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한국 갔을 때, 벗님은 굳이 저를 필동면옥으로 데리고 갔다지요. 우리에게 냉면은 참 정겹고 흔한 음식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굉장히 고급부터 평범한 것들까지 스펙트럼이 엄청 넓은 음식이기도 합니다. 냉면집이라고 하면 저렴하게 국수로 한 끼를 때우는 집부터 기생들이 가무를 하며 흥을 돋워주는 곳까지, 많은 곳들을 생각할 수 있지요. 아마 문재인 대통령은 실향민으로서 냉면의 맛을 제대로 알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옥류관 냉면을 맛보고 싶다고 말한 것도 있겠지만, 그것은 인사치레였을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냉면을 만들어주겠다고 제면기를 판문각으로 가져오겠다는 결정을 한 북한도 이번 회담에 공을 많이 쏟고 있는 것이지요. 실향민들이 전쟁의 참화를 피해 이남으로 내려와 결국 남단의 항구 도시 부산에 정착하게 됐을 때, 그들은 메밀을 구하기 힘들어 밀가루로 면을 만들어 냉면의 새로운 바리에이션을 만들었으니 그게 밀면이라는 거겠지요. 전분이 잔뜩 들어간 쫄면도 냉면의 한 바리에이션이겠지요. 도대체 냉면이 왜 특별한 음식이지? 미국의 CNN 방송은 그래서 미국에서 셰프로 변신한 왕년의 가수 이지연씨를 스튜디오에 불렀던 모양입니다. 뉴스 프로그램 생방송 중 냉면을 먹는 진행자의 모습이 방송을 탔습니다. 냉면에 어린 애환, 그것을 그들이 어떻게 다 이해하겠습니까. 우리는 '국수'라고 할 때 뜨겁던 차갑던 간에 먼저 그 면발을 생각합니다. 젓가락으로 건져올리는 그 풍성한 면발을.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이것은 '누들 수프' 입니다. 누들, 즉 국수는 장식이고 이것은 어쨌든 저들에겐 '수프' 인 겁니다. 우리와 음식을 바라보는 관점조차 다른 사람들이 우리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거기에 숨겨진 정치적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서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정치적 의미가 아닌, 그저 동질성을, 우리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정서를 가진 '사람들'임을 확인하는 것일 뿐입니다. 서로 너무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고, 너무 오랫동안 적대시해 왔던 같은 민족이 다시 만나야 한다는 당위성을 확인하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은 냉면 먹기엔 늦었네요. 내일은 저도 냉면 먹고 싶습니다. 남쪽에 살아도, 북쪽에 살아도, 그리고 그 땅을 멀리 떠나 있어도. 냉면은 그런 의미일겝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