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퍼옴-
사실 개인적으로는 누군가를 비판 혹은 비난하는 것보다 칭찬하는 것이 더 어렵다. 오늘은 그 어려운 일을 해보려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있던 해. 가족분들과 함께 7월부터 국회에 살다시피 했다. 농성장소는 당연히 시원한 실내가 아니라 국회 본청 처마 밑이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가 무력하게 끝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분들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진상을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고 이를 위해 국회가 진상규명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이러한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달래기도 전에 국회에서 농성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농성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에 관한 국민적 지지가 있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특별법은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고 제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특별법 제정은 제자리걸음만을 걷고 있었다(실제 농성은 4개월 정도 이어졌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자 정치권에 대한 비난의 수위는 높아져만 갔다. 당시 가족분들을 위해 협상에 나섰던 야당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사정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자 많은 당시 야당 정치인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나서기를 주저하게 되었다.
그 때 담담하게-지금 생각해봐도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가족분들의 창구 역할을 해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전해철 의원이었다. 이 무렵 참 자주 만났고, 또 자주 논쟁했다. 까마득한 선배로서 내가 버릇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내색하지 않고 잘 들어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위와 같은 전해철 의원의 창구로서의 역할과 다른 의원분들의 고생이 더하여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치더라도 특별법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후 전해철 의원은 20대 총선이 다가오자 정치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왔다. 그렇게 아웅다웅했는데 이 분이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하는 의문부터 들었다. 그는 ‘잘 할 것 같아서’라는 짧은 답만 주었다. 고민과 걱정 그리고 세월호 가족분들과의 상의 끝에 정치를 해보겠다고 했다.
물론 입당한 후에도 쉽게 일은 풀리지 않았다. 영입된 이틀 후 문재인 당시 대표님이 대표직에서 물러나셨고 그 후 난 아주 찬밥이었다. 그런데 이 당시 전해철 의원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공천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당시 전해철 의원은 본인도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챙겨주었다. 여기저기 전화도 해주고, 조언도 주었다.
맨 마지막에 공천이 되었던 나에게 그는 정치를 길게 할 생각하지 말고 잘 할 생각을 하라는 짧은 조언을 주었다. 그 말은 아직도 내 맘에 강하게 남아 있다. 물론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도 제대로 답을 못 찾고 있지만.
당선된 이후 첫 과제가 세월호 특조위의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었다. 분명 당시 법 문안으로 보더라도 활동기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는 강제로 특조위를 조기 종료시키려 하였기에 법을 수정하여 아예 활동기간을 법적으로 연장시키려 했다. 그런데 160명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동의한 이 개정안은 결국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렸다.
이 무렵 가족분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20일이 넘게 단식을 하였었다. 더위와 굶주림에 가족분들이 쓰러지실까봐 걱정되기도 하고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가장 절실하게 원했던 법 하나 통과 못 시키는 무력감에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었다. 이 때도 내가 기댈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전해철 의원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내게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기도 하고, 같이 당내 여러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가족분들은 우리당의 노력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단식을 푸셨다. 이후 당 차원에서 세월호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특위 위원장은 전해철 의원이 맡았다. 어떻게 보면 많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리였지만 이 때 역시도 아주 담담하게 그 역할을 맡아 주었다. 난 당 세월호 특별위원회의 간사가 되었다.
이후 특위 소속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목포나 팽목항 방문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고, 인양을 촉구하고, 인양과정에 대한 국회 공청회 등도 진행했다. 그리고 2기 특조위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참사법의 발의와 신속처리안건 지정, 인양된 세월호 선체를 조사할 수 있는 선체조사법 등의 굵직한 일들을 해나기도 했었다. 전해철 의원은 위 모든 과정에서 든든한 중심이자 버팀목의 역할을 해주었다.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글을 통해서나마 전해철 의원에게 감사하고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중에는 꼭 얼굴 보면서도 감사하다고 말하려고 한다.
(말 안 해도 알고 있으시겠지만)