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경을 쓰기 시작한건 중학교 3학년때다
키도 작은 주제에 교실 맨뒷자리를 배정받아서 친구들의 높은 등짝을
이리저리 피하다 칠판을 보는데 원래는 뚜렷하게 보였던 글자들이 어느순간
흐물흐물해지더니 더이상 필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되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난 그런상황에서 선생님께 당당히 앞자리로 옮겨달라고 말을 못하는
쫄보에 소심쟁이였기 때문에 선생님대신 엄마한테 가서 안경을 맞춰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교실에 안경쓴 친구가 별로 없어서 내딴에는 안경장착으로
인한 약간의 관심과 조금의 특별함을 누리고 싶었던거 같다.
이유가 어쨌든 난 안경을 쓰기 시작했고 안경을 씀과 동시에 내 시력은 고공낙하를 시작했다.
그렇게 안경을 내 신체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생활하는게 익숙해질 때쯤 난 대학교에 들어갔고
교수님의 칠판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여인들의 화장기있는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라보기 시작한건 수많은 여학우들인데 바라보면 바라볼 수 록 잘보이는건 여인들이 아닌
거울속에 찐따 같은 내모습이었다.
키도작은 놈이 얼굴에 반정도 되는 검정 뿔테안경까지 쓰고있으니 그 어느 여자가
봉사하러 온것도 아닌데 나한테 다가올 수 있었을까.
그런상황에서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찾은게 일회용렌즈였다.
사실 당시 나한테 렌즈는 여자들이 이뻐보이려고 끼는거지 사내대장부가 멋부리려고
눈을 이따시만큼 벌린채 렌즈를 넣는 그 모습이 너무 바보처럼 느껴졌지만 그런느낌보다는
나한테 말한마디 건네주는 여학우들이 더 소중했기 때문에 렌즈를 샀고 내 신체의 일부였던
안경과는 조금 멀리 떨어질 수 있었다.
렌즈는 시작이었다.
렌즈를 끼고 외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머리스타일부터 칙칙한 머리색깔 그리고
캠퍼스의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옷스타일들을 하나하나 바꾸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내 인기는 급상승하기 시작했다..........는 개뿔 똑같았다.
남자는 역시 키가 짱이라는걸 느낀 소중한 경험이었다.
일회용렌즈살 돈으로 술이나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