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소설 2화>
백팔방 여사
윤호정
“회장님, 지난번 문학교실에서 그만큼 칭찬을 받았으면 오늘은 당연히 떡을 해와야지요.”
아차, 이 불문율을 깜빡 잊고 있었던 나는 “화원장 떡집 아지매가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나한테는 떡을 못 팔겠다고 해서 그냥 빈손으로 왔습니다.” 하고 능청을 떨었다.
“와요, 무슨 이유로요?”
“60넘은 사람은 줘도 못 묵는다고 아예 안 판다 캅디다.”
“그라마 쉰아홉이라 카지 와, 어느 년이 새신랑 같은 우리회장님을 60이 넘었다 카노, 당장 찾아가서 대가리를 확 조 뜯었뿔라 마.”
“내가 오팔년 개띠라고 몇 번이나 켔는데도 암만 봐도 환갑, 진갑 다 지난 것 같다 카매 안 팔라 카는데야 우야겠노.”
“무슨 옷을 입고 갔디노, 문디같은 잠바에 작대기까지 짚고 간 거는 아이가?”
“뭐라카노, 내 딴엔 멋을 낸다고 도리우찌모자 쓰고 백바지에 야자수남방을 입고 갔는데....”
“하이고 머리야, 그거는 7, 80년대 패션아이가, 내가 뭐라카드노, 낡은 청바지에 영어 쓰인 티샤쓰 입고 뉴욕양키즈 야구모자 쓰고 댕기라 켔잖아.”
“경로우대권 살 때마다 주민등록증 보자 케사 그 짓도 못 하겠더라.”
“그만한 고생도 안하고 이 험한 세상을 우예 살아갈라카노, 그래가 우사만 실컨 하고 쫓기나왔나?”
“내가 누군데 그냥 쫓기 나오겠노, ‘아지매요, 아지매는 신문도 테래비도 안 보능교, 콩나물시루가 암만 비잡아도 그중에는 눕어 크는 놈이 있다는 걸 와 모르능교, 화원장은 진짜로 새마을 시럽네, 나중에 생각이 달라지거들랑 일로 전화 하소’ 카고는 명함 한 장 던져주고 나왔지.”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우리회장이라지.”
다음시간에 나는 등이 떠밀려 낱개포장이 된 최고급 찹쌀떡을 한 아름 사왔고 문학회원들의 입은 귀까지 찢어졌으며 물을 만난 약방감초가 가만히 앉아있을 리 없었다.
“햐, 포장을 보이 이거는 보통 떡이 아이네, 빠리에서 직수입해가 왔나?”
“찰떡에 수입품이 어딨노, 시내 양과점에서 샀다.”
“거기서는 60넘었다고 시비 안 걸 드나?”
“역시 시내는 다르더라, 60넘은 사람한테도 떡을 파느냐고 물었더니 미스코리아 뺨칠만한 아가씨가 첫눈에 사람을 척 알아보고는 낮이고 밤이고 간에 언제든지 오라 카더라, 그라고 화원장 떡은 오뉴월 해삼 퍼지듯이 퍼져가 못 묵는다 카면서 자기 꺼는 쫄깃쫄깃한 기 언제 묵어도 보리밭에서 숨어가 묵는 수밀도(水蜜桃) 맛이라 카더라.”
“진짜로 떡 맛이 화원장 꺼 하고는 차원이 다르네, 역시 사람은 우리 회장님처럼 큰물에서 놀아야 해, 오늘은 내가 한방 쏠 테니 모처럼 향촌동 가서 몸 한번 풀고 한 꼬뿌 하자.”
“요즘 향촌동 카바레는 양로원의 위문공연장 같아서 남사시러버 못 가겠더라, 야시골목에 젊은 애들이 모이는 나이트클럽을 봐 둔 게 있는데 거기 한번 가보자.”
“사람이 자기분수를 알아야지 이 나이에 알라들이 댕기는 클럽에 우예 가겠노, 소크라테스도 ‘제발 니 꼬라지를 좀 알아라’ 카고 죽었잖아.”
“소크라테스가 죽었을 때 문상도 안 가놓고 그 말은 우예 줏어 들었노, 지가 잡아 묵은 닭 값 도 떼묵고 간 그런 영감쟁이 말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팔방언니 말따나 우리분수에 맞게 동성로 실버극장에 가서 영화 한 프로 땡기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치고 나서 노래방에나 가보자.”
내가 황금심의 히트곡 ‘외로운 가로등'으로 분위기를 깔면서 ‘사랑에 병든 내마음속을 너마저 울려주느냐’ 하며 그녀의 어깨를 안으니 홀몸으로 아들은 사법고시합격자로, 딸은 약대생으로 키워냈다며 기고만장한 백팔방 여사도 드디어 ‘오빠 마음대로 해’ 하고 내 목을 안으며 맥없이 허물어졌다.
그러나 이 오빠는 결코 마음대로 할 생각이 없다, 왜?, 집토끼도 감당이 안 되는데 산토끼까지.....
스폰소설: 지하철 한 정거장 가는 사이에 스마트폰으로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