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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지방 도깨비.
게시물ID : readers_315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ignuse
추천 : 4
조회수 : 36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4/27 18: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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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최근의 나는 매우 우울했다.


우울한 이들이 대개가 그러는 것처럼 나는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인생이란 제법 비참한 것이라 결론냈다.

나 같은 이들은 보통 다 그렇게 결론을 지을 것이다.


난 내 탄생에 대해 동의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무책임한 성장에도 동의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울한 이들의 대표가 되기로 했다.


술이 나를 마신 밤, 난 자연에게 찾아가 신생아의 동의없는 무책임한 출산에 대한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맨 땅을 향해 주장하는 내 일장연설에 땅은 무언으로 일관했다. 항상 이 녀석은 이런 식으로 건방졌다. 그러다 내 말이 귀찮았는지 땅이 나를 들이박았다. 명백한 폭력이였다.


경비대를 부르고 싶었으나, 난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다음날 아침, 정신을 차린 나는 숲지기 '말로'에게서 목재를 구입한다는 핑계로, 서쪽 수림 복판에 있는 그의 서식지를 찾았다.


그저 숲을 돌고, 먹고, 자는게 업무의 전부인 말로는 항상 겁많은 사슴 같았고, 그가 지내는 거처도 그의 성향이 정확히 반영된 곳이였다. 이곳은 지성을 가진 인간의 거처라기보단 짐승의 그것에 가까웠다.


그가 먹고 남긴건지, 배설한건지 구분하기 힘든 것들을 까치발을 하고선 피하며 그의 거처 앞에 다다랐다. 이 시간에 그는 순찰 중이지만, 괜한 마음에 나는 그를 불러보았다.


"말로 아저씨~, 혹시 댁에 계시나요?"


나는 그를 찾아보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곧장 그의 집 뒤로 돌아갔다. 그곳엔 항상 온갖 용도모를 공구들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최근 나의 고민을 해결해 줄 제법 괜찮은 '물건'도 있었다. 그건 해지고 낡았지만, 제 기능은 충분히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들고 말로의 서식지를 지나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


나는 루트에리아 왕국의 귀족 같은 거였다. 귀족이 아니라 귀족 같은 것이 무엇이냐면, 진짜 귀족의 혈기가 가끔 정실 너머로 애먼 곳에서 동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잠시의 부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개체다.


보통 나와 같은 이들을 묶어서 서자 또는 애비도 없는 귀족 놈이라고 불렀다.


이런 부류는 대개가 온순했다. 나 역시 그랬다. 온순하지 못하면 죽거나 버려졌다.


또 귀족 중엔 이런 온순함을 겸손과 선함이라고 착각하는 부류도 있었다. 금발의 그녀 역시 그랬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다. 정확히 나를 사랑한건지, 나의 이런 성향을 사랑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자의 여름이라 불리는 8월, 당시의 나는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온순함을 버리고 거친 반항을 하기로 결심했다.


유독 무더웠던 어느 밤 중, 나는 몰래 그녀의 방에 찾아가 그녀의 처녀를 쟁취했다. 서로간의 동의를 구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세상은 본인들의 동의까지 구하지 않은데 화가 난 듯 했다.


백작가의 집안은 온통 뒤집어졌고, 나의 존재와 안위에 대해 몹시도 궁금해 했다.


난 정신없이 남쪽으로 내달렸다. 죽기를 각오한 도주는 제법 빨랐다.


사실 그랬다. 난 이들에게서 멀어지면 누구보다 잘 살거라 자신했다. 백작가의 추적자들을 모두 뿌리치고 남쪽 어느마을의 목수 보조 생활을 시작할 때까지도 이 믿음은 굳건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무너지는건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가난의 비참함과 동기없는 삶은 귀족들의 등쌀보다도 매서웠던 것이다.



나는 적당한 곳의 적당한 나무 앞에 섰다. 가장 튼튼해 보이는 나뭇가지에 밧줄을 걸고 알맞게 매려고 노력했다. 처음 하는 시도이기에 쉽진 않았다. 나는 내 목의 두께를 여태껏 정확히 몰랐기에 치수를 재고 매듭을 묶는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얼추 준비가 끝날즘 뒤에서 반쯤 쉰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선 들려선 안 될 목소리였다.


"자네, 아직은 살아있는 것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난 재빠르게 죽었어야 했다.


내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을 때, 세상이 파랗게 빛났다. 아니, 그의 손이 빛났다.



내 두 팔은 한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방향으로 꺽였다. 내 몸에서 처음 듣는 소리가 났다. 듣기 싫은 소음이였다.


놀람을 표현할 시간도 없었다. 그 목소리는 다시 요술을 부렸고, 난 내 등을 처음 보게 되었다.


난 결국 죽음마저 타인에게 강탈당한 것이다.




세상은 몽롱하였다. 또 흐릿했으며, 눈뜨지 못한 갓난아이처럼 시계가 어두웠다.

난 눈을 비볐다. 그러자 세계가 점차 명확해 졌다. 힘겹게 두 눈의 초점도 맞췄다.


시야가 안정되자 처음 느낀 건 좌절감이였다. 그래, 아주 못된 좌절감이었다.


몽롱함이 가셨다. 하지만 여전히 기묘한 기분에 빠져있는 내게 노인이 말을 걸었다.


"너는 이미 죽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처럼 사망자는 들을 수도 없고, 사유할 수도 없다.

