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햇볕이 좋은 어느 오후였다. 학생식당에서 우연히 점심을 함께 먹던 친구가 밥을 많이 남겼다. 여기서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야, 밥 더 먹어."
"그만 먹을래."
"반찬이 모자라서 그래."
"내 반찬 더 줄게."
"싫어."
'서클 범생이'기질이 발동한 탓으로 나는 기어코 썰렁한 훈계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해야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공부 잘하던 그 친구는 곧바로 카운터 펀치를 날렸고 무식한 나는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다.
"농민들을 위한다면 나처럼 해야 돼."
"무슨 소리야?"
"농민들이 잘 살려면 쌀값이 올라야지?"
"그렇지!"
"쌀값이 오르려면 수요가 늘어야지?"
"맞아!"
"수요가 증가하려면 소비가 늘어야지?"
"그래서?"
"나처럼 하는 사람이 많아야 소비가 늘 거 아니냐 그말이야!"
기분은 나쁘지만 논리적으로는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냥 끝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밥을 그렇게 버리는거야?"
"아니, 그건 아니구..."
"그럼?
"미시적으로 보면 나한테 밥의 한계효용이 지금 제로가 되었거든. 여기서 더 먹으면 한계효용이 마이너스로 간다구. 그만 먹는 게 나로서는 합리적인 행동이야."
논리로는 도저히 그 친구를 대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먹으로라도 열세를 만회해 보려고 했다. 육탄전 일보 직전까지 갔던 그날의 작은 소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다른 친구들의 현명한 예방조처 덕분에 그 정도로 끝이 났다. 내가 내린 그 날의 결론은 이랬다. "경제학을 공부하면 인간성이 나빠진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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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유시민의 경제학카페
결론 : 문과 망했으면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