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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번지의 비밀 9
게시물ID : panic_982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행복한오징어
추천 : 25
조회수 : 171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4/16 17: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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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인을 만나기 얼마전 나는 대규모 전투에 투입되었지.

우린 베트콩들에게 복수를 하기로 한거야.


베트콩의 본거지로 알려진 텅지앙을 공격하기로 한거지.

보병이 투입되기도 전에 그 곳에 수 백발의 포탄 세례를 퍼부었다네.

복수심에 불탄 우리는 그들에게 본 때를 보여주자며, 거의 광기에 가까운 학살을 저질렀지.

부대원의 3분의 1이 민간인처럼 보이는 베트콩들에 살해당했는데 눈에 보이는게 있었겠나?


그 전투의 구호가 뭐였냐면...'깨끗이 죽이고, 깨끗이 불태우고, 깨끗이 파괴한다' 였다네.

구호만 들어도 얼마나 잔인한 살육이 벌어질 것인지 알 수가 있었지.

1969년 말이었을 거야. 

나는 거기서 정말로 악마가 되었다네."



그는 과거의 암울했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텅지앙에 도착했을 때, 이미 포탄 세례로 많은 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되어 있었지.

그 곳이 베트콩의 본거지라고 생각이 들자 살아 남아있는 건 모조리 죽였어.

하나도 남김없이.

어른, 아이, 남자, 여자, 젊은이, 노인....심지어 거기있는 가축들까지....

그 때는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어.

그냥 우리 동네를 위협하는 지저분하고 사나운 야생동물을 소탕하는 것처럼 느껴졌었지.


어렸을 적 이유없이 곤충같은 걸 죽여본 적 있지 않나?

꼬리도 잘라보고, 날개도 떼어보고, 불에 태워보기도 하고, 터뜨려보기도 하고....

뭐가 그렇게 궁금했는지 모르지만 그러면서 뭔가 쾌감을 느끼지 않았나?


그 날 텅지앙에서 우리도 별 반 다르지 않았다네.


총을 쏘아 죽이면 확인한다고 목을 잘라냈어.

총에 맞아 신음하는 사람의 복부에 대검을 꽂았지.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절룩거리며 도망가는 여자를 산 채로 불구덩이에 밀어 넣었어. 

어떤 아이는 목을 꺾어 죽였고, 한 아이의 몸을 들어올려 나무에 던져 숨지게 한 뒤 불에 태워 죽였어"


그의 서로 꽉 잡은 그의 두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다들 미쳤어.

왜 죽이는지 이유도 모르는 것 같았지.

오로지 죽이는게 목표였어.

머리는 광기로 사로 잡혀 있었고, 눈은 살기로 가득했지.


그 피비린내나는 학살이 무려 일주일 넘게 지속되었다네.

마을 사람들을 모두 끌어내 몇 그룹으로 나눈 뒤 기관총으로 몰살시키기도 했고,

한 집에 몰아넣고 총을 난사한 뒤 집과 함께 죽은 자와 산 자를 통째로 불태우기도 했다네.

아이들의 머리를 깨뜨리거나 목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거나 사지를 절단해서 불에 던져넣기도 하고, 

여성들을 돌아가며 강간한 뒤 살해하고, 임산부의 배를 태아가 빠져나올 때까지 군화발로 짓밟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네.


천명이 넘게 죽었다네.

그 날 전투가 끝나면 옷이 땀에 젖어야 했지만, 우리는 온통 피에 젖은 옷을 입고 있었지. 

너무 많이 죽였어.

너무나도 많이...그것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만큼 잔혹하게...

지옥은 멀리 있는게 아니었어. 

그 당시 텅지앙은 지옥이었고, 우리는 지옥에 내려온 악마였지."



그의 눈이 촉촉히 젖어오는 듯 보였다.



"부대에 복귀했을 대 상부에선 우리의 용맹함을 칭찬하고 훈장을 수여했지.

그러나 그 때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던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었어.

우리의 행동은 용맹함과는 거리가 멀었지.


그러던 어느 날........

그 지역을 남김없이 쓸어버린 후 며칠 지나 부대 내에 이상한 소문이 나도는 거야.

실제론 그 지역에 실제 베트콩이라 부르는 베트남민족해방전선 대원들은 별로 없었다는거야.

게다가 괴기한 소문까지 나돌았는데, 집으로 돌아온 대원들이 죽은 가족들의 피를 모아 나누어 마셨다더군.

죽어서까지 우리를 좇아가 죽일 것을 다짐했다는거야.

퍼뜨리면 처벌을 할것이라는 상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 소문은 부대 전체에 삽시간에 퍼져 버렸어. 

부대에 미묘한 기운이 흘렀지.

우리보다 더 한 광기에 사로잡힌 그들에게 피의 보복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던거야.


사실 미군들도 국내여론 때문에 서서히 베트남에서 발을 빼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거든.