그러니 그가 시신이 된 나에게 내리는 사망선고는 불필요한 행위였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분명했다. 그의 눈은 내가 죽음을 인지했는지 묻는 듯 했다.

어이없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닥 웃기지 않았다.


난 이미 죽었지만 분명 그의 사망선고를 들었고, 또한 그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유사이래 본인의 사망 선고를 직접 듣게 된 사망자가 되었다.




나는 다섯보정도 떨어진 곳의 '나'를 관찰했다. 이건 제법 희귀한 장면일 것이다.


"그렇네요. 목의 꺽임을 보아하니, 경추까지 이미 뒤틀어진거 같고.. 오, 팔의 떨림 보이세요? 저게 바로 사후경직 같은건가 봐요."


나는 '나였던 대상'을 보며 감탄했다.


"... 무덤덤한 자세는 맞이한 현실에 대한 방어기제인가, 생전의 대범함인가?"


나는 그의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전자가 아닐까요?"


"... 이성적인 판단을 보아하니 후자에 가깝겠군. 좋다. 궁지에 몰려 던진 패가 묘수가 됐군."


그가 쓰고있던 후드를 벗었다. 꾀죄죄한 몰골의 노인의 모습이였다. 언제 씻은지 알기 힘들 정도로 머리는 떡져 대충 넘긴 모양새였고, 수염은 완전히 질서잃은 무법지대였다.


왠지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코를 막았다. 그런데 냄새를 맡을 수 있는건가?


"웃긴 놈이로군.."


코를 막는 시늉을 하는 나를 보며 그가 혀를 찼다.


"비루한 목수였던 본인의 천한 눈으로도 당신의 형상은 제법 자극적이네요. 도대체 마지막으로 씻은게 언제입니까?"


"죽은 놈과 위생문제에 대해 논하고 싶진 않다."


그는 힘든지 주변의 평평한 바위를 찾은 후, 대충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하루하루를 떼우며 살아가는 목수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나름의 속 사정이 있나보구만."


모든걸 알고 있단 듯 뱉어내는 그의 말에 배알이 꼴렸다.


"관상도 보십니까? 죽은 저의 관상은 어떤가요? 장가는 갈 수 있습니까?"


내가 던진 조롱에 그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끈을 매어 여태 끌고 온 듯한 관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죽인 살인자의 눈빛이 제법 애처로웠다.


난 노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테라렌스 가에서 오셨소?"


"..무슨 소리냐?"


노인은 그녀의 집안 사람은 아닌 듯 했다. 난 죽임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럼 날 왜 죽인거요?"


"... 영혼이 필요했다. 다행히 넌 제법 괜찮은 대상이다. 현재도 앤트로피가 굉장히 안정적이다."


목가적인 정원 생활에 머리가 굳은 걸까? 난 도대체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아무래도 나를 당신과 동등한 지성을 가진 대상으로 판단하고 계신가 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전 그냥 목수에요. 그저 제가 알고 싶은건 내 죽음의 사유입니다.."


나는 그의 대답을 코를 파며 기다렸다. 코 속의 이물질까지 재현되는지 궁금했다. 그가 일어섰다.


"자, 이제 나는 천국으로 갑니까?"


언제부터 내 물음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는 말없이 관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품에서 연장을 꺼내 관짝에 박힌 못을 뽑았다. 늙은 그는 힘이 없는지 작업에 한참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내 관뚜껑이 열렸다. 관 안으로 시신이 보였다. 내가 첫 살인이 아닌가 보다.


".. 들어가라."


"나요? 아니면.. 쟤요?"


나는 나를 한번 가르키고, 또 예전의 나를 가르켰다. 그는 전자의 나를 향해 손가락을 폈다.


"..너다."


"음.. 일단 미리 들어있던 동행에게 양해부터 구해야 되지 않을까요?"


"..이제 '그'가 너다."


"아까부터 드린 말씀이지만, 전 목수입니다. 마법사인 당신이 하는 애기를 전부 이해하기 힘듭니다만.."


".. 관 속의 대상에게 접촉해라. 그는 영혼없는 껍데기다. 하지만 네가 들어간다면, 진정한 '그'로 깨어날 수 있지."


나는 영 찝찝했다.


"제가 저기로 들어가면, 그는 '나'인가요? 아니면 나란 인격은 소멸되나요?"


".. 아마 너로서 행동할 확률이 높다."


나를 포기하고 그로서 살아가지만, 나로서 존재할 수도 있다. 어려운 말이였다. 살아있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언어에 죽은자가 끼어드니, 말을 말처럼 하기 힘들었다.


"흠.. 고민되는군요."


그의 제안은 재밌는 구석이 있었지만, 살인자의 말을 마냥 따르는건 조금 거북했다.


"고민? 그럴 여지가 있는 것이냐? 지금 영혼만 빠져나온 너는 나로 인해 존재하는거다. 하지만 지금 나를 보아라. 얼마나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내가 죽으면, 지금 네가 사유하는 모든 기억과 지켜왔던 사회적 규범들, 언어까지 하나씩 천천히 잃어버릴 것이다. 모든 기억을 잃은 네가, 너로서 존재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


".. 그건 매우 곤란하군요."


"또, 넌 '탄생'을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거다."


눈이 번쩍 띄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관 속에 들어있는 것을 들여다 봤다. 그 안엔 있는 건 나체의 젊은 남성이였다. 홀린 듯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늦은 나이에 주책맞은 취미입니다. 어릴때보던 판타지 소설을 언젠가 연재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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