, TV 예능 등 한류의 수요가 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서 외연이 넓어지는 셈이다.
아마존의 궁극적인 목적은 4차산업혁명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는 것이다. 아마존의 오프라인서점인 아마존북스는 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 16개 서점이 있고, 연내에 200개 지점이 오픈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온오프라인, 모바일 등 다양한 채널에서의 쇼핑의 즐거움과 물리적 접촉을 원하는 소비자의 트렌드에 맞춘 것도 있지만, 아마존이 출시하는 각종 디바이스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서점의 또 다른 목적이 있다. 서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공간이 바로 킨들과 킨들파이어,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 동영상 스트리밍 장치인 아마존 파이어 TV 등 아마존의 각종 디바이스로 채워져, 이를 직접 사용해보고 구입할 수 있다. 디바이스는 사용자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마존북스가 이를테면 애플스토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아마존은 사용자들의 패턴을 인식해 이 데이터를 중심으로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한다.
구글이 그랬듯이 미국은 이미 업종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식료품 체인인 홀푸드마켓을 인수하고 무인점포를 내고 있는 아마존도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이렇다 보니 모든 업계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아마존의 진출은 단순 셈법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봐야 한다. 단순히 온라인 쇼핑몰 최강자가 오는 게 아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 가상세계 아마존 월드의 시민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기획회의 462호’(2018. 4. 20) 특집 ‘아마존의 진출’
‘기획회의’ 462호 특집 ‘아마존의 진출’ 차례
<국민일보> 3월 17일 자 「세계 1위 장난감 가게도 못 피한 '아마존의 저주’」에 따르면 “아마존은 현대 기업의 모든 규칙을 깨고 있다. 거의 모든 산업의 대기업들이 아마존이라는 한 회사로부터 전례 없는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어 아마존이 “온라인서점으로 처음 출발했을 때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정가의 40%까지 싸게 팔았다. 그리고 최첨단 물류창고를 지어 하루에 책 100만 상자를 배송했다. 고객들은 아마존의 빠른 배송에 중독됐고, 수많은 오프라인 서점들이 파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비단 미국 내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마존재팬의 경우 거래처에 매출액의 1%〜5%의 협력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동일한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아마존의 방침입니다. 전자상거래 시장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시장까지 집어삼키는 유통의 포식자 아마존이 한국에 들어온다면 출판계는 어떻게 변화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