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소설 제3화>
요시다 시게루
윤호정
6.25전쟁이 한창이던 국민(초등)학교 4학년시절 우리는 무덥고 긴 여름방학동안 금호강변에서 발가벗은 체 발을 맞춰가며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아~ 이슬같이 죽겠노라’하고 군가를 부르거나 씨름을 하며 하루해를 보내곤 했다.
이때 언제나 우리의 대장은 일본에서 귀국한 요시다 시게루였고 당시 2차 대전에서 패한 일본을 부흥시킨 전설적인 수상인 요시다시게루(吉田茂)와 이름이 똑같아 우리는 그의 본명인 정영태 대신 요시다 혹은 시게루라는 일본식이름을 더 즐겨 불렀다.
그는 우리보다 세 살이나 더 많았고 홍수 때 떠내려 오는 돼지를 건지거나 서울서 피난 온 6학년 덩치와 맞장을 떠 이기기도한 우리의 우상이었으며 여선생님이 하숙집에서 목물하는 광경을 판자문의 관솔구멍으로 들여다보다가 들켜 퇴학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도 들여다 본 사람은 자기뿐이었다며 나를 구해준 의인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영천군체육대회에서 4백미터계주의 마지막주자로 나와 앞서 달리는 타교의 6학년들을 제치고 1등으로 들어와 우리를 열광시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4학년이나 되었는데도 한글을 잘 읽지 못했고 구구단외우기도 어설펐으며 찢어지는 가난으로 깡통을 들고 밥을 얻으러 다니기도 했고 아버지가 호열자(콜레라)로 죽자, 관을 마련할 형편이 안 돼 멍석말이를 하여 묻고부터는 그의 어머니택호가 호열댁이 되고 말았다.
호열댁은 손님과 대면하지 않고 부엌에서 술상만 방으로 넣어주는 내외술집을 하면서 처녀티가 날락 말락 하는 시게루의 누나와 셋이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녀석이 교문에 들어서니 개 두 마리가 흘레붙어 있었는데 1학년짜리가,
“형, 형, 개들이 와 저카고 있는데?”하고 물으니,
“나는 잘 모린다, 저~기 교장 선새임 오시네, 교장샘께 물어봐라.”
“교장샘요, 개가 와 저캅니꺼?”
“응, 저거는 개들이 운동한다고 줄 당기기 하고 있는 거 아이가” 하고는 교장실로 들어가 버리자 녀석은 그길로 바로 집으로 돌아와 책 보따리를 내팽개치며,
“엄마, 나는 인자 학교 안 댕길란다.”
“와, 월사금 안냈다고 선상님한테 매 맞았나?”
“그기 아이고, 교장이라 카는 기 개 흘레붙는 것도 모리고 줄땡기기 한다 카는데 배울기 뭐 가 있겠노, 인자 다시는 학교 안 간다.”
하여튼 녀석은 이런 놈이었다.
그는 초등학교졸업 후 대구북성로의 중국음식점보이가 되어 고향을 떠난 뒤 팔순이 다된 지금은 향촌동어깨들의 상왕으로, 대구사교춤계의 대부로, 불량황혼클럽의 회장으로 불리며 나를 교수님, 박사님 하며 젊은 아지매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나는 여상을 나온 그의 딸을 데리고 있었고, 풍류객에 걸 맞는 금향(琴香)이라는 아호도 지어줬으며 술이 고플 때는 언제나 전화한통이면 꼭 여자까지 끼워 주지육림으로 초대해준다.
“여보게 시게루, 자네와 난 친구야 친구, 이 좋은 세상, 우리 불량황혼을 더 즐기다가 한날한시에 함께 가세나.”
※ 스폰소설: 지하철 한 정거장 가는 사이에 스마트폰으로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