토사구팽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네.

전쟁은 그들이 일으켜 놓고 우릴 부려먹은 다음, 뒤치닥거리는 우리가 하게 된 꼴이지.

다시 한번 우리의 용맹함을 보여주자고 모두들 자신있게 외쳤지만, 사실 다들 알고 있었지.

자신들이 죽인 것은 무장한 베트콩이 아닌 베트콩 지역의 양민들이었다고.


정신질환을 앓는 병사들도 생겼어.

한 밤중에 자살소동을 벌이는 친구도 있었고, 실제로 자살한 친구도 있었다네.

그들의 핏물이 빠지지 않는다면서 피부가 벗겨져 나가도록 수세미로 맨살을 미는 병사도 있었지.

서로 입을 다물고는 있었지만 이미 부대원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네.


그 때 부대에서 생각해 낸 것이 연예인 위문 공연이었다네.

사이공에서 열렸었는데, 많은 군인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했지.

어쩌면 그 중의 어떤 이에겐 최후의 만찬이 될 수도 있는 축제였지.


공연은 끝났어.

많은 이들이 여자 가수의 잘 빠진 몸매와 풍만한 가슴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걱정부터 앞섰지.

곧 텅지앙에 인접한 퀴년시 전투에 투입될 예정이었거든.


해가 너울너울 기울 쯤 부대로 복귀하는 때였어.

부대 차량이 늦어져서 우린 잠시 시내를 둘러보고 있었다네.

그 때 어느 허름한 판자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온갖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을 내놓고 파는 가게였어.

산더미 같은 물건 속에서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백발을 어깨까지 내린 노인이 하얀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유심히 쳐다보더라구.


나도 그 노인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같이 길을 걷던 부대원들 틈에서 이탈하여 이끌리 듯 그 노인에게 다가갔다네.

가까이 가서야 나는 그가 백내장 환자임을 알게 되었지.

하얀 눈동자의 초점을 나에게 맞추더니 그가 묻더군.

따이한이냐고.

북적거리는 그 사람들 틈에서 그가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나를 어떻게 알아봤는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구.

내가 맞다고 했더니, 그 노인은 몇 개 남지도 않은 이빨을 드러내 미소를 보내며 무슨 부적 같은 것을 내게 건네더라구.


자신은 사람의 목숨을 움직이는 흑마술을 알고 있다는거야.

그러면서 이 부적과 자신이 가르쳐주는 주문을 외우면 죽음을 피해갈 수 있다고 했지.

그것을 나에게 사라고 권유하는거야.

나는 손을 가로 저으면서 그런게 어딨냐고 거절했지.

그런데 내가 돌아서려는 순간 그 노인에 내게 충격적인 말을 하는거야.


내가 퀴년시에서 죽을 운명이라는거야.

난 심장이 멎는 듯 했네.

우리의 극비사항을 알고 있다는 건 둘째치고, 그의 음성이 너무나도 다부지고 매서웠지.

나는 다시 노인을 향해 돌아서서 물었지.

왜 그것을 하필 나에게 파냐고.


그랬더니 그 노인은 자신의 흑마술이 가장 잘 통할 것 같은 사람을 찾았다고 하더군.

두려움과 공포가 몸에 배어있으며,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사람이라는거야.

자신은 느낄 수 있다는거야.


노인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지.

난 사겠다고 했어.

악마의 힘처럼 그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어. 

나는 노인을 따라 들어가 좁은 오두막 같은 집으로 안내되었다네.


오두막에는 무슨 알 수없는 연기 같은 걸로 가득했지.

비릿한 무슨 냄새 같은 것도 나는 것 같았고.

나를 자리엔 앉힌 노인은 나뭇가지 같은 걸로 만든 채를 들고 나를 이리저리 쓸더라구.

나는 그 노인에게 여러가지 주술의식을 받았지.

주술의식이 끝날 쯤 노인이 나에게 어떤 주문을 반복해서 알려 주었지.

그러면서 위험이 닥쳤을 때 이 부적을 꺼내 주문을 외우라고 하더군.

내가 그 오두막을 나가려고 하자, 노인이 다시 나를 불렀어.


'이보게 따이한...세상엔 공짜가 없다네.'이러더라구.


나는 그 말이 돈을 달라는 뜻인 줄 알고 주머니에 있던 돈 몇 푼을 그에게 내밀었지.

그러자 그 노인은 돈을 거절하며, 그 몇 개 안 남은 이빨을 다시 드러내더니......

앞으로 빚은 천천히 갚게 될거라는 말을 하더군.


돌아오는 길에 정신을 차리고 그 노인을 생각해보니 너무 묘한 기분이 들더군,

내가 무슨 짓을 했나하는 생각도 들고...



그 후 한 달 뒤 우리는 다시 가까운 퀴년시 외곽 전투에 참가했지.

