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소설 제4화>
그해 무덥던 여름
윤호정
열여덟 번째 맞이한 바람한 점 없는 여름날 오후, 울 넘어 미루나무 가로수에는 ‘못살겠다 갈아보자 80노인 못믿겠다’ 와 ‘갈아봤자 별수없다 구관이 명관이다’ 라는 두 현수막이 오늘따라 다정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으나 동네친구들은 한 놈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광수의 ‘유정’을 두 번째 읽어보니 이건 소금 없이 먹는 삶은 계란 맛이라 밀쳐놓고는 벌렁 드러누워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똑똑’ 돌담을 돌로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담장위로 누리끼리한 양푼이 와 무명홑적삼아래 햇볕에 그을린 거무스름한 팔뚝이 보였다.
보나마나 정임이가 분명하여 얼른 그릇을 받아보니 ‘포항가는 막차시간에 맞춰 참새미 갈대밭으로 나오라’ 는 쪽지와 함께 개구리참외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나는 '동백꽃' 의 점순이를 떠올리며 오늘은 기어코 내가 먼저 이 가시나를 안고 갈대밭에 쓰러지리라 맘먹고 대청에 걸린 괘종시계를 보니 벌써 다섯 시가 지나고 있었다.
정임이는 나보다 두 살 위로 한 골목에서 자라며 국민(초등)학교 6년을 한반에 있었고 무남독녀에 얼굴이 반반하고 붙임성도 있었으나 푸줏간에서 일하는 주정뱅이 아버지 탓에 찢어지는 가난을 면치 못하고 과수원집의 부엌일이나 밭일을 거들며 어렵게 살고 있었다.
갈대밭의 모기떼를 피해 기적소리를 뒤로하며 물도리 모래밭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오늘은 왠지 그녀답지 않게 말 한마디 없이 먼 하늘의 별만 쳐다보다가 꺼질듯 한 한숨을 내쉬더니 얼굴을 감싸 쥐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몰라 그저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정임아 왜 그래, 왜 그래?’ 만 연발하며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한참이나 울고 나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과수원집 주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던 아버지가 나하고는 한마디 의논도 없이 빚을 탕감해주고 나락이 한참 자라고 있는 논 다섯 마지기를 통째로 받는 조건으로 소아마비를 앓은 그 집 맏아들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약조를 해버렸다’ 는 것이었다.
나는 어안이 막혀 아무 생각 없이 여울목에 떨어지는 물소리만 듣고 있으니 “가만있지만 말고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네가 서울유학을 떠나면 다시보기 어려울 것이고 어차피 너와 혼인을 못할 바에는 친정집이라도 살려야 되지 않겠니?” 하며 나의 동의를 구하는 듯 했다.
또 ‘이젠 가난도 몸서리가 난다며 내 눈치를 보는 엄마의 눈길을 외면할 수 없다’ 고도 했다.
내가 여전히 말이 없자 “오늘밤이 마지막이야, 대학 나온 예쁜 서울색시 얻어 행복하게 잘 살아” 하고는 나를 어린애처럼 무릎위에 안고 물 내나는 옥양목저고리의 앞섶을 풀어헤치더니 내손을 당겨 젖무덤위에 올려놓고는 바지춤 속으로 손을 쑥 밀어 넣는 것이었다.
나는 떡 먹고 언덕에서 굴러 떨어진 놈처럼 멍하니 정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여름밤의 느끼한 열기가 가신 후 정임이가 옷매무새를 고치며 일어서자 나는 울지 않으려고 그녀의 가무잡잡한 얼굴을 가슴에 새기며 밤하늘에다 대고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하고 이별의 노래를 불렀으며 그날이후로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않았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뒤 당숙의 장례식에 참석한 내게 ‘정임의 절름발이신랑은 오토바이 사고로 일찍 죽고 그 유복자가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크게 잔치를 했다’ 는 풍문이 들려왔다.
※ 스폰소설: 지하철 한 정거장 가는 사이에 스마트폰으로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