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에서 작가는 서울에서 '자유와 합리'에 길들여졌던 한병태를 엄석대가 어떻게 다시 길들이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번 회에서 가장 주목할 표현은 53페이지에 나오는 '합법적'이라는 단어입니다.
한병태가 엄석대를 공격할 때 온갖 비열한 방법을 다 동원했던 것과 달리, 엄석대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만 한병태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이번 회에서 한병태는 찌질함의 끝을 보여 줍니다.
자기 싸움에 부모님을 끌어들이는 것이죠.
여기서 한병태의 아버지가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힘이 모자라면 돌도 있고 막대기도 있잖아? 그보다 공부부터 이겨 놓고 봐, 그래도 아이들이 안 따르나."
이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단 권력만 잡아 봐, 그래도 대중들이 안 따르나."
그리고 보다 못한 한병태의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 가지만 오히려 엄석대에게 설득되어 돌아 옵니다.
이 날 어머니가 엄석대와 1시간 정도 만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한 시간 만에 어머니는 자신이 13년간 키운 아들보다도 엄석대를 더 믿게 됩니다.
이렇게 이 소설에서 엄석대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모습을 계속 보여 줍니다.
60페이지에서의 엄석대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봅시다.
멱을 감은 직후에 석양을 받고 서 있습니다.
채 마르지 못한 물방울들이 햇빛을 반사해서 그는 빛에 둘러 싸이게 됩니다.
그런 엄석대의 모습에서 한병태는 종교적인 감동을 받게 되고 '자비스러워 뵈기까지 하는 얼굴'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엄석대는 미소 띈 얼굴로 한병태를 용서해 줍니다.
즉, 엄석대가 그 동안 사용한 '폭력'은 한병태를 '포용'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는 후반부에서 '6학년 담임'이 사용한 폭력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몇 장면에서 '엄석대'란 캐릭터(혹은 엄석대가 상징하는 '전두환')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52페이지의 '옆반에 새로 석대보다 더 크고 힘센 아이가 전학와서...'라는 부분을 예로 들어 보죠.
이야기의 전개상 한 전학생이 엄석대에게 도전했다가 깨지고, 그 기회에 엄석대에게 항복하려던 한병태의 계획은 실패합니다.
여기서 작가는 굳이 상대방을 '석대보다 더 크고 힘센 아이'라고 설정합니다.
엄석대보다 더 크고 힘이 센데 어떻게 엄석대가 이길 수 있죠?
유리창을 다 닦은 한병태가 엄석대의 검사를 받으러 가는 장면도 한 번 살펴 보죠.
여기서도 '엄석대가 하던 축구를 멈추고 검사를 하러 갔다'라고만 해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굳이 '석대 편이 몇 명을 접어 주지만 그래도 언제나 석대 편이 우세한 그런 축구 시합'이라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처럼 작가는 작은 부분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엄석대를 치켜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