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갈 각오 돼 있다.
◇…큰 파문을 던진 국회 오물 사건의 장본인 김두한 의원은 23일 "내가 던진 오물은 정내각 국무위원 개인한테 던진 것이 아니라 한정을 중단했고 밀수사건을 비호하고 있는 제3공화국 정권에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방 한 칸 없어 여관 신세를 지다 셋집을 얻었다"는 서울 신문로 2가 1번지의 172 양옥에서 한복차림으로 기자와 만난 그는 "말로 해 봐야 구렁이 담 넛듯 마이동풍인 국무위원들에게는 오물이나 뒤집어 씌워야 한다."고 대뜸 흥분부터.
교도소에 다시 들어갈 각오로 "마누라더러 지난번 감옥살이 때 입었던 솜바지 저고리를 빨아놓으라고 했다"는 김의원은 "말만 번지르르한 정부가 '먹고 입어조지는 짓'만 하는 이병철 재벌을 잡아넣을줄 아느냐"고 반문. "삼성밀수가 터져나온 것이 다 까닭이 있었다"는 그는 "재판을 받는 자리에선 다 폭로하겠지만 공화당의 한파에서 삼성에 정치자금 1억 원을 요구했다가 삼성에서 5천만 원만 주고 청와대에 찔러버려 돈을 반환당하고 화풀이로 뒷조사를 해서 터진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63년 선거 때 사카모토(阪本)와 삼성 양 재벌로부터 수억 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공화당 정권이 그들을 잡아넣을 수 있겠느냐"고.
◇…22일 국회에서의 오물세례 후 줄곧 신문로 집에 있었다는 김씨는 문제의 오물은 "57년의 역사를 지녔고 순국선열의 얼이 서린 '파고다' 공원 공중변소에 21일 밤 담을 넘어 들어가 퍼 낸 것"이라면서 새삼 '파고다' 공원 유래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나보고 헌정을 파괴하는 짓을 했다지만 새벽 3시에 한강을 넘어 온 사람들은 무엇이냐"고 사뭇 반격조인가 하면 "일부는 조국근대화란 이름 아래 자기들 집이나 현대화하여 화려한 혁명공약을 공수표(空手表)로 만들었는데, 나의 행동은 그에 대한 국민의 울분을 행동으로 대변한 것 뿐"이라고, 자기로 인한 정계 소용돌이에는 미안하다는 표정이 전무.
1966년 9월 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큰 일을 저질러 놓고도 당당한 그의 태도에서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