열대성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네.

그 날 따라 우리는 의외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앞으로 전진했지.

이상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전의 우리의 명성 때문에 그들이 우리와 직접적인 교전을 피하려 한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그 건 오산이었어. 함정이었어. 

베트공들의 게릴라 전술이었던거야.

그들의 게릴라 전술에 말려 나를 포함한 중대원들이 고립되어 버렸다네.

장대비가 쏟아지는 정글 속에서 전진을 한게 큰 실수였어.


총탄은 거의 떨어져 가는데 사방에 수백이 될지, 수천이 될지 모르는 베트공이 깔려 있었다네.

통신은 두절되었고, 지원군은 없었다네.

어두운 정글 속에서 원숭이 울음소리처럼 끽끽대며 조금씩 다가오는 그들에게 우리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

그러나 하나둘씩 죽어갔어.

온몸에 총탄구멍이 난 채 사지가 너덜거리며 죽어가는 동료를 보면서 나는 광기에 가까운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지.

3개 소대는 이미 전멸되어 시체는 이미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 소대는 본대와 연락이 두절된 채 

그들에게 완전 포위 당해 버렸지.

채 십분이 지나기도 전에 나는 수많은 시체더미에서 오직 홀로 살아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네.


짙은 먹구름 아래로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하는거야.

몇 시간 동안 전투를 했는지도 모르게 벌써 밤으로 접어드는거야.

나는 죽은 동료의 시체로 몸을 덮었지.

시체에서 쏟아지는 피가 빗물과 섞여 내 얼굴 뒤덮었다네.

그것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 문제가 될 상황이 아니었어.


여기저기서 가까이 접근하는 베트공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거든....

확인 사살을 하는지 중간중간 총소리가 끊이질 않았지.

목숨을 구걸하고 싶었다네.

어떡해서든...

베트콩들은 나의 구걸을 받아주지 않을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때 나는 그 노인이 준 그 부적을 꺼내고는 주문을 읊었다네.

미친 듯이....숨을 죽여가며 최대한 작은 소리로..."


그들이 다가왔어.

여기저기서 칼로 찌르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지.


내 배 위에 얹어진 시체를 밟고 지나가는 베트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소리라도 낼 까봐 입을 손으로 틀어 막았다네.

혹시나 탄로 날까봐 숨쉬는 것조차 멈추려 했지.

그 순간만큼은 차라리 고통없이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네.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했어.

베트남 말이 아니었어.

괴물 소리처럼 꾸엑구엑 대는거야. 

나는 그들의 불쾌한 소리가 너무나도 소름끼쳤지.

그래서 나는 내 몸 위에 올려진 시체들 틈 사이로 그들을 올려다 봤지.

그런데 어둑어둑한 배경 사이로, 부릅 뜬 내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목격되었다네.

시체를 밟고 지나가는 그들은 베트공이 아니었어."



"예?"



"아군 복장을 하고 있었다네.

그렇다고 아군도 아니었어.

천천히 걸으면서 여기저기를 대검 같은 것으로 쑤셔보더라구.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어.

대검으로 쑤시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긴 손가락에 자라난 맹수의 발톱같은 손톱이었던거야.

꾸엑꾸엑거리며 계속 여지저기를 훑고 다니는거야.

그런데 그 순간 내 위를 지나던 그 정체 모를 병사와 눈이 마주친거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 병사의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입을 틀어막았지.

붉은색 눈을 하고, 송곳니가 턱까지 내려와 있었네.

얼굴에 수십차례 칼질을 해 놓은 것처럼 피부는 너덜거렸고, 입에서는 핏물이 토하듯이 쏟아져 나왔지.

이글거리는 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병사가 나의 존재를 확인했는지.....

갑자기 괴물같은 그 손을 들어올리더니 나를 향해 꽂았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기억도 안났다네.

여기 저기서 한국말이 들리고 나서야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걸 알 수 있었다네.

노인의 말대로 나는 그 부적과 주문으로 죽음을 피해갔지. 


지옥의 전장에서 살아나온 병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만큼 긴 잠을 자고 난 기분처럼 왠지 모를 기운이 몸에서 솟아나더라구.

지난 모든 일들이 한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네.

얼마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네.

한국으로 가기 전에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있었지.

그 노인의 가게 말야.

사이공에 가서 다시 그 집을 찾아 나섰다네

그런데 노인은 없었어.

가게 주인에게 수차례 노인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그런 사람은 여기에 없다는거야.

나는 가게 뒤로 돌아가 그 오두막을 찾았지.

생선이나 고깃국을 끓이는 야외 취사 장소였어.

오두막 같은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어.

그 노인은 망령이었어."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죽은 자에게 목숨을 구걸한거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 노인의 소름끼치는 말이 떠오르더군.

빚을 천천히 갚게 될거라는 그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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